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 기획은 쓰타야 가전을 경험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로 나뉜다
많은 이가 간과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전제품을 ‘기능’으로 접근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의외로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이가 자신도 모르게 가전제품을 자신의 취향에 따라 구매합니다.
기능적으로 볼 때 갤럭시S가 아이폰보다 기능이 더 좋고 더 편리한 부분이 많습니다. 아이폰을 쓰는 저도 예전에 쓰던 삼성 갤럭시 노트2가 편할 때가 의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가 아이폰을 구입하는 이유는 아이폰이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감성팔이’ ‘감성 마케팅’이라고 하지만 사람은 원래 감성적입니다. 개개인이 가진 취향의 뿌리가 개인마다 다른 ‘감성’이라는 사실은 자주 잊어버립니다. 우리가 쓰는 가전제품은 철저하게 우리의 문화에 입각해서 변합니다. 그리고 엔지니어분들은 그 문화에 맞는 기능을 가진 물건을 멋지게 만들어냅니다. 요즘은 건조기가 대표적인 예죠.
CES 2018에서 열린 삼성과 엘지의 키노트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전제품의 인식이 변했음을 느낄 수 있죠. AI에 기반한 제품의 기능을 강조하는 부분이 강했지만 AI에 기반한 가전제품이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고민도 잘 담아냈습니다.
쓰타야 가전은 시작점이 다릅니다. 가전제품의 시작점을 개인 ‘삶’에서 시작합니다. 개인 ‘삶’에서 만들어지는 ‘개개인만의 문화’를 바라보며 이는 라이프스타일로 이어집니다. 쓰타야 가전 2층에는 영어로 ‘이곳은 단순하게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라이프스타일을 보여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집에서 책을 즐겨보는 이들은 과연 집에 어떤 가전제품을 놓을까요? 집에서 게임을 즐겨하는 이들은 과연 집에 어떤 가전제품을 놓을까요?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 요리를 즐겨하는 사람은 어떤 가전제품을 놓을까요? 선호하는 삶에 따라 개인이 구매하는 가전제품은 모두 다를 겁니다.
1. 책이 시작점이다
우리나라에서 백화점 혹은 마트 가전코너를 가면 제품들이 놓여있습니다. TV 코너에 최신 TV가 사이즈별로 나누어져 있듯 가전제품 코너는 상품을 다양하게 진열만 합니다. 에어컨은 에어컨, 가스레인지는 가스레인지, 인덕션은 인덕션, 청소기는 청소기. 이런 형태입니다.
하지만 쓰타야 가전은 다르게 시작합니다. 1층 혹은 2층 입구로 들어가면 처음 보게 되는 물건은 책입니다. 입구에는 쓰타야 가전이라고 분명하게 쓰여있는데도 말입니다.
1층 입구에는 스타벅스와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사람이 먼저 보입니다. 2층 입구에는 책과 사람들만 보입니다. 조금 더 들어가야 가전제품이 나옵니다. 그런데 가전제품이 제품별로 놓여 있지 않습니다. 특정분야 책과 함께 가전제품이 같이 보입니다. 요리하는 사람은 책과 함께 도구를 직접 보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가전제품은 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2. 가전제품이 가진 ‘기능’이 아니라 ‘역할’에 주목
쓰타야 가전은 가전제품이 집안에서 가지는 역할에 집중합니다. 여기에서 가전제품이 가지는 역할은 ‘기능’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가전제품이 가진 ‘기능’이 개인 삶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맥락’에 주안점을 둡니다. 쓰타야 가전에서 라디에이터, 공기청정기, 가습기가 있는 코너를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진에서 보면 딤플렉스사의 라디에이터가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가습기 및 발뮤다 에어 엔진 및 비롯한 몇 개의 공기청정기가 있습니다(사진에는 잘렸네요). 라디에이터 앞도 가습기가 있습니다.
라디에이터의 기능은 방을 따뜻하게 하는 것, 공기청정기의 기능은 공기를 순환시키고 방안 공기를 맑게 해주는 것, 가습기는 방안 습도를 알맞게 유지하는 것이죠. 기능만 따진다면 이 세 가지 제품은 큰 맥락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제품이 가진 기능이 집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맥락을 생각해봅시다.
쾌적한 방을 만드는 방법은?
숙면을 위한 방은 어떻게 만들까?
