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현재 이 글은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정보의 생성과 전파가 말도 안 되게 빨라졌다.
그래서 지금은 특정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만큼이나 눈앞에 펼쳐진 자료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별하는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세상이다.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영어 자료가 한국어로 금방 번역 후 소개되기 때문에 잘못된 번역에 대한 경계도 예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미국 경제학 교수의 ‘학점 평등’ 실험
페이스북에서 한 글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미국 어느 대학교 경제학 교수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경제학을 가르쳐 오면서 단 한명에게도 F 학점을 줘 본일이 없었는데 놀랍게도 이번 학기에 수강생 전원이 F를 받았다고 한다.
학기 초에 학생들은 오바마의 복지정책이 올바른 선택이고 국민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가난하거나 지나친 부자로 살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평등한 사회에서는 누구나 다 평등한 부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교수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
“그렇다면 이번 학기에 이런 실험을 해 보면 어떨까? 수강생 전원이 클래스 평균점수로 똑같은 점수를 받으면 어떻겠냐?”
학생들은 모두 동의를 했고 그 학기 수업이 진행되었다.
얼마 후 첫번째 시험을 보았는데, 전체 평균점이 B 가 나와서 학생들은 모두 첫시험 점수로 B 를 받았다. 공부를 열심히 한 애들은 불평했고 놀기만 했던 애들은 좋아했다.
그리고 얼마 후 두번째 시험을 쳤다. 공부 안하던 애들은 계속 안했고 전에 열심히 하던 애들도 이제는 자기들도 공차를 타고싶어 시험공부를 적게 했다. 놀랍게도 전체평균이 D 학점이 나왔고 모든 학생이 이 점수를 받게 되었다.
이번에는 모든 학생들이 학점에 대해 불평했지만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애들은 없었다.
그 결과 다음 3번째 시험은 모두가 F 를 받았으며 그후 학기말까지 모든 시험에서 F 학점을 받았다. 학생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고 불평했지만 아무도 남을 위해 더 공부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학생들이 학기말 성적표에 F 를 받았다.
그제서야 교수가 말했다.
“이런 종류의 무상복지 정책은 필연적으로 망하게 되어있다. 사람들은 보상이 크면 노력도 많이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시민들의 결실을 정부가 빼앗아서 놀고먹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아무도 열심히 일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이런 상황에서 성공을 위해 일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니까.
존재하지도 않은 실험
논리구조의 황당함(‘복지=무상’ 등식, ‘오바마 복지=공산주의’ 등식)을 다루려는 게 아니다. 위 이야기의 오류를 지적하는 의견은 이미 차고 넘친다.
그보다 내가 더 흥미롭게 지켜본 건, 너무나 많은 사람이 위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인 현상이다. 나는 글을 여는 첫 단어인 ‘미국 어느 대학교 경제학 교수’ 부분에서부터 이 이야기가 허술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검색을 좀 해보니 스놉스닷컴에서 전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페이지 & 스놉스닷컴 관련 연합뉴스 기사)
이 이야기의 원형은 2009년 3월께 처음 만들어졌다. 2009년 3월판 이야기는 ‘텍사스테크대학 경제학 교수’가 ‘사회주의‘(socialism)를 언급하면서 저런 실험을 했다고 나온다.
텍사스테크대학교의 한 경제학 교수가 말하길, 그는 이제껏 학생을 낙제시킨 적이 없었지만 딱 한 번 수강 인원 전부를 낙제시킨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사회주의(socialism)가 제 몫을 다하고 있다고, 아무도 가난하지 않고 아무도 부유하지 않은 완벽한 평등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텍사스테크대학교는 실존하는 대학이긴 하다)
2009년 3월이면 오바마가 임기에 들어선 직후이다. 결국 4개월이 지나자 이야기가 조금 윤색된다. ‘사회주의‘가 ‘오바마의 사회주의‘로 변한 것이다.
학생들은 오바마의 사회주의(Obama’s socialism)가 제 몫을 다하고 있다고, 아무도 가난하지 않고 아무도 부유하지 않은 완벽한 평등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교수는 말했다. “좋다. 이제 오바마의 계획으로 이 교실에서 실험을 진행해보자.”
