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기 신도시 총평
이른바 ‘3기 신도시’ 대책에 대해서, 나는 전반적인 방향성에 대해 환영하고 동의하면서도 또 한편에는 걱정도 든다. 이번에는 많은 지역이 택지로 지정된 것 같지만, 사실 지난 통계를 살펴보면 그리 큰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2001년에서 2010년까지 경기도의 신규택지 지정통계에 따르면 매년 평균 2,135만㎡을 지정했고, 2,186만㎡을 공급했다. 이번에 지정한 택지는 2,273만㎡ 규모이므로, 과거 평균치와 대략 엇비슷한 수준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 2010년대 들어 주택경기가 본격적으로 하강하면서, 이후 경기도의 신규택지 지정은 택촉법 폐기와 함께 아예 씨가 말라 버렸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신규 지정은 다 합쳐서 564만㎡에 불과했으며, 기존에 지정된 택지도 소진되어 갔다. 2018년 현재 수도권에도 물리적으로 개발 가능한 땅이 대부분 소진된 상태이며, 이번에 택지를 지정하지 않았더라면 수도권 차원에서도 정말 본격적인 공급절벽이 올 수밖에 없었다.
서울 시내에서 신규 주택공급의 방법을 찾기 어려운 상태에서, 지금이라도 수도권 택지지정에 나선 것은 분명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특히 금번에 지정된 택지들은, 서울시내로부터 20km 동심원에 걸쳐 있는 곳들로서 물리적 여건이 그렇게 나쁘지 않고, 특히 교통망을 연계해 발표했다는 특징이 있다. 마찬가지로 환영할 일이다.
- 가장 규모가 큰 남양주 왕숙지구는 GTX-B를 전제하고 지정했다. 8호선, 경의중앙선 등과의 연계도 감안했다. 특히 BRT를 통해 기존의 별내, 다산을 포함해 남양주시 전체에서 GTX-B와 연계성을 가질 수 있도록 계획했다. 남양주-서울역 간 GTX-B 소요 시간이 15분 정도로 예상되므로, BRT 환승을 감안하더라도 도어 투 도어 40분 내 주파가 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
- 하남 교산지구는 이전부터 물망에 올랐던 곳이다. 이미 왼편으로 감일지구가 조성 중에 있으며, 강남권으로의 접근이 비교적 좋은 편이다. 이번에는 지하철 3호선 연장계획이 포함되었는데, 오금역에서 약 10km를 연장해 수서, 잠실 등지까지 30분에 접근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 많은 사람들이 고촌지구 지정을 예상했으나, 그와는 달리 인천 계양지구가 선택됐다. 그러나 인근사정을 안다면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일 것이다. 김포공항의 존재로 인해 풍무와 고촌 사이로 하루종일 비행기가 날아다니는데, 이 지역은 활주로 접근 직전이기 때문에 항공기 소음 문제가 상당한 문제가 된다.반면 계양지구는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고, 공항철도와의 연계도 생각해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BRT를 통해 김포공항까지 제법 금방 접근할 수 있다.(한편으로 공항철도가 계양지구 북측을 지하로 관통하는데, 추가역 설치가 논의되지 않은 것은 다소 의아하기도 하다. 이미 공항철도는 GTX의 프로토타입이나 다름이 없어서 계양-서울역 간을 30분에 주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 과천은 뭐, 누가 봐도 좋아 보이는 알짜니까 굳이 평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2. 맹점, 화려한 교통정책의 이면
그런데 사실은 맹점이 있다. 지하철과 관련된 이야기다. 발표된 교통 연계 대안중에서, 실제로 예비타당성 평가를 통과했거나 무언가 절차적 진도가 나가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나마 GTX-A가 진도가 빠르게 나가고 있지만 금번 신규 택지와는 관련이 없고, GTX-C는 이제 막 예타를 통과한 단계로 빠르면 2021년 ‘착공’ 목표라고 한다. GTX-B는 남양주 왕숙지구에 6만 6천 가구를 공급하겠다며 전면에 내세웠는데, 이 노선은 아직 경제성 허들도 넘지 못하고 있다. 빨라도 2023년은 넘어야 착공이나마 가능할 것이다.
정부가 약속을 했으니 당연히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나이브함을 넘어서 무책임하다. 청라신도시 분양 당시, 7호선 연장을 전제로 교통분담금을 분양가에 포함시켜 5,000억 원이나 걷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요즘에서야 나오는 이야기가 ‘빠르면 2027년 개통’이다. 이미 입주 15년도 넘어간 시점이 된다. 위례신도시의 트램도 비슷한 사례다.
