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친께서 카톡에서 이런 게 돌아다녀 속상하다고 글을 하나 보내오셨습니다. ‘북한철도 연결의 허구성’이라는 글이었습니다. 완전 무식의 향연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야기한 걸 살펴보면 지지자들도 남북철도 연결에 대해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정리하는 기회도 될 것 같아 정리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혹시 카톡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얘기가 돌아다니는 게 보이면 언제라도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제가 다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정리해보겠습니다.
1. 건설 비용
건설비가 최소 수십 조에서 최대 100조다.
카톡 찌라시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선 북한 철도는 개·보수에서 완전 신설까지 여러 시나리오가 가능하므로 지금 단계에서 비용을 정확하게 추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고속철도 건설비가 경부 1차, 2차, 호남, SRT까지 모두 합쳐 34조입니다. 북한 철도를 전부 KTX로 깐다고 해도 이 선을 넘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북한 철도는 여객 수요보다 화물 수요가 더 중요하므로 고속전철, 혹은 일반 철도가 메인이 될 것이고, 필요할 경우 KTX가 추가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경우 일반 철도와 고속철을 다 합쳐도 약 30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가장 극악무도한 조선일보가 나름 이성을 가지고 추정한 비용이 64조입니다.
2. 여객 수요
일반적으로 육상 여객의 수요 한계선이 4시간이다. 도로든 철도든 4시간 넘어가는 순간부터 그 수요가 항공편으로 대체된다.
찌라시에서는 이렇게 아는 척하는 건 북경이 고속철로 6시간 걸린다는 것을 염두에 둔 말로 보입니다. 비행기로 2시간 가는 거나 기차로 6시간 가는 거나 공항으로의 이동 시간 등을 감안하면 큰 차이 없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것은 무시해도 좋습니다.
남북철도의 여객 수요는 북경권이 아닌 중국 동북 3성 지역이 중심이 됩니다. 지금 북한 내 고속철 및 철도 건설에 중국이 우리나라만큼 목숨을 걸었습니다. 제재만 풀리면 자기들이 뛰어들어 건설하든가, 최소한 한국과 공동으로 참여하려고 갖은 공작을 펼칩니다. 북한 철도가 정상화되면 중국 동북 3성이 바로 한국 경제권과 연결되고 일본 경제권과 근접해지기 때문입니다.
중국 동북 3성은 이미 중국의 중공업 기지 역할을 하고, 북경-상해 중심의 중국 중심권 이후 가장 높은 생산력과 가능성을 가진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동쪽 바다가 막혀 있어서 일본과의 거래에 매우 불편한 지형적 한계가 있습니다. 여객-화물 모든 면에서 중국에서는 남북 철도 연결을 동북 3성 발전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여깁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동북 3성은 남북철도가 연결될 경우 우리나라의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것입니다. 이 지역의 인구 규모가 지금 우리나라를 새롭게 먹여 살리는 베트남과 같습니다. 그러나 산업 발전 단계는 베트남보다 더 진전되어 있습니다. 시장 측면으로나 경제협력 파트너 측면이나 중국 동북 3성이 우리나라와 직접 연결이 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기회입니다.
찌라시에서 아는 척하느라 얘기했던 “육상 여객의 수요 한계선이 4시간”이라는 말을 다시 돌이켜보죠. 중국 동북 3성의 주요 지역은 모두 고속철로 4시간 이내의 지역입니다. 여기에 현재 중국 전역은 전 세계에서도 고속철도가 가장 강력하게 완비되는 지역입니다. 서울-북경 왕복 편만 생각한다면 비행기로 가는 게 낫겠지만 우리나라의 KTX가 중국 전역의 고속철도망과 연결된다는 것은 서울-북경 왕복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물론 중국과의 연결은 둘째 문제고 북한 지역이 KTX로 연결되는 것만 놓고도 경제성은 충분히 넘치고도 남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KTX가 쓸데없이 돈만 쓴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북한에 KTX가 깔린다는 것은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고 제재도 완전히 풀려서 남북 간 경협을 위한 여건이 완비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나 북한이나 KTX를 타고 서로 오갈 일은 엄청나게 많아집니다.
3. 화물 수요
국제물류에서 철도는 운임에서 선박에 비교 불가로 밀리고, 신속성에서는 항공에 게임이 안 된다. 국제 수출입 물류의 메인은 선박이다.
