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에서 항공기를 띄우는 것 자체는 1920~1940년대에도 그다지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이 시기는 이제 막 레이더에 관한 기초 개념이 완성되어가던 시점이었다. 아직까지 레이더를 사용한 화력통제는 미성숙한 단계였다. 때문에 감시수단을 어떤 식으로든 확보하는 것은 중요했고, 규모가 좀 되는 함선에서 간단한 관측용 정찰기를 한두대 운용하는 것은 일종의 유행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에도 그런 결과물이 있었다.
영국 해군이 원래 만들려던 것은 전함급의 주포를 가진(당시 분위기는 거함거포주의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잠수전함(…)이었다. 그 결과물이 M급 잠수함인데, 만들고 보니 쓰레기였다. 그래서 2번함에서는 아예 포를 치우고 수상기를 얹어보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 HMS M2다.
그러나 이 함선은 무슨 이유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침수되어 침몰했고, 이 사고 이후 영국 해군은 잠수항모라는 개념을 때려치운다.
프랑스 역시 비슷한 시도를 해봤다:
쉬르쿠프급 잠수순양함은 말 그대로 잠수하는 순양함이다. 덩치 큰, 주포가 달린 잠수함. 지금이야 잠수함이 어뢰나 미사일만 쓰지만, 과거엔 희한한 걸 많이 달고 다녔다. 즉 여차하면 잠수해서 숨고, 부상해서 뻥 쏴서 상대방 구축함을 때려잡을 수도 있고.. 뭐 그런 생각으로 만든 것이다.
문제는 이 함선 자체가 아니라, 여기에 탑재된 베송 MB.411 표적획득용 수상관측기였다:
쉬르쿠프급은 센토쿠급이 나오기 전까지 유일하게 잠수가 되면서 뭔가 항공기를 날릴 수 있는, 실전 운용 잠수함이었다. 그러나 동방의 어느 나라에서는 이것을 뛰어넘는 뭔가를 만들게 된다. 그것이 I-400 센토쿠급 잠수항모다.
태평양 전쟁 개전 이전,구 일본군은 ‘절대로’ 미국과의 전면전을 꿈꾸지 않았으며, 진주만 공습의 기본 목표는 미 해군 전력의 코어에 커다란 타격을 주어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를 맺고 일본의 물주인 미국이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건설에 협력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방해하지 않도록(이미 미국은 일본으로 들어가는 전략물자 중 상당수의 수출국이면서 동시에 그 시점에 그것들에 대한 금수조치를 내렸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다. 일본을 부숴버릴 생각으로 충만한 정부와 의회, 군대 불합격 떴다고 실의에 빠져 자살하기까지 하는 미국 국민, 1개의 공업단지만으로 제3제국 철강 생산량을 넘어서는 미국의 거대기업이 삼위일체를 이뤄 미친듯이 전쟁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신이 원했던 상황이 이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차대전으로 이미 초강대국의 지위에 오른 미국이었고, 일본 전체가 미국의 힘을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알 사람은 알고 있었다. 미국이 이 전쟁에 끼어들면 소련만큼이나 압도적인 존재가 될 것임을.
그러나 이걸 원했으면 일본은 전쟁을 안 했어야 했고 최소한 진주만 공습과 같은 방식으로는 전쟁을 해선 안 되었으나 현실은 일본군의 비열한 기습(이라고밖엔 표현할 길이 없는 행위였다)에 온 미국이 들끓어올랐다. 일본군이 원하는 건 미국이 끼어들지 않는 것밖에 없었으나 미국은 오히려 일본을 때려잡으려 온 국민이 벼르게 된다.
일본 군부는 어떤 식으로든 미국의 본토에 타격을 주어, 그 충격과 피해 누적으로 미국 정부와 여론에 전쟁 혐오심리를 일으킴으로서 미국과의 전면전을 피하고 싶었다. (사실 이것은 일본의 생각일 뿐이다 – 일본이 정말로 I-400 등을 이용해 본토를 타격했으면 일본은 반쯤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멸망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런데 본토를 타격할 수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본 군부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실질적으로 미국 근해에 접근할 방법은 잠수함 뿐인데, 당시에 잠대지 순항미사일 같은 건 없었기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잠수함에 베송 MB.411 같은 찌질한 물건이 아니라 진짜 공격기를 탑재시킨다. 그리고 그 공격기를 발진시켜 본토를 타격한다는 것이다.
