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오브 헤븐〉이라는 갓갓영화가 있다. 나의 최애 영화 중 하나인데 이 영화 중간에 케락성 앞에서 이스라엘 왕국군과 대치하던 살라흐 앗 딘(살라딘)이 군사를 물리는데 이때 살라딘의 군막으로 성직자가 들어와서 항의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나오는 대사가 명대사다.
성직자: 왜 철수합니까? 왜요? 하느님께서는 저들을 돕지 않으십니다. 전투의 결과는 오직 하느님에게 달렸습니다.
살라딘: 전투의 결과는 하느님에게도 달렸지만 군사들의 준비, 숫자, 건강과 식수의 보급에도 달렸소. 적을 배후에 두고는 포위를 유지할 수 없지. 지금까지 하느님께서 몇 번이나 무슬림에게 승리를 허락하셨소? 내가 지휘하기 전에,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내가 지휘하도록 주재하시기 전에 말이오.
성직자: 거의 없었지요.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살라딘: 준비가 안 돼서 패한 거요.
영화 속 살라딘의 말대로 전투의 결과는 병사의 질과 양, 보급 등이 큰 영향을 미친다. 지휘하는 지휘관이 명장이라면 병사의 질과 양이 밀려도 이기는 경우가 있다지만 이게 결코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명장은 그 질과 양에서 밀려도 그 밀림이 덜한 쪽으로 판을 짜기 때문에 이기는 것이다. 그걸 고려해보자면 병사의 질과 양, 보급은 전투를 이기는 중요 요소인 셈이다.
중세시대부터 근대까지 프랑스가 유럽의 깡패 노릇을 하고 다녔던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프랑스는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농업 강국이었고 인구도 유럽에서 가장 많은 국가였다. 그래서 프랑스는 전통적인 육군 강국으로 유럽의 패권에 가장 가까웠고 나폴레옹이란 희대의 명장이 등장한 19세기 초에는 실제로 유럽 전역을 거의 장악하는 수준까지 간다.
나폴레옹의 야심을 저지해낸 것은 영국인데 영국은 인구는 프랑스에 밀렸고 해군은 매우 우수했지만 육군은 프랑스에 비하면 부족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국이 나폴레옹의 프랑스를 상대로 이긴 것일까? 오늘 이야기할 책인 『돈의 역사』는 말한다.
그거 다 돈입니다
영국은 당대 유럽 국가 중에서도 부유한 나라였다. 광대한 해외 식민지와 식민지 무역을 통해 거둔 돈은 영국이란 나라의 기반이 되었고 이 정도로 돈이 풍부했기에 유럽의 금융 중심지로 기능할 수 있었기도 했다. 그리고 이 돈이 바로 영국의 자랑이었던 해군 함선을 건조하고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런데 이거야 평시의 얘기고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전시 상황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전쟁은 이런 부국인 영국에게도 막대한 규모의 돈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이 돈은 빌려서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 런던이 금융의 중심지란 점은 이 부분에서 굉장히 유리한 조건 중 하나였다. 여기에 더해 채무 상환을 잘해온 역사 덕분에 영국 국채는 굉장히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기에 유리했다. 그런데 프랑스는 정확히 이 반대였다. 영국의 해군으로 인해 해상 보급은 막힌 상황이었고 역사적으로 놀라우리만큼 돈을 안 갚은 덕분에 프랑스는 자금 조달이 어려웠다. 『돈의 역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채금리는 영국보다 역사적으로 2%p 이상 늘 높았다고 하니 말이다.
나폴레옹은 이런 자금 조달과 보급의 한계를 반대로 뒤집어서 현지에서 약탈/징발을 통해 보급하면서 기동성을 극대화했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점령지에서 어그로를 끌기 좋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영국의 돈은 정말 큰 역할을 한다. 우선 무역망과 경제 우위로 더 좋은 보급을 제공했고 나폴레옹에게 참패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국가를 지원하여 나폴레옹에게 대항하는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하는 근간이 된 것이다.
결국 이 차이가 장기적으로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총 7차례의 대불동맹에서 앞선 5차례는 나폴레옹을 저지하지 못했지만 꾸준한 자금력과 보급으로 계속 이어간 결과 결국 6차 대불동맹에서 나폴레옹을 몰락시키고 7차 대불동맹으로 나폴레옹을 대서양 한가운데에 탈출도 불가능한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완벽히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역사적 사실은 역시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것 같다. 역시나 돈이 최고다.
