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수에 대한 기초 팩트
한국은 주택이 많이 모자란 나라다. 크게 세 가지 근거가 있다. 먼저 인구 대비 주택 수. 국제비교는 1,000명당 주택 수로 이뤄진다. 한국은 2017년 기준 400호에 미달해 OECD 가운데 가장 적은 수준이다. 이런 나라는 몇 되지 않으며 모두 주거 불안이 고조돼 있다. 유일하게 한국과 비슷한 인구밀도를 가진(즉 유달리 인구밀도가 높은) 네덜란드는 1,000명당 주택 수가 440호 남짓이다. 440호도 그렇게 많은 주택 수는 아니다.
(※ 한국에 익숙한 주택보급률은 국제 비교에서 전혀 쓰이지 않는 통계다. 주택보급률은 가구당 주택 수가 기준인데 가구원 수의 상이함을 고려할 때 가구를 기준으로 주택 수를 헤아리는 건 허수가 많이 끼어든다. 주택보급률은 아주 일부 국가의 자료만 알려지고, 내가 과문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을 국제적으로 비교하고 시사점을 찾는 연구가 없다. 어쨌든 주택보급률을 근거로 해도 한국은 알려진 몇몇 나라에 비해 수치가 떨어져서 공급이 더 늘어나야 한다.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었는데 무슨 주택 공급이 필요하냐고 소리치는 전문가들은 단언컨대 사이비다.)
둘째로 ‘평균 면적’과 ‘평균 방의 개수’에서 한국은 바람직하지 못하게 독특한 양상을 띤다. 유럽통계청의 자료와 비교하면, 한국은 평균 면적이 유난히 작고 평균 방의 개수는 가장 많은 편이다. 이것은 인구(밀도) 대비 주택 수가 현저히 부족한 것과 연결이 된다. 집이 모자라는데 적응하려면 작은 방이라도 여러 개 있어야 하고, 코딱지만 한 원룸에라도 들어가 살아야 한다. 좋지 못한 주거 환경이고 따라서 더 나은 집에 대한 수요가 큰 폭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셋째로 한국은 OECD 기준에서 품질이 아주 나쁜, 예를 들면 화장실이 없는 등의 매우 열악한 주택이 가장 많은 편이다. 멕시코 같은 데를 제외하면 가장 많다. 국제비교 통계 없이 잠깐만 주변을 떠올려봐도 쪽방, 판잣집, 비닐하우스집, 고시원, 반지하 등 시급히 개선돼야 할 주택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이상을 통해 볼 때 한국은 주택 공급을 가급적 서둘러 늘려야 한다. 인구 대비 주택 수가 증가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결과만이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집이 부족하다는 건 기초적인 팩트다.
통계 속 ‘집값 상승률’의 진실
최병천 전 보좌관은 국제 비교 상 한국의 실질 주택가격 상승률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님을 강조해왔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 폭등했다는 집값도 당시 다른 나라들에 견줘보면 ‘선방’한 부동산 정책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집값 상승률을 가지고 부동산 정책의 성패나 주거여건의 실황을 판단하는 것은, 어느 방향으로 평가하건 그리 건설적인 일은 아니다. 이게 한국에선 일반적이지만 바람직한 행태는 아니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OECD의 실질 주택가격 변동률을 보면 한국은 연평균 기준으로는 낮은 편이지만, 최고 상승률 기준으로는 상위권이다. 이 기간은 세계적인 대세 상승기라고도 할 수 있다. 2009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기해, 대부분 나라의 집값이 몇 년간 크고 작은 하향세로 접어들었고 한국 역시 여타보다는 작은 폭이지만 하락세를 기록했다.
한국은 집값의 상승을 곧 주거 여건의 심각한 악화로 받아들이는 고정관념이 강고하다. 그 역의 고정관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집값이 뛰어오르고 대출액이 증가하더라도, 장기 저리의 융자가 용이하고 안정적인 수입 및 이자 부담 경감 정책 등을 바탕으로 무리 없이 자가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면 비용 면에서 큰 탈이 생기지 않는다.
또 높은 집값 상승 속에서 거액의 대출을 끼고 장만한 집이 넓고 쾌적한 신축이거나 그에 못지않은 리모델링 집일 경우,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면 상당히 좋은 주거여건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단지 집값 상승률이 높다든가 가계대출이 증가했다든가 하는 정도의 정보만으로 개인 및 국가 단위의 주거 여건을 단정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주거 여건을 더 정확히 파악하려면 자가주택 이외의 주택 부문, 즉 민간임대와 공공임대의 현황이라든가 임대료 규제 등 임대차 규제의 실태, 주거 복지(=OECD 기준에서 주택수당 또는 주거보조금)의 현황 등도 놓쳐서는 안 되는 대목이다. 뛰는 집값과 대출액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민간과 공공의 괜찮은 임대주택에 큰 불만 없이 살 수 있다면, 또 이런 케이스가 집 없는 사람들 다수에게 해당한다면,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든 말든 주거 여건이 좋은 것이다.