‘오바마의 사회주의’로 주제가 바뀐 이 이야기는 미국 인터넷을 휘저었다.
그리고 2013년 2월23일(현지시각), 웨인 듀프리라는 티파티 운동가의 홈페이지에 ‘이 선생 죽이는데! 오바마식 사회주의 실험 폭망, 수강생들도 전원 망함ㅋㅋ‘(THIS TEACHER ROCKS! Entire Class Fails when Obama’s Socialism Experiment Fails)이라는 식으로 또 게재됐다.
일베 유저의 악질적 오역
그리고 듀프리의 글을 한국 웹으로 가져온 ‘김승규’는 잘못된 번역을 했다.
그는 원문에 쓰인 ‘Obama’s socialism’을 ‘오바마의 복지정책’으로 번역했다. 이는 원문이 포함한 ‘사회주의’(Socialism) 개념과 ‘공산주의’(Communism) 개념의 혼동에다가 새로운 혼란을 더한 꼴이 됐다.(원문과 번역문이 제시하는 시나리오는 기본적으로 공산주의 개념이다)
명백한 개념어인 ‘사회주의’를 두고, 어째서 번역문에다가 ‘복지’를 넣었는지 그에게 묻고 싶다.
한편 ‘김승규’는 듀프리의 덧붙임 말도 번역에서 제외했다. 듀프리는 원문 하단에 이런 말을 추가했다.
이 시나리오를 함께 접한 모든 분에게, 방문해주신 것과 이 이야기를 읽어주신 데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여러분 대다수는 저와 생각이 비슷할 테고, 위 시나리오를 읽었을 테고, 그리고 이런 실험이 실제 교실에서 이뤄진다면 바로 이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점을 알고 계실 겁니다. 모두 낙제하겠죠. ‘만약’이나 ‘하지만’ 따위는 없습니다. (…)
이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일은 아닙니다만 개념 자체는 사실입니다! 결과 역시 사실입니다! 이 글을 공유하면서, 사회주의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일깨워준 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김승규’는 “This story is not TRUE”라는 원글 작성자의 말을 어째서 번역하지 않았을까. 만약 이걸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면, 이런 누락은 그 자체로 심각한 ‘오역’이다.
‘오바마의 사회주의’를 ‘오바마의 복지정책’으로 번역하고, 원작자의 덧붙임말을 떼어내 버리는 사람은 온전한 의미의 번역자라고 인정하기 힘들다.
그가 생산해낸 오역은 아래 같은 사회적 비용과 혼란을 초래한다.
오역은 인터넷을 타고…
웨인 듀프리의 글은 지금까지 페이스북 공유 13만1000건을 돌파하는 등 미국 웹에 널리 퍼졌다. 그리고 2014년 1월9일, 드디어 듀프리의 글이 한국 웹에 상륙했다.
일베 유저 ‘김승규’는 웨인 듀프리의 글을 ”읽고 직접 번역”해 일베에 올렸다. 이 번역본이 바로 맨 위에서 소개한 글이다. 제목은 ‘경제학과목에서 전수강생이 F 받은 이야기.ssul‘
좋든 싫든 일베가 한국 인터넷에 끼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구글과 네이버에다가 위 제목에서 .ssul을 뺀 다음 검색해보면 일베와 ‘헐ㅋ’ 페북 페이지 외에도…
큰믿음교회 다음카페, 한국지엠사무지회 홈페이지(현재 삭제됨 – 구글캐시로 확인 가능), 뮬 게시판, 딴지일보 독투불패, 여의도 경희윤동학한의원, Here I Coming이라는 개인블로그, 포모스 등 매우 많은 곳에서 이 게시물이 발견된다.
아마 제목을 바꿔 퍼간 경우까지 포함한다면 이 목록은 훨씬 더 길어질 것이다.
인터넷에는 값진 정보도 많지만, 근거 없는 ‘거짓’ 정보도 많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인터넷에서 접하는 이야기들을 주제로 토론하기 전에,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데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