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에 서울로 올라오던 날, 부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처음엔 타지에서 열심히 생활하겠다는 내용을 쓰려고 했습니다. 근데 쓰다 보니 울컥해지는 게 있었어요. 결국 원망하는 글만 잔뜩 쏟아냈습니다.
그런 걸 느꼈거든요. 이대로 서로 멀리 떨어지면 명절에만 왕래하며 전화로 가끔 안부를 묻고, 그렇게 서먹해질 것 같은 느낌이요. 떨어질 때가 되어서 깨달은 거예요. 같이 살 부비고 살던 시간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그 시간 동안 말하지 못한 게 있었다는 걸.
그렇게 친구 같은 부모-자식 관계는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서로 존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은 내색하거나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저를 충분히 지지해 주셨어요.
근데 아쉬운 게 하나 있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는 것. 우리는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건강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성적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책에 대해서, 아빠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엄마 아빠의 취향을 모르고 그들의 개인적인 역사를 모릅니다. 부모님도 제 이야기를 구태여 묻지 않았어요. 그래서 편지엔 이런 내용으로 가득했습니다.
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친구와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지는 못했습니다. 친구들과 농담, 이상형, 사회생활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그들이 어릴 때 녹음했을 라디오 노래에 대해서, 그들이 힘들 때 틀어보는 영화에 대해서, 그들이 요즘에 새로 맛 들인 취미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했어요.
저는 소통의 실패에 관한 긴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개인의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문화적 실패였어요. 친구들과 저는 취향을 키울 기회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입시에 바빴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걸 생각하고 고민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성적이 더 중요했거든요. 그래서 남들에게 내 취향을 드러내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적도 별로 없습니다. 모의고사 점수와 대학 입결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은 많았지만요.
몇 해 후 외국에 잠시 머물게 되었습니다. 홈스테이를 했어요. 거실에 서재가 있었는데 쓱 들여다보니 죄다 스티븐 킹이더라고요. 알고 보니 홈스테이 파더가 킹의 골수팬이라고. 뭐 그런가 보다 했죠.
저녁엔 출가한 아들 두 명을 불러서 밥을 같이 먹습니다. 파더가 뜬금없이 장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쭉 해요. 홈스테이 마더는 갑자기 모네 이야기를 합니다. 최근에 본 회화가 어쩌고 하면서요. 영어도 잘 못 알아듣겠는데 배려는 없구나, 아니 밥 먹는데 뭐 이런 얘기를 하나, 처음엔 생각했어요. 고작 스티븐 킹을 이야기하면서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 사람들의 문화적 수준이 낮거나 그들이 허영에 젖어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녁 후엔 디저트로 호박파이 같은 걸 한 접시씩 들고 각자 소파에 널브러져서 고전 영화를 같이 봤습니다. 이야기를 해보니 파더는 한국영화까지 죄다 봤더라고요.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의 영화를 다 알고 있더군요. 거실 구석에는 알지 못할 그림들이 꽤 많이 붙어있었어요. 파더가 직접 그린 거라고 하더라고요.
한쪽에 파더가 그림을 그리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근데 거기서 작업하는 모습은 거의 못 봤어요. 물어보니 마음에 내킬 때 몇 번 붓질하고는 만다고 합니다. 마더는 홈레코딩을 하는데, 자기가 만든 엄청 괴상한 음악을 들려주더라고요. 그리고는 어머 너 얘 아니? 이러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한 트럭 소개해 주는데 2시간 가까이 모니터 앞에 서 있느라 죽는 줄 알았죠.
거기서 1년을 살았습니다. 그 사이 파더는 또 한 편의 그림을 완성해서 거실에 걸어두었고, 마더는 사운드 클라우드에 자기가 만든 EP를 업로드하고 고양이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어요.
부러웠어요. 그리고 억울했어요. 왜 나랑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못했지? 그게 진짜 억울했습니다. 문화적 허영이라고 치부했었는데, 이쯤 되니 허영이고 나발이고 그런 말들은 탁상공론이고 선비놀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적어도 이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실제로 하고 있고 남들 앞에 스스럼없이 보여주고 있잖아요. 왜 나랑 친구들,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못했지?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왜 최소한의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까. 왜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을까. 그래서 20살 때 그런 편지를 썼고, 아직도 이런 열등감을 느끼고 있을까.
이것이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구나. 오랫동안 자신의 취향을 탐색해온 사람들이구나. 취향에서 주관이 나오고 주관에서 자존감이 나오는구나. 지금 이 사람들은 뚜렷하구나. 그리고는 취향을 거의 공유하지 않았던 나와 친구들, 부모님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잘못 살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애틋하게 느끼는 걸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알았습니다. 관습적인 대화로는 나를 드러낼 수 없다는 것. 오로지 취향을 이야기해야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시기는 짧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시기라는 것.
Discus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그렇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더 많이, 더 깊게 이야기하자. 적어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예술작품에 대해서 길게 떠들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허영에 가득 차고 유치하게 보이지만, 그래서 뻔뻔하게 진심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방법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의 호불호를 아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이것저것 많이 접해보는 것이죠. 문화와 예술에 관한 레퍼런스를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취향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취향이 쌓이면 안목이 생길 수 있어요.
안목이 있으면 예술이 대단하거나 고고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공공연해질 것 같습니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처음 만나는 동양인 앞에서 2시간 동안 내가 좋아하는 걸 떠들 수 있는 태도가 존중받을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만난 그들은 예술가가 아니었습니다. 흔한 직장인이었어요. 그 사람들은 좋아하는 걸 할 뿐이었습니다.
디스커스를 통해서 그런 것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매주 문화와 예술에 관한 다양한 레퍼런스를 소개하고, 예술의 생리를 밝히고, 좋은 것을 왜 좋다고 느끼는지 예술과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요. 예술과 내가 어떻게 관계되는지에 대한 지도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지도를 마음속에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녁을 먹으면서 성적과 입시에 대한 대화를 줄이고 문학과 영화에 대한 대화를 더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좋아서 할 뿐인 일들을, 좋아서들 했으면 좋겠습니다.
원문: Discus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