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안다. 글쓰기의 두려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특히 그대가 나와 같은 이공계인이라면, 글쓰기라는 괴물이 어떻게 당신을 쫓아다니며 여태 괴롭혀 왔는지 잘 알기에 우선 심심한 위로의 말씀부터 건네는 바이다.
이공계로 도피해도 글쓰기는 당신을 괴롭힌다
오로지 여고생을 만날 기회가 많을까 싶은 일념으로 가입했던 고등학교 시절 문예부에서부터 나의 글쓰기 비극은 시작되었다. 학교 시화전 때 시 잘 쓰는 선배 동기들 작품 앞에 죽 늘어선 여고생들의 행렬을 쓸쓸히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나는, 차라리 여고생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더라도 문예부에는 가입하지 말았어야 했다.
물리학과로 대학에 진학하면 그놈의 괴물이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 좀 바꿔보겠다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더니, 그 바닥에서는 글쓰기를 통하지 않고서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문장이라고 해 봐야 방정식을 풀어라, 공식을 유도하라, 그 값은 얼마인가 정도만 알던 이공계생으로서는 정치학과, 사회학과, 경제학과 같은 “어마무시”한 인문계열 출신들이 써 제끼는 현란한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그나마 이공계인이라서 다행스런 점도 있다. 글을 못 써도 이공계 출신이니까 원래 그러려니 하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 경우도 많을뿐더러, 조금만 잘 쓰면 이공계 출신인데 제법 쓴다는 칭찬까지 들을 수도 있다. 슬픈 현실이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이제는 대학을 졸업한 지도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여전히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중 하나는 어떻게든 글쓰기는 피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괴물과 맞서 싸우지 않으면 그 괴물은 평생 여러분을 쫓아다니면서 괴롭힐 것이다.
목적만 뚜렷해도 절반은 성공한다
학생운동을 하는 와중에는 말하자면 숱한 실전 속에서 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에는 인터넷에서 글을 썼던 탓인지 사실 내 글은 그리 아름답지도 못하고 솔직히 잘 써진 문장도 아니다. 다만 나름의 실전적인 경험으로부터 이공계생도 꼭 알아야 할 글쓰기 원칙 한 가지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그 글을 쓰는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내가 왜 이 글을 쓰는가, 이 글을 써서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가 대단히 구체적이고 명징해야 한다. 어떤 대상을 독자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글인가, 독자들을 설득해서 행동에 나서게 하는 글인가, 아니면 지금 내 야릇한 심정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한 글인가가 명확해야 한다.
물론 글을 쓰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고 또 그 목적이 여러 가지인 경우도 많지만, 설령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목적을 구분해서 전체 글을 구성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자기소개서를 예로 들면, 많은 사람들은 자기소개서를 ‘자신을 설명하는 글’로 오해하고 있다. 이 오해는 ‘자기소개’라는 단어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의 본질은 한마디로 말해 “나를 뽑아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글이다. 나를 뽑지 않으면 당신이 후회할 것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니까 자기소개서는 가장 강력한 주장으로 읽는 이를 설득하는 글이다. 아니, 그런 글이어야 한다. 이 사실만 확실히 알고 있다면 자기소개서에서 자기를 ‘설명’하느라 애쓰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즉시 깨닫게 될 것이다.
이공계가 자신감을 가지고 글을 써도 되는 이유
좋은 글쓰기를 위한 왕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첫 발을 떼겠다는 용기와 의지만큼 중요한 덕목도 없다. 이공계인들이 글쓰기에 나서지 못하는, 그래서 글을 못 쓰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너 참 글도 못 쓰는구나, 어떻게 이 따위 글을 쓸 수가 있냐, 이것도 글이라고 쓰고 앉았냐, 따위의 조롱과 멸시쯤은 간단히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용기, 때로는 힘 있는 사람과 맞서야 하는 용기, 그 글을 쓰는 동안에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 그런 용기들이 좋은 글을 만든다.
이공계는 정답이 정해진 교육과정이 많기에 문과보다 더 글쓰기를 꺼리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글쓰기에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설명하는 글이든, 설득하는 글이든 탄탄한 논리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교육과정 내내 탄탄한 논리를 교육 받는 이공계와 글쓰기는 그리 먼 사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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