찌라시류에서 하는 얘기는 내용은 좀 아는데 우리에게 불리하고 지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딱 골라서 얘기하는 것과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으로 나뉩니다. 대부분 후자고 이 글도 후자에 해당합니다. 물류에는 모두 각기 적합한 운송 수단이 있고 철도, 항공, 해운은 각각 특징이 다릅니다. 섬나라가 아닌 대륙 국가는 모든 운송 수단의 특징과 장점을 적절하게 활용합니다.
찌라시는 철도가 운임에서 선박에 비교 불가로 밀리고, 신속성에서는 항공에 게임이 안 된다고 했는데 장점을 따지면 정확하게 반대입니다. 철도는 신속성에 있어서 선박에 비교 불가로 우위고, 운임에 있어서 항공과는 게임이 안 됩니다. 신속성과 운임에 있어서 항공과 해운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화물 수요는 매우 폭넓게 존재합니다. 단지 섬나라는 그 장점을 원천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TSR의 극동지역 출발지인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배로 이틀, 환적 및 통관에 8일씩이나 걸리지만 특정 화물에 있어서는 그래도 배로 40일 넘게 걸려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므로 유럽 동부나 러시아 지역에 보내는 화물은 이 루트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현재 현대글로비스가 TSR 직행노선을 운영하는데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상트페테스부르크까지 중간기착지 없이 직행으로 운행하는 서비스입니다. 이것이 총 22일 걸리는데 같은 구간을 해상으로 운송하는 시간 43일의 딱 절반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TSR이 직접 연결되면 우선 해운과 환적에 소요되는 10일이 줄어들고 화물 운송 열차는 더 고속화, 대형화되어 운송에 걸리는 시간이 더 빨라지면서 운임은 더 저렴해질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100% 항공과 해운에 의존하는 일본의 유럽 수출 수요까지 추가되어 수요는 더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4. 섬나라의 이점?
한국은 대북연결 없이 실질적 섬나라로 잘 살아왔다. 영국, 일본, 호주 모두 대륙과 연결 없이 선박/항공으로 섬나라로 잘 산다.
위의 화물 수요 부분이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얘기라면, 이 얘기는 완전 정신 나간 소리입니다. 영국, 일본, 호주 중 호주는 대책이 없겠지만 영국은 이미 도버해협 해저철도를 건설한 바 있고 일본은 한일 해저터널을 가지고 틈만 나면 징징댔습니다.
1994년 완공된 도버해협 해저철도는 50km 구간 건설비가 18조 원 들었습니다. 이 비용은 2004년 개통된 우리나라 KTX 1단계 서울-대구 223km 구간의 건설비와 같습니다. 시점에 따른 실질 금액의 차이는 무시하더라도요. 구간 건설비용만 따지면 우리나라 KTX의 4.5배나 되는 초 고비용이었습니다. 찌라시의 말대로 영국이 선박과 항공만으로 잘 나간다고 생각했다면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죠.
한일 해저터널은 대략 200km 길이에 구간과 건설 방법에 따라 적게는 60조, 많게는 200조 원을 예상합니다. 남북철도가 연결되면 일본은 더 몸이 달아서 별 희한한 조건 다 내걸고 해저터널 좀 만들자고 엉엉 울며 매달릴 겁니다.
이에 비해 400km 정도인 개성-신의주 간 고속철도는 대략 20조 원 정도를 예상하지만 사실 온갖 비용을 최대로 상정했을 때 나오는 최대 추정치입니다. 도버해협 해저철도와 한일 해저철도에 비하면 완전히 거저인 것이죠.
5. 러시아 광궤
철도 궤간부터가 러시아는 광궤라, 표준궤를 쓰는 북조선 국경을 벗어나는 순간 호환성이 극악인 무용지물이 된다.
각 나라는 철도 발전 단계에 따라 철도 궤도의 폭이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표준궤를 채택하지만 철도가 일찍 발달한 유럽과 러시아는 주로 광궤를 채택하고, 유럽은 그 와중에 좁은 지역 내에서도 국가마다 궤도의 폭이 다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일찌감치 문제 해결의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이 기차를 만들 때 바퀴의 폭을 철로에 맞추어 변화시키도록 하는 ‘궤간가변대차’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2014년에 이 기술을 개발해놨습니다. 이명박근혜 정권 들어 남북철도연결사업이 된서리를 맞았지만 산하기관에서는 그래도 참여정부 시절 착수했던 철도연결의 꿈을 버리지 않고 연구와 개발을 계속해왔던 것이지요.
