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프로이트 이론을 연구했던 프랑스 철학자·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말이다. 우리는 TV의 건강상식 코너를 볼 때마다 그날 방송 주제거리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물건을 구매할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위암 판정을 받았던 사람이 수술 이후 양배추를 여러 방식으로 먹으면서 위 건강을 회복했다는 이야기를 접한다. 다음날 양배추즙, 양배추환 등 양배추 관련 제품의 판매가 급증한다.
〈효리네 민박〉에 나온 와플 기기가 방영 후 반나절도 안 되어서 재고 난이 된 것도 그에 해당하겠다. 이 중 제품 구입 후 지속적으로 와플 기기를 사용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연히 물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날씬한 몸매, 잡티 없는 피부, 컬러렌즈나 서클렌즈 등을 사용해 미를 추구하는 것이나 더 좋은 차, 더 좋은 직장을 원하는 것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녀에게는 나들이옷도, 보석도,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것만 좋아했다. 자기는 오로지 그런 것만을 위해 태어난 듯 생각되었다. 정말이지 그녀는 사람들 마음에 들고 싶었고, 시샘과 매혹과 추구의 대상이 되고 싶었다.
- 기 드 모파상, 「목걸이」 中
라캉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의 간절한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이 욕망할 만한 것,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사실 이것이 광고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은 나를 잃어가는 것이고, 나를 잃어가다 보면 일시적 충동을 참지 못하게 된다.
충동에 매번 동요하면 마침내 거대한 ‘욕망’만이 남을 뿐 ‘나’는 사라진다. 어린 왕자에 나온 알코올 중독자처럼 술을 마신다는 수치스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는 나의 ‘욕망 덩어리-육체’만 존재할 뿐이다. 이것이 ‘조현병’, ‘다중인격장애’ 등의 정신질환에 대한 철학적 설명이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의 욕망을 대변할 뿐, 우리와 멀리 있지 않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사람은 심리학적인 표현으로 바꿔 말하면 의존 회피성(dependent-avoidant)이 높은 사람으로 대중의 의견에 쉽게 휩쓸리고, 묵묵히 권위에 복종하며, 타인에게 거절하기를 두려워한다. 기꺼이 얼굴 없는 군중 속으로 들어가 함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또한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프랑스 학자 르네 지라르에 의하면, 이 형이상학적 질환이 무서운 이유는 암처럼 자각증세가 없어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치유될 수 있는 희망 또한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충동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잠시 살펴봐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살펴보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사유하는 습관이 될 수도, 충동에서 잠시 물러서 보는 연습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욕망하는 것을 제삼자의 것처럼 글을 쓰는 것도 도움이 되고, 나의 욕망을 이론화한 글을 읽거나 배우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또한 나의 한계를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자발적으로 욕망한다고 믿지만, 그것은 ‘낭만적 거짓’에 불과하다. 사실은 우리가 욕망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중개자를 꼭짓점으로 하는, 욕망의 삼각형 구조에 편입되어 있으며, 이것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통해 드러나는 ‘소설적 진실’이다.
- 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中
원문: 당신이라는 책을 펼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