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예술가들의 유명세는 작품이 아닌 친구 덕분”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었단다. 지난 2월, 미국 최대의 미술 포털 사이트 아트시(Artsy)에 실린 캐시 레서(Casey Lesser)의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12년 뉴욕의 MoMA에서 개최된 〈추상의 태동: 1910-1925〉 기획전에는 전통적인 재현주의 예술을 탈피했던 80명의 예술가를 한자리에 모으고 이들의 친분 관계를 조사했다고 한다. 당시 큐레이터였던 레아 디커만(Leah Dickerman)은 콜롬비아비즈니스대학에서 네트워킹 관계학을 지도하는 폴 인그람(Paul Ingram) 교수와 함께 이를 탐색했다.
이후 인그람 교수는 동료 미탈리 바네르지(Mitali Banerjee)와 함께 이때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예술가 80명의 창의성과 사회적 친분가 그들의 명성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연구했다. 예술가들에 대한 인지도 확인은 영어와 프랑스어 구글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고, MoMA의 2012년 조사에서 확인된 예술가들의 개인적인 서신, 일기, 기록 등을 참고했다. 이 외에도 예술가들의 국적, 성별, 연령, 거주지, 출신학교 등의 데이터도 분석했다.
다만 예술가들의 전시 기록이나 작품 가격 등은 포함되지 않았으며, 이후 연구에 추가할 예정이란다. 이런 기계 분석을 통한 정량평가 외에 4명의 대표 미술사학자들에게 이들 작품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묻는 정성평가도 실시했다. 그렇게 2018년에 발표된 이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친구를 만드는’ 것이 성공적인 예술가를 만든다는 것이다.
2012년의 MoMA 조사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당시에는 예술가의 명성이 창의성의 연결 관계로 파악했던 것에 비해 이번 연구에서는 예술가의 명성은 작품의 창의성과는 무관한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의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 다국적 인적 네트워크가 있는 예술가가 가장 높은 인지도를 보였다면서, 이들 중 최고봉은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였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빅데이터나 미술사학자들의 전문 의견을 통해서 보더라도 정작 ‘창의성(creativity)’의 지표는 예술가의 인지도에 있어서 유의미한 지표가 되지 못했다. 즉, 높은 창의성 점수를 받은 예술가라고 해서 반드시 유명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연구를 주도한 인그람 교수는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는 창의성의 원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코스모폴리탄적 정체성(cosmopolitan identity)”이라고 밝혔다. 사실, 이들의 연구가 “깜짝 놀랄만한 새로운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어차피 진공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질 수 있는 현대인은 없다. 그럼에도 예술가의 창의성은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여기에 예술 시장 안에서의 자기 위치를 찾고 주목을 끌 수 있도록 다양한 대인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비록 한 세기 전의 특정 시대, 특정 예술가 집단을 표본으로 삼은 연구 결과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예술가에게도 이런 인적 연결고리의 ‘진실’은 동일할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고 20세기 이후의 예술가와 예술작품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면 다소 성급하고 서투른 결론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적 네트워크가 예술가들에게만 주요 성공 변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계, 언론계, 스포츠계 등 “○○계”라고 불리는 모든 분야에서 다문화적, 다국적 인적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묵과될 수 없다.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는 유명해진다. 그러나 ‘누가 누가 제일 잘하나?’ 대회에서 1등을 했기 때문에 노벨상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도 인적 네트워크의 룰은 적용된다.
이번 연구 결과에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예술가로서 유명하고 성공했는데 작품성과 창의적 역량도 좋더라’는 부분이다. 동시에 ‘작품성과 창의적 역량이 좋았기 때문에 유명하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더라’는 대목도 반드시 챙기자.
‘실력이 뭐고 다 필요 없고, 오직 인맥과 친분만이 성공을 보장하다니!’ 식의 고나리 소리가 결코 아니다. 흔히 책을 많이 읽는 아이가 나중에 학업성적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엄밀한 통계에 의하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실력이 있어야 폼 나는 결과물도 있는 법이다. 나 홀로 독야청청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그것이 미덕인 현실과 시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