6. 묻지마 퍼주기?
국제철도협력기구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기구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철도로 연결되어 있는 29개국이 가입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유라시아 대륙에 포함되어 있는 국가이면서도 철도를 연결할 수 없어서 가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기존 회원국인 북한이 남북철도연결의 의지를 밝히면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우리나라도 회원국이 됐습니다.
이 기구는 국제 철도운행과 관련해 교통신호부터 운행방식, 표준기술, 통행료 등 모든 요소에 통일된 규약을 협의하고 제시하는 기구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북한에 철도를 건설하면 그냥 우리나라랑 북한이랑 으쌰으쌰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국제규약을 기준으로 건설되고 운영됩니다. 따라서 국제철도협력기구의 표준 규약에 따라 투자수익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맨날 퍼주기, 퍼주기 하는데 인도적 지원과 무역 거래를 제외한 현물 지원은 모두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차관으로 제공됩니다. 우리가 뭘 주면 북한에서도 뭘 가져오는 구상무역 형태로 지원됩니다. 우리 돈으로 북한에 철도를 닦고 길을 열어도 그냥 공짜로 해주는 게 아닙니다. 맥쿼리 식으로 완전 등골을 뽑아먹는 식으로는 안 하겠지만 철도 건설을 통해 얻는 간접적 경제효과와는 별도로 직접적인 운영 수익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남북철도 간략 정리
참고하시라고 좀 자세히 쓰다 보니 글이 매우 길어졌습니다. 이 내용을 최대한 간략하게 요약해보겠습니다. 카톡으로 날릴 수 있는 곳이 있으시면 널리 널리 날려주시기 바랍니다.
건설 비용
- 북한 철도 건설은 화물 수요 위한 일반 철도가 우선
- 일반 철도 10조 내외, 고속철 20조 이하로 추정
- 가장 극악무도한 조선일보가 추정한 것이 64조
여객 수요
- 여객 수요 직접 대상은 북한과 중국 동북 3성
- 중국은 동북 3성 개발을 위해 북한 철도 개발에 완전 눈독 들임
- 중국 동북 3성은 우리나라에도 매우 중요한 새로운 시장
- 남북경협 위한 남북 간 왕래 수요만으로도 개발비용 환수하고도 남음
화물 수요
- 신속성: 항공>철도>해운, 운임: 항공<철도<해운
- 철도: 중규모 장거리 화물을 위한 최적의 운송 수단
- 자연재해 영향 적은 가장 안정적 운송 수단
- 우리나라도 이미 시베리아 횡단열차(TSR) 적극 활용 중
- 우리나라 TSR 직접 연결 시 수요 폭발적 확대
- 국내뿐 아니라 일본의 수출입 수요까지 흡수
- 수송 열차의 고속화, 대형화 촉진
- 운임은 더 낮아지고 속도는 더 빨라짐
대륙철도 연결이 숙원사업인 영국과 일본
- 섬나라 영국, 일본의 필생의 숙원사업: 대륙철도 연결
- 도버해협 해저철도: 50km 구간 18조 → KTX 1차 223km 구간 건설 비용과 동일(거리 기준 4.5배)
- 한일 해저터널에 목매달고 있는 일본: 200km 구간에 60조~200조 추정(KTX 대비 3-10배)
- 남북철도 연결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대륙철도 연결 사업
- 건설 비용은 영국, 일본에 비하면 거의 거저
철도 건설 퍼주기?
- 국제철도협력기구: 철도의 국제협력에 대한 국제 표준 규약
- 우리나라는 북한의 협조로 올해 가입
- 국제철도협력기구 규약에 따라 운영 수입 등 투자 비용 회수
러시아 광궤
- 러시아는 우리나라와 철도의 폭이 달라 연결 시 별도의 조치가 필요함
- 이미 최적의 기술인 ‘궤간가변대차’ 기술 개발 완료(철도연구원)
원문: 고일석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