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이 뒤바뀌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다
2013년 11월 8일 밤, 그녀가 잠들어 있던 강남구 신사동 집에 3명의 낯선 남자가 들이닥쳤다. 남자들은 어안이 벙벙한 박경애 씨의 팔다리에 포승줄을 묶고 경기도 어딘가의 시설로 끌고 갔다. 행선지는 도착해서야 알았다. 정신병원이었다.
독방에 갇힌 그가 처음으로 맞은 것은 ‘코끼리 주사’였다. 이 주사를 맞으면 코끼리도 쓰러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한 끼도 먹지 못했고, 팔다리는 밧줄에 꽁꽁 묶여 피도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이틀 동안 방치되면서도 그는 자신이 왜 이런 취급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의사는 그를 ‘인격장애’라 진단했다. 박 씨가 정말로 그런 정신병력을 가지고 있었을까?
굳이 따지자면 갱년기 우울증이 있었다. 한두 달 전부터 신경정신과 외래진료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 증상이 자신이나 남에게 피해를 입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강제적인 정신병원 입원 절차가 필요할 정도로 중증인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날 대체 왜, 박경애 씨는 한밤중에 끌려가야만 했을까?
박경애 씨를 가둔 것은 갱년기 우울증도, 가짜 진단이었던 ‘인격장애’도 아니었다. 그가 살던 신사동의 40억대 건물과 재산을 가로채려던 두 딸과 정신병원의 공모작이었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정신보건법 제24조에 기록된 조항이 그를 가두는 근거가 되었다.
구 정신보건법 제24조(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정신의료기관등의 장은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보호의무자가 1인인 경우에는 1인의 동의로 한다)가 있고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가 입원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 한하여 당해 정신질환자를 입원등을 시킬 수 있으며 […]
박경애 씨의 삶을 뒤바꾼 하룻밤은 범법행위조차 아니었다. 단 세 사람의 동의만 있으면 일반인이 정신병자로 둔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박경애 씨는 두 딸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는 조건을 내걸고서야 정신병원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3달 만에 사회로 돌아왔을 때, 그가 살던 집은 헐값에 경매로 넘어가 있었다. 통장에 있던 돈은 두 딸이 모두 가져갔다. 다른 병원에서 정신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이미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무너져 있었다.
그 많은 ‘박경애 씨’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정신보건법 제24조는 수많은 논란을 양산한 끝에 2016년 5월 19일 개정되었다. 정신과 의사 1명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6개월 이상 가능하던 입원은 2주로 제한되었다. 그 이상 입원하려면 서로 다른 의료기관 소속 전문의 1명의 동의가 더 필요하다. 또한, 모든 강제입원은 1개월 이내에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서 적합성 심사를 받아야만 한다.
이렇게 법이 바뀌었으니 모든 것이 안전해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개정 이후 강제입원 환자 비율이 37.1%로 줄어드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하면 강제입원 환자의 비율이 높다. 독일의 경우 17%, 이탈리아는 12%인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훨씬 높은 비율인 것이다.
그렇다면 자의와 상관없이 억울하게 갇힌 사람들, 그들에게는 출구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나라에서는 이들을 구제할 비책을 마련해 놓았다. 바로 ‘인신보호제도’다.
‘마지막 희망’
먼저 인신보호제도를 규정한 인신보호법에 대해 알아보자.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신권철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인신보호법 1조는 위법한 행정처분 또는 사인(私人)에 의한 시설에의 수용으로 인하여 부당하게 인신의 자유를 제한당하고 있는 개인의 구제철자를 마련함으로써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다면 이 제도를 통해 구제를 신청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할까? 구금된 사람 본인, 그 법정대리인, 후견인, 배우자, 직계혈족, 형제자매, 동거인, 고용주 또는 수용시설 종사자가 피수용자의 성명과 수용이 위법한 사유 등을 기재한 구제청구서를 관할 법원에 제출하면 된다. 청구서가 접수되면 법원은 2주 이내에 심문기일을 열어 수용이 위법한지, 수용을 계속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판단한다.
인신보호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된 2008년에는 구제청구 사건수가 29건, 이듬해인 2009년에는 122건에 그쳤다. 그러나 2017년이 되어서는 총 856건으로 청구건수가 크게 증가했다. 이는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과 더불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된 환자를 큰 폭으로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 번 갇히면 피수용자의 자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절에 비하면 확실히 새로운 희망이 생긴 것이다.
인신보호제도의 첫 수혜자 이야기는 이 제도가 보여주는 희망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볼 수 있다. 그는 의사였던 김 씨로, 약물남용과 조울증 증세가 있다는 아내의 주장에 따라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그러나 법원은 “약품이 향정신성 의약품이 아니어서 정신이상을 유발하지 않고, 아내와 재산분할 다툼이 있었는데 강제적으로 수용되어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다”는 김 씨의 편을 들어주었다.
2008년 시작된 인신보호제도는 시행 10년을 넘고 있다. 그리고 구제청구 사건 수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부당한 강제입원‧수용에 대한 사회적 대응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입법 목적이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더해서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국회의원은 ‘인신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하였다. 제안이유를 살펴보면, 인신보호청구는 형사절차에서와 동일한 차원의 구제절차임에도 청구권자에 대리인이 포함되지 않아 형평이 맞지 않으므로 청구를 신청할 수 있는 사람에 대리인을 추가하고, 국선대리인을 신설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삶은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를 초입으로 되돌려보자. 지금 박경애 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KBS 다큐세상 – 미씽, 사라진 사람들〉에서 취재한 그녀의 모습은 뜻밖에도 매우 밝아 보인다.
이제 박경애 씨는 사랑하는 반려동물 ‘꽃잎이’와 산책을 즐기는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감금됐던 나날 동안 그토록 바랐던 바깥 공기를 원없이 마시며 살아있음을 만끽하고, 때로는 본인을 위한 맛있는 식사를 차리기도 한다. 약과 강제 입원으로 얼룩진 과거도 어느덧 5년 전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도 그 날을 떠올리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상흔은 제법 깊게 남았다.
그녀가 당시에 인신보호제도를 알았더라면, 흔적으로 남은 아픔조차 없었을 수도 있다. 보다 쉽고 억울하지 않은 방법으로 자유를 찾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은 박경애 씨 말고도 많을 것이다.
4월 5일 밤 11시 45분 방영 예정인 〈KBS 다큐세상 – 미씽, 사라진 사람들〉에서는 이들을 하나하나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위법한 행정처분 또는 사인에 의한 시설에의 수용으로 인하여 부당하게 인신의 자유를 제한당하는 강제입원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그리고 그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인신보호제도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짚고 있으며, 일본과 독일 등 비슷한 강제입원 제도를 갖추고 있는 나라에서는 어떻게 제도를 정비해 왔는지 상세한 차이점을 논할 예정이다.
만약 주변에서 비슷한 아픔을 겪는 이들을 알고 있다면, 법원의 인신보호제도를 적극 알아보자. 인신보호제도 통합콜센터인 1661-9797로 전화해서 상담할 수도 있다. 인신보호제도는 이런 사람들을 일으켜 세울 첫 번째 걸음이 될 것이다.
방영 일시: 4월 5일(금) 밤 11시 45분
※ 해당 기사는 KBS 다큐멘터리 <미씽>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