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누는 독일계 항공사 승무원으로 프랑크푸르트에 산다. 남편과 시누는 친하지 않지만 나와 시누는 친해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자주 나누는데, 지난 유럽여행 때 독일의 연애와 결혼 문화에 관한 얘길 했다.
독일에는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te civil de solidarité, PACS) 즉 팍스와 유사한 생활동반자법이 있다. 팍스와 마찬가지로 동성 간 결합을 법적으로 지지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성애자들 역시 널리 이용한다. 파트너로서 실질적인 보호를 받으면서, 맺고 풀기는 훨씬 간편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젊은이들은 결혼보다 생활동반자 제도를 선호한다고 한다.
시누의 얘기 중 흥미로웠던 건 그래서인지 이들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훨씬 쉽게 생각하며, 특히 남자들이 책임지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부분이었다. 시누 주변의 어떤 한국인 승무원은 독일 남자와 연애하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결혼해주지 않아 지금은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유럽 선진국의 여성권 상황이나 결혼 문화는 더 진보적이리란 기대가 있어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 여성의 경우 외국인으로서 불안한 지위로 인해, 혹은 한국적 결혼 문화의 영향으로 결혼을 더 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확실히 이런 제도하에서 출산과 육아가 걸린 여성은 약자가 되기 쉬울 것이다.
새로운 제도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승인하고 보호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관계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측면도 있어 보였다. 혹은 이미 높아진 유동성을 제도가 추인하는 것이거나. 그래서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을 읽었다. 실제로 팍스를 맺고 살아가는 여성이 제도에 대해 1인칭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우선 가장 큰 깨달음은, 팍스가 ‘결혼보다 더 가벼운 결합의 제도’라는 건 부차적이라는 사실이다. 저자가 경험한, 그리고 프랑스에서 현재 실행되고 있는 팍스는 아주 이상적인 제도처럼 보인다. 프랑스인들은 결혼보다 팍스를 훨씬 선호해서 나눌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크거나 상대가 외국인이라 비자가 필요하거나 등등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대부분 팍스를 택한다.
간단한 신청 절차 때문에 두 사람의 합의만 있으면 되고 푸는 것 역시 간단하다. 아이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연인과 연애를 하거나 다시 팍스를 맺을 때 서로의 자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말은 곧 여성이 남자 없이도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고 사회가 협조한다는 의미다. 그러니 프랑스인들은 정상 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관계를 묶었다 풀 수 있다.
그런데 이토록 팍스가 이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건 단순히 팍스라는 제도 자체의 힘은 아니다. 제도는 큰 모멘텀이지만, 68혁명의 역사를 가진 나라로서 프랑스 사회의 개방성과 맞물려 빚어낸 효과라 봐야 할 것 같다. 68혁명 전까지 프랑스는 가톨릭의 영향 하에 비슷한 수준의 유럽 국가 중에서도 가부장제 전통이 강한 나라였다.
여성 참정권도 미국(1920), 영국(1928)은 물론 심지어 한국(1945)보다 늦은 1946년에야 획득했을 정도인데, 이 유구한 전통을 흔든 게 68혁명이었다. 68을 거치며, 그리고 68의 주역들이 기성세대가 되며 가톨릭과 가부장제, 혹은 이 둘의 결합이 약화하고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문화와 가족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 68 세대를 부모로 보고 자란 세대로, 팍스를 통해 더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정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저자의 말처럼 프랑스는 “오랜 시간 행해진 관습이라 해도 그것이 모두가 고집을 부려서 지켜야 할 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시간과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유럽인들의 나라”인 것이다. 한국에 당장 동반자법이 도입된다 한들 프랑스처럼 될 수 없는 이유겠다.
마찬가지로 독일의 상황도 프랑스와는 또 다르리란 예측이 가능하다. 요컨대 한 사회에서 어떤 제도만 똑 떼어내어 그것이 관계의 유동성을 증가시킨다거나 여성을 약자로 만든다고 일반화하기 어렵겠다는 얘기다. 한 나라에서 잘 작동하는 제도도 다른 나라에서 문제가 될 수 있고, 역도 성립한다. 일반화의 욕망을 내려놓고 프랑스 사회와 팍스에 대해 들여다보니 이런 것들이 보였다.
