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색다른 카페 없을까?’ 충북 제천시 청전동 286번지. 청전(靑田)동은 의림지 아래 있어 이름 그대로 가뭄을 타지 않는 ‘푸른밭’이 있는 동네다. 너른 들판 한가운데로 의림지와 유수지인 솔방죽을 잇는 ‘푸른길’을 걷다 보면 길가에 주인 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가판대가 있다.
새빨간 딸기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눈길을 한번 주거나 발길이 끌린다면,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보라. 그곳이 보통 카페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흙 바닥에, 커피 향 대신 달큰한 딸기잼 향이 감도는 ‘딸기하우스’다.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공간에 오직 ‘딸기’뿐이다. 그리고 아득하게만 들려오는 라디오의 노랫소리. 눈과 코를 사로잡는 딸기들의 향연. 마치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온 기분에 휩싸인다. 헨젤과 그레텔은 굶주린 채 숲속을 헤매다 과자집을 발견했다.
‘푸른길’을 거닐던 목마른 기자가 딸기집에 도착했다. ‘딸기하우스’라는 자막이 돌아가는 카페의 전광판과 비닐하우스가 묘한 ‘부조화의 멋’을 연출한다. 나만 알고 싶은 공간이기도 하지만, 신비스럽고 비정상적인 카페의 모습이 ‘기자 본능’을 일깨운다.
‘바리스타’ 대신 ‘딸기주스 만드는 사람’
천장에 닿도록 줄줄이 쌓인 딸기 상자가 벽을 이뤘다. ‘제천얼음딸기’는 보기 좋게 포장돼 무인 판매되고 있다. 크기가 잔 딸기들과 따놓은 꼭지가 양동이에 가득 쌓여있다.
카페라고 하지만, 얼굴 모르는 주인의 작업장 같기도 하다. 손님 자리는 원목 테이블과 벤치 3개가 전부다. 이곳의 정체가 더 묘연해지며 멍하니 서 있던 중에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딸기 주스 한 잔 드릴까요?”
카페 주인장은 예상 밖이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메뉴판이며 가판대로 지레짐작했던 주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가 ‘딸기 아빠’ 명함을 내보이며 꺼낸 이야기를 듣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딸기주스를 만드는 와중에도 딸 자랑을 빼먹지 않았다. 카페 운영을 적극 응원하는 딸들이다.
“우리 둘째 딸이 만들어 준 명함이에요. 직접 그린 것이고요. 잘 그렸죠?”
딸 다음은 딸기주스 차례였다. 두런두런 이야기로 공간을 채운 카페 ‘딸기하우스’ 김현주(48) 대표. 그는 무인 판매대에 진열해둔 딸기를 가져와 포장을 뜯으며 말했다.
그는 “딸기도 좋은 걸 쓰지만 직접 만든 딸기농축액을 꼭 넣어줘야 한다”며 “시럽 같은 건 넣을 필요도 없고 이게 전부다”라고 가감 없이 레시피를 공개했다. 김 대표는 딸기주스를 가득 만들어 한 잔을 손님에게 주고, 자신도 한 잔을 들이켰다.
“사실 여기는 카페라기보다 딸기 체험한 것을 가지고 자기가 직접 주스도 만들어 먹는 곳이에요. 6차산업으로 전환된 것이죠. 스스로 딸기를 따서 제가 조언한 대로 주스를 만들면 상당히 맛있거든요.
지금 같은 불황에 더 나은 수익을 얻기 위한 하나의 자구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딸기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제가 직접 농사를 지어보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게 다예요.”
제천 명품 ‘얼음딸기’ 탄생 비화
김 대표는 하우스 10개 동에서 2000평 가량 딸기 농사를 짓는다. 그는 삼익농장을 운영하며 제천얼음딸기작목반 회장을 맡고 있다. 연간 수입은 조수익까지 포함해 1억9천만원 정도라고 밝혔다. 지난해는 딸기 값이 좋지 않아 1억4천만원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올해도 공판장 시세가 떨어지고 있기는 작년과 마찬가지다.
“예년보다 1.5kg 상품을 3~4천원 덜 받고 있는데, 그런 게 농가들로서는 피부로 와 닿죠. 농사가 잘됐든, 딸기 값이 비싸든 싸든, 나가야 할 돈은 항상 있는데 들어오는 돈은 적으니까 아무래도 농민들은 힘들다고 생각하죠.”
