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명의 투자자, 수천 명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은 차고 넘칩니다. 인터넷에서 백 개만 찾아서 읽으시면 감이 상당히 잡히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차고 넘칩니다. 제 기준으로 한번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유혹의 단계
사람은 어느 순간 투자에 유혹을 느낍니다. 저는 이 순간이 특정한 ‘시계’가 열리기 시작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어제까지는 버는 돈 혹은 받는 돈으로 내일을 위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고, 대단히 구체적인 걱정을 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미래가 조금씩 명료히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대론 안 되겠다, 이렇게 계속 벌어 10년 후면 5천만 원 모아도 많이 모은 것이다, 큰일 났다. 뭔가 가진 돈을 질러서 큰돈을 버는 방법이 필요하다’라는 절박감이 생깁니다.
절박감은 사람 나름입니다. 가난해서 더 큰 돈을 갈망할 수도 있고, 넉넉한 월급을 받고 있지만 그래봤자 10년 후에 2억, 그것으론 집도 못 사고 장가도 가기 힘들다는 약간 중산층 단계의 현실 인식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돈을 꽤 벌고 있지만 이렇게 버는 것도 한 순간이다, 앞으로 10년 후엔 돈 벌 길이 막막하다, 그런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지르는 경우를 많이 봤을 것입니다. 절박함에,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돌파하기 위해, 복권을 사는 심정으로 재테크나 주식판을 어슬렁거립니다. 열심히 정보를 주워들으면 어쩌면 나에게 10배짜리 종목, 100배짜리 종목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인터넷 카페를 검색해보면 큰 돈을 벌어 팔자를 바꿨다는 사람 천지입니다. 왜 이제야 이걸 알았지, 진작에 술 좀 작작 먹고 주식 공부 좀 할 걸, 하는 안달감이 생깁니다. 밤에 잠이 안 옵니다.
카페를 들어가면 온갖 그럴싸한 정보들이 있습니다. 뭔가 복잡해 보이지만, 내가 지금까지 이런 돈 되는 공부를 안 하고 살았다는 안타까움과, 이걸 조금만 공부하면 저게 다 돈이다는 생각 때문에 심장이 벌렁거려서 잠이 안 옵니다. 재벌이 되는 것이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소리가 들립니다. 인생 헛살았다. 내일부터는 진짜 삶이다 하는 생각에 꿈에서도 주식이 나옵니다. 모든 주식이 눈앞의 황금처럼 보입니다. 모든 펀드, 모든 상품이 신세계입니다. 팔자가 바뀌기 하루 전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돈 때문에 사는 인생, 이제 나도 폼 나게 살아보련다!
넉넉한 월급을 받는 경우에도 이런 분이 많습니다. 어차피 1억 원 이하의 연봉으론 넉넉하지 않습니다. 6천만 원 연봉을 한 달에 백만 원씩 쓰면서 십 년 모으면, 어림잡아 4억입니다. 전셋값에 차 사고 결혼해서 애 한 명 낳기 아슬아슬합니다. 개 같은 상사 밑에서 개 같이 일하다가 개 같은 상사랑 똑같은 꼰대가 되는 대가가 이뿐이라니. 국내 최고 대학을 나와 최고 대기업에 들어간 대가로는 너무 막막합니다. 생각할수록 회사는 다니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다른 무언가를 하자니 회사 밖은 너무나 참혹합니다. 어디서도 6천을 받을 가망은 없어 보입니다.
세상은 어둡습니다. 20년 일하다가 중간에 잘리면, 운 좋아도 20평대 집 한 채 살 돈을 가지고 앞으로 40년 50년을 살아야 합니다. 개 같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을 쓰던 가진 돈을 끌어모으건 투자를 해야 합니다. 투자를 해서 매년 팍팍 불려 나가면 10년 후에 폼나게 퇴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사 일이야 맨날 어떻게든 버티는 것이고, 더 열심히 하나 덜 열심히 하나 월급은 똑같은 것이고, 상사한테 찍혀봤자 10년은 버틸 수 있을 것이고, 내 손으로 내 팔자를 고칠 길은 투자밖에 없습니다. 투자가 유일한 희망입니다, 간절합니다.
