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바로 너’,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에게’, ‘YG전자’, ‘시에라 연애 대작전’, ‘하우스 오브 카드’의 공통점은? 넷플릭스가 떠올랐다면 당신은 콘텐츠 대세를 잘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세계적인 미디어 공룡으로 성장했다. 넷플릭스 가입자는 현재 세계 190여 개국 1억 3700만 명으로 추정된다. 넷플릭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OTT(Over The Top) 사업자다. OTT는 영화나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인터넷망을 통해 다운로드 하거나 스트리밍 방식으로 바로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맹위 떨치는 외국계 OTT 넷플릭스
영국 BBC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2016년 기준 넷플릭스와 아마존 등 외국계 OTT 기업의 영국 내 시장점유율이 90%를 넘겼다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2012년 영국에 처음 진출했다. 짧은 기간에 영국 국내 사업자를 제치고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올라섰다. 지난 9월 보스턴컨설팅그룹 조사에 따르면, 영어권 유럽국가에서 넷플릭스 시장점유율은 83%다. 스웨덴과 핀란드 등의 비영어권 유럽국가에서는 76%,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비교적 외국 문화가 설 자리가 좁은 나라들에서도 65%의 점유율을 보였다.
2010년 61억 달러(6조9058억 원)였던 세계 OTT 시장 규모는 2016년 370억 달러(41조 8877억 원)로 6년 사이 5배나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2022년 834억 달러(94조4171억 원)까지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는다. 1억이 넘는 가입자들이 하루에 소비하는 콘텐츠는 1억4,000만 시간 정도로 추정된다. 미국 광대역 서비스 회사인 샌드빈이 조사한 ‘글로벌 인터넷 현상 보고서’에 따르면, 황금시간대 인터넷 다운스트림 트래픽 50.31%가 유튜브와 넷플릭스였다. 이중에서도 넷플릭스가 63%로 비중이 높았다.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1,530억 달러(165조 원)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OTT 시장 지배자는 누구?
국내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점유율은 외국에 비해 제한적이다. 국내 OTT 사업자 중에서도 ‘공룡’으로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사업자는 없다. 국내 OTT 사업자로는 KBS 등 4개 지상파 방송사가 투자해 만든 ‘pooq’을 비롯해, CJ ENM의 ‘티빙’, 네이버의 ‘브이라이브’, 카카오의 ‘카카오페이지’, 프로그램스의 ‘왓챠플레이’,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 KT의 ‘올레TV 모바일’, LGU+의 ‘LTE 비디오 포털’, ‘아프리카 TV’ 등이 있다. 주요 업체만 13개다. 아직 지배적 사업자가 없다는 말인 동시에 아직 ‘블루오션’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뜻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OTT 이용 행태 분석을 보면, 국내 OTT 이용률은 30%를 넘어섰다. 넷플릭스가 우리나라에서 방영권을 확보한 콘텐츠는 약 550여 개고, 여기에 투입된 제작비용만 1,500억 원에 이른다. 넷플릭스는 블루오션에 뛰어들어 지배적 사업자 자리를 호시탐탐 노린다.
넷플릭스는 2016년 1월 국내 시장에 들어왔다. 넷플릭스는 중소 방송통신사업자를 공략하고 경쟁 관계인 대형 사업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포섭하는 전략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콘텐츠사업자로서 자체 콘텐츠 강화 전략도 구사한다. 올 한해만 80억 달러(9조 원)를 자체 콘텐츠 제작에 투입하는 ‘현금 소진(cash burning) 전략을 내세운다. 총매출 110억 달러(11조7000억 원)의 7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콘텐츠 동등접근(PAR)’이라는 관점
시장지배적 사업자에게는 당연히 시선이 쏠린다. 넷플릭스처럼 ‘토종’이 아닌 사업자는 더욱 그렇다. 넷플릭스 규제론이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 지난달 1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은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이 국내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며 “기존 환경과 규제 형평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OTT 등 신유형 서비스에 대한 규제제도 정비 기초 작업에 들어갔다. 주요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OTT 사업자 유형의 유료방송사업자 대체성 여부
- 경쟁상황 평가 등 기본 시장현황 분석
- 전기통신사업법과 방송법
- IPTV법상 OTT 사업자의 개념 분류 등
문제는 ‘콘텐츠 동등접근’ 관점이다. 이것은 시청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어떤 방송 플랫폼에서든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2008년 IPTV가 시장에 막 진입했을 때 시장지배적 콘텐츠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해 도입한 규정인데 시장상황 변화로 폐지를 추진중인 사안이다. OTT 사업자의 콘텐츠 장악력이 커지자 다시 이 사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사업자는 이 원칙이 자본의 미디어 투자 의지를 줄였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이 규정이 IPTV 업계의 콘텐츠 투자 의지를 막았고, 새롭게 진입한 OTT 사업자에게는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아 현재의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 논리를 현재 OTT 규제에 적용하면 이렇다. 넷플릭스 등이 국내 플랫폼 사업자에게 콘텐츠를 공급할 때 특정 사업자를 부당하게 차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력 열세의 사업자를 도태시킬 수 있다거나 소비자의 시청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반대 의견도 있다. 시청자가 차별화한 콘텐츠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시장 원리에 부합하고, 유료방송 시장에서는 콘텐츠라는 차별화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외국 사례는 어떨까? 영국과 EU 등 유럽은 사후 규제 차원에서 콘텐츠 동등 접근권을 유지하고 있고, 미국 등 주요 국가는 폐지 추세다. 우리 역시 기로에 서 있다.
