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특정 대기업을 고발하는 것이 본질인 작품이 아니다. 이윤을 내기 위한 조직과 조직원 사이에서 벌어지는 부조리가 어찌 대기업만의 문제일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조직에서 ‘크기’만 다를 뿐, 비슷한 사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벌어지고 있다. 다만,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진성 반도체]가 자본 권력의 어떠한 상징이 될 수는 있기에, <또 하나의 약속>이 전하는 메시지는 세월이 흘러도 오래도록 유효할 것이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인간의 존엄과 자본 권력 사이에서, ‘상식’을 지키고자 분투하는 ‘소시민 아버지’를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과연 인간 고유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자본’으로 퉁칠 수 있느냐고 우리에게 정직한 화법으로 질문한다. <또 하나의 약속>을 감상하고 나면, 그 이야기는 단순히 픽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공명하여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건 남의 나라 이야기도, 달나라 SF 소설도 아닌, 바로 대한민국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하나의 약속>에 출연한 배우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그 배우가 십 년 이상을 성실하게 ‘연기’에 매진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면, 가치 있는 인터뷰가 될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또 하나의 약속>에 ‘채도영’ 역할로 출연한 영화배우 ‘정영기’를 3월 1일 [홍대]에서 만났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귀한 이야기가 그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혼자만 듣기에는 아까운 배우 ‘정영기’와의 수다, 인터뷰 전문을 여기에 싣는다.
인터뷰이 정영기
인터뷰어·사진 수다쟁이 쭌 (문준희)
수다쟁이 쭌(이하 쭌):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정영기(이하 정) 제가 2012년 1월에 소속사를 들어가게 됐어요, 그전까진 10년 동안 혼자 영화사를 찾아가서 프로필 돌리고 오디션 보러 다니고 그랬었는데… <또 하나의 약속>은 소속사에서 오디션을 잡아 왔어요. 오디션을 처음 봤을 땐, 영화 속에서 제가 지금 맡은 ‘채도영’이 아니라, ‘종대’ 역할로 보러 갔어요.
종대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박철민 선배님(영화 속 상구) 편에 서서 증언을 하겠다고 했다가, 뒤통수를 치게 되는 역할인데요, 오디션장에 도착해 대본 리딩을 하는데, 김태윤 감독님이 “영기씨! 종대 말고요, 도영이란 역할이 있는데.. 그걸로 한 번 해보실래요?”라고 하셔서, 즉석에서 채도영 역으로 오디션을 다시 봤어요.
감독님께서 ‘느낌이 좋다!’고 연락줄 테니 기다려달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두 달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안 오길래, ‘혹시 떨어졌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연락이 온 거예요. 그래서 시나리오 완고를 처음으로 보내주셔서 읽었는데, 다 읽고 난 뒤 펑펑 울었어요.
이게 실화고, 너무 가슴 아픈 얘기고, 그 얘기를 풀어나가는 주인공 아버지 (영화 속에서 박철민 선배님이 연기하신) 상구라는 캐릭터가 너무너무 눈물겨운 인물이고, 절절한 이야기여서 “아! 이 영화를 꼭 해야겠다. 내가 이 영화에 참여해서 연기를 할 수 있게 된 게 진짜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 마음으로 출연하게 됐어요.
쭌: 감동적인 이야기여서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는데, 사실 이 이야기가 거대 기업에 맞서는 아버지를 다룬 실화이고, 조금 민감한 소재여서 그런 부분이 출연을 결정하는데 고민이 되거나, 주변에서 말리는 분들은 없었나요?
정: 주변에서 말리는 분들은 한 명도 없었고요. 이게 물론 실화고 대기업과 싸우게 되는 한 아버지의 고독한 이야기이지만, ‘이걸 한다고 해서 내가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못했어요. 왜냐하면 불이익을 받으려면 제가 인지도가 있는 배우여야 하는데, 제가 인지도가 ‘빵’이니까…(웃음)
인지도가 있는 배우면 이 영화에 출연한다고 CF가 잘릴 수도 있고 그럴 테지만, 저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늘 그랬듯이 오디션을 봐서 붙거나, 좋은 작품이면 참여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제가 스무 살 때부터 계속 해왔던 일이기 때문에, 작품이 다루는 무게가 크다고 해서 ‘훗날 내가 어떻게 되겠구나’ 하는 부분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제가 맡았던 ‘채도영’이라는 사람이 멋있고 잘생긴 캐릭터는 아니지만, 매력적인 인물이었어요. 한 집안의 가장이고, 아들도 있고, 하루하루 열심히 회사에 충성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자기가 병에 걸린 걸 알게 되고, 그래서 그걸 숨기고 이사를 가고 잠적을 하려다가, 주인공 아버지 ‘상구’의 사연을 듣고 “아, 내가 증언을 해줘야겠구나!” 결심을 하게 되는 역할인데요.
굉장히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소시민인데 큰 결심을 하고, 난생처음 법원에 가서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상대로 (회사에 불리한) 증언도 하고. “아, 매력적인 인물이니까, 이걸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저는 감사한 마음에 출연을 했죠.
쭌: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출연이 결정되고 나서, 크랭크인 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떻게 준비하고 진행하셨나요?
정: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정되고 나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극 중에서 걸리는 병이 굉장히 희귀 병인데, ‘베거너씨 육아종’이라는 그런 병이에요. 검색을 해봤는데도 잘 안 나오더라고요. 영화 속 제 대사에도 “베거너씨 육아종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의사들도 그게 무슨 병인지 모른데요.”라고 나오는데, 그 정도로 워낙 희귀 병이에요.
