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식당은 공짜 밥도 판다. 무료급식소냐고? 아니다. 사장이 존재하고 월세를 내는 식당이다. 돈 많은 부자가 자기만족을 위해 퍼주고 있는 건 아니냐고? 아니다. 평범한 엔지니어가 차린 이 식당은 철저한 비즈니스 감각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치기 어린 실험으로 어차피 오래 못 갈 거 아니냐고? 아니다. 이 식당은 2015년 10월 오픈한 이래 공짜 밥을 팔아도 흑자를 낼 수 있게 만들며 아주 잘 운영 중이다. 돈 제대로 받아도 금방 폐업하는 곳이 넘치는 것이 식당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식당은 뭐길래 공짜 밥을 팔고도 흑자를 내고 지금까지 장사를 하는 걸까?
바로 이 식당은 도쿄 진보초에 위치한 미래식당(未來食堂:Mirai shokudo)이다. 좌석은 12개뿐인 작은 식당이다. 메뉴는 오직 하나, 메인 메뉴에 국과 밑반찬 3개로 이뤄진 정식뿐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백반 정식쯤 될까. 이것만 봐서는 별 특이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작은 식당의 2018년 매출은 약 8천만~1억 원으로 예상된다.
공짜 밥을 팔면서도 8천만 원 이상을 버는 이 식당에는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한 끼 줍쇼! 50분 일하겠습니다
미래식당의 가장 큰 특징은 ‘한 끼 알바’다. 이 곳에서는 50분 일하면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식권을 준다. 일본어로는 賄い(마카나이, 식당에서 손님을 위해 준비하는 요리가 아니라 직원의 식사를 위해 준비하는 요리를 말한다.)우리말로 직역하자면 ‘마련 요리’쯤 된다. 우리나라에는 ‘한 끼 알바’, ‘한 끼 식사’로 번역되어 알려졌다.
미래식당에 일하는 사람은 고바야시 사장과 ‘한 끼 알바’만 존재할 뿐 다른 종업원은 없다. 즉, 이 가게에는 인건비가 따로 들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래식당의 인건비는 ‘한 끼’식권이다. 미래식당 한 끼 가격이 약 9,000원이기에 한끼알바의 시급은 약 10,000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급이 식사로 나가기 때문에 식당 입장에서는 식재료 원가만 사용하게 되고 약 3,000원(9,000원 x 원가율 33%)으로 50분 동안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금 비꼬아서 바라보면 고바야시 사장이 겨우 3,000원을 지불하며 10,000원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악덕 사장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경영해본 사람은 안다. 오히려 50분 동안만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경영자에게 오히려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동일한 업무도 한 사람이 계속하면 한 번만 설명해주면 되고 아무리 숙련도가 낮은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숙련도가 올라가지만 매일매일 사람이 바뀐다면 아무리 매뉴얼이 존재해도 매일매일 다시 설명해야 하고 사람이 바뀔 때마다 숙련도는 다시 리셋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번거로운 일을 굳이 왜 하고 있을까?
보통 음식점에는 돈을 받는 사람인 종업원과 돈을 지불하는 사람인 손님, 이 두 가지 위치밖에 없다. 하지만 미래식당의 한 끼 알바는 이 두 가지의 중간쯤 새로운 위치에 있다.
요리 경험이 없어도, 나이가 어려도, 어느 지역 출신이더라도 상관없이 모두 한 끼 알바가 될 수 있다. 단지 한 끼 알바가 지향하는 바는 손님도 종업원도 아닌 제3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무나 ‘한 끼 알바’를 할 수는 없다. 한 번 이상 손님으로 미래식당을 방문해봐야 한다. 단순한 호기심보다는 미래식당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이해하고 그 뜻에 함께하는 사람만 받겠다는 의지다.
또, 뜬금없이 갑자기 지금부터 50분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일정을 조율해야만 가능하다. 고바야시 사장은 가급적이면 한 끼 알바의 자율성을 존중하지만 위생에 있어서는 철저히 미래식당의 룰을 따른다고 했다. 아마도 추정하건대 식당에서 일할 때 필요한 보건증이나 기타 위생상 필요한 사항들은 미리 고지하고 한 끼 알바를 시작하기 전에 확인할 것 같다.