투자로 매년 돈을 보수적으로 50%씩만 불리면 30대가 가기 전에 퇴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대학 나왔고 머리 좋겠다, 남들도 하는 거 왜 나는 못 하겠나 생각이 듭니다. 카페에 들어가서 주식 정보를 좀 읽으니 눈에 확 띕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들이 곳곳에 널렸었다니, 안 오를 수가 없는 주식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남들은 머리가 나빠서 실수하지만, 나는 척 보면 뛰어난 직관과 훌륭한 분석으로 무엇이 오를지를 골라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패한 사람들은 탐욕 때문에 실패했다고들 하지만, 나는 다릅니다. 탐욕 없기로 소문났고, 나 정도 판단력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하면 다 돈이 될 것 같습니다. 선배들도 다 하던데, 맨날 주식으로 돈 벌었다고 자랑하던데, 침착하게 꾸준히 쌓아 모으면 금방 부자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혹은 펀드일 수도 있습니다. 주위에 선배들이 요새 자기 펀드 오른다고 넌 왜 안 사냐 정신 차리라고 맨날 그러던데, 진작 들을 걸 그랬습니다. 흥, 그런 거로 돈 벌리겠어? 생각했는데 3달 전에 시키는 대로 샀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두 달 치 월급이 더 생겼을 것입니다. 그 말 들었으면 이 개고생 안 하고 연말에 해외여행도 갔을 것이고, 그렇게 매년 벌면 외제차도 금방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작 들을걸! 진작 들을걸! 젠장 젠장 젠장! 줘도 못 먹냐! 내 눈앞에서 달아난 기회여!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제라도 정신 차린 게 다행입니다. 나처럼 어리석은 청춘들은 지금도 이 기회를 못 보고 있을 것 아닙니까. 지금 이 펀드는 반드시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경제 뉴스가 좋고, 장기적으로 이쪽 경제는 좋을 수밖에 없고, 선배들은 이미 돈을 많이 벌었고, 주위에서도 많이들 들고 있고, 증권사에서도 강력 추천하고 있습니다. 깊이 생각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빨리 사는 게 장땡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더 늦기 전에 빨리! 사놓고 나서는 책을 읽어봅니다. 투자 관련 서적을 보니 별 얘기도 없습니다. 뻔하디뻔한 책 팔려고 쓴소리들. 그냥 하루라도 빨리 질러서 먹으면 장땡인 것을 무슨 구음진경처럼 복잡하고 오묘하게 쓰여 있습니다.
돈이 꽤 많이 벌리는 사람 중에도 이런 사례가 많습니다. 특히 연예인과 자영업자 얘기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이들은 최근 열심히 일했더니 돈이 콸콸 벌리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벌립니다. 다행입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했는가. 그런데 덜컥 겁이 납니다. 주위에 선배들을 보니, 한때 그토록 잘나갔었는데 너무나 처참히 무너졌습니다. 지금은 잘되고 있지만, 그리고 지금까지 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지만, 갑자기 멀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짓을 10년간 할 수 있을까? 아니, 2년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럼 지금 번 돈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 책임감 있게 이 돈을 불려보는 거야. 돈을 날리면, 더 열심히 일해서 조금은 메꿀 수 있을 거야. 돈이 더 불어난다면 얼마나 좋아. 더 안정적인 미래가 기다려져. 당장 사업을 하는 것은 무리니까 나에게 들어온 돈을 투자 해야겠다. 잘 나가는 재테크 상품 성실하게 공부해서 잘 풀린 선배들처럼 건전하게 내 미래를 개척하는 거야. 이때부터 주위에 투자 좀 한다는 동료들이랑 눈만 마주치면 ‘좋은 종목 없어? 좋은 상품 없어?’라고 물어봅니다.
