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주머니에서 보험료를 빼가는 기득권자 의사들?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해 볼까 한다. 나는 의협이란 단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의협이 정의의 단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또, 평균적으로 볼 때 의사는 분명 고소득자라 생각한다. 물론 새로 의료시장에 진입하는 젊은 의사들은 훨씬 힘든 진입 과정을 거쳐야 할 테지만, 그래도 그들을 결코 사회적 약자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의료영리화, 의료법인 자법인 허용, 원격진료 허용 등의 문제를 둘러싼 논란과 이에 이어진 의사협회의 집단 휴진 투쟁 끝에, 지난 17일 의협과 정부가 극적으로 합의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정작 논란이 되었던 의료법인 자법인 및 원격진료 허용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진전이 없고, 보험료와 의료수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의사의 지분을 늘려 의사들이 보다 용이하게 보험료와 의료수가를 올릴 수 있게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의료수가와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에 사람들은 “안 그래도 돈 잘 버는 의사들에게 왜 돈을 더 안겨주느냐”고 반박한다. 언론은 이 주장을 부추긴다. 이번 합의문을 보도하는 언론의 모습을 보면, 정부와 건강보험 가입자단체는 무슨 국민의 주머니를 지키기 위한 마징가 제트요, 의사는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먹기 위한 암흑대장군이다. 의사들은 나름 보험료 인상의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사람들은 기득권자 악당인 의사들의 목소리를 잘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이 건정심 개편 문제는 ㅍㅍㅅㅅ의 다른 글 ‘의협-정부 합의문, 논란만 키운 건정심 문제’가 다루고 있다.)
의사의 목소리: 왜 낮은 보험료가 문제가 되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의사의 목소리를 죄다 기득권의 것이라며 무시해선 안 된다. 그들은 어쨌든 의료제도의 가장 핵심이다. 현장에서 환자의 생명을 놓고 다투는 의료의 중심이다. 그들의 목소리야말로 의료 현장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을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간 그렇게 많은 의사를 만나본 건 아니지만, 많은 의사들은 “돈을 못 번다”는 것 때문에 분노하고 보험료 인상을 요구하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 그들은, 진료의 자율성이 침해된다는 것 때문에 분노했다. 인터넷에서도 이 점 때문에 화를 내는 의사들의 목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어떻게 낮은 보험료가 의사의 자율적인 진료를 방해하는가?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려 하는데, 너무 낮은 의료수가 때문에 진료를 제공하면 할수록 손해가 나는 것이다. 또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폭풍설사라는 병에는 약을 세 번까지만 투약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리수령이라는 환자는 증상이 특히 심해 네 번을 투약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의사가 양심적으로 네 번을 투약한다면, 과잉 진료를 했다며 진료비를 삭감당할 수 있다.
이건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의사들이 이런 일을 겪고 있으며, 이에 대한 괴로움과 분노를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왜 낮은 보험료가 ‘심각한’ 문제가 되는가
의사들이라고 해서 전부 돈에 눈 먼 악마들은 아니다. 물론 개중에는 성형외과나 시력교정수술 전문 안과 같은 돈 잘 버는 의원을 열어 하루에 수천만 원을 쓸어담기를 원하는 사실상의 자본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소소한 의원을 열어 동네 사람들의 주치의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개중에는 정말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보람만으로 삶의 가치를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느 직종, 여느 세상의 사람들이 다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낮은 의료수가와 낮은 보험료는 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의료수가의 원가보전율은 70%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심평원 보고서 인용). 원가보전조차 안 된다는 말은 다소 과장이 섞여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건강보험제도 하에서 양심적이고 여유있는 진료를 했다가는 진짜로 망한다. 안 믿으실까 싶어 두 번 쓴다. 진짜로 망한다.
결국 뭔가 ‘다른 것’을 해야 한다.
장사다.
의사와 장사꾼
강남에는 성형외과와 피부과 외에 그냥 보통 의원을 찾아볼 수가 없다. 가정의학과 대기실에는 건강기능식품이 진열되어 있다. 치과 의원의 주력은 거의 온전히 비보험 항목이며, 임플란트를 살짝 변형시킨 이름의 네트워크 치과(라는 이름의 사실상의 체인)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한의원은 다들 한약을 권하며, 다양한 비만에 탈모에 피부미용 등 온갖 특화 한의원이 생기고 있다.
낮은 의료수가 문제는 의사들을 장사꾼으로 만든다. 물론 이런 분야가 의미없다는 건 결코 아니다. 미용을 위한 성형외과나 피부과도 당연히 필요하다. 임플란트가 필요한 사람도 많다. 한방 다이어트, 한방 피부미용, 효과 좋다. 문제는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다 여기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너나할 것 없이 내몰리면서 이 행위들은 의료행위가 아니라 장사의 영역으로 격하되어버린다. 모델같은 선남선녀가 상담실장이니 코디네이터니 하는 직함을 달고 ‘환자’ 대신 ‘고객’을 유혹한다.
경쟁이 더 나은 의료를 낳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의사도 경쟁에 내몰려야 한다고. 경쟁이 더 좋은 서비스를 낳을 것이라고. 사실 틀린 얘긴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의료 분야에서는, 난 잘 모르겠다. 모델같은 상담실장이 나와 달콤한 말로 고객을 유혹하는 저 수많은 ‘업소’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은 뛰어난 장사꾼들임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는 도저히 말 못하겠다.
이렇게 의사의 고소득은 유지된다. 그리고 그들이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의료수가를 높이지 못하게 만드는 유리천장이 된다. 이 유리천장 덕분에, 의사들은 의사 대신 장사꾼이 되기를 강요받는다. 그렇게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 악순환은 이미 꽤 심각한 단계까지 진행되었다. 안그래도 허울뿐이었던 의료전달체계는 무너진지 오래고, 의원급 의료기관들은 돈벌이의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흉부외과나 산부인과 등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가에 허덕이며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심화된 경쟁은, 시장지상주의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의사 대신 장사꾼들을 만들고 있다.
오래된 격언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을까 한다.
“병상이 만들어지면, 그건 어떻게든지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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