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렇게 비속한 그림을 그리다니!
혜원 신윤복은 조선 시대 대표적인 에로티시즘 화가다. 그는 당시 사회에서 금기시하던 남녀의 밀회, 구애를 서슴없이 그림에 담아냈다. 남성과 양반 중심 사회에서 은폐되어야 했던 여성을 회화의 주체로 전면 등장시켰다. 그의 그림에서 여성은 생기 어린 표정과 행동으로 스스로를 드러내 ‘성욕’의 적극적 주체가 된다.
‘과부’란 그림이 대표적이다. 생식의 계절, 분홍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 개 두 마리가 짝짓기하고, 소복 입은 과부는 그것을 보며 피식 웃는다. 옆의 시누이는 웃지 말라고 과부의 허벅지를 꼬집는다. 강명관이 쓴 〈조선풍속사 3〉은 혜원의 그림 ‘과부’가 남편 잃은 여성의 억압된 성(性, SEX)을 폭로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조선 시대는 성에 있어 남녀가 철저하게 불평등한 사회였다. 뿌리 깊은 성리학, 남성 중심 사회는 남녀가 유별하다며 성적 역할을 가르고 각종 도덕을 가르쳤지만, 그 도덕률은 대부분 여성에게만 적용되었다. 〈소학〉은 ‘남녀칠세부동석’을 얘기하는데, 7세 이후 집과 뜰 안에 유폐되어야 하는 것은 오직 여성이었다. 여성의 행동반경을 제한하고, 남성과 접촉을 막음으로써 ‘성적 욕망’의 기회를 애초에 차단하고자 한 것이다.
가장 극단적 성적 억압의 형태는 과부의 ‘수절’이다. 여성은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거나 평생 홀로 정절을 지켜야 했다. 남성이 얼마든지 재가, 삼가 하고 여러 첩을 거느린 것과 대조적이다. 죽음으로 수절한 여성에게는 열녀비를 세우고 가문에 세금 감면까지 해주었다. 조선 여성의 ‘성’은 철저히 억눌렸고 남성에게 지배됐다.
빌헬름 라이히는 1930년대 권위주의 국가 독일을 배경으로 정치적 권위주의와 성의 관계를 연구한 바 있다. 그는 “반동적 성 정치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성을 생식에 봉사할 때만 도덕적이라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즉 권위주의 국가는 섹스를 국가와 민족을 위한 생산에 복무할 때만 도덕적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남성적 권위주의, 유교적 지배 질서가 그토록 엄한 조선에서 여성의 성이 억눌렸던 게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특히 ‘성의 도덕화’는 여성에게 더 적용되는데 여성은 출산과 생식이라는 ‘신성한’ 역할을 맡았으며, 쾌락을 위한 섹스는 여성, 어머니를 타락시킨다는 식이다. 신성한 모성(母性)과 무성적 이미지를 부여한다.
권위주의적 위계질서 속에서 여성의 성욕은 철저히 부정된다. 여성은 성적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출하거나 해소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한다. 성이 억압된 채 살았던 수많은 조선 여성들처럼. 요즘 여성들 역시 자신의 성욕을 제대로 긍정하거나, 표출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가 많다. 여성의 ‘성욕’을 긍정하지 않는 사회의 지배적 분위기 때문이다.
여자가 섹스에 관해 잘 모를수록 좋고, 만난 남자는 적을수록 좋다는 인식은 보편적이다. 산부인과에서 출산 후 ‘이쁜이 수술’(질 축소 수술)이 패키지로 따라오고, 처녀막 재생 수술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이 그 방증이다.
반면 남성은 성욕을 얘기하고 자유로이 표출하며 나아가 과시까지 한다. 남성에게 섹스는, 여성은 가질 수 없는 주체적 욕구이며 여성에 대한 지배력을 상징한다. 권력과 자원을 많이 가진 남성일수록 더 많은 여성과 섹스를 할 수 있다.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이 섹스의 관계는 성이야말로 남-녀 성차별이 나타나는 뚜렷한 경계임을 보여준다.
작년 EBS 〈까칠남녀〉 여성 패널 은하선은 ‘자위’라는 주제로 얘기하면서 “맨날 하는 정도”라고 언급했다가 권고 조처를 받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다른 남성 출연자는 구체적 자위 방법까지 얘기했지만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은하선은 그의 저서 〈이기적 섹스〉에서 말한다.
중요한 건 남의 욕망이 아니라 내 욕망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찾아낸 내 욕망을 입 밖으로 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혜원의 그림으로 돌아가면 ‘밀회’를 비롯해 그가 그린 수많은 여성의 얼굴에는 생기 있는 욕망, 성적 리얼리티가 담겨 있다. 성욕을 긍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성’의 주체로서 결정하고 판단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타인이 원하거나 사회 지침이 정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삶을 의미한다.
여성은 성욕을 긍정하고 표현함으로써 가부장적 지배관에서 벗어나 성의 주인으로 온전히 설 수 있다. 혜원의 그림은 조선 여성의 억압되고 은폐된 성을 꼬집었다는 것만으로도 여성의 ‘주인 된’ 면모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원문: 단비뉴스 / 필자: 조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