묻다 보면 어떤 동료들은 생각보다 아주 시원하게 추천을 해줍니다. 들어보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똑똑한 친구였나 놀라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 친구는 계속 돈을 불리고 있었을 테니 나는 약간 무임승차한다는 안전감도 생깁니다. 고수를 따라 하다 보면 뭐라도 배울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실패해도 친구가 알아서 뭔가 보상해주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까짓거 쉽게 벌린 돈인데 과감하게 베팅해봅니다. 이거 잘 되면 내가 소고기 살게!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너만 믿는다!
유혹의 단계의 특징은 첫째, 미래에 대한 고민이 들 때. 주위에서 돈 번 경우들이 보일 때. 정보들을 조합하면 쉽게 돈이 벌린다는 것을 느낄 때. 눈앞에 금맥이 있을지 모른다는 흥분감이 생길 때. 더 잘 살고 싶을 때. 모두 인간으로서 아주 자연스럽고 건전한 생각들입니다. 인간이기에 당연한 갈망과 욕망입니다.
흥분감의 단계
어떻게 시작했던, 투자를 하면 처음 서너 번은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합니다. 적은 돈으로 투자를 해봅니다. 맛만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들어갑니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지. 지금까지 살면서 주워들은 모든 투자 격언들을 기억하며 평정심과 균형감을 잃지 말아야지 생각합니다.
그런데 투자 처음 서너 번 중에 한 번, 돈이 꽤 벌립니다. 수익률이 짭짤합니다. 내가 은밀하게 욕망해온 모든 것들이 눈앞에서 거짓말처럼 이뤄집니다. 정말 아무것도 안 했는데, 돈 넣고 매수 해놓고 상사한테 갈굼 받는 와중에도 속상함을 달래고 화장실에 들어가 MTS를 켰을 뿐인데, 아니 세상에 돈이 꽤 생겼습니다. 하루종일 갈굼 받아 번 돈을 계산해보니 10만 원이나 될까 싶은데 그것보다 많은 돈이 처음으로 거저 생겼습니다.
정말이지 카페에서 정보를 읽고, 친구에게 추천을 받고, 할까 말까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버튼 하나 눌렀을 뿐인데. 찰나의 순간에 나의 옛 세상이 완전히 깨어지고 신선들이 사는 세상이 나타났습니다. 모든 부의 비밀이 방금 풀렸습니다. 모든 거지들은 투자를 몰라서 거지이고, 모든 부자들은 투자를 통해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드디어 나도 그 영광스러운 길로 들어섰다는 감격에 변기 위에 앉아 눈물이 찔끔 나옵니다. 어머니, 제가 호강시켜드릴게요. 인생의 비밀을 풀었습니다.
자리에 돌아가 안절부절못합니다. ‘인생에 기회는 세 번이라던데, 지금 이 기회가 내 눈앞에 왔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껏 그 기회를 앞에 두고 신중해야 한다느니 평정심 균형감 이딴 생각을 하느라 망설였다. 인생은 액션이다. 버튼을 누를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운명을 모두 결정한다. 팔자를 결정하고 삶의 질을 완전히 다 결정한다. 나는 바보였다, 하지만 이제 바보가 아니다. 나는 천재다. 이제부터 나는 내 운명을 바꾼다. 모든 꿈이 현실로 바뀐다.’
상사의 갈굼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나도 모르게 씩 웃어 보이고 말았습니다. 상사가 피식 웃고 뭐라 뭐라 하며 지나간 것 같습니다. 흥분감을 달래지 못해 한 시간을 주가만 바라보고, 그 주식과 연관된 모든 뉴스를 다 찾아봅니다. 대체로 좋은 소식입니다. 경영자는 또 어찌나 뛰어난지, 호재는 어찌나 많은지. 동기를 불러다가 담배를 피우며 수익을 슬쩍 자랑해봅니다.
‘별거 아냐, 근데 아는 선배가 이 주식 참 좋다더라. 호재도 많고. 약간 사봤는데 글쎄 금세 오르지 뭐야.’ 친구가 수익을 보더니 눈동자가 커집니다. ‘이 정보 진짜야?’ ‘아니 잘 몰라. 그냥, 좋은 기회일 수 있잖아’ 기왕지사 아까 읽었던 뉴스들을 제법 논리적으로 재조립해서 이야기해봅니다. 동기의 눈빛이 신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바뀝니다. ‘나도 사볼까?’ ‘그럼 그럼 사도 괜찮아. 쭉쭉 오를 거 같애.’
