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격적이어야 할 인간 영혼의 구원과 성장을 위한다는 교회의 사역현장조차 주의깊게 깨어있지 않으면 일에 매몰되어 가장 비인격적인 인간착취의 현장이 될 수 있다.
깨어있지않고 성찰할 여유조차 주지 않으며 온갖 프로그램만 바쁘게 돌아가는 순간 ‘목회자가 목회자를, 목회자가 교인을, 교인이 교인을’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며 착취하는 모순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 어쩌면 교회아닐까?
전도 강요하며 본질을 잃어가는 교회
교회가 대형화 될수록 너무나 많은 프로그램이 바쁘게 돌아가는 모습 속에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점점 많아지는 모습 속에 교회가 점점 좋아지고 체계화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전도가 되고 성장을 한다’는 ‘전제’부터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할까? 내가 보기에 ‘프로그램 중독에 빠진 교회’를 굳이 비유하자면 사용가능한 100이라는 자원중에 80-90을 총동원해 프로그램을 실행한다음 1~2 라는 초라한 결과를 얻고 그걸보고 기뻐한다.
역시 하나님의 은혜는 대단하다고… 사실 그 정도의 열매는 아무런 프로그램을 실행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자연적인 결과랑 큰 차이가 없는 건데…
그리고선 그 다음 해에도 역시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해 또 온갖 이벤트, 전도집회, **프로그램에 교인들 등꼴이 빠지도록 헌신을 강요하며 힘들게 돌리다가 또 1-2라는 결과를 얻고 이런 ‘대단한 열매’를 주신(본인들도 꺄우뚱하며ㅋ) 역시 하나님을 찬미한다.
고민과 철학 없는 ‘사람 모으기’ 프로그램
예를 들자면 작년에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수능을 마친 고3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인근 고등학교 몇군데에서 고3학생들 수천명을 초대해서 하루종일 ‘특별수업’ 형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다.
기획과 의도는 좋았다. 고3학생들의 진로를 고려하여 학생들이 원하는 각 분야의 선배 뻘되는 교인들이 일일강사가 되어 진로에 대한 이야기들, 인생상담을 해주고, 대학생 선배들과는 멘토, 멘티 관계를 맺어서 대학생활의 가이드 역할도 해주며 오후에는 연예인들을 초청해서 공연도 하고 말씀도 전하는 행사를 하기로 했다.
결과만 말하자면 취지는 좋았으나 행사진행은 너무 미숙했고 예산은 수천만원이 넘는 돈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대학선배와 관계를 맺고 교회에 등록하게된 고3학생은 열댓명 정도였다.
물론 불특정 다수의 고3학생들에게 가시적으로 측량될 수 없는 ‘교회 이미지 개선’(?) 같은 효과가 있을 수는 있으나 그렇다 해도 이건 너무나 극심한 자원낭비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았다.
(너무나 숫자가 적어서 정말 실망스러웠지만 그 프로그램을 위해 헌신한 모든 사람들의 수고와 열정, 노력까지 폄하하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나도 그 프로그램의 일부를 미약하게나마 도왔기에 그들의 헌신과 수고를 잘 알고 있다.)
내가 아쉬운 것은 교회의 각종 ‘프로그램’과 ‘이벤트’에 그것을 왜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과 철학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에서 어설픈 ‘사람 모으기’ 이벤트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연을 하려면 교회 보다 잘하는 곳이 너무 많다. 진로특강을 하려면 역시 교회보다 잘하는 전문화된 기관이나 강사들도 많다. 수천명을 모아 메세지를 들려주는 목적이라면 설교나 강연자가 고3학생들이 모여있는 고등학교에 가서 하면 된다.
그렇다면 교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나는 그것이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질문을 던지는 데에 있다고 본다.
가뜩이나 가속화된 현대 사회에서 정신없이 돌진하고 있는 삶의 방향이 옳은지 그른지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볼 시간조차 없는 것이 현대인들이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당신들이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그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 틀린 방향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인간다운 삶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교회 본연의 사명이 아닐까?
교회와 교인들부터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와 교인들은 그들 역시 ‘수많은 프로그램과 교회행사에 치여’ 교회밖이나 다를 바 없는 가속화된 삶을 살며 스스로 자신을 멈추어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것 같다. 기독교인 만큼 ‘영성’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종교인들도 없다. 그러나 참된 영성은 ‘멈추어 돌아볼 줄 아는 성찰의 시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성경에도 예수님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특별한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 ‘광야’로 간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적혀있다.
현대인이 광야로 가는 것의 현대적 의미는 아마 ‘무한경쟁이 최고의 미덕’이 된 지금의 삶에서 한걸음 떨어질 수 있는 ‘관조의 시간, 침묵의 시간, 기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시간과 공간을 가장 잘 제공해 줄 수 있는 참된 영성의 안내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교회’아닐까?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현대인들 대다수가 반성과 문제의식없이 살고있는’ 이런 삶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런 삶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곳이 교회가 되야 하지 않을까?
정신없이 프로그램을 돌리는 교회에서 이런 파격적인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성경에도 7년마다 농지를 쉬게하는 안식년 제도에 대한 언급이 있듯이 한해 정도는 교회에서 프로그램과 이벤트, 전도, 선교 프로그램을 모두 중단하고 한번 내버려둬 보면 어떨까?
교회가 주관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올스톱하고 성도들 스스로 무엇이든 자신의 신앙성장을 위해 자유롭게 교제하고 공부하고 봉사하고 사회활동에 참여하게 내버려 두면 어떨까?
그리고 교회가 프로그램을 알아서 ‘빡시게’ 돌릴 때와 모든 프로그램을 ‘내려놓고’ 성도들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뒀을 때의 결과가 어떻게 다른지 냉정하게 비교해 보면 모르긴 몰라도 재밌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
내 생각엔 둘의 열매는 거의 차이가 없거나 도리어 후자의 열매가 더 풍성하지 않을까 싶다. 만일 정말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교회가 얼마나 쓸데없는 짓에 많은 에너지를 낭비했는지 알게 될 것이고 남는 잉여 에너지와 가용자원을 비로소 사회를 위해 투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 같다.
세상이 기대하는 교회와 교인, 교황에게서 배워야
그러나 이런 파격적인 실험을 용감하게 시도해 볼 대형교회는 아마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로만 떠들지, ‘많은 프로그램을 돌리고 교인들을 굴려야 교회가 성장한다’는 신화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생각없이 살아가고 천박한 욕망을 좇아갈 때 잠시 멈추어 서서 생각할 줄 알고 남과 다른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며, 남과 다른 삶을 살아내는 그런 ‘존재’들로서의 교회와 교인들을 일반인들은 기대한다. 그러기에 ‘프란치스꼬 교황’의 파격적인 언행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됨’로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야 할 교회가 ‘존재의 변질’땜에 자꾸 많은 프로그램과 이벤트의 ‘소유’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더욱 슬퍼진다.
숭고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드러낼 교회와 교인들을 세상은 기대한다. 정작 교회는 화려한 건물과 현란한 프로그램으로 세상을 유혹하려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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