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두산은 2017년 11월 26일 7년간 함께 한 외국인 투수 니퍼트(38·사진)를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프로야구에서 보류선수는 이듬해 재계약 대상자를 가리키는 표현. 그러니까 어떤 선수를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는 건 ‘우리는 이 선수와 내년에 계약할 의사가 없다’고 알리는 일이 됩니다.
단, 니퍼트는 (이때까지만 해도) 경우가 살짝 달랐습니다. 당시 동아일보는 “니퍼트의 나이와 몸 상태 등을 감안해 합리적인 선에서 몸값을 다시 정하겠다는 취지다. 두산이 니퍼트를 보류선수 명단에 포함시킬 경우 구단은 전년도 몸값(210만 달러·22억8000여만 원)의 75%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규약은 외국인 선수 계약서 양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8년 야구규약 중 ‘제10장 독점 교섭기간: 보류권’을 보면:
구단은 본 계약서상의 시즌에 이어 1년 동안 계약 연장 의사를 선수에게 통지할 권리를 갖는다. 구단은 계약연도 11월 25일(단, 포스트시즌 경기 중일 때는 한국시리즈 종료 익일)까지 재계약 의사를 서면으로 선수와 그의 지정된 대리인에게 통지해야 하며, 본 계약서 제4장에 명기된 것처럼 선수의 해당 연도 계약 보너스와 연봉을 합친 금액의 최소 75% 이상을 지급하겠다는 서면상의 제의를 포함하여야 한다. 구단과 선수는 다음 연도의 연봉 총액에 대한 협상에 성실히 임할 것에 동의한다. 구단과 선수가 합의에 이르면, 당사자 간에 다른 방식으로 합의되지 않는 이상 계약의 다른 모든 조항은 동일하게 유지된다.
이에 따라 두산이 니퍼트를 계속 보류선수 명단에 포함하려면 최소 157만5000 달러(당시 약 17억1000만 원) 이상을 보장해야 했던 것. 나중에 KT가 니퍼트를 붙잡는 데는 100만 달러(당시 약 10억6000만 원)면 충분했습니다. 그러니 두산에서 전년 몸값 75%를 보장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해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한 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KBO, 2018년 제6차 이사회 결과 왜 숨기나?
이제 와서 니퍼트 계약 이야기를 꺼낸 건 제가 김정준 SBS스포츠 해설위원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팟캐스트 ‘김정준의 야구수다‘에 한 청취자가 남겨주신 질문 때문. 먼저 여쭤보신 내용부터 확인해 보겠습니다.
KBO E-BOOK 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2019 규약, 규정 개정사항》을 살펴보면 ‘외국인선수 계약서’ 중 ‘제10장 독점 교섭기간:보류권’의 일부 내용이 개정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바, ‘본 계약서 제4장에 명기된 것처럼 선수의 해당 연도 계약 보너스와 연봉을 합친 금액의 최소 75% 이상을 지급하겠다는 서면상의 제의를 포함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이 삭제된 것 또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표 밑에는 ‘2018. 10. 26. 제6차 이사회 개정’이라고 명기되어 있는데, 제6차 이사회의 내용은 KBO 홈페이지의 KBO 보도자료에는 공시되어 있지 않고, 혹여 제5차 이사회를 통해 개정된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2018년 제5차 이사회 결과’에는 위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은밀하게 특정 사안이 전개되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위의 개정안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자 합니다. 개정 후의 내용대로라면 앞으로는 외국인선수에게 재계약 의사를 제의할 때 이전 시즌 총금액의 75% 이상을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포함해야 할 필요가 사라진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바, 이것을 앞으로는 개정 전 규정과 달리 금액에 구속될 필요 없이 외국인선수에게 사용자가 단순히 재계약 의사를 통지하고 다음 시즌 계약에 대해 선수가 (구단 제의를) 거부하게 되면 5년간의 보류권이 발생하는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까요? 아니라면 절차가 비공개로 이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규정 자체도 야구규약에 명기되지 않은 채 비공개로 남아 있는 KBO 리그의 2차 드래프트와 같이 팬들은 알고자 하더라도 알 수 없는 특별한 내용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일까요?
일단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야구규약에서 ‘75% 제한’이 사라진 건 사실입니다.
이 과정을 ‘은밀하게’ 전개했는지는 판단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단, KBO에서 (구단 대표 모임인) 이사회를 열 때마다 보도자료를 보내는 건 아닙니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제6차 이사회뿐 아니라 제4차 이사회 결과도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 내용이면 보도자료를 내는 게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KBO는 75% 하한선이 사라진 건 니퍼트 같은 사례를 방지하려는 목적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KBO 관계자는 “75% 이상 지급을 보증하는 내용은 외국인 선수 몸값 상한선이 30만 달러이던 때 생긴 조항이다. 이제는 몸값 상한선이 변해 선수와 구단이 좀 더 수월하게 계약할 수 있도록 해당 조항을 삭제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예를 들어 200만 달러를 받던 선수가 성적 저하로 다음 해 계약할 때 150만 달러보다 덜 받고 계약을 하고 싶어 할 수도 있는데 구단은 150만 달러가 부담스러워 계약안 자체를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문제 소지가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물론 질문자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다른 국내 팀에 5년간 입단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계약을 제시하는 사례가 아예 나오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KBO 설명에 아주 근거가 빈약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특히 2년차부터 다년 계약을 (공식적으로) 허용한 상태라면 더욱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도대체 KBO는 왜 2차 드래프트 관련 내용을 문서로 공개하고 있지 않은 걸까요?
