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는 바야흐로 뉴밀레니엄 시대의 2000년이었다. 당시 내 고향 김해는 타지 사람들의 흔한 오해처럼 김해평야만 펼쳐진 곳은 아니었다.(심지어 나는 김해평야를 본 적도 없다.)
백화점이나 지하철은 없었지만 홈플러스와 CGV를 비롯한(사실 그 둘이 전부였다.) 갖가지 아기자기한 공원과 학교와 학원과 전통시장과… 아무튼 나름대로 도시의 면모를 갖춰가는 중이었다고 하자.
물론 지금은 부산지하철 2호선과 연결되는 경전철이 들어서고 대형마트 업계의 3대장인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우뚝 서고, 거기다 신세계백화점까지 생겼다. 도시화가 늘 자랑거리인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오해할까 싶어서. 아무튼 그때는 2000년, 지금은 2019년이라는 얘기다.
해서, 초등학교 5학년이던 나도 여느 도시의 아이들처럼 오락실에서 킹 오브 파이터즈를 하고 ‘독서당’이라는 간판을 단 책 대여점에서 만화책을 빌려 읽었다. 포트리스나 스타크래프트는 잘하지 못했지만 친구들을 따라 PC방을 가보기도 했다. 그리고 여느 도시의 아이들처럼, 보습학원을 다녔다.
당시 우리 동네에서 꽤 잘 나간다는 학원을 다니기 전, 나는 굉장히 영세한 학원을 먼저 다녔다. 잘은 모르지만 비교적 학원비가 저렴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거리가 3배는 더 멀고, 과목별 선생님이 없어 Baha Men의 ‘Who Let The Dogs Out’ 조차 해석해주지 못하는 학원을 굳이 보낼 이유가 없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노래가 너무 신나고 좋아 제목이자 후렴구인 Who Let The Dogs Out의 뜻을 묻자, 한참 고민하다 “이건 잘못된 문장이네. 너는 잘 모르겠지만 흑인들은 영어를 자기들 맘대로 하거든.”이라고 말하던 뻔뻔한 원장의 표정이.
아무튼 2000년, 5학년의 나는 그런 학원을 다녔다. 때문에 딱히 학원에서 뭔가를 배운 기억은 없다. 떠들고 혼나고, 떠들고 혼나고. 그뿐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시절을 떠올리면 교재라든가 샤프라든가 그런 것들보다도 떡볶이 국물이 먼저 떠오른다.
학원가는 길 한 구석에 작은 분식점이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 틈새에 엉성하게 차린 가건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언제나 허름하고 다소 비위생적이었던, 간판도 없던 그 분식점에선 어묵꼬치와 국물 떡볶이와 순대를 팔았다.
300원이나 500원을 내면 종이컵에 떡볶이를 덜어주는데, 특히 국물 맛이 기가 막혔다. 달고 짜고 매콤한, 보나 마나 몸에 안 좋을 것이 뻔한, 그걸 다 알면서도 계속 먹고 싶은 맛.
당시 내 용돈은 많아봐야 1000원을 넘기지 못했으니 300원이나 500원이나 무시할 금액은 아니었다. 학원을 마치고 오후 5시나 6시쯤, 친구와 함께 분식점으로 향해 떡볶이가 담긴 종이컵을 받고도 우리는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종이컵에 받았다 하여 함부로 테이크아웃을 했다간 귀하디 귀한 어묵 국물을 맘껏 마실 수 없으니까. 300원어치 떡볶이를 받아 들고서 500원어치 어묵 국물을 마셔대는 우리는, 그야말로 진상 중의 진상 초딩이었다.
그뿐이었다면 넓은 아량으로 그저 철없고 귀여운 초딩이라고 넘길 수도 있었을 텐데, 종이컵을 싹싹 비운 우리는 염치도 없이 떡볶이 국물 리필까지 요청하는 진상, 진상, 개진상이었다. 12살쯤이면 양심이나 눈치라는 게 있어야 할 텐데 어떻게 그따위 짓을 했나 싶다.
그런데도 가난하고도 친절한 분식점 아줌마는 말없이 종이컵에 떡볶이 국물을 리필해주셨다.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닫아건 꾹 다문 입술 끝을 그 당시엔 눈치 채지 못했다. 심지어 리필 국물에 떡 부스러기라도 운 좋게 섞여 있으면 속으로 기뻐하기 바빴다. 다행히도 우리는 그 리필 국물을 끝으로 밝은 인사와 함께 분식점을 떠났는데, 딱히 염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단지 물을 마시고 싶어서였다.
가끔 떡볶이를 먹을 때마다 그때가 생각난다. 저녁 어스름이 지던 시간, 배운 것 없이 나선 학원, 허름하고 작은 분식점, 종이컵에 담긴 떡볶이, 어묵 국물을 떠먹던 빨간 플라스틱 컵, 초췌한 아줌마의 잔 꽃무늬 앞치마 같은 것들.
세월은 흘러 뉴밀레니엄도 19년이나 더 지나고, 이제 어디에서도 300원짜리 떡볶이는 찾아볼 수가 없다. 12살이던 개진상 초딩은 31살의 아저씨가 되었다. 그런데 그 시절의 떡볶이 국물이 여태 생각나는 건, 아줌마의 마음은 너무나 다정했고 나이 들수록 나는 자꾸만 미안했던 탓이다.
내가 기분 좋게 분식점을 떠난 후에야, 그 아줌마는 참았던 한숨을 길게 쉬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염치없이 리필해 먹었던 떡볶이 국물이 아직 몸속에 흘러 다니는 것처럼 속이 따끔따끔하다.
빚진 떡볶이 국물을 다 합해도 겨우 몇 천 원 안팎일 텐데, 이젠 어쩔 수가 없다. 가장 고약한 빚을 진 기분이다. 갚을 능력도 있고, 갚고 싶은 마음도 간절한데 끝내 갚을 수 없는 빚. 그저 그 시절의 분식점 아줌마처럼, 나도 떡볶이 국물을 다정하게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랄 뿐. 보잘것없지만 다정한 마음을.
원문: 김경빈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