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가운데 높지 않은 한국 실업률
물가 통계 다음으로 많이 두들겨 맞는 통계가 실업률 관련 통계다. 특히 최근에는 고용 문제가 심각한 경제 현안으로 떠오르다 보니 어느 때보다 실업률 통계에 관심이 많다. 우선 우리나라 실업률 동향이 어떤지 한번 살펴보자. 경제활동인구조사 통계에 나타난 2000년 이후 우리나라 실업률은 2000년 무렵에 잠깐 4%정도에 이른 이후 지속적으로 3%대를 유지했다. 올해 초 잠시 4%정도로 실업률이 높아졌지만 9월에는 다시 3%대 중반으로 낮아졌다. 이런 실업률 통계를 보고 많은 이들이 분통을 터뜨린다. “무슨 소리냐? 지금 실업자가 넘쳐나는데, 취업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 체감실업률과 통계상 실업률이 너무 다르다며 통계가 엉터리라고 욕한다.
세계 주요 국가의 실업률을 한번 살펴보자. 2017년 우리나라 실업률은 3.7%로 나타나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낮은 2.8%, 싱가포르는 1.9%로 더 낮지만, 대만은 3.8%로 우리와 비슷하다. 비교적 양호한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아메리카 대륙은 ‘경제가 호황’이라는 미국이 4.4%, 캐나다가 6.3%로 우리보다 높다. 유럽으로 가면 독일이 3.8%로 우리와 비슷할 뿐, 영국 4.3%, 프랑스 9.4%, 이탈리아 11.2%, 스페인 17.2%로 우리보다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 몇 년 전 국가부도 사태를 겪은 그리스는 무려 21.5%에 이른다.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알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도 실업률이 높기는 마찬가지다. 벨기에가 7.1%, 노르웨이가 4.2%, 네덜란드가 4.8%, 덴마크가 5.7%, 핀란드가 8.6%로 나타나고 있다.
체감실업률 높은 건 열악한 고용조건 등 원인
우리나라는 고용통계상으로는 고용 상황이 아주 양호한 국가 축에 든다. 그런데도 왜 온 나라가 고용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을까? 아마 세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첫째, 국민들이 실업률을 비롯한 고용 상황을 실제로는 통계상 숫자로 나타난 이상으로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다른 선진국들보다 우리나라의 열악한 고용 조건이나 비정규직 문제 등 차별적인 노동시장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사회안전망이 불충분해 실업으로 야기되는 아픔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이들 문제는 서로 다른 문제여서 별도의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함에도 상호 증폭되어 사회적 갈등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둘째와 셋째 문제는 통계와 직접 관련이 없는 문제다. 그러면 국민들은 현실에서 왜 고용통계에서 나타나는 숫자 이상으로 고용 문제를 심각하게 느낄까? 물가 통계의 불신이 소비자 체감과 통계숫자 사이 괴리에서 발생했다면, 고용 통계의 불신은 주로 고용 관련 통계용어에 관한 ‘일반적 인식’과 ‘통계상 정의’가 일치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통계기준’에 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큰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 문제도 ‘양심’이라는 용어의 법률적 정의와 일반적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점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실업자도 취업자도 아닌 취업준비생
실업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보자. 김영식 씨 부부는 치킨 집을 운영하는데, 남편이 배달 일을 하고 아내가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가게를 볼 사람이 없다. 할 수 없이 그 시간에는 대학을 졸업하여 아직 취업을 못한 아들이 두세 시간씩 가게를 봐주곤 한다. 아들 본인은 스스로 실업자라 생각하겠지만 통계상 정의에 따르면 아들은 무급가족종사자에 해당하는 취업자다. 이민영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벌써 2년째 열심히 취업공부를 하고 있다. 공무원이건 민간기업이건 입사시험에 합격만 한다면 아무 곳이나 좋으니까 오늘이라도 당장 취업할 것이다. 이 씨는 현재 자신이 실업자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민영 씨와 같은 취업준비생은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으며, 통계상으로는 실업자도 취업자도 아니다. 박영호 씨는 몇 년 동안 취업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지금은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부모에게 용돈을 타서 매일 PC방에서 컴퓨터 게임으로 소일한다. 박 씨와 같은 취업포기자도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으며, 통계상으로는 실업자가 아니다.
그러면 실업률 등 고용 관련 통계가 어떻게 작성되는지 알아보자. 우리나라 고용 관련 통계는 통계청이 조사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 통계에 의해 작성된다. 이 조사는 전국의 3만5천 가구를 표본으로 하여 매월 고용 상황 등을 조사한다. 만 15세 이상이 조사대상이고(군인, 의무경찰, 교도소 수감자 등은 제외), 15세 이상 가운데 취업자와 실업자를 합하여 경제활동인구라 정의한다. 경제활동이란 수입을 목적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일을 말한다. 다만, 도박이나 매춘 등 법률에 위배되는 활동, 법률에 의한 강제노역과 봉사활동, 증권‧선물 등 투자활동은 경제활동에 포함되지 않는다.
