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는 마당발로 불릴 만큼 폭넓게 친구를 사귀었다. 처음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꼈던 10대 후반부터는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됐지만, 여전히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멀리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부류가 있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비교를 부추기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대화하면 금세 우울해진다. 잘 의식하지 못했던 내 삶의 결핍, 아쉬움이 크게 느껴진다. 여기까진 좋다. 무엇이든 부족함을 인정해야 발전이 있는 법이니까.
문제는 도가 지나칠 때다. 대화 내내 타인과 비교에서 비롯된 불평불만이 이어진다. 보통 이런 대화에서는 ‘끼워 팔기’처럼 내 인생도 그의 인생과 한 세트로 묶여 한탄의 대상이 된다. 개선 방안이나 대안, 다짐 따위는 기대도 안 한다. 자조적인 유머조차 없을 때는 최악이다.
반면 자신의 장점이나 유리한 상황에 관해서는 감사하다고 말하기는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아마도 너무나 당연해서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모든 대화가 유쾌할 수는 없지만, 대화 뒤의 일상이 부정적인 기운으로 뒤덮일 정도라면 문제가 있다. 안타깝게도 비교와 불평으로 점철된 대화의 끝은 대부분 그렇다. 나처럼 독선적이고 둔감해서 타인의 영향을 덜 받는 사람이라면, 그나마 낫다. 마음 여리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우리 엄마나 내 친구들만 해도 때때로 크게 휘둘리고 덩달아 힘들어한다. 마음이 아파서 엄마와 친구들에게 몇 번 말한 적이 있다.
그 사람과 헤어질 수 있어? 헤어질 수 있으면 빨리 헤어지는 게 좋을 거 같아.
인간관계나 사람을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나처럼 사람을 좋아했던 사람도 드물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됐다. 모든 사람이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때로는 외로울지라도 혼자인 편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 말이다.
습관처럼 비교하고, 비교를 부추기는 사람들은 언제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천국에 있는 것 같던 마음도 지옥으로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물론 이들의 부정적인 말을 적당히 흘려듣고, 좋은 기운을 북돋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언제나 이상적일 수는 없다. 당장 이런 사람들로 인해 자신과 삶이 보잘것없게 느껴진다면 과감히 헤어져야 한다. 불가능하다면 최선을 다해 무시해야 한다. 그에게 조금은 무례하거나 나쁜 사람이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건강과 행복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몇 없는 장점 중 한 가지가 남과 비교하지 않는 마음가짐이라고 자부하는 나조차 비교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개인은 습관처럼 비교한다. 좀처럼 만족하거나 행복하다고 느끼기 힘들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계속 남과 비교하고 불평하면서 살 것인지, 자신만의 삶의 기준과 방식을 찾고 묵묵히 걸어갈 것인지 말이다. 거칠게 단순화한 이 두 개의 길 사이 어디쯤 지금의 우리가 있다. 바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은 물론 더 많은 이가 후자에 가까운 방식으로 살기 위해 애썼으면 한다.
무엇보다 인생에 우울이나 좌절이라는 폭풍우를 내릴 수 있는 존재는, 피할 수 없는 얄궂은 운명과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비교하고, 비교를 부추기는 타인이 아니라 말이다.
출처: 가끔 쓰는 이다솜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