오를 거 같애! 오를 거 같다니! 그 말을 입에 담고 나니 정말 미친 듯이 오를 거 같습니다. 어제까지 나도 의심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올랐잖아요. 진짜 올랐단 말이죠. 오른다는 것은 나의 운명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내 손안에 1등 경마 표가 쥐어져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니 정황이 그렇잖아요. 세상의 모든 정황이 그렇다고요. 오른다!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요. 아니 오를지 안 오를지 어떻게 알아? 그렇지만 오른다면, 오를 것이라고 믿어준 사람에게 모든 영광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그 영광스럽고 용맹한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모든 역사는 신실함이 있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믿음, 그것이 운명이다!
흥분은 환희로 바뀝니다. 저녁에 친구에게 크게 쏩니다. 공돈도 벌었으니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돈을 엄청나게 벌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이 넘칩니다.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나는 어제의 나와 완전히 다르다. 나에겐 승승장구의 길이 남았다. 나는 짱이다. 나는 너를 호강시킬 것이다. 나는 어머니도 호강시킬 것이다. 아니 나는 내 주위 모든 사람을 호강시키고, 엄청나게 기부도 하며, 엄청나게 멋지게 살 것이다. 그게 나다. 상상력이 자꾸 사방으로 튀어 다닙니다. 몇 년 만에, 내일이 기다려져 미칠 것 같은 마음으로 잠듭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습니다. 내일은 왜 이렇게 오지 않는가! 내일이여 어서 오라! 부여 어서 오라! 내일은 전 재산을 넣어주겠다.
흥분감의 단계에서는 자존감이 올라갑니다. 삶의 긍정적인 면이 눈에 띕니다. 스릴이 넘치고 아드레날린이 치솟습니다. 몇 년 후의 부가 그림처럼 그려져 상상력이 널뜁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대부분의 단기적 행복이 다 몰려옵니다. 이 역시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손실의 단계
천만 원을 투자했다고 해볼게요. 그것이 어찌어찌 하다 보니 950만 원이 되었습니다. -5%죠. 50만 원이 날아갔습니다. 지난달에는 한 달 내내 일해서 겨우 50만 원을 저축했는데, 내 인생의 한 달이 지금 아무런 이유도 없이 증발했다니. 상실감이 느껴집니다.
상실감이란 무섭습니다. 무언가 내 것이었다가, 내 품 안에 있다가, 내 양팔을 뜯고 나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연인이나 가족을 잃은 상실감처럼, 내 것이었던 무엇을 잃어버린 상실감은 가슴에 너무나 큰 구멍을 남깁니다. 그깟 돈인데,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무언가를 약탈당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일분일초가 실연당했을 때처럼 가슴이 찢어집니다. 왜 이렇게까지 아픈 거지.
소중한 돈을 날렸다는 생각을 하면 죄책감마저 듭니다. 내가 경솔해서, 내가 경거망동해서, 내 탓이야 내 탓이야. 어릴 때 내가 사고를 치면 혼나던 기억들이 무의식에 있었던 것일까요. 내 탓이라는 생각만으로 너무 힘듭니다. 내가 가만히 있었으면 될 텐데. 왜 투자를 시작해가지고. 후회가 막심하고, 큰 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이걸 친구한테 어떻게 설명하지? 어머니한테 어떻게 설명하지? 이걸 나 자신한테 어떻게 설명하지? 내 인생에 개 같은 상사를 쳐다보며 버텨온 한 달, 그것을 날렸다니, 이걸 어디서 보상받지?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모든 게 혼란스럽습니다, 모든 상실감이 그렇듯이요.