린드블럼 vs 롯데
이런 점에서 린드블럼(32·현 두산·사진)이 재미있습니다. 린드블럼은 2017년 7월 롯데와 계약하면서 11월 30일까지 계약이 되지 않으면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청했고, 결국 시즌 종료 후 롯데를 떠나 두산과 계약했습니다. 사실상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요구해 이를 인정받은 것.
이렇게 결국 FA 자격을 얻었는데도 린드블럼은 롯데를 향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는 걸 숨기지 않았습니다. 린드블럼은 그해 12월 11일 자기 인스타그램에 “제가 롯데 구단에게 FA 조항을 요구한 것은 제 딸의 건강 문제나 돈 문제하고는 무관합니다. 오랜 기간 정직하지 못하고 전문적이지 못한 구단에 대응하기 위해서였습니다”라고 남겼습니다.
이 정도면 물밑에서 무엇인가 사건이 벌어졌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야구계에서는 2016 시즌이 끝난 뒤 롯데와 재계약하는 과정에서 트러블이 있었다는 루머가 무성합니다.
린드블럼은 2015년 (이적료를 포함해) 총액 85만 달러를 받고 뛰면서 210이닝을 던져 13승 11패 평균자책점 3.56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120만 달러에 롯데와 2016년 계약을 맺었습니다. 10승 13패를 기록한 2016년에는 투구 이닝이 177과 3분의 1이닝으로 줄었고 평균자책점도 5.28로 올랐습니다.
단, 2016년에도 후반기에는 ‘린동원(린드블럼+최동원)’ 모드를 되찾았기 때문에 재계약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롯데 역시 린드블럼을 보류선수 명단에 포함했습니다. 대신 2015년보다 부진했으니 몸값은 깎겠다는 자세. 당시에도 75% 하한선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롯데가 아무리 몸값을 깎는다고 해도 2017년 연봉으로 최소 (2016년 연봉 75%인) 90만 달러는 보장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12월 8일 린드블럼은 구단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내년 시즌에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부산에서 한 해 더 지내고 싶었지만 미국에서 저희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며, 지금 우리 가족에겐 (막내딸) 먼로의 다음 수술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면서 롯데와 재계약하지 못하게 됐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참 훈훈한 마무리지만 실제로는 90만 달러 보장 여부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서 이렇게 ‘포장’을 했다는 게 루머 내용입니다. 관건은 다년계약이었습니다. 롯데와 린드블럼이 2015년 시즌을 마친 뒤 실제로는 2년 (이면) 계약을 맺었는데 롯데에서 2016년 부진을 이유로 연봉을 깎으려고 하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입니다. 린드블럼은 이렇게 기존 계약을 깨고 새로운 계약을 맺을 거면 롯데에서 90만 달러 이외에 ‘바이아웃(buyout·구단에서 계약을 해지 대가로 지급하는 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롯데에서는 90만 달러에 바이아웃이 들어있다고 맞섰다는 겁니다.
이런 사정이 있었기에 그해 7월 다시 롯데 유니폼을 입으면서 린드블럼은 시즌이 끝나면 보류선수 명단에서 풀어달라고 요구했고, 롯데가 이 요구에도 계속 거짓말로 일관하다가 결국 사과문까지 보낸 뒤에야 FA 자격을 인정하면서 쌓이고 쌓였던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정설처럼 통하고 있습니다.
린드블럼만 이렇게 야구규약을 어기고 다년계약을 맺은 건 아닙니다. 밴헤켄(40)이 일본 프로야구 세이부로 이적하면서 넥센(현 키움)에 이적료 30만 달러를 남긴 것도 이면 계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실제로는 다들 하는 일인데 공식적으로 진행할 수가 없다 보니 이렇게 문제가 생긴 셈입니다.
한국판 Cot’s Contracts 볼 수 있을까?
질문자께서는 계속해서 재판 판결문을 통해 드러난 삼성이 안지만(36)과 맺은 FA 계약 내용을 예로 드시면서 “KBO 리그에서 단순히 옵션의 유무가 아닌, 옵션의 상세 내용까지도 정확히 알 수 있는, 종국적으로는 메이저리그(MLB)의 Cot’s Contracts와 같은 사이트를 팬들이 향유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일단 Cot’s Contracts도 공식 계약 내용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The information is unofficial and is collected from published reports and sources in and around the game.
한국 프로야구도 이런 사이트를 만드는 게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야구팬 숫자가 더 많이 늘어나면 = 그래서 이런 사이트를 만드는 게 돈이 되면 이런 사이트가 나올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단, 이때도 계약 내용을 완전히 공개하는 상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일반 회사원도 연봉 계약을 맺을 때 ‘계약 내용을 절대 외부에 누설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프로야구 선수라고 달라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