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 카페 가보고 싶다!
요즘 2030세대는 사진 올리기에 특화된 SNS인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예쁜 카페를 선호한다. 제천 카페 ‘파릴리’는 그런 점에서 최적의 장소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가볼 만한 제천 카페 8선’을 검색하면 첫 번째 카페로 등장해 ‘앤티크(antique)한 분위기가 특징인 작은 다방’으로 소개된다. ‘이게 언제적 거야’라는 반응이 절로 나오는, 오래된 커피잔부터 복고풍의 책과 장식품이 파릴리에 가득하다. 카페 주인 권지연(35) 씨의 취향이 100% 반영된 결과다.
적어도 이런 복고풍(레트로) 감성은 30대 후반 정도 되어야 감흥이 있을 거로 생각했거든요. 의외로 20대 여성분들이 인스타그램을 보고 많이 오세요. 한 95% 정도?
나의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우주’ 같은 공간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권지연 씨는 미술을 공부하고 싶어 뒤늦게 편입을 해 전공을 바꿨다. 그는 “일찍 결혼을 하게 되면서 작품 활동의 아쉬움이 있었다”면서 “아이 육아 때문에 친정인 제천으로 오게 되면서 부모님 건물에 작업실을 만들 계획이었다”고 했다.
인테리어에 욕심 내다보니 또 자신이 좋아하는 홍차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열망이 쌓여 권 씨의 취향이 듬뿍 담긴 공간인 카페가 되었다. 실제로 카페 안 작은 소품 하나까지 그의 손길이 깃들어 있다. 인테리어를 하는 데만 무려 8개월이 걸렸다. 유럽여행 때 샀던 찻잔이나 소품, 감명 깊게 읽은 책, 좋아하는 음악 선곡까지 완벽하게 그의 취향이 반영된 공간이다.
이곳은 제 취향이 가득한 ‘우주’라고 할 수 있죠. 파릴리가 어떤 곳이냐고 물으신다면 저만의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라고 할까요? 이곳에서 함께 취향을 공유하고 싶어요. 행여 자신의 취향과 다르다고 해도 이런 취향도 있구나 하고 편하게 지내다 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해요.
“저에게 제천은 전기장판?”
파릴리에 자주 오는, 기억에 남는 단골손님이 있냐는 질문에, “고등학생 친구들이 자주 오는데 음악도 물어보고, 책도 읽다 간다”며 “(손님과) 편하게 대화 나눌 수 있어 이런 공간이 더 의미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권 씨는 학창시절 제천에 거주할 때 서울에 있는 문화의 결핍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문화를 접하고 싶었던 중·고등학생 당시에는 종종 서울에 올라가 결핍을 채웠다. 그는 “파릴리가 문화적인 공간이 부족한 제천에 조금이나마 그런 결핍을 채워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물론 제천 사랑도 잊지 않는다.
제천은 제게 전기장판과 같은 곳이에요. 제가 힘들 때 이곳에서 온기를 얻고,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음, 한마디로 편하다는 거겠죠?
제천에서 나고 자란 그는 대학 진학 이후 오랫동안 제천을 떠났다가 육아 문제로 친정으로 돌아왔다. 서울이 직장인 남편과는 주말 부부로 매주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한다. 자신은 카페 파릴리를 시작한 지 아직 1년도 안 됐고, 생계형 카페도 아닌지라 상권에 관해 이야기하기 조심스럽다고 전제하며 자연스레 스타벅스 이야기로 이어졌다.
제천에도 스타벅스가 생겼다
스타벅스의 연 매출은 1조 원이 넘는다. 올 3분기까지 스타벅스의 누적 매출액은 전년 대비 21.2%로 매년 성장을 거듭한다. 업계 2~4위 업체 연 매출이 2천억 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스타벅스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지난 9월 6일 스타벅스 제천점이 문을 열었다.
바로 그날, 권지연 씨는 개인 SNS에 긴 글을 남겼다. 스타벅스가 지역상권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글이었다. 200여 개 ‘좋아요’가 달렸고 수십 개 개인 메시지를 받았다. 스타벅스는 그저 그런 동네 카페가 하나 생긴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없었다. 그는 “작은 지방 도시인 제천은 문화적 갈증이 크다”면서 “대중성에 기반한 스타벅스는 지역상권에 미치는 거대한 ‘자본 공룡’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실 스타벅스에 가면 서비스나 환경이 편한 건 사실이잖아요. 스타벅스 가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에요. ‘강자만 살아남는 논리’만을 무조건 옹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우리가, 지역주민들이 연대 의식을 가진 현명한 소비자임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권 씨는 무한 경쟁이나 자연도태와 같은 냉철한 자본주의 원리를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낙오자가 당연히 떨어져 가는 사회가 아니라 타인과 관계 맺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다양성을 위한 소비, 주변을 한번 돌아보는 소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천뿐 아니라 모든 사회가 그런 인식을 가진 소비를 통해 함께 살 만한 곳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가 있다고 해서 자연 도태되는 다른 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면 저는 그게 비인간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스타벅스에서 쓰는 돈은 제천을 빠져나가잖아요”
그래서 권 씨는 골리앗 스타벅스에 맞서는 ‘작은 돌’을 들었다. 지역 카페들을 다니기 시작했다.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개별 소비자일 뿐인 권 씨의 목소리가 거대 자본력을 갖춘 업계 1위 스타벅스에 맞서 굉장한 영향력을 미치기는 어렵다. 그게 자신의 카페가 아니라도 누군가에게는 제천에 이런 카페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제천은 소비층도 얇은데 처음에 제 나름대로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의미였어요. 제천의 카페 사장님들과 안면을 트고 지역 상권에 관해 대화할 기회도 생겼습니다.
사실 권 씨가 처음 지역 카페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으쌰으쌰’ 잘 해보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몇 달 뒤, 계절적 요인이 겹쳐 실질적 매출 하락을 토로하는 지역 상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저는 비교할 만한 지난해 매출이 없었는데 다른 카페들을 보니 매출에 타격이 있었다”면서 “지역 상권은 고정된 매출이 작기 때문에 이런 타격이 더 크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제천시민들이 스타벅스에서 먹는 커피값은 다시 제천의 가계 경제로 돌아오지 않는다. 프랜차이즈인 스타벅스의 이윤은 본사로 가기 때문에 지역 상권 밖의 자본이다. 권 씨는 “일주일에 커피 5잔을 먹는 사람이 스타벅스 생겼다고 6잔 먹게 되는 게 아니지 않냐”면서 “당연히 지역 카페 매출에 타격을 주는데 스타벅스가 잘 된다고 해서 제천의 경제가 더 나아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권 씨는 개인 카페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스타벅스가 생긴 뒤에도 ‘그래도 우리 집은 괜찮을 거예요’라고 하는 곳은 그래도 뭔가 특색 있는 곳들이 많았다”면서 “메뉴나 공간, 서비스 등 손님이 찾아올 만한 곳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