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역시나 이번에도 전통에 따라(?) ‘이게 프로냐?’ 기사가 나왔습니다. KBS는 7일 프로야구 사직 경기에서 한화가 안방 팀 롯데를 상대로 3회 16득점한 소식을 이튿날 전하면서 「‘프로 맞아?’…한 타자가 1이닝에 3번, 민망한 대량 득점」이라고 제목을 달았습니다.
한 이닝에 한 팀이 16점을 올린 건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기록. 이전에는 △1992년 4월 23일 잠실 1회 말(OB-LG) △1999년 7월 24일 군산 7회 초(현대-쌍방울) △2001년 8월 11일 잠실 8회 말(KIA-LG) △2003년 5월 15일 대구 더블헤더 2차전 3회 말(LG-삼성) 등 네 차례 나온 13득점이 공동 최다 기록이었습니다.
한화 7번 타자 지성준(25)은 이 이닝에만 세 차례 타석에 들어서 볼넷 – 2루타 – 2루타를 기록했습니다. 한 이닝에 한 타자가 세 차례 타석에 들어선 것도, 세 차례 출루한 것도 지성준이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입니다. 지성준 다음 타순인 장진혁(26)도 이 이닝 마지막 타자로 1이닝 3타석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KBS는 어떤 기록을 보고 프로(야구)가 맞는지 의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한 이닝에 세 번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나와서? 그렇다면 일본 프로야구에도 ‘프로 맞아?’라는 질문이 유효합니다. 물론 일본에서도 한 이닝에 세 번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롯데가 한 이닝 최다 득점을 내준 팀이지만 일본에서는 (지바) 롯데가 한 이닝 최다 득점을 기록한 팀. 2009년 6월 11일 안방 경기 때 히로시마를 상대로 3번 타자로 출전한 오마쓰 쇼이쓰(大松尙逸·37)는 팀이 15점을 뽑은 이 경기 6회 말 타석에 세 번 들어섰습니다.
83년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이런 기록을 남긴 건 오마쓰뿐입니다. 사실 이 이닝 선두타자는 2번 후쿠후라 카즈야(福浦和也·44)였는데 이닝 중간 대주자 호리 고이치(堀幸一·50)에게 자리를 내줬기 때문에 오마쓰가 이 기록 주인공으로 남게 됐습니다.
KBS는 그저 “1이닝에 3번”이라고만 써서 이게 타석에 세 번 들어선 걸 뜻하는지 아니면 세 번 출루한 걸 뜻하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오마쓰는 이 이닝에 3타수 1안타(2타점)로 출루는 한 번뿐이었습니다. 대신 아웃 카운트 두 개를 혼자 늘렸습니다. 나머지 아웃 카운트 한 개는 다나카 마사히코(田中雅彦·37)가 1사 만루에서 기록한 중견수 희생플라이였습니다.
게다가 15득점도 한국 기록에 한 점 부족하기 때문에 “민망한 대량 득점”에서 ‘민망한’을 제대로 충족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일단 한국 프로야구만 민망한 수준이라고 해두고 태평양을 건너보겠습니다. 메이저리그 양대리그에서 1이닝 3타석을 기록한 건 총 26번입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5번이 1953년 6월 18일(이하 현지 시간) 보스턴 안방 구장 펜웨이파크에서 나왔습니다.
보스턴은 이날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23-3으로 승리했는데 7회 말에만 25타자가 타석에 들어서 17점을 뽑았습니다. 지금도 17이닝은 아메리칸리그 한 이닝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로 내셔널리그에서는 1883년 9월 6일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현 컵스)가 디트로이트 울버린스를 상대로 7회 말 18점을 뽑은 게 기록입니다.
이날 보스턴 타자 가운데 새미 화이트(1927~1991), 진 스티븐스(86·사진), 톰 엄플렛(1931~2012) 등 세 명이 세 타석 모두 출루에 성공했습니다. 화이트는 두 번째 타석에서 볼넷을 얻었지만 스티븐스는 세 타석 모두 안타(2루타 1개 포함)를 기록해 현대 야구에서 1이닝 3안타를 기록한 첫 번째 주인공이 됐습니다. 업플렛도 두 번째 타석 기록은 볼넷이었습니다.
요컨대 이날 보스턴은 66년 뒤 한화보다 한 이닝에 점수도 더 많이 뽑았고, 세 타석 이상 들어선 선수도 더 많이 배출했으며, 세 타석 모두 출루에 성공한 선수도 더 많았습니다. 출루 세 번이 모두 안타인 선수마저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경기는 프로 수준이 아니었던 건가요? 상대 팀 디트로이트 관점에서는 ‘민망한 경기였다’고 할 수는 있을 겁니다. 전날 경기에서도 1-17로 패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두 경기에서 40점을 내준 거니까요. 그렇다면 “민망한 실점”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는가요?
한 이닝에 16점이 나오는 건 아주 예외적인 일인 건 틀림없습니다. 1957년부터 2015년까지 포스트시즌을 포함해 메이저리그는 총 234만 7,328이닝을 소화했는데 이 중 16점이 나온 건 딱 한 번뿐(0.00004%)입니다.
예외는 그저 예외입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일이 벌어졌을 때 굳이 ‘프로 맞아?’하고 수준을 논할 필요가 있을까요? 프로야구에서 좀 특이한 일이 생겼다고 하면 일단 깎아내리고 싶어하는 일부 기자 데스크 심리야말로 프로 수준이 맞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