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추었다. 작년 추석을 앞두고 「모두가 기분이 나쁘다」고 적었던 그 이후로, 정말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멈추었다. 거래량은 급감했다. 2018년 초 월 1만 건을 넘어서던 서울 시내 아파트 거래량은 여름에 5,000건 수준까지 줄었다가 9월 1만 2,000여 건을 기록한 이후 최근에는 2,000건 언저리까지 떨어졌다. 171.6까지 치솟았던 매수 우위 지수는 최근 41.1까지 하락하면서, 수요자 관망에 의한 시장 정체를 본격화한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월세 거래도 줄었다. 특히 2016년 말과 2018년 말의 거래량을 살펴보면 그렇다. 2016년 4분기 4,000건이 넘던 노원구의 전·월세 거래량은 2,970건으로, 1,986건이던 성동구는 1,259건으로, 2,500건이던 양천구는 2,157건으로, 4,675건이던 강남구는 4,030건으로, 4,642건이던 송파구는 3,905건으로, 2,201건이던 강동구는 1,763건으로 말이다.
게다가 헬리오시티라는 대규모 입주 물량이 몰리고 9,510세대 중 상당수가 전·월세 물량으로 나오면서 전셋값도 약세를 보인다. 특히 영향을 받은 것은 6억 대 전세 시장으로 비슷한 범위의 가격을 보이던 전세 가격을 다 같이 하방으로 누르는 모양새다.
이런 ‘입주 쇼크’는 우리가 지난 몇 년간 마포, 왕십리 등지에서 관측해왔듯 시간이 지나고 매물이 소화되면 다시 해소되고는 하는 것이었다. 헬리오시티에서도 슬슬 해소가 되어가는 분위기기는 한데, 연내에 입주가 예정된 물량이 강동에만 1만 세대가 넘고 서울 전체적으로도 4만 2,000세대 규모로 최근 10년간의 평균(3만 내외)을 상회해서 당분간 신축발 전세 약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래량이 실종되고 전세 약세가 도래하고 공시가격 상향으로 세 부담이 증가하고 GTX와 3기 신도시로 외곽 분산까지 시도된다. 청약은 어차피 점수도 안 되지만 가격 자체가 너무 비싸서 내가 먹을 수 있는 사과가 아님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그래서 광진구의 12억 분양 현장에서는 드디어 미분양까지 발생한 바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정책효과가 본격적으로 발현돼 가격 ‘정상’ 수준을 되찾을 것인가.
선택지는 몇 없지만 단서를 얻을 수는 있다
예측이라는 것은 무모하고 부질없는 행위다. 보이는 미래가 설령 있다고 한들 그것이 1,000원짜리 로또 한 장 사는 일이 아닌 이상에는, 특히 부동산의 경우 내 의사결정의 범위 안에 선택의 옵션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가령 30억 하는 반포 신축이 앞으로 몇 달간 20억이 되었다가 내년 이맘때쯤 다시 30억이 될 것이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그림의 떡일 것이고, 목동 아파트가 갑자기 기세를 올려 3종을 받고 드디어 재건축 승인을 받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내 집 팔고 다 정리해서 목동 아파트로 정말로 갈아탈 수 있는 사람이 여러 가지 이유로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중대형이 뜬다, GTX 라인이 뜬다, 아니다 과천이다, 6억 이하다, 여러 가지 크리테리아를 걸어서 ‘투자 전략’을 수립해 봐야 어차피 자리 바꾸기가 제약된 시장에서 내가 가진 비루한 기반으로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원래부터 몇 없다. 그러나 단서를 얻을 수는 있다. 가령 이러한 찜찜함들 때문이다.
- 일반분양 물량이 줄어도 너무 줄어들었다. 서울 시내 입주 물량은 현재 1년에 3만 호 내외인데, 2018년 한 해 동안 분양한 아파트 일반분양 물량은 딱 6,100호에 불과했다.
