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낙태 여행』은 서울로 올라가는 비행기에서 글썽글썽하며 읽었다. 눈물이 헤픈 편인 나는 서로의 고통을 짐작하는 사람들이 연대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서사에 특히 약한데, 여자들의 연대라니.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필시 나를 이상하게 봤겠지만 어쩔 수 없다. 최근에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고, 감동적이었고, 아주 유익했다.
책은 예정에 없이 책방 무사를 방문했다가 샀다. 봄알람 팀이 유럽을 돌며 페미니스트들을 만나고 각국의 낙태권 현황을 알아본다는 대강의 기획은 알고 있었지만 내용을 직접 들여다본 건 처음이었다. 여행기 형식이라 딱딱하지 않았다. 봄알람 팀은 다 나 같은 사람뿐인지 여행에는 구멍이 많았는데 그 점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 무렵 나는 유럽의 페미니즘 현황이 궁금했다. 유럽 필터가 있어 저들은 왠지 다를 것 같은데, 접하는 사례 중에는 영 다른 얘기도 많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통계나 정책, 제도를 통해 우회하기보다는 실제 그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실감과 육성으로.
봄알람이 선정한 5개국은 낙태권과 관련해 진전의 정도가 다른 곳들이었다. 여성이 자기 신체에 대해 갖는 선택권으로서 낙태권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정도는 그 나라의 여성권 상황과 밀접할 테니, 낙태권 자체가 내게 관심 이슈는 아니었지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책은 기대를 초과달성했다.
우선 낙태권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다. 읽기 전에 나는 낙태는 너무 당연한 여성의 선택이라 생각해 오히려 관심이 없었다. 아이를 임신하고 낳는 일은 여성의 신체와 삶에 불가역적인 변화를 초래한다. 여기에 무슨 이견이 있는가. 여성의 선택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고 나머지는 다 부차적인 것이 명백해서, 관련 논쟁을 따라가는 일에 게을렀다.
책을 읽고서 알게 됐다. 내가 이렇게 속 편히 생각할 수 있었던 건 한국이 사실상의 낙태 허용국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낙태는 불법이지만 시술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지만 종교의 영향이 적고(보수 가톨릭이 우세한 국가에서는 의사들이 시술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계획이란 이름으로 국가가 낙태를 권장하고 여아 감별 낙태가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역사가 있기 때문(덕분?)이다.
합법화는 그러므로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은 아니다.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는 여성의 권리로서 현 상황에 분통은 터지지만, 아주아주 시급한 이슈라고는 체감 못 했다.
한편 낙태 금지를 말하는 이들을 진심으로 잘 이해 못 했다. 설마 저들은 진짜로 이미 존재하는 여성의 삶보다 그 여성에 의존해서만 생존할 수 있는 태아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건가? 납득이 너무 안 돼서 이슈에 대한 이해도 진전이 없던 차였다.
책을 읽고 정리한 것은, 낙태 불법화는 생명의 소중함과는 거리가 먼, 국가가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고 국가의 자산화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낙태권 이슈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있다. 낙태가 합법이거나 불법이거나, 여성은 낙태를 한다는 것이다. 하고 싶어서 하는 여성은 없다. 낙태는 모든 여성이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은 경험이다. 그럼에도 아이를 낳아서 기를 수 없는 여성, 낙태해야만 하는 여성은 어떻게든 낙태한다.
낙태가 엄격히 금지됐던 차우셰스쿠 하의 루마니아에서도 여성들은 낙태를 포기하지 않았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 결과 많은 여성들이 안전하지 않은 불법 시술 중 출혈과 감염으로 사망했다.
결국 낙태를 불법화하는 것은 낙태를 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안전을 방기하고 권리로서 보장하지 않을 뿐이다. 국가가 여성의 안전을 담보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여성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 그게 낙태 불법화의 핵심이다. 낙태권은 이에 맞서는 일이기에 상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대대로, 각 나라의 상이한 여성권 현황과, 역사·문화·정치˙종교·혹은 정치와 결탁한 종교가 교차하며 여성권과 얽히는 양상도 관찰할 수 있었다. 예컨대 아일랜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켄 로치 때문에 아일랜드에는 호감이 있었다. 오랜 영국의 지배로 말미암은 저항적 문화, 사회주의적 전통 같은 게 멋져 보였다.
내가 아는 아일랜드인 가운데는 이런 이미지에 부합하는 좋은 사람이 많다. 국민 소득도 높고 심지어 동성혼마저 합법화된 선진국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얼마 전까지 낙태 금지가 헌법에 명시돼 있었다. 낙태는 원래부터 금지였지만 헌법에까지 써넣은 건 카톨릭의 영향이 약해지는 걸 두려워한 보수 세력의 작당이었다.