그렇지만 평정심과 균형감을 가지고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5%가 발생했듯이, +5%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세상은 모르는 일이죠. 실상 오를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요? 게다가 처음 투자할 때부터 아무거나 투자한 게 아니라, 충분히 훌륭한 회사에 투자한 것이니까요. 그전까지만 해도 기세 좋게 올랐었고, 더는 떨어지기도 힘들 것 같으니까요. 나는 좋은 선택을 했다, 그저 잠시 손실이 났을 뿐. 여기서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게 그야말로 ‘사고’ 치는 거다. 여기서 뭔가 경거망동하는 것이 진짜 문제다. 이미 가슴은 아프지만, 나의 어리석음으로 그것을 영원하게 만들지 말자. 회복할 기회를 주자. 원래 투자란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것을 버텨내는 자가 부자가 되는 것이다. 그게 부자가 짊어져야 할 무게다. 버티자!
손실의 단계에서는 심리학에서 상실감을 느낄 때의 모든 단계가 나타납니다. 분노, 부정, 슬픔, 무기력. 그야말로 상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심리가 하나 새로 생겼으니 ‘작위에 의한 후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즉, 내가 무슨 ‘짓’을 해서 그로 인해 상실이 더 커질까 봐 두려운 기분입니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가만히 있으랬지’라고 했는데 괜히 까불다가 혼난 그 기억입니다.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움직이는 사람은 다 대사를 망치는 범죄자가 됩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면 그에 대한 책임이 너무나 무거울 것 같습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 타조처럼 얼굴을 수풀에 묻고 현실을 외면하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큰 가정폭력을 당한 아이들이 아무것도 못 하는 그런 심리입니다. 일이 내 행동 때문에 더 커질까봐 온몸이 움츠러듭니다. 이미 사고가 너무 크게 터졌기 때문에 위축이 심합니다.
손실의 단계 2
기다립니다. 언제까지? 1000만 원이 되면 다 정리해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1000만 원이 회복됐습니다. 다행입니다. 지금까지 받은 고통을 생각하니 막상 지금 또 다 자르기는 아쉽습니다. 그 사이 직장에서 멍하게 있다가 뒤통수를 몇 대 맞았고, 친구가 하는 이야기는 귀에 하나도 안 들어왔습니다. 주식 얘기를 하면 ‘내가 그런 거 하지 말랬지 바보야 빨리 다 팔아 빨리빨리!’ 라고 혼만 나고 이미지 구길 것 같아서 아무런 말도 못했습니다. 그 시간을 어찌 보상받을까요. 1050만 원쯤에 파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웬걸 어찌저찌 순식간에 900만 원이 됐습니다. -10%입니다. 가슴이 무뎌진 걸까요. 처음 50만 원을 잃었을 때보다 안 아픕니다. 덜 아픕니다. 그런데 짜증과 분노가 올라옵니다. 지금이라도 팔까? 1000만 원 때 팔았으면 참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1000만 원에 팔았으면 백만 원 더 부자인 셈인데. 무얼 한 거지. 백만 원이 뉘집 개 이름인가. 무얼 한 거지. 매일 생각하다 보니 점점 더 무뎌집니다. 후회는 물론 막심합니다. 팔았으면 됐을 텐데.
그런데 한편 ‘작위에 의한 후회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집니다. 저번에도 기다리니까 다 회복했잖아, 지금은 그때보다 더 손실이 났으니까 지금 팔면 그때보다 더 바보가 되는 것이다. ‘움직이지 말라’는 목소리가 귀청에 울립니다. 아무것도 하지 마, 제발 핸드폰 꺼내서 팔아버리지 마. 하루에도 몇 번 고민합니다. 다시 주가가 조금 상승했습니다. 마음이 상쾌하면서도 무겁습니다. 아직 많이 남았네. 이때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어떤 결의가 생깁니다. ‘이번엔 1030만 원에 죽어도 팔자’. 이 숫자가 ‘심리적 원금’입니다. 1000만 원에 고생 값 30만 원, 즉 3%를 더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가가 더 떨어졌습니다. 850만 원입니다. 이젠 못 팝니다. 900에도 안 팔았고 950에도 안 팔았는데 850에 팔면 등신입니다. 다시 920이 됐습니다. 안 팝니다. 등신 될 것 같습니다. 다시 820입니다. 안 팝니다. 등신 될 것 같습니다. 1050은 되어야 팔고 싶습니다. 심리적 원금이 약간 올랐습니다. 반년이 지났습니다. 860입니다. 안 팝니다. 1060은 돼야 팔고 싶습니다. 이건 오기의 싸움입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780입니다. 짜증 납니다. 안 팝니다. 1070은 되어야 팔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고생한 것뿐만 아니라 투자한 시간도 모두 돌려받아야 마땅합니다. 몇달이 더 지났습니다. 갑자기 600이 됐습니다. 짜증 납니다. 못 팝니다. 이젠 절대 못 팝니다. 500이 됐습니다. 못 팝니다. 450이 됐습니다. 미쳤네. 욕이 나옵니다. 친구들한테 웃으며 얘기합니다. 하지만 가끔 울화통에 잠을 못 잡니다. 대체 언제, 어떻게 무엇을 했어야 한단 말인가. 지금 팔면 미친놈 아닌가.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봅니다.