한국의 경우 공공임대가 OECD 가운데 가장 적게 공급된 편이라는 건 많이 알려져 있다. 민간임대시장의 물량도 앞서 인구 대비 주택 수에서 알 수 있듯 많지 않은데, 임대차 규제 또한 OECD 가운데 가장 느슨한 것으로 측정되어 세입자의 전반적인 주거 여건이 양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임대차 규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더해 저소득층 세입자에게 제공되는 한국의 주택수당은 OECD 기준 GDP 대비 제로다. 극빈자 일부에게만 미미한 주거급여를 지급하는 수준이니 아예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 것이다. 세입자의 주거 안정에 도움이 되는 공공과 민간의 임대주택시장이 발달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는 주택수당마저 시행하지 않으니 한국의 많은 세입자가 아우성을 지르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최 전 보좌관은 “한국은 ‘주택가격의 객관적 격차’가 큰 나라가 아니라 오히려 ‘주택에 관한 주관적 격차’가 큰 나라에 속하며, ‘부동산에 대한 주관적 민감성’이 세계 최고인 나라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것은 주거 부문을 자가주택 시장에 한정시켜 좁은 시야로 바라보는 것이다. 상기에서 살펴보았듯 한국은 ‘객관적으로’ 세입자를 힘들게 하는 주거 환경을 가졌다. 내 집 장만이 여의치 않은 (비전세) 세입자들이 집값이 ‘억’ 소리 나게 오른다는 소식을 들으면 ‘객관적으로’ 짜증이 나고 허탈해하는 게 정상이다.
최 전 보좌관이 노무현 정권기의 높은 집값 상승을 해석하는 시각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다. 최대의 집값 상승률을 기록한 다른 나라들에는 못 미쳐도 당시 한국에서 큰 폭의 집값 상승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와 결부되어 지나쳐서는 안 되는 대목이 노무현 정권 때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점이다. 즉 중상층 이상의 계층과 나머지의 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는 와중에 집값도 급격히 오른 것이다.
내 소득은 정체 또는 하향 아니면 소폭 상승 정도에 그쳐 내 집 장만은 언감생심인데, 한쪽에서는 가파르게 소득이 증가하고 집값도 뛰어오른다면 밑에 깔린 사람들로서는 ‘객관적으로’ 불만의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국은 기본적으로 세입자 친화적인 주거 환경을 갖추지 못한 나라다.
이런 지점을 간과한 채 “국제 비교 통계로 보면 한국의 집값 상승은 그렇게 큰 문제라고는 볼 수 없는 게 팩트”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종합적인 팩트들을 무시함으로써 진짜 현실과 팩트를 가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굉장히 먹고살 만한 사람들 위주로 주거 실상을 바라보는, ‘중산층 일방주의’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집값 상승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문재인 정부에서 잘하면서도 못하는 것이 주택 정책이다. 공급 줄을 틀어막다시피 함으로써 많이 부족한 인구 대비 주택 수를 그다지 개선하지 못한다거나, 빠르게 시행할 수 있는 주택수당을 과감하게 도입하지 못하는 것은 큰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아이슬란드나 영국처럼 저소득층에게 연 20조 원 규모의 주택수당을 제공한다면 한국의 복지 발전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금융 규제를 거의 ‘막가파’ 수준으로 강행함으로써 추가적인 집값 상승을 막은 것은, 이 자체는 그렇게 바람직한 일인지 의문스러우나, 원래부터 내 집 장만과 거리가 먼 저소득층 세입자들의 주거 불안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데 기여했다. 만약 현 정부가 “통계로 보면 한국의 집값은 더 올라도 돼요. 싸요 싸. 그게 팩트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왔다면 현실의 입체적인 팩트를 무시한 대가를 혹독히 치렀을 것이다.
격차가 작고 복지가 탄탄하며 인구 대비 주택 수가 많고 공공과 민간의 쓸만한 임대주택 선택권도 널리 열려 있는 나라에서는, 한국보다 집값 상승 폭이 크더라도 한국보다 한결 안정적인 주거 여건을 확보할 수 있다. 아무리 공급이 늘어난다고 한들 한국보다 주택 수가 훨씬 많은 나라의 집값 상승률이 한국보다 더욱 요동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1인당 GDP가 올라갈수록) 공급 확대로 집값을 잡기는 쉽지 않다.
안정적인 집값 흐름을 유도하려는 노력을 등한시할 이유까지는 없다. 하지만 집값의 등락과 무관하게 안정적인 주거여건을 성취할 수 있는 노력을 더욱 기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원문: 장제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