‘학교 폭력’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크고 작은 학교 폭력 사건이 보인다. 그중 뉴스에 보도되는 건 차마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것이 많다. 학교 폭력 피해자였던 나에게는 그 사건들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사건을 접할 때마다 문득,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녀석들의 폭력이 다시 떠오르곤 했던 것이다. 시일이 꽤 지난 일인데도 마치 내 일처럼 생생하게 아팠다.
폭력은 그래서 더 위험한 것이다. 단순히 신체적인 폭력을 가해 겉으로 보이는 상처만을 남기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깊이, 더 오래 남는다. 나는 아직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이 두렵다. 사람들이 나를 괴롭힐 것 같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좀처럼 떨쳐내지 못한다.
그때 폭력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그래서 쉽지 않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나는 여전히 사람에 대한 공포와 불신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아름다운 세상”, 아비규환을 바라보는 고요한 시선
오늘 내가 이렇게 학교 폭력 이야기를 한 이유는 JTBC 채널에서 드라마 <리갈하이>가 끝나고 방영하는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주 소재가 바로 학교 폭력이다.
이 드라마의 접근법은 다소 독특하다. 학교 폭력이 주 소재라 하더라도,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은 폭력을 가하는 학생이나 폭력을 겪는 학생을 자주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1화를 통해 목숨을 내던지고자 한 주인공 선호의 모습을 보여주고, 의식을 잃은 선호의 부모님이 이유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여줄 따름이다.
선호의 부모님은 자신의 아이가 절대로 성적 비관 때문에 자살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들의 뒤에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가해자의 엄마가 있고, 모든 진실을 파악하지는 못했더라도 어렴풋이 관계되어 있는 아이들과 아이들의 부모님이 있다. 이 모든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잘 묘사되어 있다.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은 절대 툭 튀어나올 듯 과한 묘사를 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세상>은 짙고 고요하게 흐르는 감정을 그린다. 이 감정은 때로 갑작스레 솟구치기도 하고, 때로는 푹 꺼지기도 하면서 시청자가 가슴으로 드라마를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이 드라마에는 수많은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나쁜 어른이 있고 좋은 어른이 있고, 그들이 만나는 장면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의 기류를 느낄 수 있다. 너무나 영악해서 입이 떡 벌어지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옛날 같으면 ‘설마 그렇게까지 애들이 하겠어?’라고 했겠지만, 우리는 이미 그 모습이 현실로 존재한다는 걸 안다.
아이들이 증거 인멸을 위해서 입을 맞추거나 단체 톡방 내용을 지우거나 SNS 계정을 폭파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오히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방식으로 폭력의 증거를 지운다. 세상의 기술이 발전한 만큼, 악용하는 방식도 수천 가지에 이른다.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은 제목과 달리 역설적인 전개 방식을 보여주며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진실을 숨긴 채 죽을지도 모르는 친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아이들의 모습, 그런 아이들을 타이르기는커녕 옹호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그렇다. 그래서 한 편 한 편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답답함과 착잡함이 느껴진다.
그러는 한편 마음 한쪽에 남은 양심이 수시로 나를 찌르며 ‘넌 어떤 인간이야?’라고 묻는 것 같아 불편함까지 느껴진다. 과연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자식을 지키고 싶은 부모의 이기적인 마음은 악의와 뒤섞여 거짓을 만들어낸다. 잘 쌓아 올린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아 고통스럽게 허우적거리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아직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꼭 한 번 보기를 바란다. 절대 가벼울 수 없는 소재인 ‘학교 폭력’이 가진 아픔과 고통을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고요하면서도 분명하게 전해주며 시청자의 가슴을 후벼판다. 참, 무섭고 좋은 드라마다.
원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