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거리로 나와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영화는 끝났지만, 아직 난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치 내가 영화 속 인물이 된 것 같았다.
영화는 약 2시간 동안 우리를 영화 속 인물의 삶으로 들어가게 해서 인물의 감정에 조응하게 한다. 영화관 바깥으로 나와서도 한동안 영화 속 특정 인물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마치 그 인물이 살아 있는 인물처럼 느낀다. 이것은 우리가 ‘감정 전염’에 취약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우리는 매일 마주하는 타인과의 만남에서 서로의 감정이 비언어적·언어적으로 강력하게 영향을 받는다. 슬픈 사람과 만나면 나 또한 슬퍼지고, 기쁜 사람과 만나면 나 또한 기뻐진다는 것이다. 나와 동질감이 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라면, 혼자 있을 때보다 극적으로 감정이 표출되는 것은, 그 시작을 감정전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개인 차가 있다. 유독 주위 사람의 기분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친구가 기분이 좋으면 같이 들뜨고 친구가 우울하면 덩달아 기분이 가라앉는 경향이 남보다 심한 편이다. 대개 이런 사람을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현재 소통하는 상대에게 여러모로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상대의 감정에 잘 전염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심리 치료사 또한 내담자의 감정에 취약할 수 있으며, 내담자의 감정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화하는 훈련 또한 해야 한다. 그러나 감정전염에도 공감은 반드시 내담자를 치료하는 데에 필요하며, 거리 두기 또한 상담자의 안녕을 위해 필요하다. 이것을 컨트롤하는 게 전문성이겠지.
감정 전염은 오래 함께한 커플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얼굴이 서로 닮아가는 이유는 부부가 서로의 표정과 버릇을 자주 따라 해서 얼굴에 비슷하게 주름이 생기기 때문이다. 동물 관련 연구에 따르면, 사회성이 높은 개와 그 주인의 표정이 닮기도 한다.
감정 전염에 취약한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감정을 잘 퍼뜨리는 사람 또한 있다. 이들은 카리스마가 넘치고 활기차고 얼굴과 자세의 표현이 풍부하다. 무대 위의 배우와 같이 자신이 표현하는 감정을 다수의 사람에게 쉽게 전염시킨다. 만약 감정 전염에 취약한 사람들이 이들과 함께한다면 결속력 강한 집단이 생길 것이며, 때로는 극단의 무분별한 일들도 발생할 수 있다. 광신도 집단의 탄생이랄까.
그럼 우리는 타인의 감정에 전염되지 않고 타인의 감정에 거리를 확보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진 않다. 그리고 매 순간 그럴 필요도 없다. 지식을 습득하고 삶의 지혜를 쌓아가는 것은 타인의 존재가 선행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타인의 존재가 없는 것은 과거도, 미래도 없이 오직 현재만 존재하며 나 혼자 우주 한가운데에 떠 있는 거랄까.
그러나 가끔 타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타인의 감정에서 멀어져야 할 때, 잠시 멍해지면서 사색에 잠기는 게 좋은 방법이다. 마음속으로 ‘일시 정지’를 외치는 것이다. ‘감정 전염’에 대한 이 글을 읽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매일 SNS 속 미친(?) 군중과 함께하지 않을 수 있다.
더 확실하게 감정 전염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타인이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일환으로 어빙 재니스의 집단사고 이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집단사고 과정 모형에서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은 ‘집단사고의 증상’이다. 증상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나타나면 비합리적 의사결정으로 인한 엄청난 물적·심적 피해를 감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대다수 또는 모든 구성원이 서로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공유해서 과도한 낙관주의를 조장하고 극단적인 위험을 감수하도록 부추긴다. “우리가 함께라면 태평양 항해도 문제없어!”
- 집단 고유의 도덕성을 무조건 신뢰한다. “우리 회사/학교/교회/집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없습니다.”
- 집단의 가정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 만한 경고나 정보를 집단 차원으로 무시하려 한다.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
- 적의 지도자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그들이 사악해서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여긴다. “사측/노동자 측은 악마 같은 놈들이야.”
- 구성원들이 명백한 집단 합의에 대해 품은 모든 의심을 스스로 검열하는 경향이 있다. ‘잘 되겠지. 모두가 함께 고민해서 내린 최선의 결론인데, 설마 틀리겠어?”
- 자기 검열 때문이든 침묵은 곧 동의라는 잘못된 가정 때문이든,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판단에는 모두 동참해야 한다고 착각한다. “지금 발언하지 않은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한 걸로 간주하겠습니다.”
- 집단의 약속에 강력한 반대 의견을 내는 구성원에게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한다. “자넨 여기에 동참하지 않는 게 좋겠네.”
- 마인드가드(mindguard)를 자처하면서 집단을 부정적인 정보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사람이 출현한다. “여러분, 저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회사에서든, 학교에서든 집단에 있을 때 저런 증상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집단사고의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구자들은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브레인스토밍의 목적은 집단의 협의에서 흔히 발생하는 ‘동조자 효과’ 곧 다수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을 제거하는 데 있다. 단점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질 때가 많다는 것이다.
강조하고 싶은 건 효율성, 생산성만 추구하다가 나 자신을 집단에 오랫동안 휩싸이게 두지 말라는 것이다. 항상 최선의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타인과 관계를 맺고 집단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다가도 가끔은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남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러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함께 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집단에 속하고 집단의 구성원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문화적으로 공통된 참조 대상과 취향을 공유하는 것이다. 같은 노래와 영화, 스포츠, 책을 좋아하면 이야깃거리가 생긱 뿐 아니라, 나보다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된 느낌을 받는다.
- 던컨 와츠
원문: 당신이라는 책을 펼치다
참고문헌
- 마이클 본드 저,「타인의 영향력』, 어크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