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덴마크 코펜하겐 국제공항에 내리면 이런 문구를 볼 수 있다. 덴마크는 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일까? 국민소득? 복지? 휘게라이프? 정답은 이 문구 아래를 보면 알 수 있다. “칼스버그가 필요한 순간입니다(That Calls for a Carlsberg!)” 맞는 말이다. 맛있는 맥주를 만드는 나라는 행복할 수밖에 없지.
랜선여행 전문가(?)인 나도 알고 있다. 코펜하겐은 맥주로만 부르기에는 멋진 예술품과 건축, 박물관이 많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들이 칼스버그 맥주를 팔아서 모은 것이라는 게 함정. 오늘은 칼스버그 맥주는 물론 도시를 예술로 만든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왕의 명령으로 만든 맥주에 아들의 이름을 새기다
1840년대, 덴마크의 왕 프레드릭 7세(Frederick VII)는 양조가들을 모아 다음과 같은 명을 한다. “덴마크와 왕실을 대표할 수 있는 세계적인 걸작을 만들라.” 사실 말이 거창하지 당시의 맥주들은 오직 양조자의 손맛으로만 나오는 가내수공업에 가까웠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맥주의 주인공은 24살 크리스티안 야콥센(Christian Jacobsen)이 가져갔다. 칼스버그에 있는 빨간 왕관 모양이 바로 덴마크 왕실 인증마크다. 그는 과학적이고 산업화가 가능한 맥주를 만들었다. 이름하야 ‘칼스버그(Carlsberg)’. 5살 난 아들의 이름인 ‘칼(Carl)’과 ‘언덕(Berg)’을 합친 이름이었다.
칼스버그는 현존하는 라거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칼스버그는 파스퇴르가 발견한 맥주효모 이론을 적극 수용하여 순수한 효모를 배양하는 데 성공한 첫 맥주회사이기 때문이다. 효모를 다룰 수 있게 되자. 칼스버그 맥주는 다른 맥주와 달리 맛이 균일하고, 장기보관 및 이동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 효모를 특허 등록하지 않고, 다른 맥주회사에 무상으로 제공한다.
때문에 우리가 마시는 모든 라거맥주(하이트, 카스, 클라우드 등등)에는 칼스버그가 개발한 효모가 들어있다. 이 효모는 학술명으로는 ‘파스퇴르 효모(Pastorianus)’지만, 맥주업계에서는 ‘칼스버그 효모(Carlsbegensis)’라고 부른다.
맥주에도 효모에도 아들 이름을 붙이다니. 자식사랑이 대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자식사랑은 마음처럼 되지 않는 법. 칼스버그라는 이름을 지었을 때는 몰랐을 것이다. 이 이름을 두고 아버지와 아들이 대판 싸울 것이라는 것을.
칼스버그 VS 칼스버그 아버지와 아들의 전쟁
해외에서 맥주 양조과정을 유학한 아들 ‘칼 야콥슨(Carl Jacobsen)’이 돌아왔다. 아빠는 아들에게 새로 만든 공장을 넘겨줬다. 아빠는 자신의 공장에서는 칼스버그 라거를 만들고, 아들의 공장에서는 포터(흑맥주)나 에일맥주를 만들기를 원했다. 문제는 아들은 그럴 생각이 1도 없었다는 것.
칼 야콥슨이 만든 것은 아버지와 같은 라거였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라거맥주를 만들어 아버지와 같은 시장에서 경쟁을 했다. 칼스버그 맥주공장에서 칼스버그라는 이름을 가진 두 맥주가 나오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 원칙은 두 가지였다. ‘제조과정은 과학적 지식에 바탕하여’, ‘기업의 성장은 관리 가능한 수준 안에서’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보았을 때 아들의 양조장은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결국 1879년에는 연간 생산량을 제한시키고, 칼스버그란 이름을 달고 맥주를 팔지 말라고 한다. 아들은 뉴 칼스버그(Ny Carlsberg)라고 이름을 짓고 생산량에서 칼스버그를 따라잡는다.
길을 하나 두고 나란히 있는 칼스버그 공장(아버지의 공장은 올드 칼스버그, 아들의 공장은 뉴 칼스버그)에는 맥주 개발은 물론 각종 법정공방 등의 전쟁이 벌어진다. 당시 칼스버그 연구소 직원 일기장에는 “두 미치광이가 상대가 지은 이름을 가리려고 표지판 크기를 점점 키웠다”라고 할 정도였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싸움은 워낙 유명해서 1997년 덴마크에서는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였다고. 부와 명성 모든 것을 얻은 야콥센이지만 자식농사에서만은 쓴맛을 보는 것인가.
칼은 왜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을까?