손실의 단계가 길어질 때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주가든 펀드든 오를 수도 있고 빠질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오를 때는 ‘심리적 원금’에 팔겠지만, 빠질 때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죽을 때까지 못 팝니다. 팔면 큰일 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미 심리적인 투자를 너무 많이 했습니다. 한번 두번 미뤄둔 늑장이 쌓여서 ‘이미 늦었다’는 말만 계속 연장하게 됩니다. 무행동주의가 됩니다.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한번 물리기 시작하면 -50%까지는 신의 뜻입니다. 50%가 상승하면 10% 밖에 못 벌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50%가 하락할 확률도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럴 때는 엄청난 세월을 물고 늘어지며 엄청난 고통을 받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의사결정의 부담감’을 느낍니다. 스스로 혹을 떼어낼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자주 눈에 띄는 이상한 종목들처럼 불현듯 폭등할 수도 있습니다. 그 폭등 직전에 내가 매도를 한다면, 그 ‘작위에 의한 후회’ 때문에 평생 고통받을 것 같습니다. 그 자리를 지박령처럼 지킵니다. 그런데 잃을 땐 많이 잃고 오래 고통받고, 벌 땐 짧게 벌고 잠시 기쁜 이 싸움은 너무나 밑지는 장사입니다.
멘붕의 단계
어느 날 자산이 350이 된 것을 봤습니다. 몇 주간 통장을 안 봤었는데, 그사이 더 떨어진 모양입니다. 그렇게 분노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에게 실망합니다. 그리고 선언하게 됩니다. 이 종목은 안 될 종목이야. 망하겠네. 망하나 보다. 완전히 사라질 종목인가 보다, 모든 좋은 뉴스가 결국은 다 사기였어… 그렇게 말하고 나니 겁이 덜컥 납니다. 350이라도 지키는 게 낫지 않겠어? 저것도 돈이라면 돈이잖아.
더 생각하기 싫습니다. 이미 몇 년간 이 고통 때문에 뇌가 썩어 문드러질 것 같습니다. 두렵습니다. 후회됩니다. 짜증 납니다. 이제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놓아줄 때입니다.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서 전액 매도해버립니다.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상쾌함입니다. 이제 다시 폭등해도 별로 두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폭등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망할 주식 아닌가요. 이렇게까지 날 궁지에 몬 녀석은 니가 처음이야, 그러니 인정해준다. 내가 놔줬으니 기왕이면 망해버려라.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의사결정의 부담감 속에서 미뤄왔던 결정을, 어느 날 감정적으로 해소해버렸습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 욕망이라는 감정으로 투자를 처음 시작했듯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으로 투자를 끝내버렸습니다. 몇 년의 세월 동안 많이 늙었습니다. 허탈하고 짜증 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위탁의 단계
투자를 하다가 데인 경험이 너무나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돈은 불려야겠습니다. 어느 날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 사람의 당당함과 자신감을 보니, 손실을 보지 않고 꾸준히 돈을 버는 자의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 타고 다니는 자동차, 이 사람은 투자를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 사람한테 맡겨보면 어떨까. 그러자 이 사람이 아름다운 논리로 똑똑함을 자랑하며 투자 원칙을 설명해주고, 그런 다음 투자 종목까지 화려하게 설명해줬습니다. 엄청나게 내공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아, 그때의 고통을 다시 느끼고 싶진 않아 약간 망설입니다.
