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선수 사이에서는 어떤 투수가 던지는 어떤 공이 제일 ‘작살나는(nastiest)’ 공으로 통할까요? 메이저리그 웹사이트 MLB.com은 2018 시즌이 끝나기 전 28개 팀에서 뛰는 메이저리거 85명에게 ‘지금 현재 제일 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공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 제일 까다로웠다고 평가받은 구종 톱 10은 아래와 같습니다. 투표하는 선수에게 구종을 꼭 한 가지만 고르도록 강제한 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는 표가 더 많습니다.
#1 크리스 세일 슬라이더 16표
2018 메이저리그를 마무리한 공. 전성기 랜디 존슨이 던지는 슬라이더가 그랬던 것처럼 오른손 타자는 대서양에서 출발한 공이 태평양 쪽으로 휙 방향을 트는 걸 느낄 수 있다. 세일이 던진 슬라이더를 상대 타자가 쳐냈을 때는 타율 .113(204타수 23안타)에 그쳤다. 타석 마지막 공이 슬라이더일 때는 이 중 57.4%가 삼진으로 끝이 났다.
#2 블레이크 트레이넨 싱커 11표
트레이넨은 2018년 80과 3분의 1이닝을 평균자책점 0.78로 막으면서 38세이브(9승 2패)를 기록했다. 그가 오클랜드 뒷문을 이렇게 확실하게 걸어 잠글 수 있던 건 최고 시속 100마일(약 160.9㎞)에 달하는 싱커 덕분. 피츠버그 투수 트레버 윌리엄스는 “트레이넨의 싱커를 보면 멀미가 날 지경”이라며 “가라앉는 공을 이렇게 빨리 던지는 건 반칙”이라고 평했다.
#3 코리 클루버 슬라이더 8표
크루버의 슬라이더를 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이 공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는 거다. 클루버는 이 공을 커브라고 부른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슬라이더라고 부른다. 또 이 브레이킹 볼을 커터와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이 브레이킹 볼은 삼진 77개를 뽑아내면서 타율 .104(192타수 20안타)로 상대 타자를 묶었다.
#4 크레이그 킴브럴 너클커브 7표
마무리 투수는 보통 말도 안 되게 빠른 공으로 우리를 놀래주곤 한다. 물론 킴브럴도 그렇다. 빠른 공에 이 짐승 같은 커브를 섞어 던지면 상대 타자로서는 손 쓸 도리가 없다. 킴브럴이 승부구로 커브를 선택했을 때 상대 타자는 61타수 5안타(타율 .082)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시카고 컵스의 벤 조브리스트는 “어떻게 맞히는 건지는 이제 알 것 같다. 그런데 다른 타자들이 어떻게 안타를 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5 블레이크 스넬 커브 6표
2018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수상자 스넬은 시속 80마일(약 128.7㎞) 안팎으로 들어오는 전통적인 ‘요요 커브’를 던진다. 스넬이 커브로 마무리한 타석은 총 145번, 이 가운데 93번(64.1%)이 삼진으로 끝이 났다. 이 커브를 치겠다고 방망이를 휘둘러봤자 절반 이상이 헛스윙이다. 토론토 포수 루크 마일은 “빠른 공을 던질 거라고 믿는 타이밍에 스넬은 55피트(약 16.8m)에서 떨어지는 커브로 타자를 꼼짝 못 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5 조던 힉스 싱커 6표
세인트루이스 신인 투수 힉스가 던지는 싱커는 평균 시속 100.4마일(약 161.6㎞)를 기록했다. 2018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 25개 중 19개(76%)를 힉스가 던졌다. 밀워키 유틸리티맨 에르난 페레스는 “예전에 103마일(약 165.6㎞)짜리 공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건 똑바로 날아갔다. 103마일짜리 공이 가라앉는 걸 본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단, 아직 제구력이 100% 완벽하지 않다는 게 흠이다. 싱커가 승부구일 때 볼넷 비율(15.4%)이 삼진 비율(12.6%)보다 높다.
#7 조쉬 헤이더 속구 5표
헤이더는 지난해 전체 상대 타자(306명) 가운데 46.7%(143명)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역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헤이더가 던지는 속구는 평균 시속 94.5마일(약 152.1㎞)로 초특급은 아니지만 지저분한 움직임 덕에 상대 타자를 타율 .130(208타수 27안타)로 묶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투구폼도 역동적이다. 컵스 왼손 투수 브라이언 듀엔싱은 “헤이더는 홈플레이트 쪽에서 봐도 (유니폼 등에 쓴) 이름이 다 보일 정도로 공을 던진다”고 말했다.
#8 맥스 슈어저 슬라이더 4표
“회전을 볼 수가 없다.” 텍사스 유격수 엘비스 안드루스와 플로리다 3루수 브라이언 앤더슨은 슈어저의 슬라이더에 대해 똑같이 이렇게 평했다. 안드루스는 “메이저리그에서 보낸 10년 동안 제일 치기 힘든 공”이라고 덧붙였고, 앤더슨은 “공이 손을 빠져나올 때 회전을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에 방망이가 많이 늦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지난해(.129)에는 올해(.195)보다 이 슬라이더를 쳐서 안타를 만들기가 더 어려웠다. 구위가 떨어진 게 이 정도다.
#8 제이콥 디그롬 속구 4표
미네소타 투수 트레버 힐델버거는 이 2018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가 던지는 모든 구종이 최고라고 답했다. 그래도 헷갈릴 땐 역시 직구다. 디그롬은 2017년 평균 95.2마일(약 153.2㎞)이었던 빠른 공 평균 구속을 지난해에는 96마일(약 154.5㎞)까지 끌어올렸다. 분당 2362회에 달하는 회전수 역시 디그롬의 속구를 특별하게 만든다. 뉴욕 메츠팀 동료 마이클 콘포토는 “디그롬이 빠른 공을 던지면 정말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10 아담 오타비노 슬라이더 3표
오타비노가 슬라이더를 던질 때는 왼쪽 깜빡이를 켜야 할 것만 같다. 그만큼 확실하게 1루 쪽을 향해 꺾인다. 싱커에도 일가견이 있는 오타비노는 지난 시즌 커터까지 장착하면서 위력을 더했다. 샌디에고 포수 오스틴 헤지스는 “오타비노는 이 세 가지 구종을 아주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오는 빠른 공도 언히터블 수준”이라고 평했다.
마치며
지난해 9월 ‘베이스볼 비키니‘를 통해 ‘메이저리그에서는 스플리터의 시대가 저물고 슬라이더의 시대가 온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결과를 봐도 톱 10 가운데 슬라이더가 네 자리를 차지합니다. 변화구도 유행을 탄다는 뜻일 겁니다. 여러분 눈에 제일 치기 어려워 보이는 공은 이 중 무엇이었나요? 혹시 이보다 더 까다로운 공이 떠오르신 분은 아니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