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경남 도지사가 업무방해 및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법원에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정권 창출을 위해 ‘드루킹’ 김동원과 함께, 없는 댓글을 만드는 방법으로 여론을 조작했다는 혐의다. 개인적으로 김 도지사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사건 1심을 둘러싼 여러 풍경들이 한국 사법 체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이 사건 판결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기자가 법정에서 재판관의 판시를 들리는대로 옮겨적은 자료가 웹상에서 공유되고 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재판부는 본격적인 판단에 앞서 사실관계를 적시하는 대목에서 ‘김경수가 범죄에 사용된 매크로 프로그램의 존재를 미리 알았는가’ ‘그렇다’라고 자문자답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근거로 ‘김경수가 드루킹의 사무실에 오기로 했던 날짜에 프로그램 시연이 있었고, 프로그램 개발도 그 날짜에 맞춰서 이뤄졌다’라고 말한다.
위 단락을 주의 깊게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정도 추론으로 김경수가 매크로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재판을 맡은 재판부는 그렇게 했다. 왜냐하면 재판을 맡은 법관에게는 사실관계 인정의 재량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법정에서는 법관이 ‘이게 사실관계임’이라고 하는 순간 그게 법적인 사실관계가 되어버린다. 법관에 대한 신뢰와 권위가 녹아있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변호사는 물론이고 같은 법관끼리 판결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도 사실관계 인정 부분은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물론 원칙은 있다. 형사소송법 307조를 보면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해야 한다”,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적혀있다. 법관이 판결에 임할 때는 증거를 토대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사실관계를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멀리 갈 필요도 없이 308조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
드루킹은 고 노회찬 의원 생전에는 ‘노 의원에게 돈을 줬다’고 증언했다가, 그가 목숨을 끊은 뒤에는 ‘노회찬에 돈 안 줬다. 특검이 그렇게 증언하라고 강요했다’고 말을 바꾼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증언을 증거로 인용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법관의 마음에 달려있다.
김경수 도지사는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을 받았다. 정확히는 컴퓨터등장애업무방해 혐의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써서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컴퓨터등장애업무방해죄는 1995년에 만들어졌는데 이 혐의만 가지고 실형이 확정된 사례는 없다. 다른 혐의들과 묶여서 실형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최근에는 한 마케팅업자가 30여 대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가지고 네이버 검색어를 1190차례 조작하고, 온라인 도박 사이트 광고를 해준 혐의로 징역 8개월을 받은 바 있다. 이례적으로 징역형을 받은 데는 도박 개장 등 방조 혐의가 주요하게 작용했다.
업무방해가 얼마, 도박 방조가 얼마로 명확하게 나눠가지 않고 온통 퉁쳐서 가는 이런 셈법은 곤란하다. 이른바 ‘원님식 재판’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경수 건도 마찬가지다. 판결을 읽어보면 혐의는 업무방해인데 실질은 여론조작에 죄를 묻고 있다. 판사는 “이 사건 조작 범행은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등 국민이 직접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당 후보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왜곡된 여론을 형성한 것이기 때문에 위법성이 중대하다”고 일갈한다.
현재 선거 관련 여론조작을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은 공직선거법 89조뿐이다. 판사의 판단이 옳다면 이 법을 적용하면 된다. 공직선거법 89조에 따르면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하지 않은 사람이 인터넷상에서 조직적인 여론조작 행위를 하다가 걸리면 처벌받는다.
김 도지사의 행위가 여기에 해당했다면 당연히 이 법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공직선거법 위반은 시기가 특정되는 대신 범위가 넓어, 적용이 더 손쉽기 때문이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썼든 안 썼든 드루킹과의 지시관계만 증명되면 바로 유죄다. 100만원 이상의 벌금만 나오면 도지사 자리를 내놓아야 하므로 징벌적 효과도 크다. 그런데 왜 판사는 엉뚱한 주소에서 연설을 하고 있을까. 이해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이 유독 불편하다.
김 도지사는 판결 직후 법정 구속됐다. 실형 후 법정구속은 일종의 트렌드다. 요즘은 구속 전 피의자신문을 과거보다 철저히 해서 선고 전에 구속되지 않을 확률은 높이면서, 재판에서 징역형이나 금고형이 떨어지면 바로 법정구속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이 아닐 경우 지적 바란다.) 원칙적으로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도주 우려 등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재판을 불구속으로 진행하는 게 맞다. 형사법 대원칙인 무죄 추정·불구속 재판 원칙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판사의 재량이다.
가령 김 도지사 직전 경남 도지사였던 홍준표 씨는 1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현직 도지사임이 참작돼 대법원판결까지 법정구속을 피했다. 그러나 김 도지사는 같은 상황인데도 법정 구속됐다. 구속된 피의자는 재판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해진다.
국민들이 법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국가 법체계에 대한 신뢰 때문이지 법관 개인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런데 같은 법을 가지고도 법관 따라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국민은 법체계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기 쉽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김경수 도지사의 1심 선고에 강한 유감을 표시하며 ‘사법농단 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당 대변인이 “사실상 보복성 재판에 매우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 정권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세력 척결에 집중하자 김경수 도지사가 일종의 사법 희생양이 됐다는 것이다.
원내 1당인 여당이 이렇게 나오면 2심 재판부는 어떤 심경일까. 적지 않게 압박을 받을 것이다. 더 면밀한 판결을 내릴 것이고, 현재 드루킹 일당의 증언 이외에는 이렇다 할 증거가 없는 만큼 형량이 줄어들거나 아예 무죄로 반전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든든한 우군이 없는 일반 시민들은 어떨까. 판사가 사실인정을 엉뚱하게 하고, 타당한 증거가 없는데도 죄를 뒤집어씌우면 그냥 뒤집어써야 한다.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판결에 대해 사회에 적극적인 토론을 제의하기도 어렵다. 재판부는 김경수 판결문을 읽기 전 “혹시 방청석에서 판결선고 관련해 재판부 허락 없이 녹음을 하거나 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재판부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에 혹시라도 추가적 적발 있거나 문제가 되면 그 부분에 대해 감치 등 조치할 것”이라면서 “특별히 유념해 선고 결과 경청해주기 바란다”는 말도 했다. 감치는 법원 직권으로 재판의 위신을 현저하게 훼손한 사람을 20일 이내로 가둬두거나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리는 처분을 말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래도 한국 사회는 이제 법관에게 준 과도한 재량권을 다시 걷어와야 한다. 법문에 법관의 재량을 제약하는 내용을 여러 줄 넣어야 한다. 오늘의 김경수가 내일의 당신일 수 있다.
원문: 김동환 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