고객님, 투자는 결국엔 고객님의 책임입니다. 스스로 의지가 확실해질 때 선택해야 할 일이지 제가 강요할 것은 아닙니다
아, 내 책임이라고? 그래 지금 투자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내 책임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도 모두 내 책임이지. 마음이 흔들립니다. 눈을 가리고 ‘알아서 해달라’고 하고 싶습니다. 더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돈을 맡길지 말지 그 한 가지 결정은 내가 내려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 결정을 내리고 나면 다시는 의사결정의 부담감에서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빨리 끝내버리자, 빨리 끝내버리자, 그냥 믿고 맡겨버리자, 아무 생각하지 말자, 두려워 말자. 다시 용기를 냅니다.
고객님, 고수익을 내려면 고위험을 각오해야 해요. 괜찮겠어요? 직접 선택하셔야 합니다
아, 나의 용기를 실험하는 것인가? 나한테 쫄리면 꺼지라고 하는 것일까? 쫄린다. 쫄리지만 이렇게 쫄려서는 아무것도 못한다. 안다, 고수익 고위험. 하지만 큰 손실만 안난다면야 고위험은 감수할 수 있지. 손실이 나더라도 예전처럼 우매하고 고통스럽게 손실이 나진 않겠지. 전문가가 무언가 해결해주겠지. 아마도 벌어주겠지. 아마도 세련되게 처리해주겠지. 전문가는 구체적으로 고객의 몇 가지 고민을 해결해준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몇 년간 손실을 많이 봤어요’ => ‘아 그러세요? 원래 많이들 그럽니다. 아마 뉴스만 보거나 친구들 얘기 듣고 투자했을 거예요 그렇죠?’
이때 고객은 자기 사정을 훤히 알고 공감해주는 전문가에게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종목으로 손실 본 사람 많아요. 그거 사실 펀더멘탈이 안 좋았거든요. 계속 빠졌잖아요. 손실 많이 났을 텐데 어쩜 좋아요’
이때 고객은 전문가가 이 동네 사정과 정보를 훤히 아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나를 얕잡아 보는 것 같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대단한 정보와 기법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펀더멘탈을 보고 투자해야 하거든요. 보세요 미국 경기가 이렇고 저렇고 환율이 이러면 ROE가 이렇게 돼서 딱 탑 라인이 늘다가, 혹시 이런 말 들어보셨어요? 어쩌고저쩌고’
엄청나게 복잡한 용어들을 쓰면서 일반인은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들을 완전히 꿰고 있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안심됩니다.
‘투자는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로 해야 됩니다. 그리고 너무 리스크를 많이 가져가면 안 됩니다 조금만 가입하세요’
이 사람은 나의 아픔을 공감하고, 다시 아프지 않도록 나에게 맞춰서 최대한 정성을 쏟아줄 것 같습니다. 나 같은 사람을 수없이 봐와서 우리들의 아픔을 해결해주는 전문가 같습니다.
‘저한테 맡기시면 제가 팔아야 할 때 딱 전화드릴 겁니다. 저랑 같이 돈 버신 분들 많아요. 저번에 이런 이런 종목으로 10억 버신 분도 있었고…’
와… 알아서 전화해준다는 것은, 언제 팔고 언제 사야할 지를 다 관리해준다는 의미 같습니다. 부자를 만들어준다는 약속, 그리고 전에 겪은 고통을 겪지 않게 해준다는 약속입니다. 돈을 넣고 집에 오는 길에 오랜만에 느끼는 환희가 느껴집니다. 다시… 부자가 되는 꿈을 꿀 수 있는 것일까? 그 사람은 정말 고수가 맞겠지? 그런 사람을 만난 나는 행운아겠지? 물론 자세히 알아보진 않았지만, 자세히 알아본다고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 정도 자신감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것은 오랜만이니,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의탁해보자.