그래서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서 병에 대해 먼저 접근을 했고요. 병에 걸린 후로는 영화 속에 노출되는 장면은 적지만, 그래도 후반부에는 제가 환자 역할이니까요. 중/후반부에 증언을 할 때, 병에 걸린 상태에서는 걸음걸이나 표정이나, 목소리가 일반 정상인들과는 조금이라도 다를 거 같아서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계산하면서 준비를 했고요.
또,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돌아가신 분들이 다니던 회사가 실제로 있는 회사잖아요. …만화책이 한 권 있는데요, 영화 속 주인공인 ‘상구’의 실제 인물인 ‘황상기’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요. 거길 보면 시나리오에 등장하지 않는 엔지니어들의 삶이 나오는데요, 반도체 공장에서 어떤 과정으로 일하는지, 어떻게 하다가 병에 걸리는지, 엔지니어들의 삶은 어떻고, 병에 걸린 이후에 생활은 어떻고, 그런 게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되고 있어요. 그걸 정독하면서 참고를 많이 했죠.
그리고 나서 전체 리딩을 한 번 했는데요, 감독님부터, 영화사 대표님, PD님, 박철민 선배님, 윤유선 선배님을 비롯해 배우들이 다 함께 모여서 리딩도 하고, 작품 얘기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 이야기를 많이 공유했던 거 같아요.
쭌: 그럼 막상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 크랭크 업을 할 때까지 특별한 일은 없었나요?
정: 제가 출연한 회차는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6회차 정도였는데… <연평해전>이라고 김학순 감독님이 연출하신 영화가 있는데, 그 작품과 <또 하나의 약속>이 스케줄이 겹치는 날이 있었어요. 작년 5월쯤에요.
사실 <또 하나의 약속>에 나오는 재판장이 세트가 아니고, 강원도 원주에 있는 실제 법정을 휴일을 빌려서 찍은 건데요, 저는 원주에서 <또 하나의 약속> 재판장 장면을 찍고, 다음날 경남 진해로 내려가서 <연평해전>을 찍는 거였는데… 원주에서 재판장 장면을 하루 더 찍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극 중에서의 상황으로 보자면, ‘재판장에서 증언하는 장면’과 시간이 흐른 뒤, ‘최종 판결하는 부분’에서도 제가 출연하는 거였어요. 결국, 최종 판결 장면에는 출연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감독님 말씀으로는 시나리오에는 ‘유미 가족들’이 승소하는 날, 채도영도 법정에 앉아있는 걸로 쓰셨는데, 제가 스케줄이 엉키는 바람에 못 찍게 됐잖아요?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리는데,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는 그렇게 썼는데, 채도영이라는 인물이 며칠 전에 진술을 하고, 과연 이 법정에 다시 올 수 있을까? 못 오는 게 맞겠다 싶다. 괜찮으니 내려가서 <연평해전> 촬영을 잘 마쳐라!”
그래서 굉장히 뭉클했던 기억이 나요. 만약에 스케줄이 엉키지 않았다면, 최종 재판 장면에서 채도영도 있었을 텐데 그게 당시에는 많이 아쉬웠어요. 근데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니까, 증언을 하고 나오지 않는 게… 영화적으로 여운도 남겨 주고, 결과적으로는 나은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쭌: 극 중에서 맡은 ‘채도영’이라는 인물이 처음에는 조직에 충성만 하다가, 나중에 변심을 해서 법정에서 진술하게 되는 인물인데, 사실 ‘가족’도 있고, 생계도 책임져야 할 가장인데, 만약에 인간 ‘정영기’가 그런 입장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거 같나요?
정: 제가 실제 채도영이었더라도, 영화 속에서처럼 했을 거 같아요. 박철민 선배님이 맡은 ‘상구’라는 인물이 찾아오잖아요. 증언을 꼭 해달라고. 도와달라고. 처음에는 물론 거부하죠. 싫다. 나 그런 거 모른다면서 쫓아내죠. 왜냐? 내가 받게 될 피해가 있으니까. 회사를 상대로 불리한 진술을 하면 불이익이 올 것을 알기 때문에, 거절을 해요. 그런데 법정에서 결국에는 진술을 한다 말이에요. 그게 왜 그러냐면, 영화 속에서는 편집이 되었는데, 시나리오에는 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제가 맡은 채도영이 박철민 선배님이 맡은 ‘상구’와 김규리 선배님이 맡은 ‘난주 노무사’를 ‘가시라고!’ 하며, 쫓아내려고 하는데, 그때 상구가 저를 향해하는 말이 있어요. “병에 걸리셨죠?” 도영이는 집에서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옆에 부인도 다 듣게 된 거예요. 그때 상구가 덧붙이죠. “내 딸 윤미를 간호한 게 몇 년짼데, 나 딱 보면 안다. 병에 걸린 사람인지 아닌지… 회사에서 얼마나 준데요? 고칠 수나 있는 병이래요?” 그러니까 거기서 채도영은 무너지는 거거든요. 편집돼서 영화 속에서는 안 나오지만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상구가 도영에게 “애는 괜찮대요?” 그게 무서운 게 아버지 입장에서 내 병이 아이한테 유전되면 큰일이잖아요. 아무리 회사가 중요하고,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로 인해서 아이가 병에 걸렸는데, 회사에 잘못이 있음에도 충성심 때문에 묵인하고 부인하면 그건 진짜 아버지가 아니잖아요. 처음에는 물론 부인하고 도망치고 거절하겠지만, 내 아이의 건강과 미래가 걸린 일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영화 속 채도영 같은 선택을 했을 거 같아요.
