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이런 상상을 해보자. 토요일 저녁에 절친한 친구와 저녁을 먹는데, 친구가 로또 방송을 보던 중 갑자기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놀란 토끼 눈으로 TV와 종이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나 로또 당첨된 거 같아!’라고 외치는 것이 아닌가. 잘 아시다시피 로또는 45개 숫자 중에 6개의 당첨 번호를 뽑아서 당첨금을 주는 복권이다. 친구는 현재까지 발표된 숫자 5개를 다 맞추고 한 개의 숫자 발표만을 기다리는 로또 용지를 들고 있다.
방송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의 결과만으로도 이미 당첨금이 130만 원. 그런데 숫자 하나를 더 맞추면 무려 그 1만 배인 130억 원을 받을 수 있다. 남은 숫자는 40개. 마지막 숫자가 발표되기 직전, 친구가 심호흡을 가라앉힌 다음 용지를 보여주며 ‘너 혹시 이 로또 나한테 살래? 가격만 맞으면 팔 생각도 있어. 너의 운에 따라 100억 대 자산가가 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라고 물어본다면?
시간이 얼마 없다. 마지막 숫자가 나오기 전에 이 복권을 살지 안 살지 생각해봐야 하고, 가격은 어느 정도가 좋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독자들 모두 자신의 사정에 맞춰 한번 상상해보자. 가격만 맞으면 친구는 그 돈을 몇 년에 걸쳐 천천히 수금할 수도 있고, 편의상 같은 번호를 맞추는 공동 당첨자가 없고 세금도 없다고 해보자.
친구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없다. 다만 가격이 흥정 되면 그게 얼마든 이 돈은 반드시 갚아야만 한다. 마지막 숫자까지 당첨된다면 여러분은 현금 130억 원을 가지고 꿈꿔온 삶을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다. 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간은 단 30초다. 예시를 만들어보자. 친구가 1,000만 원을 부른다면 살 것인가? 대부분 사람은 이 상황에서 그 선택이 부담스러워 ‘됐다 그냥 너 잘되면 나도 좋지 뭐’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다.
잠시만 가격에 대해 더 생각해보자. 친구가 5,000만 원을 부른다면 살 것인가? 5,000만 원은 당장 결정하기엔 너무 큰 금액이다. 실상 또 많은 사람은 ‘그 정도 현금은 없어’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다. 현금이 있어도, 친구가 빌려준대도, 아니면 전세금을 다 합치면 융통할 수 있는 금액이어도 어쨌든 부담스럽다. 친구가 1.5억 원을 부른다면? 혹은 2억 원을 부른다면? 혹은 3억 원을 부른다면?
재밌는 것은 가격이 높아진 것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들게 된다. ‘잠깐,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던 것인가?’하고 기존에 나왔던 가격들과 비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쯤 돼서 1,000만 원에 살 테냐고 물어보면 사는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사람들도 꽤 생길 것이다. 1,000만 원은 큰돈이지만 3억 원 옆에 있으면 사소해 보인다.
마음을 정하셨는가? 그 결과를 잠시 적어놓거나 기억해두시면 좋겠다. 셈이 빠른 사람이라면 앞으로 40개 남은 숫자 중에 하나만 걸리면 된다 하니 이 로또 용지의 가격은 130억 원 곱하기 1/40의 확률이라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기대값으로 본다면 이 로또 종이 쪼가리는 무려 3.25억 원은 받아야 마땅한 용지다.
오늘 밤 흥분해서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당첨 시에 당장 130억 원을 출금해서 일반인이 평생 꿈만 꿀 수 있는 온갖 모험을 시작해볼 수 있다. 아마 인터넷에서 전 국민에게 경매가 가능하다면 3.25억 원 이상의 가격도 나올지 모른다. 누군가는 그만큼 간절히 원할 기회라는 것이다. 인생에 130억 원의 대박을 잡을 1/40의 가능성을 얻는 경우도 흔치 않지 않은가. 어쩌면 부자들이라면 오히려 고민도 안 하고 쉽게 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야야 너무 부담스럽다’ ‘너 잘되는 게 더 좋다’ ‘사고 싶은데 돈이 없다’ ‘나는 현금이 더 좋아’ ‘그 돈 날리면 나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라고들 흔히 이야기한다. 아마 여러분 중에 상당수는 1,000~2,000만 원 정도 가격을 부르다가 그냥 웃으며 포기했을 것이다. 물론 그 돈 날려서 생존이 불가능하다면 더 이상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로또의 실제 기대가치의 1/10 수준인 3,000만 원도 못 불렀다면 그 이유를 한번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단 한 번의 거래로 불과 몇 초 사이에 몇백만 원에서 몇천만 원을 잃을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 그 정도 비용의 의미를 곱씹어본 적이 없다. 그런 금액을 써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다. 그리고 백억이 생기는 삶에 대해서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런 상상을 해볼 ‘기회’조차 가진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까. 비용과 그 결과를 내 마음속에 저울질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제안에 얼어버린다. 얼어버리면 결국 선택을 미루게 된다.
아마 대다수 일반인은 위의 문제를 지금 당장 계산하고 곱씹어보기 시작해도 최소한 몇 주의 시간이 지나야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자들과 성공한 사람들은 일반인과 이런 점에서 다르다. 부자들이 자녀에게 주는 것은 그 가치가 100% 확실한 현금다발이 아니라 위의 복권처럼 ‘아주 잘 포장된 기회’다. 현금다발을 주고받는 것에도 물론 거대한 기회가 포함되어 있지만, 세상의 부의 대부분은 현금이 아니라 ‘옵션 프리미엄’, 즉 기회 가치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는 부자만이 아니라 모든 부모가 자녀에게 주고 싶어 하는 무·유형 자산의 본질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질의 기회 말이다. 그러니 현금을 고스란히 물려주지 않고 그 돈으로 교육비 등에 투자를 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일반인보다도 특히 부자들이 이런 ‘기회’들을 두루 검토하고 자녀에게 물려주는 이유는, 본인들이 성공한 배경에도 결국 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보는 안목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 거래되는 대다수 부는 ‘기회’의 모습을 띤다. 우리가 주식을 살 때는 진정한 의미의 주식만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 주식의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그 기회 자체에 투자하는 것 아닐까 한다. 마찬가지로 학비나 학원비에 비용을 쓸 때도 그 교육 자체를 원하기보단 그 교육으로 인해 생기는 기회들을 내 시간과 돈으로 사는 것이다.
모든 경제적 자산은 가능성과 기회라는 문법으로 거래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회비용과 기회의 정확한 구조와 생태계를 치밀하게 공부하는 데는 무척 인색하다. 부자들은 자본주의야말로 그 안에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만 익힌다면 가장 공정한 사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 기회를 볼 줄 모르는 이들에게는 이 사회는 기회의 문을 닫은 사회다.
좋은 기회는 ‘너무 부담스럽고, 남 잘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양보해도 되고, 돈이 없거나, 현재가 좋아서’ 웃으며 마다하고 만다. 적당히 잘 차려진 기회만 운 좋게 나에게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위의 저 로또를 제 가치보다 100배 저렴한 325만 원에 살 수 있는 그런 터무니 없는 기회 같은 것만 앉아서 기다리게 된다고 할까. 그리고 결국 ‘나에겐 기회가 없었노라’며 배시시 웃고 마는 것이다.
원문: Julius Chun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