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부자 가문은?
포브스지는 세계 부자 순위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주가 변동으로 어제보다 누가 더 부자가 됐는지도 알 수 있다. 현재는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 MS의 빌 게이츠,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이 TOP3다. 이들의 재산은 10년 전보다 2배(버핏)에서 20배(베저스) 커졌다.
개인으로 보면 이들이 최고지만 가문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로스차일드 가문 재산이 50조 달러로 알려졌지만 화폐 전쟁의 저자가 1850년대 재산 $ 6B을 6% 복리로 계산한 허튼소리다. 50조 달러는 전 세계 GDP의 70%, 전 세계 부의 21%다. 당시의 재산도 불확실하고, 8대까지 내려온 로스차일드 가문이 상속세를 40%씩만 냈어도 재산은 1.7%만 남는다.
세계 최고 부자 가문은 월마트를 세운 샘 월튼의 가문이다. 월튼 가문의 재산은 2018년 기준 $151.5B~$174.5B로 최고 부자인 제프 베저스보다 많다. 상속세를 내고도 이 정도니 샘 월튼의 재산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포브스지가 밝힌 로스차일드 가문 재산은 $1.6B이다. 월튼 가문의 1/100.
샘 월튼은 소박하기로 유명했다. 낡은 픽업트럭을 타고 다니고, 경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경비행기를 몰며 미국 각지의 월마트를 돌아다녔다. 1센트도 아끼려는 그의 짠돌이 정신이 그대로 녹아 들어있는 것이 월마트다. 성격도 괴팍하고 깐깐해서 언론과 인터뷰도 하지 않고, 주위에 많은 사람을 두지 않았다. 그의 깐깐함을 뚫고 친구가 된 외부인이 있으니 존 휴이다.
집사람이 제 곁을 떠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존 휴이는 1988년 포춘지에 입사했다. 포춘지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하는 것은 어느 회사나 반기는 일이지만, 월마트는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샘 월튼이 얼마나 언론을 싫어했는지 그의 사진을 가진 언론사가 없었다. 편집장은 남부 출신인 존 휴이를 샘 월트 본사가 있는 아칸소로 보냈다.
크리스마스 2주 전쯤 아칸소에 도착했는데 날씨가 최악이었다. 월마트 본사로 가서 말 그대로 월마트의 문을 두드렸지만 ‘베키’라는 비서는 “회장님이 사냥하러 가셔서 만나 뵐 수 없다”라며 존 휴이를 돌려보냈다. 존 휴이는 낡은 픽업트럭을 찾아 아칸소를 맴돌았다.
10일쯤 접어들었을 때 같이 있던 사진기자에게 포기하고 돌아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차를 타고 돌아가는데, 월마트 본사 앞에 낡은 트럭이 있었다. 무작정 건물 안으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고 베키를 찾았다. 베키가 아닌 샘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샘 월튼 씨 되십니까”라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라고 답했다. 나는 “저는 포춘의 존 휴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당신을 만나려고 10일 동안 근처를 맴돌았습니다. 집사람이 제 곁을 떠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당신 사진을 찍지 못하면 직장에서 해고될 것이고, 그러면 정말 끔찍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될 겁니다. 딱 10분만 내주십시오”라고 애원했다.
알다시피 기자들에게 자존심 따위는 중요치 않다. 마침내 샘 월튼이 나왔고, 그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는 사진을 찍는 내내 “쓸데없이 플래시와 필름을 낭비하고 있다”라며 투덜거렸다. 그리곤 “지금 찍은 사진을 1면에 쓰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협상을 거쳐 간신히 1면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나는 월마트에 관한 장문의 기사를 작성했다. 그리고 이후 3년여 동안, 그와 함께 비행기와 자동차를 타거나 심지어 히치하이크를 하며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c) 스티브 잡스 vs 샘 월튼 두 거인을 심층 비교하다 「2013년 2월 호 포춘지」
존 휴이는 샘 월튼이 조종하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고, 1992년 샘 월튼이 작고할 때까지 병상을 지켰다. 존 휴이는 샘 월튼이 믿는 유일한 외부인이었다.