15세 이상 사람들 가운데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 즉 취업자도 아니고 실업자도 아닌 사람은 어떤 이들일까? 전업주부나 학생, 진학 준비를 하는 사람(재수생 등), 일을 할 수 없는 연로자나 심신장애자, 자발적으로 자선사업이나 종교단체에 관여하는 사람 등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발적 의사에 따라 경제활동을 하지 않거나 신체 형편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이들을 경제활동인구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누구나 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집에서 하는 사업 거들기만해도 ‘취업자’
그런데 이들 말고도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통념상 실업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우선 취업준비생들은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는다. 신체상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 조기퇴직이나 명퇴 등으로 쉬고 있는 사람도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취업포기자, 즉 취업할 의사가 없이 그저 쉬고 있다는 사람도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들은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니므로 실업률 계산에서 아예 제외된다.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취업자가 아닌 사람을 실업자라 한다.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여기서 ‘취업자’란 ① 수입을 목적으로 1주일에 1시간 이상 일했거나, ② 1주일에 18시간 이상 가족이 경영하는 농장이나 사업체에서 일한 사람을 말한다.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취업자가 아닌 사람은 실업자로 분류된다. 즉, 일주일에 한두 시간만 일해도, 그리고 집에서 하는 사업을 잠시 거들기만 해도 취업자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취업자나 실업자에 관한 통계상 정의는 일반 사람들 통념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그래서 통계상 실업률과 우리가 체감하는 실업률에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면 통계기준을 사람들 상식에 맞추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일리 있는 주장이나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취업자 기준을 어떻게 정하는가, 취업자와 실업자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무엇인지 분명한 선을 긋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합의된 기준, 즉 글로벌 스탠다드가 있으며, 우리나라 실업통계도 이 기준에 따른다. 이 기준을 우리만 바꾼다면 국제비교성 등을 포함하여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감실업률 반영에 경제부처가 반대
그런데 아무리 세계적 기준이 중요하다 해서 대다수 사람들이 실업자로 생각하는 사람을 통계상으로 취업자로 본다든지, 아니면 실업률 계산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사람들의 통념과 동떨어진 실업률 계산방식으로 실업률 통계를 만들어놓고 국민에게 무조건 믿으라는데 수긍할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의 인식과 통계상의 차이를 메꾸기 위해 나온 통계가 고용보조지표이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U1~U6라는 6가지 실업률 통계를 만들어왔다. U1은 실업자의 정의를 매우 좁게 규정한 것이며, U2, U3, U4로 갈수록 실업자의 정의를 점점 확대해 실업률이 높게 나타난다. 미국의 U3가 우리나라 실업률에 해당하는 통계지표다. 우리나라도 미국을 비롯한 여러 해외 사례를 참고해 실업률 외에 3가지 실업률 지표를 발표하는데, 이것이 바로 고용보조지표이다.
고용보조지표는 통계청이 2014년부터 발표했는데, 이 지표를 공식통계로 발표하는 데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고용보조지표를 통해 우리나라 현실적 고용 상황을 다양한 기준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경제부처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실업의 범위를 넓게 정의할수록 실업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언론 등에서 가장 높은 실업률을 들고 나와 정부를 비판할 게 뻔해, 고용현실이 왜곡된 채 국민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고용보조지표
이런 이유로 고용보조지표 개발은 2000년대 초반부터 작성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했으나, 실제로 국민에게 공표되기까지는 10년 이상 기간이 걸린 것이다. 이 지표가 다양한 기준의 실업률 통계인데도 ‘실업률’이란 단어를 쓰지 못하고 ‘고용보조지표’라는 좀 모호한 이름이 붙은 것도 그런 연유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과 같은 상황이랄까?
우리나라 고용보조지표에는 고용보조지표(1), 고용보조지표(2), 고용보조지표(3)이 있다. 고용보조지표(1)은 기존 실업률 통계에 시간적으로 불완전한 취업자, 즉 취업시간이 짧아 더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을 실업자로 간주한 고용지표다. 고용지표(2)는 기존 실업률 통계에다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취업을 희망했으나 취업이 안 된 사람까지 실업자로 간주하여 만든 고용지표다. 고용지표(3)은 고용지표(1)과 고용지표(2)를 포함해 가장 포괄 범위가 넓은 실업률 통계다.
고용보조지표 보도하면 ‘실업률 괴리’ 줄일 수 있어
참고로 2018년 11월의 우리나라 실업률은 3.2%인데, 고용보조지표(3)은 10.7%로 나타났다. 아마 고용보조지표(3)이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실업률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고용보조지표를 공표하기 전에 정부 경제부처에서 제기했던 반대 논리, 즉 언론이 가장 나쁜 고용보조지표를 가지고 정부를 공격할 것이라는 우려는 실제로는 그다지 일어나지 않았다. 언론과 국민들은 현명한데, 정부가 국민들 의식을 따라가지 못한 사례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실업률 통계가 체감실업률과 괴리된 엉터리 통계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고용보조지표를 잘 살펴보면 통계와 감각 간의 차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언론도 실업률뿐 아니라 고용보조지표를 잘 활용하면 실업 문제의 특성과 동향을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박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