말하자면 한 끼 알바는 일반손님보다는 더 깊이 관여하고 종업원보다는 더 격의 없는 그런 존재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어찌 보면 티비프로그램 ‘한끼줍쇼’에서 생면부지의 사람과 밥을 함께 먹으며 식구가 되는 과정이 이 한 끼 알바와 동일한 선상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료식권이 있다면 누구나 공짜!
50분의 한 끼 알바로 얻은 식권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 식당 앞에는 무료식권을 붙이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식권이 붙어있다면 공짜로 먹을 수 있다. 물론 이 무료식권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900엔만 지불하면 미래식당의 정식을 맛볼 수 있다. 이 무료식권은 한 끼 알바를 한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위해 두고 간 ‘한 끼의 식사’인 셈이다. 경제적 사정이 빠듯한 누군가가 쓸 수도 있고, 재미로 먹고 싶은 누군가도 쓸 수도 있다. 누가 쓰든 한 끼 알바 노동의 대가로 주어진 무료식권을 누군가에게 나누지 않는다면 고바야시 사장은 한 끼 식사의 원가인 3,000원조차 아낄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식권을 공유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료식권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당신을 도와주려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힘들고 누구는 힘들지 않다고 사람을 골라내지 않고 그냥 누구라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무료식권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고바야시 사장은 가게를 열기 전부터 생각한 미래식당의 비전은 ‘누구라도 받아들이고,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장소’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이 ‘돈 없는 사람’도 어떻게 마음 편히 오도록 만드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는 돈 없는 사람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누가 무료식권을 사용하더라도 굳이 제재하거나 더 반기거나 하지 않는다. 정말 힘든 사람만 쓸 수 있습니다고 한정 짓는 순간 정말 힘든 사람은 오히려 사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냥 그 자리에서 ‘나는 당신을 도우려 합니다’는 메시지만 보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99번 짓밟혀도 단 한 번 누군가의 버팀목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 무료식권은 나선형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무료식권 시스템은 내가 직접 다이렉트로 누군가에게 식권을 넘기는 직선형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ㅇ월ㅇ일 한 끼 알바를 한 사람은 무료식권을 남기며 ‘언젠가 누군가’ 잘 써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식권을 쓰는 사람은 ‘언젠가 누군가’ 한 끼 알바로 남겨준 그 마음에 감사하며 사용하는 것이다.
오직 당신만을 위하여, 아츠라에
아츠라에(あつらえ, 맞춤반찬)은 미래식당에서 손님이 추가로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메뉴다. 그날그날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메뉴판 삼아 손님의 요구에 맞춘 반찬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자면 오늘은 위가 좀 아파요라고 말하는 손님에게는 따뜻하고 속 편한 수프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때로는 아프리카 초원의 초록 느낌이라든지, 감을 구워달라든지 하는 재미있는 요구도 있다. 눈앞에 손님이 있고, 손님이 무엇을 바라는지, 기분은 어떤지, 컨디션은 어떤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손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제공한다. 개인화된 요구에 맞춰 반찬을 낸다는 것은 재미있고 손님들도 좋아할 발상이지만, 그만큼 한 명 한 명에게 손과 정성이 엄청나게 많이 가는 일이기도 하다.
“다른 가게에서는 이런 말 못 하지만 여기서는 편하게 할 수 있어요”하는 안도감이야말로 미래식당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미래식당의 맞춤 반찬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보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말이 안 되는 주문 같아 보일지라도 더 맛있는 조리법이 있더라도 각각의 주문을 존중한다. 음식의 취향은 주관적이고 감각적이다. 비전문적으로 보이는 요리가 될지라도 그 손님의 기준에서 그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내는 것이 맞춤 반찬의 핵심이다. 편식이 심한 고바야시는 학교 다닐 때 시리얼만 먹고 산 적이 있다. 우유랑 같이 안 먹냐, 매일 시리얼만 먹어도 괜찮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1년 내내 그렇게 먹어도 괜찮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 불편했던 것은 주변의 시선이었다. 어떤 취향이든 그 사람의 ‘보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맞춤 반찬이라는 시스템에 반영되어 있다. 나는 미래식당의 아츠라에가 고바야시의 방식으로 해석된 ‘진심으로 손님을 접대한다’는 오모테나시( おもてなし)라고 생각한다.
