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과 지방을 자주 이사 다니며 자랐다. 중학교 시절 살던 동네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인데, 유명 중고등학교와 입시학원이 밀집한 곳이었다. 우리 집 맞은편 아파트는 매우 허름했는데도 10여 년 전인 당시 매매가가 10억 원이나 된다고 했다. 서울 변두리 지역이었지만 학군이 좋고 유명학원이 가까이 있어서라고 들었다. 어린 마음에도 ‘서울에 내 집을 갖는 건 쉽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 후 지방으로 이사하자, 같은 평수에도 집값이 훨씬 쌌다. 집 장만에 들어가는 돈이 줄어드니 우리 가족생활에 조금 여유가 생긴 것도 같았다.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나는 주거를 걱정할 일이 없었고, 자취하던 친구들도 방세를 별로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집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서울 공화국에서 집 없는 청년으로 살기
대학기숙사도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들어가기 어렵고, 방을 얻어야 하는 경우는 돈을 더 쓰면서도 ‘천장에서 물 떨어지고’ ‘엿보는 눈길이 없나 맘 졸이는’ 불안을 겪기도 했다.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을 잡은 친구는 얼마 되지 않는 월급으로 집세를 내고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현실적으로 취업 기회가 몰려 있는 서울을 떠날 수도 없고, 비싼 주거비를 감당하자니 하루하루 생활이 숨 막힌다는 청년들이 많다. 싼 집을 찾느라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 이른바 ‘지옥고’도 불사하는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껍데기 없는 민달팽이 신세’라고 한탄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동안 치솟던 서울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지난해 9·13부동산대책 이후 다소 고삐가 잡히는 분위기다. ‘마용성’이란 신조어로 불리던 서울 부도심 마포·용산·성동구와 고소득층 밀집 지역이라는 강남·서초·송파구의 아파트 가격도 내림세를 보인다. 이들 지역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거래 활성화로 경제성장을 촉진하고자 ‘빚 얻어 집 사라’ 정책을 펼치면서 집값에 날개를 달았다. 문재인 정부 초반에도 잘못된 정책 신호를 주면서 가격 상승세에 부채질을 했다.
‘집값이 잡힐 때까지 계속 대책을 내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 표명 후 서울 주요지역의 부동산 투기가 잠잠해지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전·월세 등 서민이 감당해야 할 임대료도 좀 내려가지 않을까 기대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지옥고 등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을 위해 과연 정부가 최선을 다하는지는 의문이다.
청년들이 바라는 건 대단한 정책이 아니다. 주거공간으로서 최소한의 안전성과 쾌적성을 갖춘 집 혹은 방을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선진국처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혹은 공익재단이 공급하는 장기임대주택이 충분히 늘어나면 가능한 일이다. 우리 정부도 장기공공임대주택 확대, 대학생들을 위한 임대주택 건립 등의 정책을 추진했으나 입지확보난, 지역 주민과의 갈등 등에 막혀 속 시원한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더 강력한 추진력과 적극적 소통으로 정책을 현실화해야 한다.
주거 해결되면 결혼·출산도 늘지 않을까
특히 정부가 청년층, 신혼부부, 저소득층을 위해 추진 중인 ‘행복주택’은 일정 소득 이하 무주택자들에게 시중 임대료의 60~80%로 13평대 주택을 공급하는 것인데, 지하철 등 편의시설에서 멀어 공실률이 높다고 한다. 주택단지를 조성할 때는 교통비 한 푼, 출퇴근 시간 십 분이 아쉬운 이들을 위해 편의시설 접근성도 촘촘히 설계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결혼한 가정에 초점이 맞춰진 주택금융정책도 비혼·1인 가구가 대세인 현실에 맞게 조정되어야 한다.
지난 설 연휴에도 많은 청년이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애는 언제 낳을 거냐’ 등 ‘질문 고문’에 시달렸다. 어렵사리 취업해도 내 한 몸 건사할 방 한 칸 갖기가 이리 어려운데 어떻게 결혼과 출산을 결심하나? 청년 주거난 해소가 저출산 해결의 관건 중 하나라는 것을 모두 유념했으면 한다. 더불어 너무 많은 것이 서울에 쏠려 있는 ‘국토 불균형발전’을 해소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 해결의 열쇠라는 사실도 잊지 않길 바란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이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