우선 팍스라는 제도를 이용해 청년들이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결합하고 헤어질 수 있는 것은 부모의 적은 간섭과 크게 관련 있어 보인다. 이건 복지가 탄탄한 유럽의 다른 사회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국가의 청년들은 사회의 지원으로 한국의 청년들보다 훨씬 쉽게 독립한다. 그러니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어떤 상대와 하든 부모의 간섭 없이 스스로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대학 교육과 취직 준비 기간까지 한 개인이 경제적으로 독립하기까지 성인이 되고도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고,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 독립해도 결혼자금을 스스로 마련하기는 역부족이다. 이렇게 투자금이 크니 부모로서는 결혼은 물론 자식 인생 전체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권리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상황에서 팍스가 있어 보소. 제도가 있고 개인이 팍스를 맺고 싶어도 부모 입김에 일이 되것소 안 되것소.
프랑스는 국가가 나서 올바른 삶의 형태를 제시하고 제도로서 시민들에게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시민의 다양할 수밖에 없는 삶을 가능한 한 반영하고 보장한다는 저자의 믿음 또한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니 싱글세를 도입해 출산율을 높여보자는 발상을 하는 나라에서는 나올 수 없는 국가관 아닌가.
때때로 국가가 그렇게 기능하지 않는다 해도 시민이 국가에 이런 믿음이 있다면, 국가의 일은 이런 것이라 생각하는 시민이 많다면 그 나라는 훨씬 시정이 쉬울 것이다. 실제 국민의 삶을 반영한다는 이 방향성 덕분에 프랑스는 유럽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혼외 관계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문제에서 열려 있다. 그게 프랑스의 출산율이 복지 제도가 훨씬 우수한 북유럽보다도 높은 이유일 것이다.
결정적으로 팍스가 결혼보다 약한 결합이리라는 나의 추측은 사실과 먼 것으로 판명 났다. 실제로 팍스를 맺은 이들이 헤어지는 비율은 결혼한 이들보다 적다고 한다. 물론 앞서 설명했듯 현재 프랑스에서 결혼하려는 이들은 재산 보호나 비자 취득 등 특수한 목적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목적이 달성되지 않거나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이혼을 택하기 쉬운 상횡이라 볼 수 있겠지만, 어쨌든 팍스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맺지 않는다는 의미다.
팍스는 내가 생각한 결혼의 좋은 점과 결코 멀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살기의 본질과 더욱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동거가 여전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한국에서 동거는 보통 결혼을 전제로 했을 때 승인받는다. 그러니까 결혼을 하든 동거를 하든 이들은 평생 함께 살기로 먼저 서약부터 하고 함께 살아보는 셈이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함께 살며 부딪치는 일은 정말 끝도 없다. 그런데 이미 무르기 어려운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함께 살며 발생하는 문제는 아주 골치 아프고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다. 무르기엔 너무 늦었는데 이렇게 문제가 많다니 이번 생은 글렀어. 자포자기 상태로 작은 단점에도 필요 이상으로 좌절하게 된다.
결혼 초, 나는 함께 하는 일상에 행복해하면서도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을 너무 많이 걱정하고 갑갑해 했으며 좋은 점은 자주 잊었다. 그래서 저자가 줄리앙과 함께 살며 느낀 안정감을 고백하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이 안정감으로부터 함께 살기의 불편함을 조정해나간다. 함께 살기 때문에 가능한 무엇을 위해 각자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하며 맞춰보는 것이다. 좋은 점으로부터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면 갈등은 별 게 아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면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차이에 관대한 프랑스 문화 역시 갈등을 좀 더 쉽게 해결하게 해줬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삶이 주는 안정감과 행복에 근거해 결합을 선택할 수 있다면 함께 사는 일은 훨씬 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주변의 성화 없이, 결혼해야 정상이라는 압박 없이, 함께 살아보는 것, 관계를 지속하는 것, 더 깊이 들어가는 것, 제도적으로 결합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모두 내 선택이라면. 우리는 좀 더 주체적으로 관계에 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줄리앙은 다음처럼 말한다.
결혼 제도가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들지는 않아. 서로에 대한 애정, 노력이 필요하지. (…) 오히려 팍스 커플처럼 결혼하지 않은 연인들이 상대방을 영원한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연인 관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아.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서로에게 더 충실할 수 있는 이유인 거지.
함께 하고자 하는 한 누구나 노력해야 한다는,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는 결론이다. 영원한 내 사람은 결혼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덧
- 책에 나오는 팍스와 가족 사례들은 여성권 측면에서 굉장히 이상적인데, 약간의 보정이 필요해 보인다. 저자가 속한 그룹(도시에서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종교적이지 않고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며 개방적인 성향의 젊은 사람들) 자체가 가사 분담 등의 측면에서 상위 집단이겠다. 글 쓸 때 나도 늘 조심하는 부분인데, 내 주변 사례가 너무 좋아서 문제.
- 책의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여 마음에 들었다. 편집자가 아주 깔끔한 사람인 듯.
원문: 심야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