‘쾌적한 방’ ‘아늑한 방’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하면 눈앞에 보이는 가전제품들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기능만 생각했을 시에 생각하지 못한 몇 가지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몇 가지 공통점을 추리면 ‘편안함’으로 요약됩니다. 가전제품이 가진 기능을 벗어나서 가전제품이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중심을 바꾸면 가전제품을 보는 관점이 새로워집니다.
역할을 차분히 곱씹어 보면 가전제품이 나의 라이프스타일에서 어떤 면으로 기여를 알게 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가전제품을 구입한다고 라이프스타일이 만들어진다는 게 아닙니다. 라이프스타일에 가전제품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쓰타야 가전은 여기에 주목하고, 이 부분을 중심으로 가전제품 기획을 전개합니다.
그래서 쓰타야 가전에서 어떤 코너는 자신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어떤 코너는 관심이 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관심이 가지 않아도 한번 둘러보면 “아! 이런 상품들도 있구나”하고 알게 됩니다. 또 다른 코너 사진을 봅시다.
가전제품 매장에 밥솥, 냄비, 그릇, 반찬통, 종지가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전제품 매장에는 가전제품만 있고 그릇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백화점에는 가전 매장과 그릇 매장이 다른 층에 있거나 다른 곳에 있습니다. 마트에서도 가전과 그릇은 서로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밥은 한국과 일본 식문화의 중심입니다. 밥, 국그릇, 냄비, 반찬 종지는 항상 함께 갑니다.
밥그릇과 밥솥 뒤에는 커피 코너가 있습니다. 커피 분쇄기, 커피머신, 에어로프레스, 커피잔, 프렌치프레스 등 커피를 추출하는 기구를 진열했습니다. 커피 관련 가전제품이지만 가정에서 사용하기 가장 적합한 커피 기구만 모았습니다. ‘밥 먹었으니 커피 한잔 어때?’이 생각이 절로 떠오릅니다. 이러한 전개는 집안에서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맥락을 이야기합니다. 밥을 먹고 난 뒤 마시는 음료, 즉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쓰타야 가전에서 기존 가전제품을 이용한 라이프스타일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조리방법을 권하는 라이프스타일도 제안합니다. 푸드&드링크 코나에 수비드 머신을 이용한 라이프스타일 제안코너가 있습니다.
수비드는 재료를 물의 대류열을 사용해서 천천히 조리하는 저온 진공 조리법으로, 음식을 즐기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는 요리 기법입니다. 수비드 머신은 주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사용합니다. 수비드 기법을 활용한 요리는 한번 하면 그 매력에 빠져들지만 재료를 진공포장을 해야 하고 물속에서 조리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게다가 수비드 머신 가격 자체가 비쌉니다. 유명한 폴리 사이언스사 제품은 100만 원가량 합니다.
하지만 쓰타야 가전이 소개한 수비드 머신은 대략 20만 원선이니 수비드 기계치고는 굉장히 저렴한 편입니다. 이 가격대면 가정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하죠. 수비드 기계를 관련 서적과 도구를 같이 진열한 이 코너는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요리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는 이라면 “우와!” 하고 멈춰설 겁니다.
이외에도 쓰타야 가전에는 여러 코너가 있습니다. 하나 모든 코너 등이 위와 같은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가전제품이 가진 ‘기능’이 아니라 가전제품이 가진 ‘역할’에 주목하는 쓰타야 가전의 기획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제품이 아닌 ‘문화’로 접근한다
단순하게 가전제품을 맥락에 맞추어서 진열한다고 라이프스타일이 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쓰타야 가전 푸드&드링크 코너에는 주방이 있습니다. 그 주방에는 일정 시간 동안 요리사가 상주합니다. 위의 사진처럼 요리사가 고객들의 질의응답을 받습니다.
요리사 앞에 있는 제품은 버마쿨라 주물냄비, 발뮤다 고항, 발뮤다 더 토스터입니다. 뒤에는 오븐과 냉장고가 있습니다. 실제로 요리사는 저 주방에서 요리합니다.
이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단순하게 가전제품을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맥락에서만 물건을 판매하는 선에서 끝내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가전제품은 ‘식문화’를 뒷받침하는 도구이기에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간 교류가 있어야 비로소 문화로 만들어집니다. 쓰타야 가전은 이 부분도 놓치지 않습니다.