하물며 기존 신도시도 이런 형편인데, 3호선을 10km 연장해 하남으로 연결하겠다는 조 단위 사업이 순서를 바꾸어 먼저 추진될 수 있을까? 지역 간 형평의 문제가 당연히 대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추가적인 택지지구 공급에 있어 이 문제가 대단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금번 지정 규모는 2000년대의 연평균수준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규모이다. 그런데 지정하는 모든 택지지구마다 무언가 화려한 교통대책을 포함시켜서 발표했다. 그렇다면 다음번에는? 이번보다 더 좋은 입지의 택지만 선정하거나, 아니면 또 비슷한 수준의 교통대책을 무조건 포함시켜야만 할 것인데, 매 약속의 실현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3. 정치인들의 입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발표장에 앉은 정치인들의 자기 정치다.
Q&A 자리에서, 경기도지사는 ‘불로소득을 줄이기 위해 분양 원가 공개와 후분양제 도입’을 이번 3기 신도시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분양보다는 장기공공임대주택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공공택지는, 특성상 분양가의 실체가 아주 명확하다. LH 토지조성 원가 + 평당 건축비 + 교통분담금이 전부다. 그리고 평당 건축비는 서울 시내에 지으나 경기도에 지으나 큰 차이가 없다. 일부러 후지게 짓지 않는 이상, 재료값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결국 ‘원가’를 구성하는 항목은 LH의 토지조성원가인데, 그렇다면 원가 공개를 통해 LH의 ‘불로소득’을 차단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전국의 땅값을 이제 LH토지조성원가로 통일하겠다는 것인가? 입주자의 관점에서는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 것인가?
후분양제는 더 관련이 없다. 어차피 공공택지는 엄밀히 말해 민영사업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시행을 LH가 하고 건설사가 참여하는 형태에 가까운데, 그냥 정부가 돈 다 들여서 지은 후에 그때 가서 추첨을 하건 가점순으로 나누건 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장기임대공공주택이 중심이 되면, ‘배분 우선순위의 철학’이 생긴다.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우선적인 배분을 해야 하고, 재원은 정부가 전부 대야 한다.
당연히 당위적으로 옳고 좋은 일인데, 지금의 상황은 자기 돈 내고 ‘거주’하겠다는, (분명하게 다시 적어두지만 ‘거주’다) 멀쩡히 돈 버는 도시근로자들도 내 집을 찾지 못해서 집값이 급등하고 사단이 난 형편이다. 차상위계층 대책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여전히 공급이 양적으로 불충분함을 감안하면, 재원을 정부가 모두 대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하다.
서울시장의 생각은 또 좀 다른 것 같다. GTX는 도심관통을 허락하지만, 이제 광역버스는 시계에 위치한 환승센터까지만 받겠다고 거의 못을 박았다. 그러니까 여간해서는 거기서 GTX 내지 지하철로 갈아타고 서울로 진입하라는 뜻.
GBC 착공허가와 삼성동 환승센터, 용산, 여의도, 서울역의 큰 그림과 겹쳐서 보면, 그가 생각하는 방향성은 뚜렷해진다. 반면 서울 시내 그린벨트는 양보하지 않았고, 국공유지 활용 등을 통한 주택공급방안은 2만 호도 나오지 못했다. 그나마의 구체적 추진계획은 향후 서울시가 확정하는 것으로 아껴뒀다.
장관님은 여러 정치적 입장들을 아우르느라 애쓰신 것 같다. 시장(market)을 탓하는 듯한 뉘앙스도 많이 가라앉으셨다. 그런데 화려한 광역교통 대책들을 다 꺼내서 던지기는 했으나, 그를 책임질만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복안은 생략되었다.
정말로 저 모든 노선을 이 택지들의 입주 시기와 연계해 지을 수 있다고 보는 건지? 그것이 좌절되고 또 지연되었을 때의 책임은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일단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다소 무리수를 둔 것은 아닌지? 그 와중에 BRT에 수소 버스 끼워 넣은 건 안 어울리게 너무 오버한 건 아닌지…?
마무리하며
사설이 길었다. 서두에서 적었지만, 나는 금번 3기신도시 발표가 굉장히 좋은 방향성과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간의 비판들을 수용한 흔적도 보인다. 특히 BRT를 접목해 지하철로 다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타협한 것도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소한 10년이 걸릴 일들이다. 어느 하나도 쉬울 일이 없고, 많은 절차와 재원을 투입해 산을 여러 번 넘어야 하는 일들이다. 첫술 밥에 배부를 수 없고, 사실 이번 계획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만도 까마득해 보인다. 그런데 사실은, 2011년 이후 거의 10년간 누적되어온 공급 부족이 이제는 서울을 넘어 경기도권까지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라면? 정확하게 다시 적자. 주택 공급 부족이 아닌, ‘양질의 주거수요 대응’이 어느덧 수도권 전체에서 깨져 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계속해와야 하는 일들이 언젠가부터 외면당하고 이루어지지 않고 심지어는 마치 무언가 부도덕한 것으로 오인받아왔는데, 이번에는 기대를 걸어봐도 괜찮을까? 그래도 될까?
원문: 김민규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