쭌: 연기를 직접 하신 ‘채도영’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극 중 주인공인 ‘상구’에게 김영재 배우님이 맡은 ‘대기업 담당자’가 계속 찾아와서, ‘법적 투쟁’을 그만하고 합의하자고 계속 딜을 하잖아요. 나중에는 그 금액이 10억까지 올라가죠. 맡으신 역할은 아니지만, 극 중에서의 상구, 현실에서는 황상기 선생님처럼 그렇게 타협하지 않고 투쟁할 수 있을 것인가? ‘채도영’에게 담당자가 찾아왔다면 어떨 것인가? 생활인 정영기로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 10억이요? …망설여지는데요, 만약에 제가 병을 치료하느라, ‘빚’이 많다면…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합의를 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왜냐하면, 빚을 갚을 능력도 안되고, 그 빚은 고스란히 자식한테 가는 건데, 저는 괜찮지만 자식한테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할 순 없잖아요.
그러니까 양심의 가책을 받더라도, 솔직히 빚이 있다면 10억을 받아서 빚을 갚고, 재테크도 잘해서 아들한테 물려줄 거 같아요. 아들한테 이렇게 이야기하면서요. “아들아,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지만, 시장경제 자본주의 국가니까…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된다. 비록 아버지는 기술만 배운 엔지니어라서… 이런 안타까운 일을 당했지만, 너는 그러지 말고, 더 공부도 더 하고 그래라.” …자식의 미래 때문에라도 10억이라면 받을 거 같아요.
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그 정도의 돈이면… 다른 가족들한테 피해도 안 주고, 희망을 주기 위해서 합의를 할 가능성도 있는데… 황상기 선생님은 아주 긴 시간을 투쟁하시면서 영화 속 ‘상구’처럼 승소까지 하셨는데… 달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인데… 그리고 지금도 법정투쟁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고요. 참 어려운 질문이긴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 극 중 상구… 그러니까, 현실에서는 황상기 선생님이신데, 대단하신 거죠. 10억이면 제가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흔들리거든요. 엄청 큰 금액이죠. 1억도 일반 사람들에겐 크죠. 물론, 집 살 때는 목돈이 있지만… 그건 온전한 현찰이 아니라, 일반적으로는 은행에서 빌리는 건데… 현찰로 10억이면 어마어마한 돈이죠.
그런데 그 유혹을 뿌리치고 당신의 의지를 밀고 나가셨다는 건, 엄청 대단한 일이고, 사람들이 봤을 때 ‘왜 저래?’ 할 만큼 하기 힘든 거죠. ‘딸도 이미 죽었는데… 그냥 10억 받아서 부인하고 아들하고 잘 살면 되지.’ 이렇게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근데, 딸과의 약속이잖아요.
10억을 받는 순간, ‘딸’이 거짓말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돼버리잖아요. 그래서 내 딸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수는 없다고 10억을 거절하는 선택을 하신 거잖아요. 그렇더라도 대단한 거죠. 거의 히어로죠. 슈퍼맨. 제가 요즘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즐겨 봐요. 거기 보면 ‘추사랑’도 나오고, ‘하루’도 나오는데… 제가 결혼도 안 하고, 딸도 없으니까 모르잖아요. 아빠의 마음을.
근데 그걸 보면 딸 가진 아빠 마음이 간접적으로라도 느껴지거든요. 보고 있으면 진짜 다들 슈퍼맨들이에요.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잖아요. 황상기 선생님도 딸을 위해서. 제 생각에는 100억을 가지고 왔어도 거부하셨을 거 같아요. 그분은 슈퍼맨이신 거죠. 왜냐하면 ‘딸’을 가진 아버지니까…
쭌: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제작비 문제로 힘들었고, 클라우딩 펀드로 수많은 개인 투자자를 통해 모아진 걸로 알고 있는데요, 촬영을 진행하면서 ‘돈에 쪼들려서 힘들구나’ 그런 부분들이 느껴지지는 않았나요?
정: 저예산이고, 메인 투자자가 없어서 클라우딩 펀딩으로 시민분들이 조금씩 모아서 투자해 주신 걸로 저도 들어서 알고 있는데요, 촬영장에서 피부로 ‘아! 우리 영화가 가난한 영화구나!’라고 느끼지는 못했어요. 그렇다고 밥을 안 주 신 것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 빨리 찍어야 한다고 밤을 새우면서 찍은 것도 아니고. …어떤 현장에서는 시간과 돈에 쫓기면 날카로워져요. 스텝도. 배우도. 싸움도 일어나죠.
그런데 <또 하나의 약속>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여유가 없어서 급박하다 느끼거나, 쫓긴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오히려 이만큼이라도 우리를 도와주는 분들이 있으니까… 힘을 더 내자!
박철민 선배님께서도 굉장히 유머러스한 분이시기 때문에 현장 분위기를 잘 이끌어 주셨고, 김태윤 감독님도 연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고, 그리고 박성일 PD님은 현장이 잘 돌아가도록 해주셨고, 윤기호 PD님은 다른 곳에 부지런히 돌아다니시면서 투자를 받아오셨고, 최영환 촬영감독님은 카메라를 2대나 가져오셔서, 많은 장면을 좋은 퀄리티로 효율적으로 찍어 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영화 찍으면서 우리 영화가 돈이 없어서 힘들구나를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쭌: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또 하나의 약속>이 완성되었는데요,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난 뒤 소감은 어떠셨나요?
정: 제가 영화를 두 번 봤거든요. 처음 볼 때는 작품에 집중을 할 수 없었어요. 부끄러운 얘기인데, 저는 제가 출연한 영화를 처음 보면 일단 저만 봐요. (폭소) 찍은 게 제대로 나왔나? 물론 현장에서 모니터도 하지만… 내 연기가 어땠나? 하는 부분이 제일 먼저 보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걸 못 보고, ‘나는 언제 나오지? 나올 때쯤 됐는데…’ (웃음) 막상 나오면 아 저렇게 했었구나. 왜 저렇게밖에 못했지? 후회도 되고.
