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면 1위가 공무원이고 2위가 임대업자, 즉 건물주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가 보다. 진행자가 이건 문제라고 말한다. 알아보니 조사마다 결과가 좀 다른 것 같지만 확실히 꿈이 의사나 교사같이 안정성을 추구하는 일이 많은 것은 한국 사람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은 정말 문제일까? 우리는 뭘 기대한 것일까? 내가 어릴 때는 장래에 과학자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뭐 그런 걸 기대하는 것일까? 그런 게 진취적인 꿈이니까?
현실은 항상 걱정거리가 있고 문제가 있다. ‘이런 현실은 문제다’ ‘우리 사회가 문제다’ 말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 진짜 중요한 것은 거기서부터다. 그런데 그 문제가 뭐냐는 것이다. 이 주제를 생각하다 보면 현실에는 문제가 없으며 문제는 오히려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조사의 결과 이상으로 그 결과를 해석하는 우리의 태도에 있다는 뜻이다.
사실 한국에 대통령은 한 명이면 되고, 과학자도 0.1%도 많다. 세상에 직업은 너무나 많아서 장래희망을 말하게 하고 그 결과를 크기순으로 나열하는 것은 정말 의미가 없다. 우리는 이런 통계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일이 생기는 순간은 우리가 거기에 어떤 가정을 집어넣을 때 뿐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는 경쟁을 맹신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경찰을 배출하는 방법은 경찰 후보생을 되도록 많이 구하고 그들이 경쟁하게 해서 살아남은 사람만 경찰을 시키면 좋은 경찰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정말 경쟁은 좋은 결과를 만들까? 경쟁은 높으면 높을 수록 좋은가? 경쟁이 지나치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시험에만 특화되어 오히려 현실 능력은 떨어지는 사람들이 경찰이 되지 않을까?
둘째로 경쟁률이 높다는 것은 엄청난 수의 사람이 실패한다는 뜻인데, 그 실패자에 대해 우리 사회는 대책이 있는가? 대책이 있다면 그것은 비용이 든다는 뜻이니 크게 봐서는 과연 이 방법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 대책이 없다면 우리는 시민들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실패하는 사람들도 한국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는 누굴 위해서 좋은 경찰을 배출하려는 것일까?
이런 점을 기억하면서 생각해보자. 한국의 과학발전이 중요하니까 한 10%쯤 혹은 30%쯤 되는 아이들이 과학자를 지망하고 삼성 같은 대기업에 취직하려고 하면 좋은 것일까? 실제로는 최종적으로는 그중 아주 소수밖에는 그렇게 되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왜 비율로 따져서 장래희망의 최고 순위에 뭐가 있는가를 걱정하는가. 왜 우리는 이런 대참사가 벌어질 대중의 착각을 바람직한 상태로 여기거나 현실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가?
나는 이미 한 가지 설명을 주었다. 또 하나 존재할 수 있는 설명은 사람들은 그 설문 조사의 대상이 아이들이거나 청소년이라고 해서 그들을 현실감각이 없는 바보들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실현 가능한 꿈만 꾸는 것이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모두 매우 이성적이라고 생각할 때 설문 조사의 결과를 다르게 해석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발달한 미디어 때문에 사회적 현실에 대해서 30년 전과는 비할 수 없이 많은 것을 안다. 그들이 천재는 아닐지 몰라도,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이미 어른만큼 알고 어른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뭘 기대하는 것인가?
우리의 오류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국에는 사회의 문제를 항상 사회적 약자에게서 혹은 시민 일반에게서 찾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교통사고가 많으면 한국의 시민의식에서 문제를 찾고, 한국에서 책이 팔리지 않으면 한국 시민의 의지나 문화적 수준에서 문제를 찾는다.
