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저는 차를 안 끌고 다니는데, 택시 탈 일이 꽤 많은 편입니다. 한때 차를 타고 다니면서 느낀 운전의 피곤감도 한몫했고, 이채원 부사장님의 책에 ‘차 대신 택시 타며 생각한다’라는 구절이 어쩐지 무의식에 자리 잡아서인 것도 같습니다. 불편사항들이야 많이 있습니다. 택시를 타면 악취가 날 때도 있고, 문잡이에 이상한 액체가 묻어 있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이게 뭐지 하고 냄새를 맡았다가 기절해서 깨어보니 온갖 종류의 강도를 당한다는 설도 들어봤습니다.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냥 이유 없이 지저분한 차들도 있습니다. 이유 없이 불쾌하게 대하시는 분들도 있고 쓸데없이 욕설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택시를 타며 매일 매일 화가 나는 부분은, 차 문을 열 때 실내등이 안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10여 년 전에 택시를 타보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원래 택시는 차 문이 열리면 실내등이 들어왔습니다. 스마트폰 중고 암시장이 활황이 되면서 핸드폰을 놓고 내리면 바로 몇만 원의 추가 소득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실내등을 안 켜는 문화가 정착됐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최근에 택시를 시작하신 분들이야 뭐 응당 그런 줄 알고 실내등을 안 켜시겠지만, 택시를 타며 가장 큰 불편사항이 되는 분실 사태를 일부러 조장하고 있다는 것은 기분이 나쁩니다. 택시를 내릴 때 저는 불을 켜달라 하고 5초 이상 주변을 살핍니다. 저는 물건을 놓고 내리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분실률을 줄이고자 웬만하면 기사님께 실내등을 자동으로 켜달라고 부탁드립니다. 100번의 택시를 타면, 불을 켜주시는 분은 5명 수준입니다. 불쾌하긴 하죠.
택시를 위한 변명을 해보겠습니다. 택시 아저씨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게 저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관점들을 얻을 기회도 되고, 다양한 세평도 들을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택시 아저씨들은 다양한 군중을 상대하다 보니 다양한 의견을 주워들을 일도 많습니다. 그런 민심을 들어볼 만한 하나의 창구 기능이 되기도 합니다. 어릴 적에 기자 인턴을 할 때부터 붙은 습관입니다. 당시엔 이명박 대통령 욕하는 택시 기사들의 강력한 여론이 있었어요. 그런 게 간접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택시 운행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여러분이 이상한 택시 아저씨를 만날 확률보다, 택시 아저씨가 이상한 손님을 만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기사들은 그래도 직업이 있는 사회인으로 제법 한정되어 있지만, 손님들은 술 먹고 인사불성이 되어 거의 요괴들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좋은 손님들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한두 명은 말도 못 할 진상 손님을 만난다며 힘들게 출근하는 택시 기사님들을 많이 봤습니다. 이번에 태우는 손님은 또 어떤 사람일까. 쌍욕을 하고 뒤통수를 때리거나, 잠들어서 안 내리거나, 뒷좌석에 토해서 야밤에 세차를 해야 하거나, 돈 안 내고 튀는 손님은 아닐까, 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운행을 합니다. 3D 업종입니다. 믿기지 않는다면 택시 기사님을 한 분이라도 붙잡고 여쭤보세요. 택시비를 낸다고 갑질을 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몇 퍼센트일까요. 여러분의 생각보다 높습니다. 찍어보자면 20% 이상일 것입니다.
택시가 아니라 대리운전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일은 항상 힘듭니다. 카풀도 불특정 다수로 확장되면 살벌해질 것입니다. 그 엄청난 모욕감과 갈등을, 자신의 업이라는 생각으로 떠안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당장의 택시업자든 향후의 무엇이 됐든, 지독한 감정 노동을 감당해야 할 쓰레기 청소부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수입은 적습니다. 택시 아저씨들의 수입을 듣고는 충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사납금을 내고 남는 돈은 한 달에 150~220 수준입니다. 가정이 있다면 가정을 절대로 부양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자세히 여쭤본 적이 여러 번 있는데, 대부분 개인택시 자격을 얻기 위해 한다고 합니다. 몇 년 일하다가, 대출을 받아 약 5~8천만 원 수준의 번호판을 받으면, 그 후로는 월 3~400 정도를 평생(?) 벌 수 있다는 것입니다. 30년 일하면 어쨌든 연 4~5천씩 받을 수 있는 평생직장이 생기는 것이니 나쁘지 않다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 엄청나게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 버텨갑니다. 사고 안 나게, 고객한테 맞아서 다치지 않게, 오늘 하루도 별일 없이 집에 귀가하고자 합니다. 꿈을 꾸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일부 택시 기사들이 몰상식해진 것을 다 옹호해줄 순 없습니다. 택시업은 밑바닥 삶이라 인성이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들어옵니다. 사회 부적응자들도 일부 있습니다. 범죄자도 있습니다. 택시 업자들이 유난히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우리나라 사회인들의 분포와 비슷한 수준의 표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택시 기사들은 혼자서 고객들을 응대하는 일을 하다 보니 한번 삐뚤어지기 시작하면 자기만의 세계로 점점 더 들어가 더 삐뚤어집니다. 택시기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영업자들이 대체로 겪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택시 기사의 평균적인 응대 수준을 높이려면 교육에 대단한 투자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적은 월급을 받는 감정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투자를 강요하긴 쉽지 않습니다. 이 점이 문제입니다.