그리고 영화가 끝이 났어요. 화면이 암전 되면서 크레딧이 올라가잖아요? 보통은 배우 이름이 먼저 올라가는데, 우리 영화는 한꺼번에 수십, 수백 명의 이름이 계속 올라가요. 그 이름은 우리 영화를 위해서 적은 돈이라도 도와주시고, 투자를 해주신 분들 이름이거든요. 그게 막 계속 올라가요. 체감적으로 10분 정도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졌는데요. 그 순간이 큰 여운을 줬어요. “맞어! 저분들 때문에 영화를 만들 수 있었지.”
그게 마치 제가 <또 하나의 약속>을 보기 전에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극 중에서 변호만 하던 송우석 변호사가, ‘집시법 위반?’인가로 법정에 죄인으로 서요. 그런데 송우석 변호사를 변호하기 위해 부산에 있는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와요. 그래서 판사에게 “판사님! 송우석 변호사를 변호하기 위해, 변호인으로 선 변호인들의 명단입니다.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하며 이름을 읽어요. 이름이 호명되면 변호인들이 한 명씩 일어나요. 저는 엄청난 감동을 받았거든요. 펑펑 울었어요. 송우석 변호사를 위해서 동료들이 저렇게 많이 왔구나.
그런데 <또 하나의 약속> 크레딧을 보면서도 그게 자꾸 생각이 나는 거예요. 투자를 해주신 시민 여러분들 이름이 올라가는데, <변호인> 엔딩 장면이… 그래서 굉장히 먹먹했어요. 두 번째로 영화를 감상했을 때는 제 모습을 첫 번째 관람에서 봤기 때문에…(웃음) 전체적으로 봤거든요. 보고 나서 ‘아! 이런 작품에… 이런 영화에… 출연하게 돼서… 내가 배우여서 정말 행복하다. 이 작품에 출연하길 정말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쭌: 저도 <또 하나의 약속> 크레딧은 뭉클하더라고요. 극장에서도 크레딧이 올라갈 때 사람들이 쉽게 자리에서 일어서질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개인적인 영화 리뷰를 쓸 때도, ‘가장 아름다운 크레딧을 가진 영화’라고 남긴 기억이 나네요. 배우들이 그 어떤 영화보다 멋있게 보이는 <또 하나의 약속>이 극장에 걸렸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게 있었어요. 상업영화의 경우, 전국 개봉을 할 때, 300개관 이상에서 출발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영화는 169개관에서 출발했고…
정: 처음에는 100개도 안됐었죠.
쭌: 같은 날 개봉했던 외화 <프랑켄슈타인>에 비해서도, 예매율은 훨씬 높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수는 터무니없이 적게 확보가 됐고, 배급력에서 밀리다 보니까 지금 47만… 대한민국 국민 1% 정도가 본 셈인데요. 볼 수 있는 극장 수가 적다 보니, 제가 사는 지역구에서도 딱 한 극장에서만 상영을 했거든요. 거기에 대해 아쉬운 부분은 없으셨나요?
정: 일단 안타깝죠. 제가 출연한 영화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제가 출연을 안 했다 하더라도… 어떤 말들이 많잖아요. 외압이다… 뭐다… 진실은 아무도 모르죠. 당사자들은 알겠지만… 저는 모르죠. 출연을 했을 뿐, 이 영화 전반에 깊게 참여한 프로듀서가 아니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 아주 정확히는 모르고. 그리고 우리 영화에서 다루는 ‘진성 반도체’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회사 관계자도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진실은 모르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사실이잖아요. 한국 영화고,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였고, 개봉주 예매율이 1위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스크린 수를 가졌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고. …좀 많이 아쉽고.
솔직히 이런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내가 인지도가 좀 더 있고.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였으면. “야! 정영기가 출연했대! 보러 가자!” …그래서 단 500명, 1000명이라도 더 극장을 찾아와주고, 입소문이 나고, 이 영화가 더 많은 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요즘 든 생각이 내가 좀 더 유명한 배우였으면… 어떻게라도 이 작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죠.
제가 VIP 시사회 무대인사에서 그랬거든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고, 안타까운 일이어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더불어 우리 사회가 이 영화를 따뜻하게 끌어안아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이 사회의 어떤 시스템이 아직은 우리 영화를 따뜻하게 끌어안아주지는 못한 거 같아요. 차갑게 대해준 것 같고.
물론, 보신 분들은 뜨거워하시고. 예매를 한 관객분들도 만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시스템이 차갑게 다가오니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미지근하게 된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그게 정말 아쉬워요. 결과가 어떻게 되든, 만남의 시작 자체는 뜨거웠으면 좋았을 거 같은데.
쭌: 2004년에 형을 처음 봤을 때, 말년 병장 휴가를 나오셨을 때인데요. 강제규필름 모니터 요원 사전 모임에서 ‘배우’가 되겠다고 저에게 말씀하셨고, 지금은 배우로써 활동하고 있는데… ‘정영기’라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나요?
정: 배우란 꿈은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동화책 보는 걸 좋아했는데, 작품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보고 흉내를 냈어요. 여우면 여우, 오리면 오리, 사냥꾼이면 사냥꾼, 토끼면 토끼. 흉내 내면서 읽는 걸 좋아했었고. 요즘이야 IPTV다, 모바일이다, 집에서도 즐길 거리가 많은데, 예전에는 오직 텔레비전 밖에 없었어요. 거기에서 주말의 명화, 일요 극장 등을 틀어주면, 그걸 보면서… 영화는 어떻게 보면 판타지잖아요?