파워 블로거에서 정용진의 오른팔로
존 휴이와 비슷한 경우가 한국에도 있다. 2,100만 방문자를 보유한 미식 블로거 팻투바하, 바로 김범수다. 일반인은 예약하기도 어려운 세계 유명 음식점들을 수억 원의 사비를 들여 방문하고, 유럽 미식 투어도 기획했다. 나도 그가 추천한 Centre the Bakery에 간 적이 있는데, 잼과 빵 세 조각에 2만 원을 내고도 아깝지 않았다.
그의 탐미적 열정을 높게 산 정용진 부회장은 2011년 신세계푸드의 팀장으로 합류시켰다. 전지현도 기다렸다는 데블스도어를 2014년 론칭했고, 베키아에누보, 파미에스테이션, 스타필드 고메스트리트를 성공시켰다.
샘 월튼처럼 주위에 많은 사람을 두지 않는 정용진은 해외 출장에도 함께할 정도로 김범수를 가까이했다. 김범수 팀장은 2017년 12월 상무로 승진했고, 2018년 7월 신세계그룹이 처음으로 론칭한 ‘레스케이프(L’Escape)’ 호텔의 총지배인이 되었다. 호텔 경력이 없는 사람을 총지배인으로 내세운 파격 인사였다.
레스케이프 호텔은 기존 호텔과 다른 점이 많다. 기존 호텔이 방값을 낮추고 식음료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과 다르게 방값을 높이고 식음료 가격을 낮췄다. 자신이 잘 아는 식음료에서 가격 대비 큰 만족을 제공해서 모객하는 전략이다. 중국, 동남아의 젊은 부자를 주 표적으로 삼았기에 204개 객실 중 스위트룸이 80개다.
왕의 남자의 몰락
6개월이 지나 김범수는 총지배인 자리에서 물러나 기존의 신세계조선호텔 식음 기획 담당으로 돌아갔다. 3분기 영업 손실 52억을 기록하며 실험은 실패했다. 분기 중 교체된 걸 보면 4분기 손실도 클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방의 경쟁력이다. 계열사인 5성급 웨스틴조선보다 4성급 레스케이프가 더 비싸다. 레스케이프 호텔의 방값은 30만 원대부터 시작하는데, 최저가가 30만 원 이상인 호텔은 신라호텔, 포시즌 호텔, 시그니엘 호텔뿐이다. 객실점유율이 주말 30%, 평일 10%대까지 떨어졌고, ‘디럭스룸 미니’ 가격을 24만 원으로 낮추며 백기를 들었다.
식음료에서는 특급 호텔보다 30~50% 낮은 가격을 제시해서 호응은 얻었지만, 돈이 안 됐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면세점을 노렸다는 남대문 시장 옆 위치도, 수영장과 뷔페 레스토랑이 없어서 가족이 외면한 것도 실패 원인이다.
이것이 언론이 파악한 패인인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호텔은 고관여 제품으로 식음료보다 더 깐깐하게 비교하고 조건을 따진다. 고급 식음료 전략을 그대로 갖다 쓸 곳이 아니다. 일 년에 한 번쯤은 40만 원짜리 미슐랭 식당에 과욕을 부리고, 좋은 일이 있다면 10만 원짜리 오마카세를 지를 수도 있다. 하지만 급하지 않은 이상 40만 원짜리 방은 쉽게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김범수 총지배인은 우선 방이 아닌 식음료에서 승부를 봤어야 했다. 자기가 잘 아는 식음료에서 수익이 나는 모델을 먼저 만들어야 무리수를 둔 방에서 실패하더라도 식음료로 커버할 수 있다.
존 휴이는 샘 월튼의 전기를 써줬다. 존 휴이는 샘 월튼과 친하다는 이유로 월마트의 임원이 되지 않았다. 포춘지에 남아서 편집장까지 올랐고, 자신의 글쓰기 기술로 샘 월튼의 전기 Made in America를 써 줬다.
정용진 부회장이 김범수를 읍참마속 한다면 자신에게도 칼을 대는 것이다. 김범수가 식음료에서 재기할 기회를 줬으면 한다. 아니 식음료에 머물렀으면 한다. 이대로 지기에는 블로그에서 본 그의 안목이 너무 아깝다. 그는 먹을 때 제일 행복해 보였다. 범수 형은 먹는 일을 하자.