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의 익명 고발 페이지인 페이스북의 ‘캠퍼스 대나무숲 텐덤’에 지난 1월 12일 세종시 한 대학 연기과 교수의 ‘갑질’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다. 교수는 학생 집합 명령, 경멸과 무시 발언, 과도한 사생활 간섭 등이 문제가 되자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직서를 냈다. 그런데 이 게시글에 대한 반응이 놀라웠다. 교수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지방대를 비하하는 댓글이 쏟아진 것이다.
잡대(지잡대) 올스타전 찍노.
너네가 지잡대지 군대냐?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좝? 진짜 극혐쓰.
온라인에 넘실대는 멸시와 비하의 물결
‘익명의 바다’인 인터넷에는 자극적이고 수위 높은 지방대 혐오 표현이 넘실댄다. 뉴스 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입시 커뮤니티와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지방대를 싸잡아 비하하고, 심지어 저주하는 댓글과 게시물이 홍수를 이룬다.
지난해 12월 제주대병원에서 교수가 물리치료사, 전공의 등을 상습 폭행하고 폭언했다고 고발당한 사건이 보도됐다. 교수 개인의 일탈임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에 달린 댓글은 “쓰레기 대학 문 닫아라” “이 학교가 지잡인 이유” 등 대학을 비하하는 내용이 수두룩했다.
지난 1월 사법연수원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지역 대학이 아닌 부산대와 영남대 출신 수료생이 수석과 차석을 차지했다. 그런데 이를 보도한 ‘사법연수생 1·2등 사상 첫 지방대 출신’ 기사에는 “지방대라는 말 쓰지 마라, 지잡대라고 쓰든지” 등의 악성 댓글이 달렸다. “(수석·차석 출신 대학) 둘 다 지잡입니다” “부산대 공대는 (좋은 학교라) 지방대라고 할 수 없다” 등 ‘지방대’의 정의를 둘러싼 공방도 오갔다.
부산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김준호(27·가명·취업준비생)씨는 “몇 해 전 우리 학교 신입생 엠티(MT)에서 사고가 나 사망자 등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 그 기사에도 지방대를 비하하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기사에는 “미래의 인재들이 다친 줄 알고 깜짝 놀라 들어와 봤더니 지잡대구나… 불행 중 다행이다” “이런 식으로 지잡대들이 무너지길”과 같은 반(反)인륜적 댓글까지 달렸다.
입시 커뮤니티에도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 범람
고등학생과 재수생 등이 모이는 ‘수만휘(수능날만점시험지를휘날리자)’와 ‘오르비스 옵티무스’ ‘디시인사이드 수능갤러리’ 등 온라인 입시 커뮤니티에서도 지방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게시글이 적극적으로 생산, 소비된다. 회원 수가 266만 명에 달하는 수만휘 카페에는 ‘지잡대를 오지 말아야 하는 이유’라는 게시물이 조회 수 1만 명을 넘긴 ‘베스트 글’로 올라가 있다. 이 글에는 “학생 중 정상인의 비율이 적다” “수업의 질이 바닥을 기어 다닌다” 등의 노골적인 폄하가 담겨 있다.
상위권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것으로 알려진 오르비스에도 ‘가장 쓰레기 4년제 지잡대가 어디인가요’ ‘지잡대는 무시해도 된다 생각함’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이 밖에도 ‘지잡대 공대 한 달 있다가 탈출한 후기’ ‘작년 지잡대 1학기 다닌 후기’ ‘N수해서 지잡대 OT 가면 벌어지는 일’ 등의 글이 지속적으로 공유되며 지방대에 오해와 편견을 강화한다.
경남 지역 국립대 1학년인 김세은(20·가명) 씨는 “한창 대입 원서를 쓰던 시기에 수만휘 카페에서 내가 진학하려는 학교에 대해 ‘편입각’이라거나 ‘지잡대’라고 하는 말을 많이 접했다”며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나는 ‘지잡’이구나 싶어 씁쓸했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다른 지방대에 대해서도 재학생 후기와 댓글 등에 ‘그래봤자 지잡대’ ‘예비 백수’ 등 욕이 잔뜩 쓰인 것을 보고 지방대 혐오가 진짜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고 덧붙였다.
웹툰 〈복학왕〉을 현실로 보는 시선
웹툰이나 유튜브 영상처럼 젊은층에 인기가 높은 콘텐츠를 통해서도 지방대 혐오는 재생산된다. 웹툰 작가 기안84(김희민·35)가 2014년부터 연재하는 네이버 웹툰 〈복학왕〉에는 가상의 지방사립대 ‘기안대’가 등장하는데, 이 대학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지방대 모습을 보여준다.
이 학교에는 ‘등록금 1위, 자퇴율 1위, 출산률 1위’ ‘그대가 자랑스럽다, 98학번 김준구 위드 1급 합격’ ‘03학번 이소정 1종 보통 원동기 면허 합격’과 같은 현수막이 나부낀다. ‘위드’는 워드프로세스의 줄임말 ‘워드’의 고의 오타로, 보잘 것 없는 자격증을 의미한다. 캠퍼스에는 졸업한 ‘대선배님’이 중국집 배달부가 되어 철가방을 들고 나타나고, 정체불명의 원어민 교수가 ‘He go(goes의 잘못) home’과 같은 엉터리 영문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작가는 만화적 재미를 위해 풍자와 과장을 버무렸다고 할 수 있지만 일부 독자는 이를 현실로 받아들인다. 위 내용이 나오는 회차에는 “진짜 현실적이네ㅋㅋㅋㅋ 똥통대학은 안 가느니만 못함” “공부 잘하면 〈치인트(치즈인더트랩)〉 못하면 〈복학왕〉” “너네 공부 열심히 해서 지잡대 가지 말라고 그림으로 그려서 다 보여준다” 등이 ‘베스트 댓글’로 달려 있다. ‘치즈 인 더 트랩’은 명문대를 배경으로 한 웹툰이다.