그간의 미국의 반응과 분위기를 생각하면 근본적으로는 파멸적인 계획에 가까웠던 아이디어를 입안한 것이 바로 그나마 일본 해군에서 상식파에 해당했으며, 후에 미군의 공격으로 사망하는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다.
여튼 이 양반은 잠수항모 계획을 입안했다. 그 계획의 결과물이 I-400 센토쿠급 잠수항모로서, 만재배수량 5,600 톤의 2차대전 최대의 잠수함이면서 동시에 유일무이한 공격기를 탑재한 잠수항모로 총 2척이 운용되고 3척이 건조되기에 이른다.
그래서 여차저차해서 이 센토쿠급을 만들어보기 시작하는데, 너무나 당연하게 기술적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1.
잠수함에서 함재기를 발진시킨다고 생각해 보자. 격납고를 잠수함 바닥에서 발진시킬 수는 없고, 잠수함에 공간이 어딨다고 잠수함 안에다 격납고를 만들고 거기서 엘리베이터로 그걸 끌어올리나? 즉 격납고는 잠수함 동체 위에 있고 거기서 발진을 시켜야 한다. 그런데 격납고를 상부에 달면 무게중심이 위쪽에 집중되면서 잠수함이 떠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설계자들은 내압선체를 = 모양으로 2개를 배치하고, 이 = 사이에 격납고를 다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센토쿠급은 2개의 내압선체를 가진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이런 것을 상상해 보시라. 통나무 2개를 끈으로 엮고, 여기에 비닐봉지를 씌워서 꽉 묶고 위에다가 장난감을 올리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발악에 가까운 노력으로 잠수함이 가라앉지는 않게 되었다.
2.
어떻게 떠서 뭔가를 날릴 수는 있다는 결론을 얻긴 했는데, 그래서 뭘 날릴 것인가? 대체로 거의 모든 국가의 잠수함은 생긴 것이 별 차이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돌고래나 원통형으로 만드는 게 아니면 물에 의해 엄청난 항력을 받을 게 뻔하잖아.. 즉 함재기를 싣기가 너무 힘들다. 센토쿠급은 그것도 2차대전 잠수함 중 가장 크기가 컸는데도. 간신히 잠수함 위에 격납고와 활주로를 어떻게 마련하긴 했는데, 거기에 들어갈 비행기가 없었다. 이쯤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일본 해군은 누가 미치지 않았다고 할까봐 여기에 맞는 비행기를 또 만든다! 그것이 M6A 세이란.
그러니까 ‘잠수항모’에 들어갈 ‘전용 공격기’를 또 이렇게 만든 것이다.. M6A 세이란은 최대 800kg의 폭탄을 장착하고, 자이로컴퍼스같은 물건도 달린 고급기종이다. 물론 양산은 거의 되지 않았다.
세이란은 꼬리날개도 접을 수 있었고, 주날개는 횡으로 돌린 뒤 사진처럼 접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격납고에 보관하다가 발진시킬 때는 날개를 펴서 날리면 되는 구조다. 이륙 자체는 충분히 가능했다. 캐터펄트로 쏘면 대충 이륙은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세이란은 저런 식으로 캐터펄트로 날리고, 착륙은 수상 플로트로 일단 수면에 착륙시킨 다음 센토쿠급의 크레인으로 싣게 되어 있었는데, 이게 꽤 어려운 건 둘째치더라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는 건 뻔했다.
그리고 이거 분명 ‘잠수항모’라고 하지 않았나? 이착륙이 이렇게 골치아프면 이 와중에 전투기에 걸리면 어쩌냐는 의문에 대한 해군 수뇌부의 해답은 ‘더 열심히 훈련한다’ 였다. 센토쿠급의 승조원과 조종사들은 정말 미친듯이 훈련을 받아야 했다. 1초라도 이착륙 시간을 줄여보려는 발악적인 시도. 그래서 조종사와 승조원에 대한 대우는 상대적으로 좀 좋았다.