흥분감의 단계
돈이 벌린 것 같습니다. 흥분됩니다. 전문가가 세계 최고 같습니다. 이런 보석 같은 사람을 운이 좋아 일찌감치 만나다니. 아마 지금 돈을 안 맡겼으면 나중엔 만나기도 어려웠을 거야.
손실의 단계
안돼. 당장 전화해봅니다.
‘아 고객님, 고위험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5%에 이렇게 화를 내시면 어떻게요. 그러면 주식을 조금 줄여서 위험을 낮출까요? 이 정도 출렁임 못 버티시는 거면 그게 나을 거 같은데요.’
‘이 종목 자체의 전망은 여전히 좋아요. 아니 오히려 더 좋아졌죠. 이 실적 보세요. 더 싸게 사는 셈이에요. 이럴 땐 사실 돈을 더 넣어야죠.’
손실의 단계 2
-10%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죠. 좋아질 겁니다’
손실의 단계 3
-20%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죠. 좋아질 겁니다’
실상 이때쯤 그 ‘전문가’란 사람도 손실의 단계들을 밟고 있습니다. 자신만만한 척 돈은 유치했지만, 정작 손실이 나니 잠이 안 옵니다. 고객이 나한테 뭐라고 할까, 지금이라도 팔아야 할까. 더 당당한 척해야겠지? 반등하면 자칫 바보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절대 못 끊어. 내가 그렇게 멋들어지게 호재들을 설명하고 바로 몇 주 후에 전망을 바꿀 수도 없잖아. 틀렸다고 인정하면 고객은 떠난다. 작위에 의한 후회를 할까 두렵습니다.
-10%가 넘어가면 그 후로는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못합니다. -50%가 될 때까지 고객한테 매도하자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트럭 불빛에 온몸이 얼어버린 사슴과 비슷합니다. 손발이 묶입니다. 그저 ‘세월아 흘러라’ 기도하며 출근합니다. 무슨 일이 발생하던, 세상이 뒤집어지던, 무조건 ‘기다리자 기다리자’만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발 기다리다 보면 시장아 반등해다오 나 좀 그만 힘들게 해다오, 매일 밤 기도하고 있습니다. 매일 밤 좌절하고 있습니다. 매일 밤 쥐구멍에 숨고 싶습니다. 가끔 자살을 생각합니다. 그 전문가란 사람도 모든 심리가 다 똑같았던 것입니다. 지식은 수익을 낼 정도는 아니었고, 인간인 이상 의사결정은 부담스럽고, 감정적인 결정에 열려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기억하세요.
그렇게 마지막 순간에 고객은 돈을 다 뺍니다. 처절한 패배감으로 차라리 웃음이 나옵니다. 이거구나, 주위에 모든 친구들이 말하던, 자기가 샀다 하면 손실만 난다던 그거. 10년간 투자했는데 모두 손실 경험뿐입니다. 웃음이 나오지만 웃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투자를 포기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짜증이 납니다. 대한민국에 이 시나리오를 밟은 사람이 기백만 명입니다. 각자의 사정이 다르고 각자의 슬픔이 다른 형태를 띠고 있지만, 원형은 모두 같습니다.
흥분해서 투자했고, 손실이 나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하게 되었고, 최악의 상황에 끊었습니다. 전문가들도 흥분해서 투자하고, 손실이 나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하게 되고, 최악의 상황에 끊습니다. 똑같습니다. 대다수 신입 트레이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이 안에 모든 패턴이 있고 이 안에 모든 답이 있습니다. 설령 한두 번 이 패턴을 피했다고 하더라도, 5% 벌고 기분 좋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이 패턴에 딱 걸려버립니다. 운이 없어서도 아니고, 실력이 매우 후져서도 아닙니다. 한번 걸렸다 하면 정해진 순서로 진입합니다. 이 점이 무섭습니다. 이 패턴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방법을 미연에 만들어야 합니다.
원문: juliuschun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