농장 구경을 권한 김 대표는 그 와중에도 딸기 줄기 꺾어주기 작업을 했다.
“이렇게 꺾어내면 지나가시는 분들이 아깝다고 그러시는데 안 꺾을 수가 없어요. 그다음 딸기가 안 되거든요. 자기 몸이 다 망가지도록 이놈이 생식성장을 하는 중이에요. 영양을 자기가 먹고 커야 하는데 몸체를 키우지 못하고 생식성장만 하는 거예요.”
그는 제천 딸기 농가 수가 전국으로 따지면 극히 적지만, ‘제천얼음딸기’ 상표에는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지역에 나가도 굉장히 호평을 많이 받는다”며 제천얼음딸기의 유래를 들려주었다. 그의 말 속에는 얼어 죽어가던 딸기를 살려보고자 애쓴 농민의 열정이 담겨 있다.
“다른 지방에는 얼음딸기 없어요. 제천만 상표등록이 돼있거든요. 1978년에 제천농업기술센터에서한 농가 하고 제천에도 딸기를 해보자 해서 모를 구해 9월에 심었어요. 11월까지 잘 키웠는데 그때만해도 제천이 영하 29도까지 떨어지고 이러니까 ‘수막’만 돌려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수막재배법은 겨울에도 영상 15도 안팎을 유지하는 지하수를 뽑아 올려 비닐하우스 안에 뿌려주면 내부 온도가 10도 정도로 유지돼 난방비를 절약하는 농사법이다.
“겨울에는 영하 15도 이하로 내려가는데 환풍기와 열풍기를 안 돌려주면 하우스 자체에 얼음이 얼거든요. 센터에 심어놨던 딸기가 다 얼어서 새벽 3시쯤 농가에 전화한 거예요. 농가주가 확인하러 하우스 안에 뛰어들어갔죠.
그분이 꽁꽁 언 딸기들을 살려보려고 하우스 맨 안쪽에서 입구까지 딸기를 들고 뛰어나오셨대요. 뛸 때 얼음이 두두두 떨어지니까 그분이 이걸 ‘제천얼음딸기’라고 불러야겠다고 작명을 한 거죠.”
제천은 해발 360m 안팎의 중산간 고랭지지역으로 딸기 재배에 최적지다. 하지만 지역 딸기 농가들도 고충이 있다.
“저희가 75일 80모를 가지고 초촉성 재배를 하고 11월에 딸기를 따내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1월이 되면 딸기가 없어요. 딸기 값은 12월에서 1월이 가장 좋거든요. 11월에 딸기를 따내서 판매하다 보니 12월에 딸기 값이 안 오르는 거예요. 제천에서 딸기 농사짓는 어르신들이 그 기술에 아직 대응이 안 된 거예요.”
그래도 제천 딸기 농가들은 지자체 지원을 받아 농사를 계속 짓는다. 초촉성 재배 기술이나 지역적 특성상 자재비가 많이 든다. 김 대표는 “농가마다 50%씩 보조를 받아 시설은 다 갖췄다”며 “작년처럼 추워도 딸기를 그 가격에 사 먹을 수 있었던 게 그런 시설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딸기 값은 더 내려가고, 먹기 힘들었을 거라는 얘기다.
딸기잼도 만들며 늘 생각하는 ‘새로운 농민’
“작은 딸기들은 따로 선별해서 지금 공판장에 갖고 가봐야 시세도 없고, 저 같은 경우 그걸 다듬어서 딸기잼을 만들어요. 가공품을 판매하다 보니 약간 수입이 더 발생하는 것 같아요. 그런 걸 착안하다 보면 (농업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전에 체육 선생님으로 일했지만, 이제는 7년 차 농민이다. 그는 학교에서 일할 때보다 농사가 더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작물이 다 자식 같아서 한시도 관심을 놓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농촌기술경제연구원 김정섭 박사는 ‘새로운 농민’ 개념을 강조한다. 농업에 필요한 자원을 스스로 힘으로 만들어내고 관리하며, 시장을 피할 수 없지만 예속되지는 않으며, 농촌 환경과 지역사회를 돌보면서 보람과 긍지를 갖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김현주 대표가 바로 제천에 숨어있는 ‘새로운 농민’인 것 같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이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