기계적인 문제도 좀 있었는데, 항공기가 엔진 넣으면 바로 붕 뜨는 것이 아니었다. 예열 시간이 필요한데, 항공모함이야 갑판 위에서 예열하다 날면 되지만 이건 아닌데? 더군다나 잠수함은 밀폐구조다. 일산화탄소 가스같은 것이 함내로 그대로 들어온다. 그래서 또 머리를 짜낸다. 아예 기름을 달궈놓고, 세이란에 이 달군 기름을 바로 집어넣어서 별도의 예열 없이 엔진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기로 한 것. 이렇게 하면 분명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한 가지 기괴한 점이 있다면 분명히 잠수항모인데, 14cm 함포에 어뢰 발사관 8문을 달고 있었다는 점이다. 14cm 함포는 비슷한 규모의 경순양함에나 달리는 함포인데, 이거 분명히 ‘항모’라고 하지 않았나? 즉 공간부족에 그렇게 시달리면서도 이런 걸 또 달았다. 물론 변명의 여지는 어느 정도 있었다. 숫자도 적었을 뿐더러, 수상함과 함께 미 본토를 타격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무튼 이런 삽질의 끝에 어찌 됐든 센토쿠급이 나오긴 했다. 근데 이렇게 나온 센토쿠급이 뭔가 활약을 했냐고? 전혀 아니다.
분명 크기가 매우 컸기에(이거 만재 5600톤의 대형 잠수함이다) 항속거리는 이론적으로는 6만 km에 달했다. 그러니까 ‘이론상’ 태평양을 건너, 남아메리카를 돌아서 워싱턴 DC 앞바다에서 세이란을 내보내 백악관에 폭탄을 꽂을 수는 있었다. 실제로 그 정도의 항속거리가 가능은 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무리에 가까웠지만, 어디 가치있는 곳이 워싱턴뿐인가? 중요한 건 미 본토를 타격하는 것이고(명심해야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본군의 관점이다 – 실제로 일본군이 I-400으로 백악관에 폭탄을 날렸으면 지금 일본이란 나라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확률이 높다), 꼭 남아메리카를 돌아갈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펀치력이었다.
세이란이라고 해봤자 센토쿠급에 고작 3기가 적재될 수 있었다. 원래는 20기 정도의 센토쿠급을 양산해 잠수함대(현실판 침묵의 함대다)를 만들어서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이 있었는데, 기술적 문제가 너무나 많으니 개발은 늦어지고, 결국 양산은 고작 3척이었다. 개발이 늦어지는 와중에 일본 해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성대하게 항모 4척(아카기/카가/소류/히류)을 잃어버리는 등 막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미드웨이 해전의 참패로 잃어버린 해군력과 항공력은 일본에겐 다시는 복구 불가능했다.
