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지나가는 인연을 지나가도록 두는 것이다. 평생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는 것, 오히려 평생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을 배운다. 늘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에게 좋은 것을 나누어주고, 서로의 삶이 근거리에 있는 동안 그 반경 속에서 서로를 챙겨주던 사람들. 이 거대한 세상 속에서, 흘러가는 삶 속에서 서로를 지켜주었던 사람들.
한때는 그렇게 지나가는 인연들이 너무 아쉬웠다. 더 오래 서로를 지켜주고, 서로에게 돛이 되어주기를. 서로를 나아갈 수 있도록 떠밀어주는 존재로 남았으면 했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 밤을 새워가며 글쓰기, 인간, 꿈과 삶에 관해 이야기하던 친구는 휴대전화에 연락처조차 남아있지 않다. 매일같이 만나며 삶 속에 놓인 서로의 위치를 확인해주고, 그로써 지금 여기에 설 수 있게 해주었던, 꿈을 꿀 수 있게,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던 친구들도 더는 연락하지 않는다.
몇 번은 일부러 연락을 하고, 과거의 기억을 벗 삼아 관계를 이어나가려고도 해보았다. 하지만 달라지기 시작하는 생활 반경과 발 딛고 있는 세계의 차이, 바라보고 추구하는 삶의 간극은 더욱 벌어질 뿐이었다. 그런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더는 흘러가는 인연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지나간 사람들을 지나간 시절들 속에 놓아둔다.
그들에 대한 감정을 현재에서 몰아낸다. 애착도 증오도 후회도 아쉬움도 없이 분리시켜 박제한다. 다른 삶에, 다른 세계에 놓였고 이제 기억이 된 사람들. 이따금 만날 일이 있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현재 이곳의,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다른곳의,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아마 그럴 수밖에 없는 데는 당신도 나도 삶 속에서 더는 과거의 자신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당신이 알던 나를 더 이상 모른다. 내가 알던 당신도 당신에게는 더 이상 당신이 아니다. 서로 과거를 향해, 기억을 겨냥하며 눈앞의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니까 이미 새로워진 현재의 당신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위에 덧씌운 내 기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렇게 지나간 시절을, 흘러가는 인연을 지나가도록 둘 수 있는 덕분에 또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새로운 삶, 새로운 세계, 새로운 생활공간에서는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게 좋은 사람들, 서로에게 필요하고 의미 있는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현재 눈앞에서 생생히 존재하는 그들에게 충실하려면, 역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는 일이 필요하다. 그들 역시 과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현재인 그들을 생생한 기쁨으로 받아들이자. 그다음 일은 그저 시간에 맡겨두자.
원문: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