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관점에서 볼 때, ‘자영업’은 매우 중요하다. 선거에서 승패를 가르는 핵심은 ‘중위수 유권자(=Swing Voter)’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중위수 유권자의 핵심은 계층으로는 ‘자영업자 + 주부’이며, 세대로는 ’50대’이다. 지역으로는 ‘부산-울산-경남’으로 볼 수 있다. 참고로 10년 전까지 ‘지역 중위수’는 ‘충청권’이었다. 이를 종합해보면, ‘부산-울산, 경남 출신의 + 50대 + 자영업자’에게 지지를 얻으면 그 선거는 승리할 수 있고, 이들로부터 민심이반을 겪게 되면 해당 선거의 승리는 쉽지 않다고 봐야 한다.
내가 민주당 안에서 ‘최저임금 1만 원’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2015년인데, 경제적-정책적으로도 부작용이 매우 심하지만, 정치공학적으로도 매우 부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덧붙여 자영업은 ‘대선’에서는 덜 중요하고, ‘총선’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민주당에는 운동권 출신들이 바글바글한다. 그래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죄다 본인이 ‘정치 공학’에 대해서는 가장 뛰어난 ‘전략가’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편인데, ‘반독재 민주화’만 하던 시절에는 그럴 수 있지만, 가면 갈수록 ‘정책을 모르는 전략가’, 그리고 ‘경제를 모르는 전략가’는 개념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민주화될수록, 과거의 임무를 하나씩 해결해나갈수록, 우리는 ‘그다음 단계’의 임무와 마주하게 된다.
군부독재 퇴진, 권위주의 정치세력의 역사적 쇠락, 지역주의, 보스정치가 물러난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정책을 매개로, 유권자 연합을 만들어내는 정치 공학이 중요해진다. 나는 이것을 ‘정책 공학’이라고 표현한다.
정책을 매개로 유권자연합을 재배열할 수 있으려면, 그리고 그런 작업을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하려면, 정무와 정책, 선거와 일상적 통치, 정책과 마케팅, 정치와 경제를 동시에 넘나들 수 있어야만 한다. ‘전략단위’에 있는 핵심적인 개인들도 그런 능력을 겸비하고 있어야 하고, 동시에 그런 사람들로 ‘팀워크’를 꾸릴 수 있어야 한다.
경제학적으로, 정책적으로 자영업은 매우 흥미로운 분야이다. 자영업은 원래 법률적으로 존재하는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자영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강력한’ 생존력을 발휘하고 있다. 자영업 개념의 사회학적 기원이 궁금한데, 잠정적 가설은 한국의 강력한 ‘농지개혁’으로 인해 만들어진, 강력하게 평등주의적인 ‘소농의 정서’가 아닐까 싶다.
취업자 대비 자영업 비율의 장시 시계열 자료를 보면, 1980년 초반 40%가 넘던 자영업+무급가족 종사자 비율은 2016년경 25%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요컨대, 한국 자영업은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 원’ 정책이 있기 전에도 ‘급격하게’ 줄어들던 중이었다. 한국 자영업은 왜 몰락하고 있었을까? 자영업 몰락의 ‘변인’은 무엇일까?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에서 남윤미 부연구위원이 발간한 2017년 정책 페이퍼인 「국내 자영업의 폐업률 결정요인 분석」은 한국 자영업이 ‘몰락하고 있는’ 원인을 알 수 있는 논리 틀을 제공해주고 있다.
남윤미 부연구위원은 자영업체 폐업률을 다음 4가지 요인으로 구분해서 접근했다.
- 경기적 요인
- 비용적 요인
- 경쟁 요인
- 업체 특성
분석의 결론은 아래와 같다.
- 경기적 요인: 소비자물가지수, GRDP, 실질 GDP 증가율이 높을수록 자영업체의 폐업위험은 감소한다.
- 비용적 요인: 중소기업대출금리, 임대료, 상용종사자 수로 측정한 비용이 많이 들수록 폐업위험이 증가한다.
- 경쟁 요인: 동일 행정구역 내 동종업체 수가 많을수록 폐업위험이 증가한다.
- 업체 특성: 총종사자수로 측정한 업체의 규모가 클수록, 사업경력이 길수록 폐업위험이 감소한다.
종합해보면, ‘경기가 좋으면’ 자영업이 잘 되고, ‘비용이 커지면’ 자영업이 어려워지고, ‘경쟁이 심해지면’ 자영업이 어려워지고 ‘규모가 클수록’ 생존확률이 높아진다.
‘네 가지 기준’을 가지고 최근 자영업의 어려움을 적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 ‘경기’를 보면, 2017년은 반짝 호경기였다. 2018년은 ‘전년 대비’ 안 좋았다.
- ‘비용 요인’을 보면,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은 비용부담을 가중했다. 임대료 정책, 신용카드 정책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많이 올렸다.
- ‘경쟁요인’은 크게 세 가지 요인으로 인수분해할 수 있다.
-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노동자가 늘어났다. 노동시장 상황이 자영업의 과잉공급 여부를 결정한다.
- 전자상거래, 닷컴세대의 부상, 물류 혁신이 결합해서 ‘유통혁신’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자영업 쇠락’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 ‘식료품 기업’에 의한 ‘상품혁신’이다. 「김혜자 도시락」을 포함해서, ‘프리미엄 라면’ 등이 해당한다. ‘고급’ 식료품들인데, 소비자 관점에서 동네 자영업 상품보다 가성비가 뛰어나다.
- ‘업체 특성’을 고려하면, 자영업 역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프랜차이즈 활성화’이다. 프랜차이즈는 ‘갑을관계/불공정’은 규제하되, 산업 자체는 활성화를 도와줘야 한다.
프랜차이즈의 개념적 본질은 ‘유통업의 포드주의’이다. 본사의 축적된 노하우에 기반한 중앙집중적 관리시스템을 통해, 유통업에서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를 추구하는 게 프랜차이즈 산업의 특징이다. 다만 프랜차이즈 산업은, 숭실대 박주영 교수가 잘 지적하는 것처럼, 본사는 ‘매출액 극대화’를 추구하게 되고, 가맹점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구조적인 이해 상충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대해 ‘진입 규제’를 하거나, 공정위가 ‘관치스러운’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필수물품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정보공개서 제공의 내실화가 이뤄지도록 간접적인 방식으로 개입해야 한다. 프랜차이즈 산업에 존재하는 ‘공시제도 활성화’와 유사한 제도가 바로 현재 공정위가 규제하는 ‘가맹사업법’에 포함된 ‘정보공개서 제공’이다.
진입 자체를 규제하거나, 가맹점주들을 보호하는 카르텔을 만들어주는 방식은 좋은 개입이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가맹점주들이 좋아할지 모르지만, 산업생태계의 기초 체력을 저하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참고자료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