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정희준 부산관광공사 사장은 대형 스포츠 대회 유치나 스타 육성에 치우친 체육교육 등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해 팬과 함께 ‘안티’도 많다. ‘좋은 기자’를 고민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에게 그는 언론이 스포츠를 대하는 방식을 설명하며 특강 두 번째 주제 ‘차별과 언론’의 말문을 열었다.
한국에서 스포츠를 전공한다는 것은 행운아입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광을 기억하시나요? 4년마다 6월이면 온 언론, 아니 국가 전체가 주목하죠. 많은 기사가 쏟아지죠.
축구경기 A매치가 있는 날이면 포털 사이트만 봐도 한마디로 난리가 난다.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고 언론마다 주요 기사로 다루면서 거의 전국민이 경기 결과와 수훈 선수 등을 알게 된다. 정 사장은 이런 현상이 굉장히 신기해서 다른 나라 언론도 이렇게 스포츠에 주목하는지 알아보았다. 그는 “자국 경기가 있어도 머리기사로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해당 섹션으로 이동해야 볼 수 있었다”며 차이점을 설명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스포츠는 사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스포츠에 담긴 각종 이데올로기, 특히 스포츠를 통해 강화되는 성과 인종 차별에 대해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사회가 남자와 여자를 다루는 방식
영화 ‘1987’ ‘태양의 후예’ ‘택시운전사’ 속 주인공의 남자와 여자 모습을 떠올리면 어때요?
정희준 사장은 대중문화에 만연한 성역할 차별을 지적했다. ‘1987’과 ‘태양의 후예’에는 예쁜 여성이 남성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역할이 설정되고 ‘택시운전사’도 그저 남성들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정 사장은 야구선수와 치어리더 사진를 차례로 보여주면서 “자연스럽지 않나요”라고 반문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남자 선수들과 짧은 옷을 입는 여성 치어리더, 그 자체로 뚜렷한 성역할이 스포츠에서 되새김질 되고 재확인된다는 것이다.
스포츠를 다루는 미디어도 다르지 않다. 그는 “남성 선수와 여성 선수를 다루는 방식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면서 “여성에게는 운동선수라는 정체성보다 눈요깃거리를 독자에게 제공하려 한다”고 했다. 남자선수라면 들이대지 않았을 카메라 구도가 여성 선수에게는 강요된다는 것이다. 여성의 성상품화는 여성 운동선수도 피해갈 수 없다. 미디어에게 여성 운동선수는 선수라기보다 ‘여성’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여성의 성역할을 강요하는 것이다. 기혼 골프 선수에게 가정에서 아내나 엄마의 역할을 묻는 기사를 예로 들며 미디어가 여성을 바라보는 한계를 지적했다.
남성 선수라면 프로선수로서 능력만 이야기하겠죠. 근데 여성 선수에게는 가족적 가치를 덧입혀야 ‘온전한 상품’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거기에 ‘차별’이 담겨있는 겁니다.
그 남자는 왜 근육을 만들었을까
정 사장은 <머슬>(muscle)이라는 잡지에서 나온 전면 사진 광고를 보여주면서 “한마디로 ‘남성 우월주의’를 보여주는 사진”이라고 했다. 맨 앞에서 독자를 똑바로 쳐다보는 근육질 남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이는 매끈한 근육을 가진 남자와 비교되고 주변을 둘러싼 여자들과도 대조되는 ‘이미지’다. ‘강한 남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표현한 사진이라는 것이다.
이어 우리나라가 근육질 몸매에 환상을 갖게 된 상황을 말했다. 정 사장은 “90년대 중반 MBC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차인표가 상반신을 벗고 나왔다”면서 “브라운관에서 남성의 근육질을 보여준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 사례로 답을 대신했다.
미국은 70년대부터 피트니스 붐이 불었어요. 이것은 여성의 사회진출과 맞물려 있는데 여성이 양성평등 주장하고 페미니즘 논의가 나오면서 상대적으로 남자들이 밀려나는 박탈감을 달래기 위해서 ‘근육 만들기’에 들어간 거죠.
