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독자라면 혈액형 성격론에 대한 비판을 수도 없이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의 일상 대화에서는 상대의 혈액형을 언급하면서 “○○씨는 A형이라서 그래~” 하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혈액형 성격론을 별로 신봉하지 않더라도 사석에서는 농담 삼아 혈액형을 화제로 삼는 분들도 많으실 거에요.
혈액형 성격론이 단지 비과학적일 뿐이기만 하다면 사석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그리 문제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귀신 이야기 같은 것처럼요. 그러나 혈액형 성격론에는 “위험한” 차별적 요소가 은연중에 섞여 있습니다. 그러니 의식적으로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초대필자 지뇽뇽 님의 주장입니다.
혈액형 성격론이 당신을 어떻게 속이고 있는지, 그 다섯 가지 방식을 들어보시죠.
1. 100% 맞는 심리테스트의 비밀: 바넘 이펙트
때론 소심한데 때론 대범. 사실 보기보다 외로움을 잘 탐. 안 그런 척하지만 상처도 잘 받음.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하지만 혼자 있고 싶을 때도 많음.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음. 나를 알아주고 사랑해줄 사람을 찾고 있음.
바로 당신의 모습이라고요? 위의 이야기는 사실 ‘사회적 동물’이라면 정도는 달라도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저런 이야기를 대충 조합해서 내놓으면 사람들은 ‘완전 내 얘기임!’이라는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이렇게 사실 ‘보편적인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콕 집어서 내 얘기를 한 것 같이 느끼는 현상을 바넘 이펙트(Barnum effect)라고 합니다. 그래서 별별 심리테스트들이 신뢰를 얻으며 죽지 않는 것이지요.
혈액형 성격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성격을 측정한 후 혈액형별로 차이가 나는지 살펴보면 사실 ‘아무런’ 차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퍼져나가는 것은 모두에게 다 해당되는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하기 때문이지요. A형이 소심하다고들 하는데 조금도 소심하지 않은 인간이 존재하나요? 이들이 하는 이야기들(소심, 장난기, 마음이 넓음)을 가만히 보면 대부분의 사람에게 다 어느 정도 해당되는 이야기들입니다.
2. 단순하고 편리하게 구분 짓고자 하는 욕구
우리는 인간을 ‘구분’하고 싶어 합니다. 사실 그렇지 않은데도 흑 vs. 백, 이거 아님 저거로 나눠서 생각해버리면 여러 가지로 편하거든요. 사실 ‘인종’이라는 것도 흑 vs. 백으로 완벽하게 나뉘는 게 아니지 않나요? 사람들에게 소외감을 느끼게 만드는 등으로 ‘자기편’을 색출할 필요(동기)를 높여주면 흑인인지 백인인지 구분이 애매한 사진을 보면서도 사람들이 ‘이 사람은 흑인!’ ‘이 사람은 백인!’이라며 엄청 잘 구분하게 된다는 연구가 있었습니다.
혈액형도 복잡한 인간들을 4타입으로 구분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단순하지 않은 세상을 단순하게 보고 싶다는 욕구나 나랑 비슷한 사람을 손쉽게 찾고 싶다는 욕구 등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겠지요. 인간이 이렇게 간단하다고 믿어버리면 힘들게 머리 써서 사람들을 파악하려 하지 않아도 되겠고요. 비단 혈액형 성격론뿐 아니라 출신 지역이나 성(性) 같은 것으로 인간을 규정하려는 대부분의 시도가 비슷한 기능을 하며 계속 되고 있지요.
3. 확증편향: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성향
우리의 믿음은 진실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정보가 정말 참이라서 뿐 아니라 단지 ‘믿고 싶어서’ ‘믿을 필요가 있어서’ 믿기도 하거든요. 예컨대 사람들에게 사회적 문제가 해결될 가망이 없거나, 자신이 이 사회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메시지를 주면 ‘우리나라 좋은 나라! 사실 이 사회에는 아무 문제도 없어!’ 같은 믿음을 강화시키곤 합니다. 그렇게 믿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거든요.
또 논리적이든 아니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믿기도 합니다. 아이들도 새 전문가가 이것은 새다! 라고 하는 거보다 친근감 가는 일반인이 하는 말을 더 잘 믿는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도 하지요. “이런 증거들을 토대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군!”이 맞겠지만 “자 여기 결론이 있어. 여기에 맞는 증거들은 뭐가 있지?” 역시 우리 마음속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하지요. 근거 없는 음모론들이 지속되는 이유 역시 그런 음모에 반하는 증거는 기각한 채 뒷받침하는 증거만을 수집하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의 반박 역시 이미 시나리오에 포함되어 있기에 ‘거 봐, 학자들이 반박하는 걸 보니 역시 캥기는 게 있군!’이라고 (자기 좋은 대로) 생각하며 원래의 믿음을 철벽 방어하곤 합니다.
그래도 확신할 수 있다면 진실에 가깝지 않겠냐고요? 얼마나 확신하느냐도 정보의 참됨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일례로 인종차별이나 성차별하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이 정말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아주 강하게 믿거든요.
이렇게 우리의 주관적 믿음이라는 것은 ‘진실’의 정확한 반영이라기보다 내 욕구들이 함께 버무려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주관은 정확한 ‘근거’가 되기 어려운 것이지요.
4. “재미로 보는 건데 뭐 어때?”
혈액형 성격류를 ‘재미’로 본다고 해도 우려되는 점은 여전히 남아요. 연구에 의하면 혈액형 성격론을 ‘강하게’ 믿는 사람들은 실제로 비슷하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난 ~~형이니까 성격이 이렇다고!”라면서 관련된 행동들을 강화해나가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으로부터 ‘너 정말 ~~형 같구나’라는 피드백을 받으면 그런 자기개념(self-concept)이 더 강화되고, 그런 행동을 더 하게 되고… 어느새 그런 사람이 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재미’로 본다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내 행동들을 합리화하고 강화하고 있진 않나요?
5. 때론 공격적인 차별보다 더 위험한 우호적 차별
그냥 ‘재미’라고 쉽게 넘기지만 혈액형성격론처럼 실은 인간을 엄청 구분 짓고 차별하는 기능을 하는 걸 ‘우호적 형태의 차별(benevolent form of discrimination)’이라 합니다. 때로는 이런 우호적 형태의 차별이 공격적인 차별보다 더 위험하다는 연구도 있어요. 거부감 없이 쉽게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 출신 애들은 이렇대’ ‘여성/남성은 이렇게 다르대’ 류의 수많은 가십 거리, 웃기지만 알고 보니 인종·지역·성차별적인 농담도 그 예가 됩니다.
이런 우호적 차별은 심지어 차별의 ‘피해자’인 사람들도 대수롭지 않게, 저항할 새도 없이 차별적 내용에 순응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에서도 위험합니다. 겉으로 봤을 때는 그닥 해로워 보이지 않거든요. 어떤 식으로든 인간을 구분 짓는 ‘재미로 하는 이야기’들을 의식적으로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들입니다.
마지막으로, 혈액형으로 사람 구분 짓는 거나 인종 및 출신 지역에 따라 사람 구분 짓는 거나 근거 없고 부정확한 편견·고정관념에 기초해서 타인을 마구 단정 짓는다는 점에서 사실 거기서 거기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셨으면 해요.
Chanel EspadrillesClean Jewelry In 5 Easy Ste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