더군다나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봤던 영화들은 진짜 꿈같았어요. 환상적이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멋있었고. 등장하는 아저씨들이 멋있었고. 그때는 외국 배우들이 한국말로 하니까 더빙으로 (웃음) 한국 사람인 줄 알았죠. 제가 7~8살에 외국에 나가봤겠어요? (웃음) 외국인에 대한 개념도 없으니까, 저 아저씨들 참 멋지다. 나도 저 아저씨들처럼 돼야지.
그런데 중학생쯤 되니까 환상이 깨져버린 거죠. ‘아! 내가 봤던 것들이 다 영화였고, 그들이 다 외국인이었고, 배우들이었구나. 그들이 하는 게 연기라는 거구나! 그리고 그걸 만드는 게 감독이란 거구나! …그럼 난 배우가 돼야겠다. 근데 배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그런데 방법을 모르니까, 영화를 무작정 많이 봤고, 잡지도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당시에 나왔던 월간 스크린, 월간 프리미어, 씨네21, 씨네버스, 필름2.0, 이런 걸 보면서 ‘아! 이 배우가 여기에 출연했었네?’
그럼 그때는 비디오가 있던 시절이니까… 제가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했던 비디오를 빌려보고, 좋아하는 감독이 있다고 하면, 그 감독 영화를 다 찾아서 보면서 공부를 하다가, 고3 때는 연기학원도 다니게 됐죠. 집이 의정부인데, 압구정동까지 2시간 걸려서 찾아가 연기도 배우고, 수능을 보고 입시 원서를 쓰게 됐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영기야, 지금 대진대 인문학부를 쓰면, 특차로 학교장 추천을 써주겠다. 너 100% 붙는다.”라고 하셨어요. 제가 고2, 고3 때 반장을 해서. (웃음) 그 말에 혹해서…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고3 당시에는 대학에 가고, 안가고가 핫이슈잖아요? 그래서 원서를 넣었는데 붙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특차를 붙고 나면 정시 원서를 못 넣게 되어있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께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여쭤보니까, ‘특차를 포기하던가, 재수를 해라’고 하셨어요. (폭소)
근데 이왕 붙었는데, 포기하기도 아깝고, 집에서도 반대하시고 그래서, 인문학부를 들어가게 됐죠. 그때는 전공도 없었는데요, 2학년 때 국문과로 정했어요. 근데 알아보니까 학교에 연영과가 있었고. 복수전공 제도가 잘되어 있어서. 학교에 다니면서, 국문과와 연영과 수업을 같이 들었어요. 연영과 수업 들을 때는 연기 수업도 받고, 주말이나 방학 때는 외부 활동으로 ‘독립 영화’도 찍고 그랬죠.
왜냐하면 고3 때부터 스무 살 1999년~2000년 이맘때, 제작된 영화의 90% 이상을 오디션을 봤었는데… 다 떨어졌었거든요. 단 한 군데도 안 붙고. (웃음) 원인을 냉정하게 분석해 봤는데. 제가 봐도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고,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연기를 아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집에 돈이 있고, 빽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 어떻게 하면 내가 ‘배우’란 게 될 수 있을까? 결국 연기를 잘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근데 연기가 ‘아! 나 연기 잘해야지!’ 한다고 바로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자꾸 경험하면서 실력이 늘어야 하는 건데, 방법도 터득하고요. 그래서 찾아보니까, ‘단편 독립 영화’의 경우, 유명한 배우가 아니더라도. 학생의 경우에는 나 같은 사람도 써주겠지 하고. 무작정 찾아가서 오디션 보고하면서. 수많은 단편영화에 참여하게 됐죠. 군대 가기 전까지 스물다섯 편 정도 출연했던 거 같아요.
막상 군대를 가니까,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제대하면 24살인데… 3월에 제대하면 바로 칼복학을 할 수 있었거든요? 근데 어렸을 때부터 꿈이 극장에 제 얼굴이 나오는 거였으니까. 극장에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려면 충무로 영화를 찍어야 하는데… 그래서 제대하자마자 입대 전에 찍었던 단편영화 촬영감독 형한테, 프로필 사진 촬영을 부탁드려서, 그걸 들고 영화사에 돌아다니게 됐죠. 그때 <연애의 목적>과 <웰컴 투 동막골>에서 오디션 보러 오라고 해서, 각각 교생5 역과 절벽 인민군 역으로 출연하게 됐죠.
쭌: 그럼 2004년 당시 강제규필름 모니터 요원은 군대에 있을 때 지원해서, 참여하게 된 거였나요?
정: 그때 생각이 나는데요, (웃음) 강제규필름 합격해서 사전 모임에 잠깐 나간 건 말년휴가 때였고… 그것보다 훨씬 전인 병장 정기휴가 때 집에 와서 인터넷을 하다가, [강제규필름]이란 곳에서 모니터 요원을 뽑는다는 거예요. 지원 조건을 보니까, 최근 한국 영화 감상문과 자기소개를 쓰면 된다는 거예요. 그게 되면 어찌 됐든 영화사라는 곳에 가볼 수는 있겠구나.
그래서 서류를 준비해서 정기휴가 기간에 메일로 보내게 됐죠. 그래서 말년휴가 때는 시간을 쪼개서 사전 모임에 참여했던 거고요. 전역하고는 쭉~ 나올 수 있게 됐죠.
쭌: ‘연기’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영화사 모니터 요원 경험이, 훗날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나요?