OTT는 방송인가, 뉴미디어인가
국감에서 주요하게 지적된 사항은 이뿐만 아니다. 콘텐츠 사업이라는 면에서 방송 사업자들과 OTT는 경쟁을 하고 있는데 해외 OTT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망 이용료 등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혜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6년 기준으로 국내 사업자들은 망 이용료로 다음과 같은 금액을 썼다.
- 네이버 734억 원
- 카카오 200억~300억 원
- 아프리카TV 150억 원
지상파는 수백 억 규모의 방송발전기금을 낸다. 해외 OTT 사업자는 이런 의무를 지지 않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0월 초부터 인터넷 사업자들한테 관련 자료를 받아 해외 콘텐츠제공자들과 망 이용료 지급 계약을 어떻게 맺었는지 살피고 있다. 이를 토대로 방송통신위원회는 공정한 망 이용 협상을 위한 가이드라인과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행위에 대한 규제 근거를 올해까지 만들 계획이다.
OTT 사업자의 지위는 현행법에서 어떻게 정의할까? 현재는 ‘부가통신사업자’로, 지상파와 케이블과 달리 규제에서 자유롭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국감에서 한 답변을 고려하면 향후 넷플릭스 등 해외 OTT 사업자들도 지상파나 케이블처럼 규제하는 쪽으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IPTV법 개정을 통해 OTT에 대해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 OTT 사업자가 국내 시장을 장악해 가는 것을 걱정하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방송패러다임 변화와 규제체계 개선방안: OTT 서비스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김희경 성균관대 교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한해 특수 플랫폼사업자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통신법 제2조 제13호에 ‘시장지배력을 보유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가 통신역무’를 추가할 것을 제안하면서 웹하드, P2P, 문자 대량 전송 서비스처럼 이들에게도 등록제를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다만 망 중립성 등 전송 차등화는 이용자 보호와 공정한 경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8월 24일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통합방송법 공청회’를 통해 국회 ‘언론공정성실현모임’이 지난해부터 준비해 온 ‘방송법 전부개정안’을 공개했다. 이날 박상호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실장은 “유료방송 분류 내에 ‘부가 유료방송사업자’를 규정해 OTT 사업자까지 방송법에 통합하는 내용도 통합방송법 개정안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강력한 규제에 속한다.
9월 4일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일정 규모 이상 서비스를 소비자들이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국내에 서버를 설치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또 넷플릭스를 방송사업자로 정의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넷플릭스도 방송통신발전기금 등을 내야 한다.
규제냐 자율경쟁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OTT는 동적이고 경쟁적인 시장이며 공적인 자원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므로 기존 방송처럼 사회적 영향력 논리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지난 9월 27일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국내 진출에 따른 미디어 시장 환경 변화 세미나’가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열렸다. 발제자로 나선 김성철 교수는 OTT가 우리나라에서 기존 유료방송을 전면적으로 대체하고 있지 않고, 일부만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정도인 만큼 섣불리 규제하지 말고 좀 더 지켜보자고 주장했다. 곽규태 순천향대 글로벌문화산업학과 교수도 규제론에 우려를 표했다. “글로벌 OTT 기업에 대응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데 신경 쓸 것이 아니라 국내 사업자들이 콘텐츠 투자 등 전략적 차별화를 통해 경쟁력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유럽은 넷플릭스에 칼을 빼 들었다. 올해 안에 OTT 사업들을 향한 규제 법안을 발표하기로 한 것이다. 최소 30% 이상 유럽 안에서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자국산업 보호전략의 일환이다. 프랑스는 지난해 외국 OTT 사업자들 연수익에 2%의 세금을 물린다고 밝혔다. 독일은 연매출 중 일부를 영화진흥기금으로 쓴다고 했다. 중국은 해외 OTT가 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프랑스와 독일, 미국 등에서는 이미 OTT 기업들의 수익 일부를 세금이나 발전기금, 망 사용료 등으로 거두기로 했다. 그렇지만 섣불리 규제하는 것 역시 그 부담이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가될 우려를 안고 있다. 세금 인상에 따라 수익률 감소는 결국 구독료 인상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와 함께할 미래는 어떨까
“Netflix and chill?”이라는 말이 있다. 네이버 영어사전에도 등록된 말이다. 우리나라 말로 바꾸면 “라면 먹고 갈래?” 정도다. 남녀 사이에 데이트할 때도 흔히 많이 쓰이는 말이다. 넷플릭스가 그만큼 보편화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OTT 서비스는 우리 미디어 이용 행태도 바꿔놓고 있다. 모바일 환경에서 언제, 어디서든 콘텐츠를 접하는 시대다. 거실에 둘러앉아 TV를 다같이 보기보다 각자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자기 취향에 따라 드라마, 예능, 영화를 본다. 새로운 미디어가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소비자의 삶에 맞지 않는다면 금방 또 달라질 것이다. 미디어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소비자의 의중을 읽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넷플릭스는 고유의 플랫폼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고 또 이를 위해 공격적 투자를 해왔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는 신경쓰지 않고 플랫폼 확장에만 주력하는 국내 사업자들과 전혀 다른 행보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투자는 제작하는 지상파와 tvN의 총합을 훨씬 넘어서는 규모다.
넷플릭스는 최근 미국 TV의 ‘아카데미상’인 에미상에서 112개 후보작을 내고 2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신작 영화 <로마>는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해, 넷플릭스 영화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 기록도 세웠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마켓 서비스를 제공할 때 그 지역의 언어 자막과 그래픽 등을 맞춤형으로 제공해 철저히 현지화한다. 여기에 미디어 사업자들을 위한 답이 있다.
사업자를 보호하는 방안보다는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
-이상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원문: 단비뉴스 / 필자: 장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