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분이 계시다. 기사에 따르면 해당 발전소에서는 지난 3년간 4분의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한다. 문제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한데 많은 분이 이 문제의 근원을 하청업체, 외주화로 꼽는데, 나는 이에 다소 동의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 산업 현장의 느슨한 안전규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년간 돌아가신 4분의 노동자 중에는 크레인 해체작업을 하다가 추락한 분도 계시고, 기계 협착사고로 숨진 분도 계시다. 크레인 해체만 놓고 보자면 디모빌 중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데, 장비 하나하나를 임대하지 않고 서부발전에서 다 사고 오퍼레이터까지 고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해당 크레인이 어떤 크레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시적인 유지보수를 위한 크레인이었다면 일 년에 한두 번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결국, 우리나라 발전용량의 5% 정도를 담당하는 엄청난 규모의 화력발전소를 모두 직고용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해결책이다. 문제는 안전규정과 그 안전규정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나는 8년 전 중동에서 발전소 시공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인근에 운영되는 현장으로는 가스 설비 및 LNG 공장, 그리고 비료공장이 있었다. 업무협의를 위해 이 공장에 들어가려고 하면 며칠 전부터 신청하고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해당 공장에 Work permit을 받는 일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이게 사우디아람코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려면 자동차도 해당 기업 안전규정에 따라 보강을 해야 한다. 공장 안에서 휴대전화를 보는 것은 물론 촬영조차 금지되어 전화를 휴대하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사망사고는 물론 노동자의 경미한 부상에도 해당 기업은 일을 계속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실 안전이라고 하는 것이, 이쪽 계통에 있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하인리히 법칙에 따라 300건의 물적 피해와 29번의 경상이 이루어지면 필연적으로 1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가벼운 사고라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인 안전 추세다.
그런 아람코의 안전규정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지금이라도 구글링을 하면 찾아볼 수 있는 이 아람코의 안전규정은 500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세세하게 다 규정이 되어 있다. 물론 이는 건설에만 해당하는 것이지,오퍼레이션의 영역까지 가자면 훨씬 더 많은 규정이 존재할 것이다. 작업자의 모든 행동은 이 메뉴얼에 따라 이루어진다. 과연 서부발전에 그런 세세한 메뉴얼이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메뉴얼만 만들어 놓는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중동에서 근무한 시절에는 나이가 지긋한 영국인 할아버지가 계셨다. 이 할아버지는 군대를 다녀온 이후부터 계속 안전업무만 하셨다고 하는데, 우리 현장의 안전을 책임지는 HSE 매니저였다. 매니저라 할지라도 감독인 현장 소장의 통제를 그다지 받지 않는다. 본인이 판단하여 이것은 안전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당장 작업 중지를 내리기도 한다. 이 아저씨 밑으로는 대략 20~30명의 안전요원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도 수시로 현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안전규정에 어긋나는 것들을 지적하고 중지를 시킨다. 그러니 나같이 공사를 진행하려는 매니저와는 매번 갈등이 발생한다.
앞서 수백 페이지의 메뉴얼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HSE 조직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 메뉴얼을 노동자들보고 다 숙지하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나 많은 안전요원이 돌아다니는 이유는, 현장에서 근로하는 노동자들은 당연히 그러한 메뉴얼을 잘 알지 못하기에 일일이 지도를 해주기 위함이다. 물론 안전상 문제가 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해당 노동자를 관리·감독하는 나 같은 매니저나 감독에게 이의제기를 하고, 시정을 해나간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 안전요원들은 다른 어느 국가공무원이나 공사직원들이 아니라 우리가 고용한 직원들이다. 안전요원들이 이렇게 안전규정을 따지고 다니지 않으면 재해가 발생하고, 때문에 프로젝트가 중단되면 금전적 손실이 엄청나기에 고용하는 것이다.
안전문제에 따른 처벌은 강화해야 한다. 발전소 가동을 중지시키든, 책임자를 구속을 하든, 산업 현장에서 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 크나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이러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하청업체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해당 시간 해당 현장을 책임지는 담당자는 있을 것이고, 발전소장도 있을 것이다. 위험한 석탄발전소를 야간에 혼자 유지보수를 위해 다녔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현장의 안전담당자와 관리책임자는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인가.
하청업체 직원을 서부발전 정직원을 시킨다 한들 이러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한 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소수의 ‘좋은’ 일자리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모든 일자리가 좋아져야 한다. 안전규정을 강화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해도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고, 위험한 일은 거부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해당 일자리도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있다. 프랑스, 미국, 스위스, 일본, 독일이라고 화력발전이나 원자력발전에 일하는 사람을 모두 외국인 노용자로 고용하진 않을 것이다.
첨부 그래프와 같이 우리나라의 산업재해사망자 비율은 타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다. Death rate은 높은데 Accident rate이 낮은 이유는, 어느 정도 다치면 산재로 신고하지도 않고 합의를 보는 문화 때문일 것이다.
이제 일 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이다. 안전문제를 꼭 짚어봐야 한다. 안전 문제가 조명될 때마다 외주문제로 넘어가곤 하는데, 태안화력발전소와 같은 대규모 시설 외의 반월공단이나 남동공단, 울산이나 거제도와 같은 곳에서는 더 위험천만한 일이 아무런 관리·감독도 없이 벌어지고 있으리라. 부디 본질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안전문제의 근원은 안전에서 찾아야 한다. 높은 곳에서 일하면 당당히 고소 장비를 가져다줄 것을 요구하고, 안전하지 못한 작업환경에서는 공장가동을 중단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작업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회는 아주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독일의 산업재해 사망률을 보라. 독일의 시스템을 벤치마킹만 해도 절반은 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러한 노력은 정부의 몫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당장 안전기준이 높아지면 전기요금, 배달요금, 아파트 건축비용이 비싸질 수 있고 세금도 올라갈 수 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 그런 것 좀 감당하고 살자. 그게 선진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