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위와 같이 말하며 ‘그러나 무엇에?’라고 질문한다. 그는 대답한다.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무엇에나 그대 좋을 대로.’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에 적힌 이 문구를 보고 감탄을 했다. 이 아저씨 술 마시려고 이렇게 멋진 핑계를 대도 되는 거야? 역시 예술은 술 마시려고 하는 것이었다(아니다).
예술가와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다. 고흐, 고갱, 드가, 마네, 랭보, 르누아르, 피카소 그리고 헤밍웨이까지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의 곁에는 초록색 술이 있었다. 바로 ‘초록요정’이라고 불리는 압생트(Absinthe)다. 초록요정은 압생트가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별명도 있다. ‘에메랄드 지옥’ 이것은 압생트에 의지한 많은 예술가의 삶을 비극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감의 원천에서 파국까지. 오늘은 19세기를 풍미한 예술가의 술, 압생트에 대한 이야기다.
쑥으로 만든 술은 어떻게 파리를 취하게 했나
압생트는 허브를 넣은 독한 증류주다. 압생트란 이름 역시 재료로 들어가는 쓴쑥(Artemisia Absinthuem)에서 유래했다. 쓴쑥은 우리가 아는 그 쑥이 맞다. 다만 유럽의 쑥은 독성이 있어서 쓴쑥 혹은 향이 강해서 향쑥이라고 불린다. 압생트의 시작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1797년 앙리 루이 페르노가 스위스에 압생트 공장을 세워 본격적인 전설을 만들었다.
압생트의 인기 요인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 싸다. 두 번째, 세다. 가격이 낮고 알코올도수가 강한(40~75도) 압생트는 호주머니가 가벼운 노동자들의 동반자가 되었다. 물을 타면 술의 양을 2~3배로 만들 수도 있는 가성비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당시 와인은 ‘필록세라 해충 사태’ 때문에 가격이 폭등한 상태였다.
압생트는 프랑스 군인의 보급품이기도 했다. 북아프리카 알제리에 파견된 군인들이 풍토병에 시달리자 압생트를 보급한 것이다. 지인 중에 군필자가 있다면 알겠지만 전역한 군인만큼 뛰어난(?) 스토리텔러도 없다. 그들은 프랑스에 돌아와서도 압생트와 추억을 잊지 못하고 노래했다. 내가 군대에 있었을 때 말이야…
초록요정, 고흐의 캔버스를 빛나게 하다
프랑스에서 압생트는 평민과 군인들의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파리에는 가격이 싸고 빨리 취하는 술이 간절한 집단이 또 있었다. 바로 예술가들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은 압생트를 찾았다. 독특한 색깔과 향, 마시는 방법까지 보통과 다른 압생트는 가장 도발적이었던 19세기 예술가들과 궁합이 잘 맞았다. 랭보는 압생트를 마시고 오는 취기를 “가장 우아하고 하늘하늘한 옷”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쯧 얼마나 많이 마셨으면.
시인은 압생트를 노래하고, 화가들은 압생트를 그렸다. 가장 기억나는 작품은 에드가 드가의 작품이다. 그는 자신이 자주 찾는 카페 ‘누벨 아테네’에 친구 ‘마르슬랭 데뷔탱’과 모델 ‘알렌 앙드레’를 두고 그림을 그렸다. 도시남녀의 쓸쓸한 모습이 잘 드러난 이 작품은 ‘카페에서’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었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테이블에 놓인 술 ‘압생트’라고 불렀다.
압생트와 인연이 가장 깊은 사람은 ‘빈센트 반 고흐’다. 그는 압생트를 (너무) 많이 마셨다. 고흐는 압생트에 취한 상태에서 해바라기의 노란색이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것을 목격했고, 이를 캔버스에 재현하기 위해 작업 중에 압생트를 많이 마셨다고 한다.
그렇게 노란 터치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해바라기, 노란 집, 밤의 테라스 같은 작품이다. 물론 환각이 심해져서 귀를 자르고, 목숨까지 잃는다는 게 비극이지만.