정: 그때 제 마음은 유명한 영화사에서 하는 모니터 요원이니까, 가자마자 ‘강제규’감독님 만나서 어떻게 해보려던 게 아니라, 거기 가면 일단 한 달에 한 번씩 시나리오를 미리 볼 수 있다고 하니까. “그래, 도대체 충무로에서는 어떤 시나리오가 써지고, 어떤 영화가 기획되는지 그게 더 궁금했어요.” 그걸 보는 거 자체가 공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들어간 거고.
그 모임에서 혜택으로 줬던 게 지금은 다른 극장으로 바뀌었는데, 강남역에 당시에는 ‘주공공이’라는 극장이 있었어요. 거기 영화관람권을 주신다길래. 영화도 공짜로 보고, 충무로 기획 시나리오를 보면서 공부도 하고. 그런 마음에 거기 가게 됐죠.
가장 큰 혜택은 물론 좋은 사람들,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수다쟁이 쭌도 그때 만났지만, 실명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그곳에서 영화를 연출하신 경험이 있는 영화감독님도 만났어요. 당시에는 작업을 많이 하셨던 분이셨는데. 영화사에서 제가 자기소개를 할 때, “저는 배우 지망생입니다. 배우를 할 겁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배우보다 우리나라에서는 판, 검사되는 게 빠르고 쉽다.”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당시에는 ‘그게 무슨 소리야? 판, 검사되는 게 얼마나 힘든데…’라고 생각했지만, 제가 이 배우 일을 계속하면서, 서른 살 넘어가면서부터 어떤 면에서는 당시에 그 감독님이 했던 말씀이 맞는 걸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배우가 되는 것은 쉽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배우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고, 생활도 유지하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는 건 판, 검사 못지않게 힘든 일이라는 걸 지금은 아는데, 당시 스물네 살 정영기는 몰랐었죠.
쭌: 군대 전역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제작되는 독립 단편영화 100여 편 이상에 출연하면서, 모 영화제를 가면 “상영작을 보다 보면, 정영기가 출연하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나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작품량을 소화하셨는데… 20대 중후반에 그렇게 많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던 정영기란 배우의 에너지는 무엇이었나요?
정: 일단 영화를 무척 좋아했고요. 저한테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는데, 유년시절 남동생은 태어나지 않았을 때인데, 여동생은 미미인형을, 저는 레고를 가지고 놀았어요. 레고에 보면 기사 캐릭터가 있는데, 그것과 미미인형을 조합해서 동생에게 인형극을 해줬어요. 혼자서 공주 목소리도 내고, 기사1 목소리도 내고. (폭소) “성주님, 공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어 그래, 공주님을 어서 안으로 들라 해라.” 이렇게 노는 걸 좋아했었고. 그런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거 같아요.
충무로 상업영화의 벽은 무척 높았기 때문에, 일단 독립 단편영화에 출연해서 실력을 쌓자는 생각이었죠. …그걸 하는 것 자체가 공부도 되지만, 놀이도 됐어요. 무척 신 났어요. 카메라 앞에서 내가 연기를 할 수 있단 것 자체만으로 신 났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단편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걔 중에 좋은 작품을 만나서, 해외 영화제에서도 상영되고, 물론 저는 못 갔죠. (폭소) 제가 출연한 영화는 프랑스, 독일로 갔지만. 그 당시 원동력은, 연기하는 게 좋아서, 제일 재밌는 놀이여서,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쭌: 그렇게 뜨거운 20대를 보내고 나서, 충무로 상업영화에도 출연하면서 배우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고 계신데요, 30대 배우 정영기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20대 독립 단편 다작 배우 정영기 비해서 좀 바뀐 생각들이 있으신지? 바꿔 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30대 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온도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걸까요?
정: 어떤 온도냐면요. 예전에 20대 때는 그냥 딱 좋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물에서 물장구치는 느낌이었다면, 30대의 연기자가 대한민국에서 무명 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차가운 얼음 물에서 수영하는 것 같아요. 영하 20도 되는 한 겨울에, 강원도 산골짜기에 꽁꽁 언 강물을 깨고 들어가서 수영을 해야 되는 상황인 거 같아요.
왜냐하면, 20대 때는 ‘연기’가 좋고, 놀이고, 어떤 역할을 해도 즐겁고. 그래서 독립 단편영화를 하더라도 그거 자체로도 좋았어요. 근데 이제 나이를 조금씩 먹고, 제가 34살이 됐는데, 더 이상 집에 손 벌릴 수도 없고. 물론 아르바이트를 하면 되죠. 근데 언제 오디션이 잡힐지도 모르고, 촬영이 생길지도 모르는 배우 입장에서는, 정기적인 장기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일용직을 주로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니까 경제적인 생활이 안되고. 간단히 정리하자면, 20대 때는 생활 걱정 없이 뛰어놀면 됐는데, 30대가 되면 생활도 걱정해야 되고, 미래도 걱정해야 되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연기고, 계속하고 싶은 것도 연기인데, 배우로 늙어죽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생활이 유지가 되어야 하는데, 어떨 때는 영화 찍으면 돈을 그래도 몇백만 원 받고, 어떨 때는 몇 개월간 백수로 있고, 그 격차가 너무 심하다 보니까, 거기에서 오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있어요.
예전에는 오디션 떨어지면, ‘아, 뭐 다음 오디션 잘 보면 되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에는 오디션을 떨어져서 몇 개월 동안 출연을 못하면, “내 생활비가 없는데…”라는 압박감으로 다가오니까, 진짜 차가운 얼음 물에서 수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거 같아요. 심리 상태가.
쭌: 그런 강원도 산골짜기의 얼음 물속에서 수영을 하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지속할 수 있는… 함께 하던 동료 배우들도 하나, 둘씩 얼음 물에서 나와서 다른 세상으로 가신 분들도 많을 텐데, 그럼에도 연기를 계속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하나가 있다면, 그 하나는 과연 뭘까요?