유튜브에도 ‘지잡대 단톡방 사이다 사건’ ‘재수해서 지잡대 OT 가면 생기는 일’ ‘지잡대를 경험했다는 서울대생 대참사’ ‘지잡대 구분법’과 같은 제목의 영상 콘텐츠가 널려 있다. 대부분 익명의 제작자가 글과 음악을 교차 편집해 만든 조악한 수준의 영상이지만, 수천에서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다. 지난 2016년엔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던 염보성 게임 비제이(BJ)가 인터넷 방송 중 “지잡대는 쓰레기, 공부 안 한 애들, 부모님 등골브레이커”라고 말했다가 물의를 빚은 일도 있다.
온라인 백과사전은 모욕적 표현의 저수지
인터넷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드는 온라인 백과사전은 지방대 혐오 표현의 저수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교적 내용이 엄격하게 관리되는 위키백과(한국판 위키피디아)를 제외하면 대부분 온라인 백과사전이 ‘지잡대’ 항목을 거칠고 모욕적인 설명으로 채운다.
구글에서 ‘지잡대’를 검색하면 가장 위에 노출되는 ‘나무위키’의 경우 파생문서를 포함해 무려 11만 자(원고지 560장) 분량의 설명을 담았다. 여기엔 ‘문자 그대로 막장’ ‘형편없는 지식수준’ ‘교수의 자질도 시궁창’ ‘답이 없는 인성’ ‘야만적인 똥 군기’ ‘쓰레기 선배들’ 등 혐오 표현이 줄줄이 이어진다.
‘디시위키’는 더 심각하다. 10만 6,000자(원고지 530장) 분량의 설명에 ‘잉여 인간 집합소이자 예비 백수 저장소’ ‘사람 하나 인생 망치는 헬조선의 대표적인 블랙홀’ ‘등록금만 X나게 받아가는 쓰레기 혐오 시설’ ‘X 같은 테마파크’ ‘지잡대와 지잡대생은 사회의 악’ 등 폭언을 담았다. ‘구스위키’는 2만 1,000자(원고지 120장) 분량으로 지잡대를 설명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전국 각지에 존재하는 잉여 인간 집합소이자 예비 백수 저장소. 심하면 중고딩보다도 XX급인 인간들도 많다. 개한민국 헬조선에서 군대, 감옥, 집창촌과 동급으로 사람 버려놓는, 사람 하나 인생 망치는 헬조선의 대표적 블랙홀의 하나. 이 집단군에 속한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사라지는 것이 국력에 도움이 되는 소위 가치 없는 존재들이다. […] 전국의 X대가리 XX들이 돈 주고 대학생 간판 따러 가려고, 대학생 흉내라도 내보고 싶어서 1년에 최소 천만 원에서 1억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2년에서 4년 기한의 정액권을 끊고 입장하는 ‘대학 테마파크’다.
충북의 한 사립대 간호학과 2학년에 다니는 김지효(21·가명) 씨는 “인터넷에서 악질적인 혐오 표현을 보면 매우 불쾌하고 글쓴이의 수준이 낮다고 느낀다”며 “인성이 나쁘거나 불성실한 사람은 어느 대학에나 있는데 지방대에만 그런 사람이 있는 것처럼 조롱하고 모욕을 주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충북지역 국립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대구에서 직장 생활하는 이시연(33‧가명) 씨는 “10여 년 전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지방대에 대한 일방적 혐오나 폄하가 심각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극심한 경쟁 분위기 속에서 ‘구별 짓기’가 사람들을 점점 더 피폐하게 만드는 것 같다”며 “주류가 아니면 다 패배자냐”고 안타까워했다.
관심 끌려고 더 극단적 ‘혐오의 언어’ 사용
이런 지방대 혐오 표현이 온라인에 퍼지는 이유는 뭘까? 지방대생의 현실을 분석한 『복학왕의 사회학』을 쓴 최종렬(53)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방대에 대한 혐오 표현은 약자가 약자를 공격하는 병리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지독한 학벌 사회에서 대다수 청년이 느낀 좌절감과 열패감이 또 다른 약자인 지방대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극심한 서열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공격함으로써 우월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심리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또 “인터넷 매체의 특성상 좋은 얘기, 흔히 말해 ‘선플’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기 때문에 남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더 과격하고 생경하고 자극적인 ‘혐오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분석했다.
이승현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저널(2017)에서 온라인에서 확산하는 혐오 표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 연구원은 “과거의 혐오발언은 표적 집단을 배제, 추방, 분리, 교정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 연설, 팜플렛 배부와 같은 형태로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서 강한 전파성을 가지고 국경을 넘어서 이루어진다”고 진단했다.
이어 “인터넷 댓글을 넘어서 1인 방송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콘텐츠로 확산되는 혐오 표현은 온라인이 가지는 전파성·확산성·익명성으로 인해 그 해악성이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장은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