에메랄드 지옥을 막아라: 압생트 금지령
압생트 중독으로 인한 환각 때문에 삶을 비극적으로 마친 사람은 고흐뿐이 아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압생트는 많은 사람을 중독의 늪에 빠트렸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에메랄드 지옥’이다. 1905년 스위스의 ‘장 랑프레’라는 노동자가 압생트에 취해 부인과 두 딸을 총으로 쏴 죽였다. 그는 술이 깨어난 뒤에 범죄를 기억하지 못했다.
언론과 법정은 압생트가 환각 증세의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압생트뿐 아니라 코냑, 브랜디 등의 술도 마신 상태였다. 하지만 압생트를 꼽은 이유는 쓴쑥에 들어있는 투우존(Thujone)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투우존에는 환각작용은 물론 색맹을 만드는 독성분이 들어 있었다(앗 고흐도!).
이러한 이유로 1910년 스위스에서 압생트의 제조와 판매가 금지되었다. 그리고 1915년에는 프랑스에서도 압생트 금지령이 떨어졌다. 그렇게 체코와 스페인을 제외한 모든 유럽에서 압생트의 제조가 금지되었다(국내에도 2010년에 금지된 적이 있다).
압생트의 금지가 풀린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압생트에 들어있는 투우존 성분이 환각을 일으키기에는 적은 양이라는 연구 결과 때문이다. 각국은 압생트 재료의 기준치를 명확하게 하고 관리하는 조건으로 압생트의 제조와 판매를 허가했다. 스위스에서도 2005년에 들어서야 압생트의 제조가 허가되었다.
19세기 스타일로 압생트를 마시는 방법
사람들이 압생트에 매료된 이유는 이야기 때문만이 아니다. 압생트를 마시는 독특한 경험에 있다고 생각이 든다. 압생트를 마시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물에 희석해서 마시는 방법이 있다. 초록색 압생트에 물을 섞게 되면 술이 우윳빛으로 변하는 매직을 볼 수 있다(루쉬 현상). 다음에는 쓴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각설탕을 사용하는 것이다. 구멍 뚫린 압생트 스푼에 각설탕을 놓고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녹여 마시는 방법이다.
마지막 방법이 가장 낭만적이다. 압생트 스푼 위에 각설탕을 올리고 물방울 대신 압생트를 뿌린다. 그리고 각설탕에 불을 붙여 녹인 뒤에 물을 타서 마시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음주가 아닌 일종의 의식처럼 느껴져 당대의 예술가들을 매혹시켰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그냥 마셔도 좋고, 탄산수와 레몬을 함께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압생트 앞에서 우리는 19세기로 돌아가야 하는 법이니까.
파란만장한 압생트 이야기에 취한다
파괴적인 힘을 가진 술이다. 가성비의 술이었던 압생트를 ‘예술가의 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19세기를 풍미한 예술가들의 희로애락이 담겼기 때문이 아닐까? 덕분에 우리에게 압생트를 마신다는 것은 일종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을 들게 한다. 보들레르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는 쉬지 말고 취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시건, 미덕이건. 물론 음주는 예술 감상하듯이 적당히만.
원문: 마시즘
참고문헌
- 샤를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문학동네
- 벤 맥팔랜드, 『생각하는 술꾼』, 시그마북스
- 에이미 스튜어트, 『술 취한 식물학자』, 문학동네
- 최연욱, 『비밀의 미술관』, 생각정거장
- 이야기고래, 「초보 드링커를 위한 술 안내서」
- 「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 에드가 드가 ‘압생트’」, 스포츠경향
- 「이강희의 맛있는 술 이야기: 녹색요정 VS 악마의 술… 압생트의 유혹」, 경향신문
- 「권지예의 그림읽기: 마술을 부리는 술, 술을 부르는 예술」, 동아일보
- 「한동하의 웰빙의 역설: 쑥은 모름지기 쑥쑥 자라기 전에 먹어야」, 경향신문
- Absinthe, ENCYCLOPAEDIA BRITANNICA
- 「History of Absinthe」, Absinthe Time
- 「The Devil in a Little Green Bottle: A History of Absinthe」, Science History Instit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