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선거와 관련한 여론조작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하나다. 뭐냐 하면, 선거 운동원으로 등록된 자가 아닌 이가 인터넷상에서 여론조작을 목적으로 조직적인 행위를 실행한 경우이다. 이 경우 공직선거법 제89조 ‘선거 사무소의 유사기관 설치 금지 규정의 위반’에 의해 해당 당사자와 조직원은 처벌받을 수 있다. 그래서 드루킹은 당연히 유죄다.
이때 매크로 프로그램의 사용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현행법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의 사용 여부는 선거법 위반의 요소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 드루킹 및 김경수 지사 판결에서도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 여부는 선거법이 아니라 업무 방해 쪽에 맞춰졌다. 즉 선거법과 관련해서라면 사람을 쓰든 매크로를 쓰든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중요한 건 선거 운동원으로 등록되지 아니한 자가 선거를 위한 여론 조작을 위해 조직적 행위를 했냐 아니냐 뿐이다.
혹자는 여론 조작 자체를 가지고 문제 삼는데, 우리 선거법에서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문제가 되는 건 저 케이스뿐이다. 여론 조작, 즉 폭넓게 얘기해서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여론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 자체는 불법의 영역이 아니다.
가령 선거에서의 유리한 국면 조성을 위해 조직적으로 인터넷에서 댓글을 달고 활동하는 것을 선거에 출마한 이가 자신의 선거운동원을 통해 실행하면 그게 허위사실 유포 같은 경우가 아닌 이상은 처벌할 근거가 없다. 그게 문제가 되면 선거운동 자체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요는, ‘여론에 영향을 주려 했는가’가 아니라 ‘불법적으로 조직한 조직으로 시도하였냐’다.
이제 이걸 염두에 두고 김경수 지사 건을 보자. 드루킹이 아닌, 김경수 지사에게까지 저 죄목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김경수 지사가 저 민간인 조직의 조직을 지시하고 실질적으로 운용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다시 얘기하지만 킹크랩, 즉 매크로 프로그램의 사용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킹크랩을 썼든 사람이 직접 댓글을 달았든 선거법에서 중요한 부분은 저 불법 조직을 직접 운용하거나 지원하였느냐의 여부뿐이다. 따라서 이때 조직의 구성과 운용을 지시한 구체적인 문서가 남아 있거나 그 조직의 구성과 운용을 위한 자금을 직접 대주었다면 당연히 그 부분이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특검의 조사 결과 그런 지시를 내린 구체적인 문서 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금? 이건 특검조차 부인했다. 특검은 드루킹 조직의 운용에 정치 자금이 들어갔다는 부분에 대해서 실제 드루킹의 경공모가 비누 등을 판매해 얻은 수익과 운용 자금의 규모가 거의 일치하였다는 사실을 근거로 혐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검 측이 내세운 근거가 바로 텔레그램 메시지인데, 특검 측은 그게 실질적인 조직 운용을 위한 지시의 명확한 근거가 되는지 여부를 입증하지 못했다. 즉 판결을 위한 관점에서 본다면 그게 어떤 성격의 메시지인지 확인이 안 되었다는 얘기다. 여기서 그걸 ‘지시’로 볼 수 있는 근거는 피의자 드루킹의 진술뿐이다.
업무방해 여부? 더 폭넓게 적용 가능한 선거법에서조차 유죄를 인정할만한 근거가 도출되지 않는데 업무방해를 직접적으로 지시했다는 근거가 나올 수가 있나? 결국 남는 건 이 판결의 결과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피의자의 오락가락하는 진술뿐이다. 그래서 재판부도 모조리 그 ‘진술’이 진실이라는 가정 하에 각 개별 사건의 연관성을 판단해 판결했다.
그런데 이미 그 전제가 선의에 의한 가정뿐인 상황에서 이게 어떻게 정상적인 판결이 되겠나. 게다가 법원은 그런 상황에서 판결로도 모자라 현역 지자체장의 경우 확정판결이 아닌 이상 법정구속을 면한 선례가 있음에도 법정구속까지 내렸다.
비록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에 불과하지만 솔직히 재판부의 판결 근거 자체가 ‘진실이라고 가정’한 상태에서 그에 근거한 판결인데 여기에 어떤 법리가 더 적용되어 저 판결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으로서는 그런 법리 대신 삼권분립의 대명제 하에 견제받지 않는 성역으로 남아 있었던 사법부가 어떻게 스스로 권력이 되어 그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지만 보일 뿐이다. 개탄스러운 일이다.
원문: 손원근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