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영화과에서 배우는 것
나는 연극영화과에서 연기전공으로 졸업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 재미있었던 것은, 나와 내 주변의 선후배와 동기들, 그리고 수업까지. 수업은 사실은 연극사와 연기, 그밖의 예술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학생들에게 더 매력적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특히 이성에게) 더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가를 고민하고 연마하는 사람들 같았다.
그렇게 고민하고 연구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사람들이 선택을 받아 연예인이 된다. 그들의 외모는 화려하고, 행동 또한 매력적이고, 입는 옷 음식 읽는 책 등 관련한 모든 것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 대중에게 연예인이란 환상 그 자체다. 내가 저 사람이라면, 혹은 내가 저 사람과 연애를 한다면? 하는 상상과 함께 연예인을 소비한다.
환상을 소비하는 대중, 이를 구체화 해주는 디스패치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이 생긴다. 한 인기있는 연예인의 팬이 약 십만명이라고 하면, 그 연예인을 소비하는 방식은 십만개가 될것이다. 즉 각자가 다른 방법으로 한 연예인을 소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지현이라는 연예인을 소비하는 방식은, 대중에게 주목받는 매력적인 스타가 되는 것, 그녀 같은 스타가 되어 김수현과 연기를 하는 것, 전지현의 남편같은 재력과 외모를 다 갖춘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 그녀와 연애하는 것, 10년 전의 엽기적인 그녀나 프린터 광고를 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는 것 등 다양하다.
즉 연예인이란 대중에게는 환상 그 자체다. 현재가 어떻든 간에 더 나은 삶을 누리고 있는 것 같은 그들을 보며 그 환상을 소비하는 것이다. 그 정점에는 그 환상을 구체화 해주는 것이 있다. 바로 연예인의 “사생활”이고, 그 사생활의 노출에 관해서는 “찌라시”와 최근에 새로 생겨 주목을 받는 매체인 “디스패치”가 있다.
그럼에도 ‘찌라시’와는 다른 디스패치
찌라시와 디스패치의 차이를 설명하자면, 한 남녀공학 중학교에서 인기있는 여학생 A가 있다 치자. A는 수많은 여학생들에게는 질투의 대상이며, 남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던 중에 A에 대해 악의적인 소문이 돈다. 사실은 더럽게 논다더라, 담배도 핀다더라, 재수없다, 어느반 누구에게 꼬리치더라… 이것은 연예계로 치면 “찌라시”가 된다.
A를 질투한 여학생들이 그를 깎아 내리기 위하여 뒷담화를 했던 것 일수도 있고, A를 좋아하는 남학생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다. 소문은 자극적일 수록 전파속도가 빠르다. 그리고 그 소문을 향유하면서 A에게 느꼈던 열등감을 채우기도 하고, A를 좋아하는 남학생의 마음을 돌리기도 한다.
즉 찌라시 또한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발설되고, 자극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빠르게 전파된다. 사람들은 이 ‘찌라시’를 통해 연예인의 사생활을 소비하면서 무언가 비밀스러운 것들을 공유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의 환상과 맞추어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들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 A가 남학생 B와 팔짱을 끼고 가는 것을 우연히 누군가가 본다. 그러고서는 사진을 찍는다. ‘A’와 ‘B’가 함께 밥을 먹는 사진, 노래방을 가는 사진, 지하철을 타는 사진 등. 사진을 찍은 학생은 이를 페이스북에 올리고, 많은 호응을 얻어 학교 사람들이 보게 된다. 이건 ‘디스패치’다.
디스패치를 위한 변론: 찌라시를 죽인다
A에 대한 소문보다 훨씬 수위가 낮지만, 이건 진짜다. 증거가 있다. 그로 인해 A가 누구에게 꼬리를 쳤다던가 하는 많은 소문은 헛소문이 된다. 10년전 X파일 유출 이후 찌라시가 끊임없이 활개를 쳤었다. 대표적으로 김태희가 정용진이랑 결혼했다더라, 고소영이 재벌가의 누구 아이를 낳았다더라… 같은.
이런 소문들은 김태희가 비랑 사귀고, 고소영이 장동건과 연애하고 결혼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또 이런 열애설의 보도 형태가 변하면서 찌라시의 수위가 한참 낮아지고, 사람들이 찌라시를 믿지 않게 되었는데 나는 이를 주도했던 것이 증거부터 들이미는 디스패치라고 본다.
만약 A에 대한 사진 뿐만 아니라 인기있는 남학생 C나 전교 1등 D, 학교 대표 운동선수 E 등에 대해서도 누군가가 끊임없이 사생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그 사진을 더 믿으며 소문에 대해서는 관심을 주지 않게 된다. 이것이 찌라시가 힘을 잃은 이유다. 증거가 없고 말도 안되는 것 같은 찌라시는 디스패치에 대해서 리얼리티가 떨어져 관심을 잃은 것이다.
그럼에도 디스패치에 제동이 필요한 이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디스패치에 대해 걱정하듯, 당사자들이 자신을 찍은 사진을 본다면, 대개 불쾌해 할 것이다. 거기다가 학교 사람들의 호응에 도취 되어서 사생활 사진을 찍은 사람이 그 수위를 점점 올려간다면? 그렇다면 개인의 사생활은 완전히 파탄나는 것이다. 그 어떤 잘못도 없이.
하지만 이 학교에 대한 비유 외에도, 연예인이 자신의 사생활 노출에 대해 불쾌해 하고 꺼리는 이유가 있다.
연예인들 중 누군가는 자신의 연기실력 혹은 노래 실력으로 평가받아 돈을 벌겠지만 대다수는 아름다운 외모와 라이프스타일 등 환상을 팔아 인기를 유지하고 돈을 받는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이 환상의 종류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리고 많은 수의 그 연예인에 대한 환상은 실제 연예인의 사생활과 다를 것이다.
하지만 팬들은 연예인의 사생활을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동시에, 그 사생활이 자신의 환상과 맞아 떨어지길 바라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연예인의 사생활이 한번 노출이 되면, 자신의 환상을 부정당하고 결국 그의 팬이 되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 사생활이 인간적일수록 더하다. 그럼 그 스타의 인기도 함께 떨어지며, 이는 이 스타의 드라마 출연권, 광고 개수, 출연료 등 스타의 실제 수입을 좌우하는 것이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 스타의 사생활은 끊임없이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기자들은 이를 이용하여 기사를 생산해 낸다. 나는 아직까지는 디스패치가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는 스타의 사생활 노출이 개싸움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기자들은 더 자극적이면서 리얼한, 찌라시와 디스패치의 특성을 합친 기사를 내보내려 할것이고, 대중은 이를 소비하고 스타의 사생활은 점점 사라져갈것이다. 이것이 디스패치에 대해 한번 제동을 걸어야 하는 이유라고 본다.
하지만 스타의 사생활 보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스타의 존재 자체가 환상이며 이를 소비하고 싶어하는 팬은 언제나 있으므로. 하지만 그 공개 정도에 대해서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반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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