이런 나라에서 여성은 아이를 임신한 순간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수정헌법 폐지 운동에 도화선이 되었던 사비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위급한 상황이었고 아이가 유산되어 살 가망이 없는 게 분명했음에도 의료진은 아직 태아의 박동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그녀를 위한 의료적 처치를 거부했다.
결국 박동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려 죽은 태아를 제거했고, 때를 놓친 그녀는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저자들의 표현처럼, 아일랜드에서는 “자궁에 수정이 되는 순간부터 여성은 태아의 캐리어가 되며 국가는 태아를 생명으로 대우하고 그 캐리어인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한편 루마니아는 다른 여성권의 상황은 좋지 않지만 낙태만은 합법이다. 여기에는 오랫동안 여성들이 고통받았던 역사가 있다. 1966년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은 인구를 늘리기 위해 낙태를 전면 금지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1989년까지 불법 낙태 수술로 사망한 여성이 공식 집계만 1만 명이 넘었고 모성 사망비는 주변 국가들에 비해 최대 20배 가까이 높아졌다. 고아들이 넘쳐났음은 물론이다.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서야 낙태는 합법화됐다. 여성들이 투쟁으로 얻은 권리는 아니지만, 루마니아 사회는 “과거가 하도 끔찍해서 낙태를 불법화하려는 걸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한다. 경험으로 체득한 입장인 셈이다. 이처럼 낙태가 합법이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보수 카톨릭의 영향으로 성 교육에 부정적이라 피임을 별로 하지 않고 유일한 피임법이 낙태일 정도라 하니 이건 이것대로 문제…
프랑스부터 폴란드까지, 낙태권의 현황은 제각각이었지만 어디에서나 여성들은 낙태를 불법화하려는 시도와 싸우고 있었다. 자꾸만 울었던 이유는 이들의 연대가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낙태를 금지한 수정헌법 8조 폐지 국민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투표 날 줄지어 입국하는 아일랜드 여성들. 검은 월요일, 시위대 속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미온적인 입장을 취하던 직장 동료와의 마주침. 20만 명의 여성이 거리를 점령하고 눌러왔던 분노를 표출하고 혼자가 아님을 실감하는 연대의 순간. 그리고 주고받은 이메일 끝에 붙이는 다정한 서명.
페미니스트로서 가장 따스한 인사를 보낸다, 너의 폴란드 자매 우르술라로부터.
그리고 수정헌법이 폐지되었다는, 아일랜드로부터 온 승리의 소식. 투쟁과 승리의 이야기였고, 연대에 관한 이야기여서 읽는 동안 담담함을 자주 잃었다. 고통을 아는 이들은 어떻게든 연대한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 같고, 싸워도 소용없을 것 같을 때 꺼내 읽으면 좋겠다. 감동적이었던 구절을 그대로 옮겨온다.
그리고 루테는 ‘투표하러 고향으로(Home to Vote)’라는 사이트를 소개해줬는데, 재외국민들에게 아일랜드로 돌아와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권을 얻어내는 이번 싸움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는 곳이었다. 우리가 모든 인터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고도 계절이 바뀐 뒤, 5월 국민총투표를 앞두고 실제로 줄지어 입국하는 아일랜드 여성들의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리고 5월 25일 이루어진 국민투표를 통해 66.4퍼센트의 찬성으로(투표율은 64.1퍼센트) 수정헌법 제 8조는 폐지되었다.
“그건 정말 임파워링의 순간이었어요. 언제나 여성은 상냥하게 부끄러워하며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말 것, 먼저 말하지 말 것, 끼어들지 말 것을 요구받지요. 특히 남자가 말할 때요. 그런데 내 인생 처음으로 이날 바르샤바는 여성들의 것이었어요. (…) 우리는 두렵지 않다. 혼자가 아니다. 그날 우리는 그저 그 공간을 주장했어요. 바르샤바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모습. 내게는 그게 강력했습니다.”
우리가 폴란드를 떠난 이후에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 소식을 듣고 안부를 묻자 “낙태권 논의를 이어갈 수 있고 폴란드에서 가톨릭교회의 영향력이 변해가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계속 최선을 다해 싸울 거란 답장이 왔다. 단단한 결의의 메시지 아래에는 “페미니스트로서 가장 따스한 인사를 보낸다, 너의 폴란드 자매 우르술라로부터”라는 서명이 있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바로 여성의 삶은 여성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문: 심야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