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해서 남 주냐’며 이기심 부추기는 풍토
어떤 학부모들은 아이를 ‘기생하는 존재’로 키우고 있어요. ‘기여하는 존재’가 아니고요. 내가 먹여주고 태워주고 입혀주고 뭐 사주고 다 할 테니까 넌 그냥 앉아서 공부만 해. 공부해서 남 주냐? 오로지 너만을 위해서, 네 주변에 있는 거 네가 다 끌어다 써라. 그게 기생하는 존재의 특성 아닙니까?
미국 미시간 공대에서 20년간 재직하며 최우수 교수상을 연속 수상하고 강의법 강좌를 통해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로 명성을 쌓은 조벽(63) 숙명여대 석좌교수가 11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한국 교육에 일침을 가했다. 2005년 귀국 후 학교폭력대책위원장 등을 맡아 청소년 정책과 교육 혁신에 참여해 온 그는 현재 HD행복연구소 공동소장으로서 부모자녀 관계와 부부 관계 회복 등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조 교수는 한국에 돌아와 들은 말 중 ‘공부해서 남 주냐’가 가장 충격적인 것 중 하나였다며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산 사람이, 훗날 돈도 벌고 얻을 거 다 얻은 후에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기여하겠다는 것은 헛소리”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30–40년을 살아 온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 것”이라며 “인재라는 것은 도달하는 목표점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주입식 교육을 넘어 아이들에게 꿈마저 주입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아이들의 장점을 키워주는 대신 의사 등 특정 직업을 목표로 ‘국영수사과(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에 매달리게 하고 단점을 메우는 데 집중함으로써 결국 평범한 수준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주입하는 꿈은 결국 악몽이지 진짜 꿈이 아닙니다. 그리고 20년 후에 그 부모님의 악몽이 시작될 거예요. 저는 그런 사람 너무 많이 봤거든요. 사회적으로 성공했는데 40–50대 돼가지고 우울증에 걸려 죽고 싶다 그래요. 그리고 그 나이에 부모님을 탓합니다. 엄마 아빠 얼굴도 보기도 싫다고 해요.
‘집단 지성’ 대신 ‘집단 실성’을 보여주는 사람들
조 교수는 또 한국 사람들이 ‘실력이 없으면 인성이라도 좋아야지’ 하고 말하는 것은 매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성이 ‘실력자에게 갑질을 당해도 비굴하게 빌붙는 태도’가 아니라 ‘타인과 협력해서 일할 수 있는 실력’이라고 정의했다. 인성이 곧 실력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성교육의 세 가지 요소로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자기 조율’, 다른 사람과 어울려 일할 수 있는 ‘관계 조율’, 공동체를 위해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공익 조율’을 꼽았다. 그는 특히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익적인 목적으로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능력이 더없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한국을 보니까 집단 지성이 아니라 그냥 집단이에요. 끼리끼리 모여 있는 집단. 학연·지연·혈연으로 똘똘 뭉쳐가지고 기득권 유지에만 목표를 두고 있어요. 끼리끼리 모여가지고 온갖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는 게 바로 집단 실성하는 거죠.
조 교수는 빈부격차에 따른 신분 세습을 의미하는 ‘금수저’ ‘흙수저’와 달리 ‘정서적 금수저’와 ‘정서적 흙수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항공 사주 일가를 예로 들어 자녀를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경제적 금수저’가 ‘정서적 흙수저’로 자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부부가 자주 싸우거나 자녀들과 애착 관계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경우 아이들이 주의력 결핍 장애(ADHD) 등 심신의 문제를 일으키고 심각한 경우 우울증, 중독, 자살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아이들을 ‘정서적 금수저’로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서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행동을 곧바로 지시하기보다 정서적 지지를 앞세우는 ‘감정코칭’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이의 마음 상태를 먼저 이해하고, 부모가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 뒤 행동의 한계를 그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웃사이더 인생, ‘독특함’으로 승부하다
조 교수는 열대의학을 전공한 의사 아버지를 따라 10살 때 자메이카로 이주한 뒤 대학 공부는 미국에서 했기 때문에 청소년기는 흑인들 사이에서, 대학생 때는 백인들 사이에서 늘 ‘아웃사이더(외부자)’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소수자로서 살아남기 위해 ‘최고(베스트)’가 되기보다는 ‘독특함(유니크)’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다.
초임 교수시절, 연구 부담으로 강의준비 시간은 부족하고 학생들은 수업이 지루하다는 반응이어서 거의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죠. 한 해를 그렇게 보낸 뒤 교수법 책이란 책은 다 찾아서 독학을 했습니다. 강의기법에 투자하지 않는 교수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유니크하고 독보적인 존재가 됐죠.
‘교육계의 마이클 조던’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그는 교수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심리학 전문가인 아내 최성애(63) 박사의 도움으로 이론적 토대를 다지면서 교육혁신 전문가로 입지를 굳히게 됐다고 밝혔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이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