물론 장갑항모 다이호와 같은 물건이 나오기야 했지만, 그건 이미 때가 너무 늦었을 뿐더러 전황이 악화됨에 따라 근본이 없는 기괴한 항모였고, 그에 비해 미국은 요크타운급의 뒤를 이을 에식스급 항공모함, 마지막 전함이면서 동시에 공수주 모두 이전의 전함을 뛰어넘은 최고의 전함 아이오와급의 양산에 들어갔으며 이미 미국의 생산능력은 일본군에겐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결국 센토쿠급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3척 중 1척은 미완성이었고, 이 완성된 2척에 6기의 세이란을 끌고 미 본토로 간다고 치자. 그래서? 이걸로 뭘 할 건가? 두리틀 특공대 흉내내는 것도 아니고. 즉 펀치력 자체가 역부족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일부 일본군 장성들은 누가 일본군 아니랄까봐 무릎을 탁 칠만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세이란의 폭탄에 세균병기를 얹어 날리는 것이다! 세균 병기를 사용하면 분명 재래식 병기보다야 많은 미국인을 죽일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 장성들이 전부 미친 건 아니었고, 이 방법이 부도덕적인 걸 떠나서 그 뒷수습이 불가능했다. 어디까지나 센토쿠급의 기본 목표는 미국에게 어느 정도 회피불가능한 타격을 주어 미국의 전쟁 의지를 감소시켜서 강화를 유도하는 것이지, 미국에게 세균 병기를 선사하고 미국의 세균 병기를 자국이 얻어맞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독일군 역시 화생병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인도적인 이유가 아니라 상대방도 그걸 끌고 나오면 대책이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보급사정이 열악하고 본토방공이 철저하지 않았던 일본이다. 화생병기로 양국이 작정하고 싸움을 시작하면 피해는 일방적으로 일본에 집중될 것이 뻔했다. 미국의 화생병기 생산능력과 투하능력은 일본과 도저히 비교할 수가 없었고, 미국은 시시각각 일본 본토에 대한 포위망을 좁혀들어왔다. 이미 1942년 두리틀 특공대는 도쿄 본토에 공격을 가했고, 그것의 재연이 다가오고 있는 판에 미국 본토에 세균병기를 투하하는 것은 아무리 미쳐 있던 일본 군부라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행위였다.
그래서 워싱턴을 공격한다느니 하는 정신나간 생각은 집어치우고, 대신 파나마 운하를 공격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이것도 현시창이었다. 파나마 운하는 중요한 시설이고, 중요한 시설의 방어가 허술할 리가 없다. 세이란 6기로는 일본이 핵폭탄이라도 만든게 아닌 이상 파나마 운하엔 흠집도 낼 수 없다. 결국 아예 수상용 플로트(세이란의 밑바닥) 떼버리고 카미카제로 들이박을까? 하고 되지도 않는 망상을 하던 일본 군부였고, 원폭 2발에 전쟁이 끝나게 된다.
센토쿠급 잠수항모 자체는 꽤나 현시창인 물건이지만, 그런 전술적 개념 자체는 현대의 핵잠수함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 단지 당시엔 미사일이 없었고, 기술이 열악했기에 그나마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있었던 함재기와 잠수함이 결합되었을 뿐이다. 지금의 핵잠수함은 함재기 대신 SLBM(잠수함 발사 핵미사일), 또는 VLS(수직 미사일 발사 격납고)를 통해 크루즈 미사일을 쏘아 센토쿠급으로 생각하던 목표를 훨씬 쉽게 달성할 수 있다. 조금 다르지만 미 해군의 최신예 스텔스함인 줌왈트급 구축함의 경우 잠수는 안하지만 스텔스성으로 상대의 접근거부(A2/AD) 지역에 최대한 깊숙히 들어가 함재기 대신 사거리가 150km도 넘고 오차가 50m 안쪽에 달하는 AGS 함포와 강력한 미사일 운용능력으로 적국의 연안에 침투해 화력을 투사할 수 있다.
조금 더 유사하게로는 코모란트와 같은 VLS로 발사되는 UAV를 잠수함에서 운용하려는 계획도 있었다.
일본군의 유인 미사일 오카, 유인어뢰 가이텐, 폭탄보트 신요와 같은 특공병기는 전술적인 무용성을 떠나 인명경시로 인한 역겨움을 보여주는 사례라면, 센토쿠급은 일본군의 주된 특징이었던 ‘현실은 시궁창’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즉 센토쿠급은 꽤 혁신적인 ‘개념’이기는 했다. 단지 개념을 실현시킬 능력이 없었다는 점, 동시에 이런 개념이 혁신적인지와 별개로 이 개념을 구현한다고 그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해져서 원하는 결과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진짜 문제였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면, 일본이 핵이라도 먼저 만들지 않는 이상은 미국에게 무슨 짓을 어떻게 하더라도 승산이 전무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런 식의 민간인이 죽기 딱 좋은 공격방식은 미국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켰을 것이다. 일본을 위해서도 센토쿠급이 미국 본토르 공격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원문 : 잉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