아들의 입장을 들어볼 필요도 있다. 칼 야콥센은 평생을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야 했다. 아버지는 이미 덴마크 제일의 맥주를 만드는 부자였다. 사회적으로는 자선활동에 앞장섰으며, 1859년 화재로 불탄 프레데릭스보르 성의 재건축 비용을 대부분 낼 정도였다. 무엇보다 피규어… 아니 조각품을 수집하기로 유명했다. 돈뿐만 아니라 사회문제와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덴마크에서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아들에게는 큰 벽이었다. 결혼을 하려고 했던 여성과는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으며, 플젠 라거 양조법을 배워서 왔더니 포터와 에일을 만들라고 하고, 자신의 통제 안에 두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품. 자신이 수집하는 예술품을 아버지는 인정하지 않았다. 아들이 모은 것은 현대 프랑스 조각. 하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반기를 든 아들은 아버지 이상의 기세로 예술품을 모았고, 아버지보다 더 사회공헌과 공공건물 건립에 돈을 댔다. 부자의 다툼으로 사회가 아름다워지는 이 기구한 현상.
코펜하겐을 예술의 도시로 만들다
하지만 미워도 가족이다. 결국 1886년 두 사람은 앙금을 풀고 화해를 한다. 그리고 로마에 가서 함께 예술품을 수집하기로 약속을 한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1887년 4월 30일 크리스티안 야콥센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칼스버그를 만든 크리스티안 야콥센의 전재산은 약속대로 칼스버그 재단에 기부되었다. 칼스버그 재단은 현재에도 인류를 위한 예술, 과학, 문화에 공헌하기 위해 지원을 하고 있다.
아들 칼 야콥센은 아버지는 이후 아버지의 취향인 고대 예술품을 모으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이미 아버지의 기세를 넘어 고대 그리스, 이집트 조각까지 1만점 이상을 모았다).
1888년 자신의 수집품을 국가와 코펜하겐 시에 기부한다. 처음에는 프랑스와 덴마크의 18세기 이후 작품만 기부했는데, 나중에는 그리스, 로마 조각상까지 다 기증했다. 미술관 건물이 부족해서 하나를 더 지어야만 할 정도였다.
이것이 바로 ‘칼스버그 미술관(Ny Carlsberg Glyptotek)’이다. 로댕과 고갱(회화도 모았다)의 작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미술관. 두 부자의 컬렉션 덕분에 19세기 말 코펜하겐은 예술의 도시로 거듭난다.
칼스버그를 마시는 일은 세상에 돕는 것
부전자전이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맥주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사회공헌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는 모든 재산은 재단을 통해 사회에 기부했다. 아들 칼 야콥센도 세상을 떠나며 “많은 사람이 벽난로에 땔감이 없어 고생하니 내 관에는 꽃을 얹지 마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두 사람의 이야기와 열정은 칼스버그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과거 양조장을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1800년대 양조시설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해놓았다. 추가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맥주병 컬렉션’으로 기네스 기록에 오른 곳도 이곳이다. 동서양의 맥주 2만 2천 병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이 덕후 같은 회사.
우리가 마시는 칼스버그의 수익금 중 일부는 재단에 의해 기부되고 있다. 덴마크의 사회과학과 인문학 예술에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은 스포츠. ‘리버풀’에서 오랫동안 스폰서를 해왔으며 라이벌 ‘하이네켄’이 주관하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칼스버그의 리버풀이 우승하는 이상한 콜라보를 보여준 적도 있다.
특히 관심을 가지는 것은 과학이라고 한다. 플라스틱 문제가 이슈화 되자 플라스틱 대신에 쓸 수 있는 스낵팩(Snap pack)을 개발했다. 또한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젊은 과학자들을 모아 ‘Carlsberg young scientist community’를 출범하여 탄소배출량, 버려지는 물, 작업장의 사고율, 무분별한 음주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한다.
그래서 칼스버그를 마시는 일은 세상을 돕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1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더 좋은 맥주와 사회를 위해 두 사람의 열정이 칼스버그에 계속 이어지기를 기원해본다.
원문: 마시즘
참고문헌
- 『THE HISTORY OF THE DANISH BEER CARLSBERG』, CPH down town
- 『History & Beer ac Carlsberg Brewery』, thatgirlcarmel
- 「모두가 겉으로만 아는 라거와 에일의 차이」, 이시열, 브런치
- 『50개의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이야기』, 김민주, 미래의 창
- 『맥주재벌 부자의 예술사랑 절실』, 최정표, 신동아
- 『세기의 라이벌 칼스버그 VS 하이네켄』, 장관석, 신동아
- 『칼스버그 플라스틱에 종지부를 찍다』, 권오경, 그린포스트코리아
- 『그때 맥주가 있었다』, 미카 리싸넨 유하 타흐바나이넨, 니케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