무엇이 위기이고 무엇이 기회인가
이렇게 돈이 최고란 걸 누구나 알기에 사람들은 돈을 정말 좋아한다. 돈은 정말로 중요하다. 가끔씩 ‘돈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허허’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런 주장에 감화된 분들이 ‘아아 그래 세상엔 돈보다 중요한 게 많지’라고 하는 경우를 본다. 그런데 저런 발언을 하는 이들 중에서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사람은 없다. 가장 최근에 이런 말을 한 유명인이 중국 구단의 이적 제안을 거절한 호날두라는 사실은 참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람들은 돈을 정말 좋아하고 관심이 많다. 실제로 유튜브 콘텐츠 중에서도 수익이나 계좌를 공개하는 콘텐츠는 전반적으로 조회 수나 관심이 폭발한다. 단기간에 돈을 버는 대박에도 다들 관심이 많다. 그래서 ‘6개월 만에 3억 버는 비법’ 같은 문구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현혹하는 아주 좋은 문구다.
그런데 투자 이론과 실증적인 데이터가 보여주듯이 단기간의 고수익은 절대적인 운의 영역이다. 그게 진짜 실력임을 증명하려면 이후에 장기간에 걸쳐 고수익을 기록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고수익의 비법’을 거론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이후에 그게 비법이 아니라 운이었음을 실적으로 증명하거나 그 이후의 얘기를 숨긴다. 그 점에서 보자면 이 ‘비법’들은 비법도 아니고 그저 운 좋은 사람의 아무말 대잔치나 다름없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메커니즘이다. 돈이 어떠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돈을 벌기는 고사하고 잃을 가능성만 높다. 움직이는 방식을 몰라서 잃기만 하다 보면 눈 앞에 보이는 현상을 음모론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기 쉽다. 이것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한 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방법이 매우 나태한 것이 사실이다. 역시 정석은 그 움직이는 방법의 이해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 돈이 움직이는 방식의 이해가 난도가 높다는 사실이다. 뭐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이해가 쉽지도 않다.
그래서 이 『돈의 역사』가 참으로 소중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돈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당장 내가 돈을 몇억 버는 비법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이해는 적어도 무엇이 위기이고 무엇이 기회인지 구분할 수 있다. 위기에서의 손실을 최소화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법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존버인데 종종 사람들이 농담으로 이야기하는 ‘손실로 인한 비자발적인 홀딩’은 해당 사항이 아니다. 존버를 잘하는 것도 결국 돈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잘할 수 있다.
돈이 움직이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이 이야기는 한 가지 사실로 귀결된다. 돈이 움직이는 방식을 모른다면 무엇이 진짜 돈 버는 방법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 알아야 최소한 그 돈 버는 비법이라고 으스대는 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무말 잔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앞에서 언급한 영화 속 성직자처럼 ‘패배는 우리의 죄 때문이다’라고 여기는 것과 다름없는 판단을 하게 된다. 현실은 ‘준비가 되지 않아 패한 것’임에도 말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의 입문서로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 책은 경제와 금융 이론들을 역사적 사건들과 잘 엮어서 풀어낸다. 역사와 경제 중에 하나라도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사람에겐 매우 쉽게 읽힐 책이라 생각한다. 물론 둘 다 싫어하는 사람에겐 이 무슨 지옥같은 조합인가 싶겠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애초에 당신이 그 두 가지를 싫어하는 이유는 시험을 봐야 했고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재미있는 책이며 뭔가 해야 할 일(ex. 시험)이 있을 때 보면 3배는 더 재미있을 책이다. 안심하자.
책은 독립적인 이야기들을 다루지만 부 단위로 보자면 각 부마다 그 챕터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메시지 또한 매우 중요한 부분이므로 주목해서 보는 것이 경제의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각 부에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사실상 한국 경제에 대한 제언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불황기에 돈을 더 과감하게 쓰고, 건전 재정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등등) 아마 이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한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내 인생 책을 꼽으라면 그중에 피터 번스타인의 책은 꼭 들어간다. 『리스크』 『금, 인간의 영혼을 소유하다』 등과 같은 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들의 공통점이라면 금융과 경제 이야기를 역사적 사건들과 엮어 매우 흥미롭게 풀어낸다는 점이다. 『돈의 역사』를 읽으면서 학생 때 읽었던 저 책들의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국내 서적 중에선 드문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현재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라 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들이 다 좋은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종합 베스트셀러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스테디셀러로 남아있길 빌어본다. 그리고 『돈의 역사』를 읽고 경제와 금융에 매력을 느낄 누군가가 있길 빌어본다.
원문: 김영준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