쓰타야를 만든 CCC그룹도 이 사실을 숙지했다고 봅니다. 다이칸야마 쓰타야 티 사이트 같은 경우 각 코너 컨시어저 코너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포진해 문의하는 고객에게 훌륭히 응대합니다. 재즈는 재즈 잡지 편집자가 맡는 식으로 말이죠.
불과 30년 전만 해도 생활양식이 다양하지 않고 비교적 한 패턴이었습니다. 지금 사회에는 스타일이 풍요롭고 다양하며 고도화·세분화됐습니다. 30년 전, 아니 불과 2–3년 전에 말하던 생활 제안과 앞으로의 사회에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방법은 달라야 합니다.
지금은 잡지, TV를 넘어서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스타일을 제안하는 시대입니다. 다양화한 개인에게 일대일로 적절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엄청난 부수 판매를 자랑하던 잡지가 어느 날 장기 휴간에 들어가고 시대를 주도하던 패션잡지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인플루엔서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었습니다. 시대는 점차 빠르게 개개인에 맞추어야 하는 시대로 변했습니다.
이제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 종류, 방향, 흐름 선호와 수준을 알지 못하면 효과적인 제안을 할 수 없습니다. 단순하게 물건만 놓으면 사람들이 알던 시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쓰타야 가전은 어쩌면 가전제품이 어떻게 나야 가야 할지 커다란 모험을 시도했습니다. 그 도전이 어디에서 끝이 날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쓰타야 가전이 정답은 아니라고 봅니다. 종종 억지스러운 기획도 있습니다. 너무 많은 제품에 질리는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제품의 재고 관리를 생각하면 쓰타야 가전 실무자들도 상당한 압박이 있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업무상 발생하는 디테일이고, 중요한 사실은 ‘가전제품’을 ‘제품’으로만 보는 시대는 끝났다는 겁니다.
이런 분들에게 권합니다
1. 현업 기획자, 혹은 기획자를 꿈꾸시는 분들
아마도 현업 기획자는 쓰타야에 대해서 잘 아실 겁니다. 쓰타야를 만든 마스다 무네이카의 책도 유명하니까요. 다이칸야마 티사이트 기획이 훌륭하지만 쓰타야 가전은 또 새로운 기획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디테일! 디테일이 기획에 얼마 큰 파워를 주는지 알게 되는 곳입니다. 이케아랑 비교해보는 것도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현업 기획자분들 혹은 깋힉자를 꿈꾸시는 분들에게 시간을 내어서 가보시길 권합니다.
2.공간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원하는 분들
다이칸야마 티사이트는 단독 건물 3곳이라서 쓰타야 가 가진 모든 노하우를 집대성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이칸야마 티사이트는 임대료 걱정이 없다는 부분도 무시 못 합니다. 그렇지만 쓰타야 가전은 RISE 쇼핑몰에 위치해 단독 건물이 아닙니다. 단독건물이 아닌 입점형태에서 어떻게 공간을 디자인 할까에 대한 좋은 예시중 하나라고 봅니다.
3.브랜드에 관심이 많은 분들
브랜드가 가진 역량을 어떤 맥락으로 풀어낼지 쓰타야 가전은 잘 이야기해줍니다. 브랜드가 라이프스타일에 어떻게 녹아야 할지 잘 보여줍니다. 동시에 너무 과한 모습도 보여줍니다. 가보시면 압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1. 걷는 여행을 선호하는 분들
아무리 걷는 여행이 좋더라도 돈을 쓰면서 도쿄에서 거리가 있는 도쿄 세타가야구 후타코타마가와까지 가는 일은 생각보다 남는 게 없습니다. 최소 3시간은 소요되는 여정입니다.그 시간에 다른 곳을 가는 일정을 짜기를 권합니다.
2. 도쿄 중심에 위치한 핫플레이스를 가고자 하는 분들
다이칸야마 티사이트는 핫플레이스지만 쓰타야 가전은 가전제품매장입니다. 물건을 사도 한국에서는 전압차로 사용도 못합니다. 왕복 3시간 여정입니다. 그 시간이면 오모테산도 아오야마 도쿄미드타운을 가는 여정이 더 좋습니다. 아니면 맛집을 가서 줄 서는 일이 더 보람 있습니다.
3. 먹방여행을 선호하는 분들
일본까지 와서 가전제품을 왜 봅니까? 여행은 먹는 게 남는 겁니다. 후타코타마가와에 오지 마세요. 적어도 라멘 맛집 2곳을 더 가고도 남는 시간입니다.
원문: 조성은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