‘용감해야’ 했던, 세상을 바꾼 여성들
간호사이면서 교사였던 마가렛 싱어가 미국 최초 산아제한진료소를 만든 것은 102년 전인 1916년이었다. 정 사장은 “그녀가 ‘여성은 출산기계가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았다”면서 “남성들과 종교계의 엄청난 반발 속에 목숨을 걸고 그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102년 후인 현재도 ‘낙태법’을 둘러싼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을 두고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마가렛 싱어가 아직 살아있다면 어떤 말을 남겼을까?
여성해방 그 자체보다 여성 해방을 대하는 남성 저항의 역사가 더 재미있다.
정 사장은 버지니아 울프의 말도 인용했다. 그의 말은 한마디로 ‘백래시(Backlash: 반격)’였다. 최근 미투운동으로 여성 인권 신장이 활발해졌다는 사회적 평가와 함께 거기에 따른 백래시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미국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가 쓴 『백래시』가 지난해 말 한국어판으로 출간됐는데, 이는 1980년대 미국 현실을 바탕으로 1991년에 나온 책이다. 30여 년 전 미국의 현실은 2018년 한국에도 여전히 유효한 공식이다. 자기네 영향력과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남성의 ‘페미니즘 반발’은 상대적 여권 신장과 함께 어쩌면 예상되는 현상이다. 최근 대학가에서는 페미니즘을 말하는 대자보가 찢기고,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가수가 비난을 당한다.
정 사장은 여성의 스포츠 참가 제한 규정이 있던 시절 이야기도 했다. 여자가 마라톤을 하면 안 되던 시절인 1967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에 캐서린 스위처라는 여성이 바지를 입고 ‘나도 할 수 있어’라고 뛰었다는 것이다. 마라톤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여성해방운동’이었던 셈이다. 당시 대회 관계자가 캐서린을 끌어내려 했는데 코치와 남자친구가 보호하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50년 만인 2017년에 캐서린 스위처는 다시 보스턴 마라톤에서 뛰었다. 대회 주최 측은 당시 캐서린이 달았던 26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여성이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여성운동인 경우가 많고, 발전을 가지고 오는 때가 많습니다.
인종차별에 항의한 시팅맨, 콜린 캐퍼닉
지난 9월 나이키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캠페인 30주년 광고영상에 한 흑인 남자가 등장했다. 바로 시팅맨(Sitting Man)으로 불리는 미식축구선수 콜린 캐퍼닉(30)이다. 2016년 8월 26일 미국프로풋볼리그(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에서 쿼터백을 맡고 있던 그는 경기 시작 전 국민 제창 때 기립을 거부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당시 미국 경찰이 흑인을 과잉 진압하며 무고한 시민을 총으로 쏴 죽이는 일이 잇달아 발생하자 인종차별에 항의한 행동이었다.
캐퍼닉의 행동은 미국 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옹호했지만,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트럼프는 며칠 뒤 라디오에 출연해 ‘맞는 나라를 찾아가라’며 비판했다. 무릎 꿇기 저항은 NFL을 넘어 예술계, 학교 등으로 퍼지며 1년 넘게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민의례를 안 하는 것은 참전군인 모독이라며 선수가 무릎 꿇기를 하면 구단에 벌금을 물리는 조처를 취했다. 캐퍼닉은 지난해 3월 샌프란시스코와 계약이 끝난 뒤 아무 팀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무직 상태로 지냈다. 정 사장은 이를 언급하며 “샌프란시스코 주전 쿼터백이면 어느 팀도 갈 수 있는데 아무 팀도 받아주지 않았다”며 나이키 광고가 용감하고 좋은 마케팅이라고 말했다.
스포츠계의 인종차별, 스태킹
스포츠는 흑인들이 꿈을 갖고 진출하는 대표적인 분야지만, 역설적으로 인종차별도 가장 두드러진다. 정 사장은 스태킹(stacking)을 사례로 들었다. 스태킹은 ‘물건을 쌓는다’는 뜻의 단어로 피부색에 따라 위치, 곧 포지션을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 사장은 “메이저리그 야구 수비 포지션 중에 백인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어디일까요”라고 물었으나 정답이 안 나오자 “포수”라고 자답했다.