엔지니어가 만든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오픈소스 식당
장사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세상에 증명해 내는 일이다. 고바야시 사장은 엔지니어의 방식으로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장소’가 주는 가치를 추구했다. 그는 수학과를 졸업하고 IBM에서 근무했던 엔지니어다. 내가 좋은 코드를 썼다고 꽁꽁 싸매고 있는 것보다 이를 공개하고 서로 토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체득한 사람이다. 그래서 고바야시는 심지어 식당의 사업계획과 재무정보까지도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한다. 미래식당의 운영방식 또한 엔지니어에게 익숙한 오픈소스 방식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소스코드를 무상으로 공개하여 소프트웨어를 개량하고 재배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오픈소스의 개념은, 소스코드를 공개하여 유용한 기술을 공유함으로써 전 세계의 누구나가 자유롭게 소프트웨어의 개발·개량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수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래식당의 가장 큰 특징인 한끼알바도 IT업계에서 통용되던 클라우드 리소스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 클라우드 리소스, 업무를 세분화해서 한 사람, 한 사람 일을 나누고 이를 전체로 모으면 하나의 큰일이 되는 작업 스타일을 말한다. 예를 들어 전화번호부를 데이터화하는 일처럼 단순 작업을 500명이 분담할 때, 각 5분씩 한 사람의 작업 시간을 짧게 정해 많은 사람에게 나누고 누구라도 쉽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렇게 해서 일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작업방식이다
고바야시 사장은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누구라도 받아들이고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장소’가 주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미래식당을 만들었다. 청소년 시절 가출 후 직장동료들과 어울려 밥을 먹다 자기도 모르게 울컥했던 기억, 대학 시절 남자친구가 당근으로 도배된 밥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 기억, 자기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동료들을 본 기억은 그가 ‘누구라도 받아들이고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장소’의 중요성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곳이 존재하도록 만들고 싶게 했다.
또한 고바야시 사장은 미래식당을 ‘그 자리의 성선설’이 실현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사람이 항상 선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미래식당에서는 선할 수 있도록 그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역시 엔지니어다운 발언이다. 미래식당은 그가 설계한 대로 ‘한 끼 알바’, ‘무료식권’, ‘맞춤 반찬’같은 시스템을 통해서 그가 원하던 대로, 또 식당 이름 그대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식당으로 성장하고 있다. 콜롬부스의 달걀처럼 알고 나면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미래식당의 시스템은 미래식당 이전에는 분명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시스템을 설계하고 작동될 수 있게 만든 것 자체만으로 훌륭한 시스템 운영자로서 ‘공짜 밥을 판다’고 생각한다. 고바야시 사장은 분명 그 과정이 뜬구름 잡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탄탄한 경제적 토대 위에 탄탄한 시스템을 만들며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고 있다.
‘누구라도 받아들이고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장소’라는 것은, 미래식당과 같은 식당이 지속적으로 장사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일 수도 있다. 실제로 고바야시 사장은 초기에 식당의 사업계획을 설명하면 ‘취지는 좋지만…’이라든가 ‘종교도 아니고…’라든가 ‘그런 시스템은 무리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런 좋은 취지가 가능하고, 종교 단체가 아니여도 가능하고, 그런 시스템으로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함을 증명해 보였다. 이제는 그런 의문을 던지던 사람들도 미래식당에 와서 함께 밥을 먹는 식구가 됐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보 같다고 했던 사람이 함께 바보가 된 순간’이다
장사를 하다 보면 그런 순간이 온다. 세상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 하고 그게 되겠냐는 냉소를 던지는 순간. 쉽지 않지만 미래식당이 증명해낸 것처럼 분명히 내 가치를 지켜나가면서도 재무적으로도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또한 ‘그 자리의 성선설’처럼 내가 설계한 영역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인 영향력을 실현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과정은 미래식당의 운영체계와 같이 절대로 이상적이거나 피상적이지 않고 실천적이며 실현 가능해야 한다. 미래식당은 철저한 현실감각 속에서 솔직하게 자신이 해나갈 수 있는 만큼 최대한의 최선을 다해내고 있다. 그 결과 미래식당이 지속 가능하게 그의 가치와 믿음을 현실화해내고 있다.
보통 책은 한 번 읽고 다시 열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이 책은 반드시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번 더 읽고 싶었다. 그리고 꼭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고바야시 사장은 아직 얼굴 한 번 마주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이 책을 통해서 좋은 장사 선배, 인생 선배를 만났다는 느낌이다. 훌륭한 선배들을 만날 때는 항상 이렇게 기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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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경욱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