- 전·월세 거래량이 줄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갱신계약이 늘어난 것에 기인한 바가 있다. 어차피 불확실성이 크고 거래 가능성이 제약된 시장이라, 집주인도 세입자도 그냥 그대로 눌러앉는 게 서로 마음이 편하다. 특히 전세 시장에서 아주 많은 포션을 차지하지만 이제는 매매전환의 길이 완전히 가로막힌 3~5억 보증금의 집들이 그래 보인다.
- 3기 신도시 발표는 했으나, 언제 실질적 공급효과를 줄 수 있을지가 너무 까마득하다. 게다가 그나마 3기 신도시는 발표라도 했는데 앞으로 추가로 공급할 수 있는, (교통여건이 괜찮은) 택지 여력은 이제 수도권에도 희소해진다.
- 집주인-세입자의 포지션이 서로 너무도 공고해졌다. 게다가 집주인 중 상당수는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세법상의 문제로 ‘임대사업자’라는 감투까지 덮어써서 앞으로 8년간은 죽으나 사나 버티는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보증금은 크게 오른 것이 없어서 빠질 것도 없고, 전세가율은 디커플링이 심화해 50% 언저리까지 빠져서 사실은 어쩌다 보니 제법 건전한 재무구조를 갖게 되었다.
- 공시가격 상승은 다주택자를 겨누지 못한다. 오히려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1가구 1주택 내지 2주택 물량에 대한 광역 증세의 수단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 오르는 수준이라는 것도 워낙 제한적이어서,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낼 정도로 유의미하지 않다. 서울 시내 32평 아파트에 부과되는 재산세는 얼마이며, 얼마로 오르게 될까? 여기에 기대를 건다는 것은, 재산세를 내본 적이 없다는 자기 고백에 가까운 것이다.
- GTX가 서울의 힘을 더 키울 것이라는 견해들이 많은데, 다른 의미에서는 서울 집값의 레퍼런스를 더 강화한다. 가령 GTX 역세권이 될 것으로 지목된 동네에 괜찮은 배후직장을 끼고 고층으로 올린 주상복합도 호가가 8억에 달한다. 선택은, 서울에서 20년 된 25평 아파트에 살 것이냐, 쾌적하게 조성된 신도시 신축 랜드마크 32평에 살 것이냐로 확장된다. 그런데 이러한 신도시의 대체재들 역시도 희소성을 가졌으며, 생각보다 많이 높은 가격대를 이미 형성한다.
- 슬픈 이야기지만 GTX에 대한 희망 고문은 짧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GTX-A는 착공식을 했지만 놀랍게도 시공의 주체가 아직 없다(그리고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북한산 통과에 대한 환경 영향 문제를 돌파하지 못하며, 광화문역을 추가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정치 싸움한다. 설계변경이 생기는 순간 일정엔 어떤 영향을 줄까? 하물며 ‘착공식’까지 요란하게 거행한 GTX-A가 이런데, 이제 갓 예타의 산을 넘은 C 노선이나, 아예 예타도 못 마친 B 노선은?
시간이 멈추었다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 자체가 거의 소거되었고, 결정을 향후로 미뤄놓고 일단 계약연장을 하는 게 무난한 선택이 되었다. ‘모두가 기분이 나쁜’ 상황에서 이제는 체념의 단계로 들어선다. 지금보다 내일이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큰 상관은 없다. 그때 가서 그때의 선택을 좀 더 나은 여건에서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나아질 것이 보이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된다.
손을 놓았다. 사람들이 그렇고, 일감이 떨어진 공인중개사들이 그렇고, 건설사들이 그렇고, 정부가 그렇다. 일단 당장 불거지는 문제가 없으니 ‘지금처럼만’ 하며 안도하는 듯한데, 이미 잊어버린 것 같다. 8·2 대책의 파국은 양질의 주거수요가 존재함을 부정하고 ‘수요 억제’를 통해 문제를 닫아 보려는 잘못된 시도에서 왔다는, 이제는 충분히 평가할 수 있는 사실을 말이다.
원문: 김민규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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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2019년 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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