그는 현재 흑인이 주전포수를 맡고 있는 팀이 생각나는지 물었다. 좌중은 조용했다. 포수는 ‘야전사령관’이라고도 불린다. 정 사장은 흑인 포수가 적은 이유가 지적 능력이 모자라다는 고착된 편견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신 동물적인 감각이 요구되는 3루수나 강철 같은 어깨가 필요한 외야수로 갈수록 흑인 비율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백인은 ‘사령관’이고 흑인은 ‘동물 같은 운동감각을 지닌 자’라는 인식이 고착돼 있어 운동을 배우는 흑인 아이들은 아예 포수가 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미식축구는 인종에 따른 포지션 차이가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미식축구의 사령관은 쿼터백이다. 쿼터백은 거의 다 백인이고, 빠른 속도로 상대를 따돌리고 골까지 달려야 하는 러닝백은 흑인이 대다수다. 정 사장은 프론트 라인을 가리키며, 힘도 세고 거구여야 하는 센터 포지션은 흑인일 거라고 생각되지 않느냐 물었다. 하지만 센터는 거의 백인이었다. 중앙에서 멀어질수록 흑인 비율이 높아졌다. 그는 이게 바로 실력이 아닌 피부색에 따라 포지션을 결정하는 스태킹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흑인과 백인 사이에 신체적인 차이가 있는 건 아닐까요?
한 학생이 질문하자 정 사장은 그것도 편견이라고 답했다. 세계 육상 100미터 결승을 보면 8명 다 흑인이고 저마다 터질 것 같은 근육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흑인의 신체조건에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근육질의 백인 8명이 뛰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100미터는 백인들이 우승했다고 말했다. 백인들이 점점 다른 종목에 관심을 갖게 되고, 흑인이 육상으로 몰리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흑인들은 롤 모델이 없으면 새로운 분야에 들어가기 주저하게 돼요. 그러다가 고착되는 거죠. 근육 좋은 백인 남자가 왜 없겠어요. 100미터 단거리를 안 하는 거예요.
흑인과 백인 뿐 아니다. 정 사장은 한국인은 신체 조건 때문에 수영을 못하는 거냐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그는 박태환과 일본과 중국의 선수들 예를 들며 시도를 안 해서 좋은 선수가 많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에서도 사회인 선수로만 이뤄진 일본이 은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은 5천여개나 되는 고등학교 야구팀이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많은 일본인들이 야구를 하기 때문이라며 저변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정 사장은 인종문제가 있으면 특정 인종이 특정 종목이나 포지션으로 몰리고,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차별과 언론, 그리고 스포츠
권력이 생기면 차별이 생겨요.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이 바로 차별이에요.
정 사장은 차별이 언제 생겨나는지를 언급하며 권력 문제를 지적했다. 권력 자체가 차별을 즐길 수밖에 없다며, 남성이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권력은 조심스러워야 하며 항상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흑인 인권 운동에 앞섰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야기를 꺼냈다. 킹 목사의 아내조차 ‘대체 인종차별이 뭐냐’고 질문한 적도 있다. 살고있는 세상이 너무 당연해서 자기가 차별당하고 억압당하고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정 사장은 지적했다.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한 1968년, 그해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달리기 200미터 시상식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흑인 선수 둘이 고개를 숙인 채 맨발로 시상대에 올랐다. 가슴에는 ‘인권 올림픽’ 배지를 달고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맨발은 백인에 의한 흑인 린치와 흑인의 빈곤을, 검은 장갑은 흑인의 프라이드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였다. 은메달을 딴 호주 피터 노먼도 같은 배지를 달았다. 이 장면은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두 선수는 메달을 박탈당하고 선수촌에서 쫓겨났다. 운동을 계속하지 못하고 세차장에서 일했다.
차별받는 사람들은 여성이든, 흑인이든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돼요.
정 사장은 19세기 말 20세기 초반 영국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실제로 목숨을 걸었다고 말했다. 서프러제트(suffragette) 운동을 언급하며, 1913년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 사례를 들었다. 경마장에서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며 말 앞으로 뛰어들었다가 두개골 골절로 사망한 여성 운동가다. 정 사장은 그가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 중에서도 왕이 오는 날을 선택한 것이라며 그렇지 않고는 변화를 초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던 페미니스트들이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은 그 방식으로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처지를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장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