정: 그 하나는 연기에 대한 제 사랑인 것 같아요. 짝사랑. 지독한 짝사랑. 이거 아니면 안 돼. 제가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겠죠. 이 나이에 안 받아준다고 해도, 무릎이라도 꿇고, 중국집 배달부라도 하고, 치킨집 배달부라도 하면,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나아질 수 있겠지만… 행복하진 않을 거 같아요. 사는 게 즐겁지 않을 것 같아요.
연기를 할 때만이 제가 ‘아, 나 살아있어!’라고 느끼는 순간이기 때문에… 비록, 얼음 물에 있지만, 제가 1년 내내 거기 있는 건 아니거든요. 1년에 4개월 정도는 촬영장에 있거든요. 그 행복한 순간이 주는 따스함이, 나머지 7~8개월 얼음 물에 있는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견디게 해주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쭌: 이제 곧 봄이 오는데요, 얼음 물이 아니라 햇볕을 받으며 하고 계신, 최근에 참여한 작업들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정: 작년 12월에 <서울 땐스홀을 허하라>라는 연극을 했었어요. 되게 오랜만에 연극이었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연극을 한 게, 2010년 1월, 또 8월에서 10월까지, 두 작품을 했었는데요, 최근 3년 동안은 영화와 드라마만 하다가, 오랜만에 연극을 하니까 ‘카메라’ 앞에서와는 또 다른 희열이 있었거든요. 라이브로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것이.
그래서 제 연기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줬고. 안타까운 흥행성적을 기록했지만, 영화 <플랜맨>과 <또 하나의 약속>이 1, 2월에 연달아 개봉해서 기분이 좋았고, 이제 3월인데요, MBC <수백향>이 종영하고, 그 후속작으로 MBC 일일드라마 <엄마의 정원>이 방송될 예정인데요. 요즘에 그 작품을 찍고 있어요.
아마, 월요일에서 금요일 밤 8시 55분에 방영을 할 텐데요, 거기에서 맡은 역할이 재미난 역이에요. 하숙집에 사는 고시생인데, 돈이 없어서 4개월치 하숙비가 밀려서 도망치다가, 잡혀와서 하숙집 이모에게 두들겨 맞아요. 다행히 하숙집 사장님으로 나오는 고두심 선생님의 따스함 때문에 공짜로 먹고 자면서 공부할 수 있게 되는 인물이에요. 대본을 볼 때마다 안쓰러우면서도 하는 행동이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지는 그런 역할이에요.
그 캐릭터 이름이 만수인데, 강만수를 연기할 수 있게 돼서 행복해요. <플랜맨>과 <또 하나의 약속>은 작년에 찍었던 영화들이라, 연극도 되게 짧게 작업해서, “또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싶다.”라고 간절히 생각하면서 얼음 물에서 또다시 떨고 있었는데… <엄마의 정원>이라는 작품을 만나게 돼서, 마치 어디 ‘괌’이나 ‘하와이’에 있는 따스한 해변에 누워서 시원한 아메리카노 먹는 그런 느낌을 받아 가면서 연기하고 있습니다.
쭌: 말씀하신 대로 세상에는 얼음 물에서 고생하면서, 만들어진 수많은 결과물들,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는 문화콘텐츠란 게 있잖아요. 수많은 사람들이 그걸 소비하면서 살아가는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접한 문화콘텐츠 중에서 정영기에게 가장 강렬했던 순간은 어떤 경험이었을까요?
정: 딱 하나만 고르는 건 힘들 것 같고요. 제가 대학생 시절에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을 읽었어요, 처음에는 10권짜리라서 “아, 이거 언제 다 읽지?”했는데, 예전 고등학교 때 이문열 선생님의 10권짜리 <삼국지>도 읽은 경험이 있으니까, “그래, 한번 읽어보자”고 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읽으면 읽을수록, ‘아, 내가 왜 이걸 고등학교 때 안 읽었지?’라는 안타까움이 드는 거예요. 이렇게 강렬하고 재밌고, 깊이 있는 문학을 왜 이제야 접했을까? “이 멍청이야! 빨리 좀 읽지.”라고 되뇌면서, 그 10권짜리를 며칠 만에 단숨에 다 읽었어요. 그때의 그 강렬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음악을 많이 듣는데요, 제일 많이 듣는 건 클래식이에요. 제가 사실 클래식은 잘 모르거든요. 아이폰 앱 중에서 잠잘 때 듣는 클래식, 머리 아플 때 듣는 클래식, 화날 때 듣는 클래식이 있는데, 그걸 그냥 늘, 틀어놔요. 혼자 있을 때. 그럼 마음이 편안해지고.
영화도 물론 제 인생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영화를 보려면 극장에 가거나 집에서 2시간 내지 1시간 반을 집중해서 그것만 보고 있어야 하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영화를 보는 동안 다른 일을 못하거든요. 휴대폰도 꺼놓고요. 집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근데 음악은 들으면서 운동을 한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빨래를 갠다든지,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서 항상 제 귓가에 맴돌면서, 제 삶을…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좋고…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어요.
또, 제가 힙합을 되게 좋아해요. 고등학교 때는 로큰롤만 들었는데, 대학가면서 힙합을 많이 듣기 시작했어요. 꽂혀서 자주 듣는 건 ‘리쌍’ 음악인데요, 리쌍 노래 중에 [죽기 전까지 날아야 하는 새]라는 곡이 있어요. 그게 어떤 노래냐면, 리쌍의 후배 중에 비지라는 분이 계세요. 드렁큰타이거의 객원 래퍼신데, 원래 드렁큰타이거에서 랩 파트를 담당하던 분이 나가고, 그 자리를 메꾸기 위해 온 객원 래퍼 분이 바로 비지예요.