다시 써볼게요. 적은 월급을 받는 감정 노동자들에게 서비스의 질을 높일 응대 교육에 투자하긴 쉽지 않습니다. 문제는 결국 돈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이 택시를 시작하고, 또 돈이 적게 남는 사업이기에 교육에 투자하기 힘들고, 또 돈이 적어서 서비스에 신경 쓸 마음의 여유도 별로 없습니다. 인성 문제니 뭐니 해도 다 감정적인 비난이고, 현 상황을 바꿀 방법은 돈밖에 없습니다. 물론 강제로 교육을 시키는 법령을 만드는 것도 있겠죠. 서비스 질이 나쁘다는 민원이 생기면 다 자르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적 문제가 결국 핵심에 있지 않을까요. 택시업과 택시기사가 돈을 더 벌려면 수술이 필요합니다. 택시비가 오르던지, 택시 수가 줄어들던지, 뭔가가 있어야 합니다. 모두 소비자의 총효용을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소비자가 어떤 방식으로든 더 비용과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저는 실상 이대로도 좋습니다. 택시비는 싼 편이고, 그래서 대단한 서비스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서비스가 중요하다면 모범택시를 타면 될 일이죠. 언제든 더 비싼 돈을 주고 더 좋은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기회만 열려있다면 저는 족합니다. 그 기회가 닫혀있으면 온갖 불편이 생깁니다. 해외에 나가보면 서비스 수준에 따라 가격이 차등화된 택시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색상이 다르고 배기량 같은 게 다를 테죠. 가격이 차등화되면 다양한 고객의 수요를 더 다양하게 흡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점이 더 좋은 솔루션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 자본주의란 가격이 조정 가능해야 작동합니다. 차가 많은 곳에서 추위 속에 한 시간 씩 떨며 택시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때론 ‘따블! 따따블!’을 외치고 싶습니다. 돈을 줘서라도 문제에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정말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이 있거나, 가족이 병원에 실려 갔을 때는 돈이 중요하지 않잖아요. 사회주의적으로 똑같이 줄 서서 기다려서 택시를 타야 하는 것도 고통스럽습니다. 어떨 때는 시간적 여유가 많아 가격이 더 중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격이 고정되어 있으니 자본주의는 이상한 곳으로 우회하기 시작합니다.
택시 아저씨 중에는 정해진 출퇴근 시간 중에 특정 시간대에 집중해서 돈을 벌어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벽엔 택시가 안 잡히기 때문에 11~12시 사이에 최대한 멀리 가는 손님을 잡지 못하면 사납금을 못 채우거나 수익을 못 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가격이 고정되어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돈을 더 벌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실상 택시 호출 앱에 경매 식으로 가격을 높일 수만 있어도 이런 문제는 대다수 해결될 텐데 말입니다. 택시 아저씨들이 모두 합심해서 과점 시장을 만들긴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눈앞에 보이는 돈이라도 챙길 것이고 누군가는 가격이 오르기를 베팅하다가 허탕 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게 자본주의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택시는 고질적으로 출퇴근 시간에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평소에 수요부족에 시달립니다. 택시 대수를 늘려주면 고객은 출퇴근이 쉬워지지만 택시 기사들은 너무나 어려워지고, 택시 대수를 줄여주면 택시 기사들은 먹고살 만해지지만 고객은 택시 잡기가 한층 더 불편해집니다. 뭔가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데요, 그런 의미의 카풀은 허용되어야지 싶긴 합니다. 이미 대리기사들이 많아 택시업의 거대한 대항마로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요. 막말로 밤에 쏘카를 부르고 대리기사를 불러도 잘만하면 택시보다 저렴하게 움직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공유경제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뭔가 조율이 이뤄지긴 해야 합니다.
이 글을 통해 어필하고 싶었던 점은, 기사님들도 국민이라는 것입니다. 기사님들이 불친절하다고 하지만, 고객들이 더 불친절하고 사납습니다. 그런 기사도 있고, 그런 국민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살인마도 조폭도 택시를 탑니다. 우리의 감정적 쓰레기장 노릇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더 비싼 돈을 줘야만 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나요? 더 친절한 나를 보고 싶으면 월급을 더 줘야지, 라고 생각해본 적 없으신가요. 말 거는 기사가 있다고, 욕하는 기사가 있다고, 차를 안 태워준 기사가 있다고, 택시 기사 전체를 모독하는 것의 의미를 알기 힘듭니다. 결국, 그분들이 자리를 잃고 ‘타다’의 기사가 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월급 수준에 맞는 서비스 수준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큽니다. 감옥에서 갓 나온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타다’ 기사밖에 없다면 결국 기사가 될 것입니다. 다른 이들이 하기 싫은 일이라면 누군가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무작정 다 참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택시 업계를 규제적으로 바꿔가면서, 문화적으로도 바꾸고, 그렇게 상생하는 길도 많을 것입니다. 저는 스타트업을 하고 있지만, 택시업과 스타트업 간의 갈등을 똑똑한 스타트업 업자들이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택시업자들은 그저 자신의 밥그릇이 위험해 보인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소리지를뿐입니다. 결국, 우리네 삼촌들 이야기입니다. 함께 사는 방법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원문: juliuschun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