독재 시절에 좋은 일이 생기면 설명이 그 반대였다. 나라가 수출이 잘되어 돈을 벌면 박정희나 이건희 같은 사람 덕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그러니까 좋은 일은 독재자나 재벌 탓이고, 나쁜 일은 국민 탓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우리는 참 많이 들어왔다. 누구보다 언론이 그걸 자주 말한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장래희망이 공무원인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이며 그것이 문제라고 하자. 여기서도 사람들은 종종 요즘 청소년들은 문제가 많다는 식으로 말한다. 사실 개인의 관점에서 꿈이 공무원이고 임대업자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은 한국 학생들이 상당히 똑똑하다는 증거로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회의 직업적 안정성이 그만큼 엉망이라는 뜻이다. 불이 자주 나는 곳에서는 소화기를 준비해야 한다. 직업적 안정성이 떨어지는 곳에 산다면 그에 대한 대책부터 챙기는 것은 현명한 것이다.
사회는 대개 대체 가능하지 않은 전문가들을 높게 평가한다. 그런데 전문가는 직업적 안정성이 더욱 약하다. 생명체로 말하면 멸종당하기 쉬운 취약한 종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문가는 전문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전문분야밖에 잘 모른다. 그나마 그 분야에서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하다가 그마저도 안 되면 참 곤란해진다.
피겨스케이트를 해서 김연아만큼 성공하면 걱정할 것이 작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평생 피겨스케이트만 탄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많을까? 심지어 김연아 같은 사람도 피겨 스케이트에 모든 것을 투자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유명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나 프로 복서 중에는 사기당하고 비참하게 사는 사람도 많다.
결국 사회가 전문가를 원한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들에게 그만큼의 안정성을 지불하고서야 그런 전문가가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기술의 발전을 위해 단 한 명의 천재를 키우는 게 아니다. 현실은 수만 마리의 병아리 중 존재하는 한 마리의 봉황을 선발하여 그 봉황이 황금알을 낳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수만 마리의 닭이 달걀을 낳다 보면 복권에 당첨되듯이 어떤 닭이 황금알을 낳는 것이다. 그런다고 해서 황금알을 낳지 않은 수만 마리의 닭을 무의미한 존재로 여기면 기술은 발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한국은 경쟁 만능주의에 물들어서 이런 면을 무시하는 편이다. 집이 부자라서 여러 번 실패해도 상관없는 경우가 아니면 사실 무모한 꿈을 꾸는 것은 말 그대로 무모하다. 현실이 이런데 왜 청년들이 무모한 꿈을 꾸지 않냐고, 그들은 왜 진취적이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문제는 현실에 있을까, 아니면 그걸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일까?
여기까지 쓰고 보니 현실을 아주 우울하게 표현한다고 오해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실은 분명히 그런 면이 있지만 그보다 요즘 현실은 그런 조잡한 조사로는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이 글의 결론으로 말하려고 한다. 그런 결론으로 이끄는 한 가지 측면은 이미 말한 바가 있다. 요즘 사람들과 30년 전의 사람들은 가진 정보가 다르다. 따라서 그들의 대답도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선입견에 빠져서 30년 전, 60년 전 아이들의 대답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우리가 세상이 변한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많은 사람이 공무원을 꿈꾸는 것을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정보화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는 이제 한 사람이 오래 같은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한 사람이 하나 이상의 직업을 가지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사람들의 생계가 걱정되므로 기본생계를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니까 거듭 말하지만 집에 재산이라도 쌓아두지 않은 경우에는 일단 기본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일, 정말 위험하지만 재미가 있는 일에 도전해 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사람들은 하나의 직업과 하나 이상의 취미를 가지려고 하는 것일 수 있고 그 취미야말로 자기 삶의 중심일지도 모른다.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니까 진정 재미있고 보람찬 일을 거기서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도 자기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일단 생활 안정을 위한 직업을 장래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없으면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안 되니까 말이다. 우리는 점점 ‘당신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같은 질문이 애매모호해지는 시대를 산다. 그러니 장래희망을 하나씩 말하게 하고 그걸 나라 전체에서 평균을 내는 조사의 의미는 날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