그 분도 저처럼 대중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무명인데요, 저는 무명 배우고, 그분은 무명 래퍼신데, 삶이 쉽지 않은가 봐요. 그래서 리쌍이 비지에게 바치는 응원가 같은 노래가 바로, [죽기 전까지 날아야 하는 새]예요. 마치, 제 얘기 같아요. 그래서 힘들 때마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이렇게 힘든 여건에서도 열심히 하시는 분이 계신데, 나도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힘을 많이 얻어요.
쭌: 사실 문화와 예술이라는 게 의식주도 아니고, 당장 없다고 해서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이 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정: 의식주도 아닌데, 문화가 우리 인생에 왜 필요하냐면 ‘윤활유’이기 때문이에요. 삶의 필수 조건이 흔히 의식주라고 하는데, 저는 거기 덧붙여서 ‘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인간이 동물이긴 하지만, 지적인 동물이거든요. 토끼, 사자, 호랑이, 악어, 원숭이한테 문화예술이 뭐 필요하겠어요~
근데, 인간에게는 필요해요. 왜냐하면, 토끼나 사자 이런 애들은… 제가 잘은 모르지만 오래 살아봤자, 20년 수명이? 인간은 과거에는 60년, 요즘 80년, 길게 앞으로 100년인데, 밥 먹고, 잠자고, 옷 입고, 그렇게만 살기에는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어요. 그 시간을 뭘로 채울 수 있느냐? 이거죠. 하루 종일 밥만 먹거나, 잠만 잘 수는 없거든요. 그렇다고 하루 종일 옷 고른다고 쇼핑만 할 수도 없고.
나머지 시간을 풍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이 정신적인 동물이기도 하니까, 먹고 자고 입고 그런 게 다가 아니라, 머리도 채우고 마음도 채워야 하기 때문에… 그걸 채워줄 수 있는 게 음악, 영화, 미술, 사진 등 문화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인으로 비유하자면, 문화예술이 ‘김치’같은 거죠. 김치 없으면 못 살 듯이. 밥만 먹거나, 고기만 먹고 어떻게 삽니까? 김치도 있어야죠. 문화예술은 한마디로 김치죠.
쭌: 지금까지 장시간 인터뷰 고생하셨고요. 2014년이 벌써 3월이 되었는데, 남은 10개월간 계획이 있으시다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정: 아까 말씀드린 3월부터 방영되는 MBC 일일드라마 <엄마의 정원>이 6개월짜리 프로젝트에요. 120부작이거든요. 8월까지 하는 드라마인데, 저는 매일매일 나오진 않고요. 3부나 2부에 한 번씩 나와요. 제 바람이 있다면 시작을 했으니까… 마지막 회까지 꾸준히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긴 호흡의 작품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제 배우 인생에 이번 드라마가 큰 자양분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꾸준히 나왔으면 좋겠고요. 제가 늘 촬영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중간에 좋은 작품이 있다면 영화든 드라마든 만나서 다른 캐릭터도 연기할 수 있게 되면 좋겠고요.
<또 하나의 약속>이 하루에 2~3만 명의 분들이 찾아주셨는데, 요즘에는 좀 주춤한 상태인데요. 예전에 <서편제>가 장기상영을 하면서 많은 관객을 만났던 것처럼, <또 하나의 약속>도 장기상영을 통해 많은 분들과 만났으면 좋겠어요. 4월에는 <돼지의 왕>, <사이비>를 제작한 ‘다다쇼’에서 만든 시리즈물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목소리로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은데요, IPTV를 통해 서비스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올해 12월에는 윤제균 감독님의 <국제시장>이 개봉을 하는데요, 제가 거기서 독일로 일하러 가는 광부 역할로 출연해요. 많은 사랑 부탁드리고요. 음, 제가 초심을 잃지 않고 연기를 즐기면서, 좋은 작품에 많이 출연해서, 많은 관객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고. 돈도 많이 벌어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배우이기 이전에 좋은 인간으로 살고 싶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만나 진행한 배우 ‘정영기’와의 수다는, 수다쟁이 쭌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현실에 파묻혀 잊고 살던 귀한 가치들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나브로 되살아났다. 자본의 위력이 아주 강력해진 시대에,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한 분야에 십 년 이상 매진하며, 진실되게 살아가기란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십 년 전부터 알고 지낸, 영화배우 ‘정영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보기 드문 소중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 마음에서 피어나는 에너지가 즐거운 시간을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행복한 수다를 나눌 수 있는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그 얼마나 귀한 일인지 요즘 새삼 되새기며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우리 모두는 ‘꿈’을 꾼다. 하지만 그 꿈을 끝까지 간직하고 살아가기란 무척 힘이 든다. 돈, 명예, 권력 등 아이일 때는 몰랐던 많은 것들을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소년이 어른으로 불리는 순간, ‘아이의 꿈’이 큰 돈이 되지 않는다는걸, 우리는 자각하게 된다.
인터뷰어 역시 그래서 조금은 타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포기하지 않고 ‘꿈’을 꾸고 있다면, 진심으로 그 꿈을 응원해주고 싶다. 배우, ‘정영기’는 소년의 마음으로 살아가면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귀한 광대였다.
힘든 순간은 끊임없이 찾아오겠지만,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고, 소년성을 간직한
우리 시대의 귀한 마음으로 끝까지 가셨으면 싶다.
꿈꾸는 청춘,
행복한 배우,
건투를 빈다!
배우 정영기, 인사 영상: ⓒ 수다쟁이쭌
출처: 수다쟁이 쭌의 산뜻한 문화 탐구/ 편집: 리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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