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찾아오는 양자택일의 순간 앞에서 나는 괴로워하고 있다. 평소라면 당연히 출근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의 나는 다르다. ‘건강을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출근은 패스하고 아침밥이다!’ …그렇게 1월 첫 주만에 지각 면제권을 모두 탕진해 버렸다. 더 늦었다가는 아침밥 먹고 눈칫밥도 과식할 상황. 나에게는 해답이 필요하다(그냥 일찍 일어나면 된다). 그래! 음료를 마시는 것이다. 아침식사를 대체할 간편하고 건강한 음료를! 오늘 마시즘은 역사적으로 아침 식탁을 장식한 음료들을 알아본다.
엘리자베스 여왕 때까지도 아침에 술을 마셨다
야속하게도 16세기가 되기 전까지 아침식사는 죄였다. 중세 초기에 왕족과 귀족들은 먹고 마시느라 하루를 탕진했는데, 그것이 위대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눈에 거슬렸다. 때문에 도덕적으로 기품이 있는 인간이라면 아침은 공복이어야 했다(어린이와 노약자, 육체노동자는 제외)
밥도 먹지 못하게 하는 서러운 세상이었지만 음료는 마실 수 있었다. 다행히도(?) 유럽에는 탈 없는 물을 찾기 힘들어 맥주를 마셔야 했다. 유럽 사람들은 해장술이 아닌 수분 보충용 모닝 맥주를 마셨다. 하지만 알콜도 보충된다는 것이 함정.
영국에서 아침식사 금지가 풀린 것은 ‘엘리자베스 1세’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유인즉슨 그가 너무 빨리 일어났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다른 사람들이 일어날 시간에 이미 오전 업무를 마치고 식사를 했다고 한다. 그의 아침식사 메뉴를 보면 에일맥주도 있었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그녀가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는 에일 애호가였다며 ‘퀸즈 에일(Queen’s Ale)’이라는 맥주를 출시하기도 한다. 따지자면 당시의 맥주는 삼다수 같은 것이라 왕부터 백성까지 모두 아침에 홀짝였다.
모닝 커피보다 모닝 코코아가 먼저다
16세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맥주와 와인만 마시던 유럽인들에게 충격적인 음료가 찾아온다. 그것도 3종류나. 바로 카페인이 들어있는 커피와 홍차, 그리고 코코아다. 이중에 가장 빨리 인기를 누린 것은 코코아였다.
남미에서 가져온 카카오 열매로 만든 코코아는 스페인의 아침음료가 되었다. 코코아는 더 나아가 엄격, 근엄, 진지의 가톨릭 교회의 금식기간까지 진출한다. 1662년에 ‘프랜시스 마리아 브란카치오’ 추기경이 “음료 섭취는 금식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사실상 금식기간에 코코아 마시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코아의 고향 멕시코는 어떠했을까? 그들은 오래전부터 카카오를 ‘신의 음식’이라고 부르며 먹어왔다. 이를 유럽인들이 달콤한 코코아로 만들자 더욱 훌륭한 아침 음료가 되었다. 19세기 멕시코에서는 ‘우유에 타서 마시는 코코아가 어떤 음식보다 훌륭한 아침식사’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하는 것은 언제부터?
커피는 17세기부터 주목을 받았다. 귀족들 사이에서 ‘커피 하우스’가 만남의 광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낮과 밤에 관계없이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했다. 커피가 노동력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커피하우스를 출입하지 못하던 노동자들도 커피(혹은 차)를 마시게 되었다.
아침식사에 커피가 등장한 시기는 18세기다. 특히 커피에 우유를 섞은 카페오레(카페라떼)가 아침 식탁의 필수요소로 자리 잡았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빠듯한 노동시간에 아침식사가 뒷전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달콤하지 못한 진실이지만.
커피는 졸음을 깨워주고, 집중력을 높여줬다. 여전히 사람들은 아침밥은 먹지 못해도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낭만적으로만 보였던 모닝커피에 숨겨진 진실이 ‘정신 차리고 일해라’였다니. 난 그것도 모르고 홀짝홀짝 잘 마셨지.
경제 발전이 오렌지 주스에 미치는 영향
오렌지 주스(를 비롯한 과일주스)는 빠르게 아침식사 메뉴로 급부상한 음료다. 1800년대까지만 해도 오렌지 주스는 포도 주스와 사과 주스보다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텔레비전과 의사, 주변 사람들이 오렌지 주스를 이야기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썬키스트… 아니 미국 캘리포니아 감귤농장에는 대풍년이 일어났다. 이에 맞춰 오렌지를 팔아야 할 여러 기술들이 만들어졌다. 의사들은 아침에 마시는 오렌지 주스의 효능을 이야기한다. 믹서기를 판매하는 회사는 설명서에 과일을 갈아 주스를 만드는 방법을 싣는다. 의학과 제품 그리고 마케팅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유리잔에 담긴 아름다운 색깔도 오렌지 주스를 아침상에 놓는데 기여했다. 베이컨과 달걀, 토스트는 미국식 아침식사의 표준이 된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의 오렌지주스 사랑이 들어와 썬키스트와 델몬트가 아침음료로 큰 사랑을 받았다.
한국의 아침은 풀을 마시는 걸로 시작한다?
한국사람이 아침에 음료를 챙겨마시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제발전으로 인해 ‘건강’을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초록라떼… 아니 녹즙이 있었다. 어릴 때는 엔젤녹즙기에 채소 갈리는 소리가 아침잠을 깨웠다. 출근하는 아빠, 등교하는 누나, 집에서 놀던 나도 꼭 녹즙을 마셔야 했다. 어린이가 마시기에 엄마의 녹즙은 썼다. 하지만 엄마의 잔소리가 더욱 쓰기 때문에 마실 수밖에.
이런 현상이 이웃집, 이웃동네에도 계속되었다. 덕분에 1991년 50억원 정도였던 녹즙시장은 1993년에 10배 가까이 뛰어오른다. 하지만 1994년 녹즙 열풍은 귀신같이 사라진다. 업계의 후발주자였던 녹즙기에서 중금속이 검출되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식에 대중들은 녹즙기를 반품하는 일이 벌어졌다. 업계의 선구자였던 엔젤녹즙기까지도 막대한 피해를 입고 사라질 정도였다.
1995년, 사그라들던 녹즙시장에 들어온 것은 풀무원녹즙이었다. 가정에서 만드는 녹즙은 마시기에는 간편하지만 만들기에는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귀차니즘 포인트’를 콕 짚어 직접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결합되자 많은 사람들이 녹즙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덕분에 녹즙시장은 살아났고 가정이 아닌 사무실에서도 녹즙으로 아침을 여는 풍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마신 음료가 하루의 시작을 결정한다
인물에 의해, 종교에 의해 또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에 발맞춰 아침에 마시는 음료는 바뀌어 왔다. 단순히 간편하게 공복을 채우는 것을 넘어 여러 문화적인 역할이 있었다. 잠을 깨우기도 했고, 건강을 챙기자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때문에 아침에 마시는 음료는 어떤 하루를 시작할지에 대한 메시지가 된다. 여전히 많은 음료회사들은 ‘아침을 지배하는 음료’가 되기 위해서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음료로 하루를 시작하게 될까?
원문: 마시즘
참고문헌
- 『아침식사의 문화사 Breakfast』, 헤더 안트 앤더슨, 니케북스
- 『정치인의 식탁』, 차이쯔창, 애플북스
- 『Why Do We Drink Coffee at Breakfast?』, Kitchn
- 『How Orange Juice Became the World’s Breakfast Beverage 』, Eat Drink La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